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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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일 주간지의 기사에 따르면, 브뤼헐은 실은 민중의 영웅이 되는 데 필요한 자질들, 가령 '당파성과 낙관주의, 휴머니즘적 진보의 신념' 중 어느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진보주의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세계가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카루스의 추락>이나 <바벨탑의 건설>의 예가 보여주듯이,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노력은 대개 좌절과 실패로 끝난다. 게다가 브뤼헐은 자신이 민중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도 않다. <소경의 인도>가 보여주듯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모두가 구렁텅이에 빠질 뿐이다.-108쪽

브뤼헐이 보는 세계는 온통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풍자한다. 하지만 자신의 풍자가 세상을 바꾸어놓을 것이라 믿지는 않는다. 섣불리 세상을 바꿔놓으려는 노력은 외려 세상을 재앙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그는 이 뒤집힌 세계를, 그것의 부조리함, 그것의 불합리함을 있는 그대로,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런 부조리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조건이 아닌가?-112쪽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에 따르면, 미술사를 움직이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의지라고 한다. 현대 화가들이 유년기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적 묘사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다만 그럴 의지가 없을 뿐이다.-128쪽

영국의 비평가 로저 프라이(1865~1934년)는, "아이들은 자연을 베끼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상상하는 정신적 형상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클라이브 벨(1881~1964년)은 아동화의 특성을 "환영주의적 재현이 없는 것, 기술을 과시하지 않는 것, 숭고하게 인상적인 형태"로 요약한다. 이는 곧 모더니즘 회화의 특징이기도 하다.-131쪽

17세기의 회화는 여전히 원근법에 묶여 있었고, 대중의 지각 방식 역시 이 르네상스의 규약에 사로잡혀 있었다. 원근법은 당시 사람들이 세계를 보는 눈을 규정하는 선험적(?) 조건이나 다름없었다. 기스브레히츠는 눈속임이라는 시각적 농담으로 그들의 눈이 실은 특정한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원근법이라는 지각의 프레임의 안팎을 넘나들면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그 인위적 프레임의 존재를 의식하게 해주는 셈이다. 얼마나 현대적인 회화의 전략인가.-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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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는 그림 읽어주는 남자는 아니다
    from 세상에 분투없이 열리는 길은 없다 2009-10-22 20:40 
    이 책의 표제가 교수대위의 까치인 것을 보고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이 그림이 '말조심해라'로 읽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최근에 그를 둘러싼 이런저런 황당한 일을 생각해보면 그럴듯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그래, 그는 세상을 향해 경쾌하고 위트있는 펀치를 날릴 줄 아는 지식인이다. 그는 '말 조심 해라'로 알려진 그림에서 '사회 비판 의식'을 읽어주는 사람이다.  이 책에서 그는 그림을 읽어주지 않는다
 
 
무스탕 2009-10-2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1, 총 27406 방문

나 오늘 일등먹었어요 :)

무해한모리군 2009-10-26 16:55   좋아요 0 | URL
^^ 무스탕님은 정말 깜찍 하신듯ㅎㅎ
아드님의 사랑스러움은 다 무스탕님께 물려받았군요 히~

다락방 2009-10-26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25, 총 27538 방문

난 25등요!

무해한모리군 2009-10-26 16:55   좋아요 0 | URL
으흐흐 저도 들어오지 못한 사이 다락방님이 들어오시다니 환영!!

다락방 2009-10-26 16:56   좋아요 0 | URL
음..그렇지만 써놓고 나니 25등이 쫌 맘에 안들어요. 난...학창시절에도 1등을 해본적이 한번도 없어요....음.....그래서 지금 좀 많이 슬퍼요. ㅠㅠ

무해한모리군 2009-10-27 00:08   좋아요 0 | URL
25등 얼마나 조화로운 숫자예요~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머큐리 2009-10-2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리 조용했을까나...흠..궁금했어요..휘모리님..

무해한모리군 2009-10-27 00:07   좋아요 0 | URL
고향에 다녀왔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