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일 주간지의 기사에 따르면, 브뤼헐은 실은 민중의 영웅이 되는 데 필요한 자질들, 가령 '당파성과 낙관주의, 휴머니즘적 진보의 신념' 중 어느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진보주의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세계가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카루스의 추락>이나 <바벨탑의 건설>의 예가 보여주듯이,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노력은 대개 좌절과 실패로 끝난다. 게다가 브뤼헐은 자신이 민중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도 않다. <소경의 인도>가 보여주듯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모두가 구렁텅이에 빠질 뿐이다.-108쪽
브뤼헐이 보는 세계는 온통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풍자한다. 하지만 자신의 풍자가 세상을 바꾸어놓을 것이라 믿지는 않는다. 섣불리 세상을 바꿔놓으려는 노력은 외려 세상을 재앙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그는 이 뒤집힌 세계를, 그것의 부조리함, 그것의 불합리함을 있는 그대로,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런 부조리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조건이 아닌가?-112쪽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에 따르면, 미술사를 움직이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의지라고 한다. 현대 화가들이 유년기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적 묘사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다만 그럴 의지가 없을 뿐이다.-128쪽
영국의 비평가 로저 프라이(1865~1934년)는, "아이들은 자연을 베끼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상상하는 정신적 형상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클라이브 벨(1881~1964년)은 아동화의 특성을 "환영주의적 재현이 없는 것, 기술을 과시하지 않는 것, 숭고하게 인상적인 형태"로 요약한다. 이는 곧 모더니즘 회화의 특징이기도 하다.-131쪽
17세기의 회화는 여전히 원근법에 묶여 있었고, 대중의 지각 방식 역시 이 르네상스의 규약에 사로잡혀 있었다. 원근법은 당시 사람들이 세계를 보는 눈을 규정하는 선험적(?) 조건이나 다름없었다. 기스브레히츠는 눈속임이라는 시각적 농담으로 그들의 눈이 실은 특정한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원근법이라는 지각의 프레임의 안팎을 넘나들면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그 인위적 프레임의 존재를 의식하게 해주는 셈이다. 얼마나 현대적인 회화의 전략인가.-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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