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 제가 예전에 읽었던 <뉴스위크> 기사가 생각나네요. 일본이 한창 장기 불황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을 때 였던 것 같아요. 그 무렵 <뉴스위크> 동경 특파원이 쓴 기사를 봤어요. 불황 가운데서 일본의 샐러리맨들의 뜻밖에도 그동안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풍요로운 인생을 누리고 있다고요. (중략) 우리가 뭣 때문에 회사에 죽도록 충성을 바치고, 돈벌이에 매달려서 온 인생을 탕진하느냐. 사실 그렇게 살다보니까 죽을 때는 참 억울하죠. 안 죽으려고 난리들이죠. 죽음을 인정을 못하죠. 그래서 인공적인 생명연장장치에 매달려 발버둥치다 죽어가요. 한번도 관조의 삶을 누려보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죽는 방법도 몰라요. 우리들 인생이 이렇게 비참해요. 그런데 이제 이런 식으로 정신없이 질주하던 인생이 정지됐으니까 춤을 춰야지요. (중략) 

(외할머니의 가난함 속에서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운 것을 이야기 하고) 

이게 무슨 힘인가. 이 강인한 정신과 에너지, 이게 어디서 나온 걸까요. 사람 간의 관계에서 나온 힘이에요. 그때는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해도 아직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살아있었고, 그 공동체의 상호부조적인 관계망 덕문에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죠. 지금 경제상황이 어려워진다고 하니까 다들 왜 당황하고 죽는 소리를 내느냐 하면 공동체가 없어서예요. 

공동체란 토대가 없으면 아무리 물자가 풍부하고 높은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항상 불한해요. 그러니까 결국 좋은 삶이란 뭔가? 관계예요. 인생은 관계입니다. 에콜로지라는 것도 근본적으론 관계잖아요. 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공생해야 한다,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중략) 

이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살다가 죽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자본과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내 이웃들과 함께 일하고 서로 돌보면서 삶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살 수 있는 협동과 연대의 관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런 관계를 사회적 자본이라고 그러죠. 금융자본, 부동산 자본, 현금자본, 이런 게 아니고, 인간관계라는 사회적 자본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제일 중요한 자본입니다. 이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다면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중략) 

인생이란 게 기본적으로 이야기거든요. 우리를 진짜 행복하게 하는 건 돈이 아니예요. 좋은 인생을 사느냐 못 사느냐는 내가 얼마나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만들거나 기억하느냐에 달렸어요. 문학적 감수성이라는 것도 그렇게 해서 함양이돼요. 책을 보는 거, 그건 이차적인 거예요. (중략)

(관계망이 협소해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 삶은 이야기인데 이야기를 책으로 밖에 들을 수 없는 젊은 세대의 불행을 이야기 한다.) 

가난이란 게 절대로 배척해야 할 악이 아니란 말이예요. 받아들여야 해요. 사람에게 제일 소중한 재산은 타인이에요. 나는 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지요. 내 인생이 풍부하다는 것은 내가 맺어온 인간관계가 윤택하다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그래서 풍성한 이야기도 만들어지는거죠. 그렇잖아요? 진리중에 진리입니다. 하느님의 왕국은 너희 가운데에 있다. 개인 하나하나의 마음속이 아니라, 이웃들 사이의 관계 속에 있다는 얘기예요.(중략) 

(서울 서대문 농협박물관 앞 비석에 윤봉길 의사가 쓴 농민독본 인용을 얘기하며) 

일제시대에 윤봉길 의사는 고향에서 농민운동을 하면서 자신도 농사를 지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농민들을 위해서 책을 만들었어요. 근데 그 1930년대에 쓴 <농민독본>이 거의 유실되고 그 내용의 극히 일부가 남아있는데, 그중 한구절이 거기 씌어있죠. 우리나라가 아무리 공업국가가 되더라도 그래 설사 나중에 세계시장에서 쌀을 사먹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의 어디엔가는 반드시 농민이 있어야 된다, 농민은 인류의 생명창고를 쥐고 있다 그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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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6-1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 진보신당 대변인 김종철 씨 인가요?
저희구에 출마했을 때 우연히 마주쳐 악수 한 번 해봤네요.

나무처럼 2009-06-18 00:31   좋아요 0 | URL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진보신당 김종철이나 한겨레신문 김종철보다 훨씬 유명한 분인데^^ 물론 제 주변에서는 말이죠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6-18 08:0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오해하실 수 있군요..
나무처럼님께서 말씀을 잘해주셨습니다.
녹색평론 발행인이시고 요즘엔 시사인에도 객원으로 종종 글을 쓰신답니다.

머큐리 2009-06-1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 '가난이 악이 아니고 받아들여야 할 것' 이란 말에 얼마나 사람들이 공감할까요? 이미 화폐로 인간관계가 짜여져 있는 지금에 말입니다...ㅠㅠ

무해한모리군 2009-06-18 13:43   좋아요 0 | URL
이렇게 계속 소비하면서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니까.. 우리가 불행한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계속 말해야겠지요.. 사람들이 많이 받아들인다고 적들의 언어로 말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건 '재개발' 논쟁에서 진보들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선거에서 보임으로서 명분도 실리도 모두 놓친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