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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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엎드린 사자, 우리가 CAP10B를 타고 날았던 이야기 말이에요. 그 이야기를 하는 내 목소리를 생각하세요. 그럼 우리의 두 기억이 하나가 될 거예요.
당신이 내게 낙하산을 메어 주었어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낙하산 줄의 길이를 맞춰 주고, 말아서 접은 다음 버클을 채워 주는 그 일은, 이상하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의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리고, 옷을 벗기는 일과 그리 다르지 않았어요.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직면하기 전에 어떤 집중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말이에요.-73쪽

일단 사람들이 솔직해지고 나면 놀랄 만한 이점이 생기거든. 어떤 저항 운동에서든 그건 비교할 수 없는 전략적 이점이지. 우리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면 결국 늘 같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어.-80쪽

젊이이들은 현재 자신들이 아는 걸 그 누구보다 생생하고, 강렬하고, 정확하게 알아요.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부분에서는 전문가예요. 나머지 부분은 우리가 보여줘야 하는 거겠죠. 어쩌면 항상 그런 식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승리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 투쟁에는 끝이 없으며, 그러한 사실을 알고도 투쟁을 계속해 나가는 것만이, 삶이 우리에게 준 커다란 선물을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거겠죠!
그들이 당신을 잡아가기 전에는 미래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았어요. 부모님 세대는 우리가 미래를 위해 싸운다고 하셨겠죠. 우린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남기 위해 싸우는 거예요.-95쪽

우리는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다-우리는 그것을 지켜 준다.-97쪽

나는 가만히 지켜봐요. 내가 무얼 지켜보는지 알아요? 나는 거친 혀로 자신을 깔끔히 단장하는 당신의 부재를 보는 거예요.-155쪽

모든 약탈자들은 그들이 방금 도착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잊어버리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늘을 보기 위해 침대위에 올라간다. 하늘을 보면 내가 잠시 잊고 있었을지 모르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예를 들어, 오늘날 금융 투기의 대상이 되는 사모펀드의 총액은 전 세계 국가들의 국민총생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스무 배나 크다!

바람, 구름 옆으로 보일 듯이 부드럽게 부는 바람만으로도, 그런 환상들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에는 충분하다.-161쪽

기다리는 법을 아는 피는
또한 돌이 되는 법도 알고 있다
세상 속에 있다는 것은 고통이다
이것이 내가 배운 것이다

(휘모리 : 베잔 마투르라는 터키의 시인이 쓴 시란다)-169쪽

하지만 아주 큰 비밀들도 있어요. 너무 크기 때문에 직접 팔로 그 크기를 재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숨겨진 채 남아 있는 그런 비밀들. 그런 비밀들은 바로 약속들이에요.-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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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2-1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제투쟁을 하다 감옥에서 이중종신형을 선고 받은 남자와 그를 사랑하며 기다리는 여자의 편지글로 된 소설이다.

사실 감옥문학이라면 우리나라도 어디서 빠지지 않는다. 세계 최장기수를 보유했던 나라가 아닌가. 생각해보면 그 세계 최장기수인 분은 이십대에 들어가 할아버지가 되어서 나왔는데, 사실 많이 배우지도 투철한 사상가도 아니었다. 그런데 간단한 반성문(?) 한장이면 출소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냐는 물음에 '그러면 그 사람들이 맞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것'이라 수천번 그러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단다. 그는 누이가 나무에 묶여 난자당해 죽임을 당한 걸 보았다. 이러고 보면 이 지구상에 평화로운 곳은 정말 한 줌도 안되는 듯 하다. 하긴 그 한줌의 공간도 생존 전쟁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삶에서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정말 적다.

나는 책을 읽는 이유도 희망따위를 찾거나 뭔가 의미있는 걸 배우려고 하기 보단 나로 남기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비로그인 2010-02-13 00:14   좋아요 0 | URL
음.. 나로 남기. 그런 것이군요..

무해한모리군 2010-02-14 22:09   좋아요 0 | URL
음.. 이유 없는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지만요.

L.SHIN 2010-02-13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지만,
알파벳 A~Z까지 인격체라 한다면, 그들은 늘 순서대로만 있어야 한다면,
A는 X에게 다가서기까지 얼마나 긴 거리를 가야만 할까,
얼마나 크게 소리쳐야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0-02-14 22:10   좋아요 0 | URL
바로 지근거리에 있어도 마음은 한 없이 닿기 어려운 경우도 많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전해졌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감동적인가봐요.

꿈꾸는섬 2010-02-13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네요. 와닿는 구절들이 있어요.
휘모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해 좋은 일로 기쁜 한 해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10-02-14 22:11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가족들과 북적거리는 하루가 되셨겠네요.
아주 잠깐이라도 꿈꾸는 섬님 만의 쉬는 시간이 있었기를 바래봅니다.
올 한해 더 자주 이야기해요 우리 ^^*

후애(厚愛) 2010-02-13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연휴는 집에서 책만 읽으실 것 같은데요.^^
설연휴 잘 보내시고 즐거운 독서 많이 하세요.

무해한모리군 2010-02-14 22:12   좋아요 0 | URL
사실 어제 뭐 먹고 체해서 그냥 잤답니다.
자고 또자고 오늘도 책읽다 자고 으흐흐
아휴 게을러요 ㅎㅎㅎ

fiore 2010-02-13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옵빠아이폰으로 덧글ㅋㅋ담주가시는군요^^

무해한모리군 2010-02-14 22:13   좋아요 0 | URL
오~오오오오
신기술의 세계!
아이폰에 처음으로 솔깃해지는데요 ㅎㅎㅎ
알라딘 열심 블로거 상이라도 드려야겠습니다.

[해이] 2010-02-13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샀어요ㅋ 존복어 너무 조음ㅋ

무해한모리군 2010-02-14 22:14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이 추천해주셔서 샀는데 저 완전 사랑에 빠졌잖아요.
다른 것들도 읽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게을러서 리뷰는 못쓴다는 ㅋㄷㅋ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