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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서른 아홉의 작가 김연수는 중년이란 한번 본 길을 되돌아가는 것만 남은 시점이라 말한다.
우리는 이 아프고 공허하고, 믿었던 것들이 종국엔 내 등을 치거나 무너지기 마련이며, 내 옆에 가장 사랑한다고 믿어지는 가족들에 대해서도 일평생 진정 한조각을 이해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지는......... 이 삶을 왜 살아가야 하는가.
글의 뒤에 실린 신형철의 해설에도 나와있듯이 김연수는 그 답을 지나치게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는다. 삶이란 끝없는 상실과 소통불능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지만, 또 나는 내나름으로 나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허우적되는 것, 그래볼만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9편의 단편이 고르게 좋았다. 누군가에게 김연수를 소개할 때면 늘 말하게 되는 발전하고 공부하는 작가라는 점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의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고민들이 이 단편집에서 더 간결하게 변주되어 진다. (그의 팬들은 이책이 그래서 더욱 반가울 것이다.) 나의 삶이 시대에 의해 부정되는 순간(전작 밤은 노래한다)을 보여주는 '내겐 휴가가 필요해'와 고통과 상실, 그를 통한 소통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대성당을 패러디한 '모두에게 복된 하루'와 '달로 간 코미디언'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너와 나는 서로 다른 이방어를 쓰는 타인이며, 눈 먼 맹인이지만 때로 한순간 일지라도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외로움, 고통, 상실. '나의 외로움'을 통해 나는 너의 그것을 희미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다시 읽고 싶고, 누군가에게 한구절 읽어주고 싶은 책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의 이번 단편집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