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없는 일요일이다. 

 집 앞 서점에 가서 서경식 선생의 신간인 고뇌의 원근법을 사서, 찻집에 자리를 잡는다. 

 그 짧은 시간 서점에서 찻집까지 가는 시간동안 책에 마음을 뺏긴다. 에밀 놀데의 풍경화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봤다. 아름답다.. 서경식은 늘 내 마음을 흔든다. 그가 가진 예민함이 콕콕 마음을 찌른다.  

 찻집에서 차 말고 맥주를 들이키며 찬찬히 읽어 나간다. 책에 언급되는 그림들도 꽤 많이 수록을 했다. 그래서 책값이 만만치 않았나보다.

 이런저런 약속들도 내 머리에서 지워지고, 책과 나 둘이서 대화를 한다.  

 '어 이게 오토딕스 거 였어? 와~ 나도 꽤 심미안이 있는 놈이군 ㅎㅎ' 혼자 흐뭇해 한다. 나는 에딘버러에서 오토딕스의 '모피위의 여인'을 본 적 있다. 그 그림이 전시된 방에 들어가자 마자 그림에 홀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화면 밖으로 넘칠 듯 한 황금 빛의 향연. 짜리몽땅하고 통통한 툭 튀어나온 눈의 그 여인이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당시엔 오토딕스가 누구였는지 몰랐고, 돈이 없었던지라 조그마한 엽서로 구매해 기숙사 방에다 붙여놓았다. (보는 사람마다 취향 참 이상하단 말을 했었다. 사실 내 블로그 메인 이미지도 한때 포스터로 내 방에 붙어 있었다)  아 이게 이렇게 유명한 작가 작품이면 다시 한번 포스터라도 구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해진다. 이 속물근성 --;;  

 그 지역의 유명한 화가인가 보다 생각했다. 영국은 많이 유명하지 않아도 자기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정성스레 전시해 놓은 경우가 많이 있다. 내 집앞을 그린 그림을 걸어서 갈 거리에 있는 미술관에서 본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일듯 하다. 왜 사람들은 멋진 사진도 좋아하지만, 자기가 아는 사람이 나오는 사진을 더 좋아하지 않나. 나만 봐도 책에 아는 사진 나왔다고 지금 한 단락째 쓰고 있지 않는가 ㅎㅎㅎ

  어쨌거나 책을 읽으며 미술과 상관 없는 이런저런 대화를 너무 많이 나눈 탓에 과음을 했고, 책도 다 끝내지 못했다. 

 중간평을 하자면, 그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의 형 서승의 얼굴에 화상자국처럼 분명한  분단된 조국과 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당한 디아스포라인 자신 처지. 무엇하나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읽어주는 근대의 그림이 이리 생생히 마음에 와 닿나보다.   

(서승 선생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격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08539 )

 요즘 일기는 왠지 음주 일기가 되고 있다. 끊어야 할텐데.. 예술과 술~ 너무 어울리는 짝이라 어쩔 수 없다 ㅠ.ㅠ 6월 9일날 이한열 열사 추모제를 한다고 동문모임에서 문자가 왔다. 69제에는 왠지 잘 가지 않는다. 그 정신없는 온갖 정치인들이 생색내러 오는 꼴 보기가 싫다 흠..  

 그리고 두산!! 이러면 안된다 정말.. 내 가슴이 주말내내 얼마나 아팠는줄 아느냐~ 두목곰 냉큼 돌아와라 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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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6-08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찻집에서 음주을 하면서 읽은 고뇌의 원근법은...무슨 맛일까 상상하고 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인데..먼저 읽으시네요..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6-08 09:24   좋아요 0 | URL
아주 안좋은 버릇인데 적당한 높이를 가진 테이블이 있는 찻집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책읽는게 너무 좋아요.
하드보일드 소설는 바에가서 읽고 싶어서 시도한 적이 있는데 너무 어두워서 실패했다는 ㅎㅎㅎ
(섹쉬한 바텐언니가 어두우시죠 하면서 열라 쬐깐한 초하나를 옆에 가져다 주셨다는ㅋㄷ)

바람돌이 2009-06-08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경식씨의 미술이야기는 저에겐 특별한 책이에요. 아주 오래전에 나온 <나의 서양미술순례>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보고 처음으로 서양미술로 사회를 읽을 수 있다는걸 알았어요. 그리고 덕분에 서양미술사도 제 독서목록에 올랐었고요. 이 책도 지금 열심히 기다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

무해한모리군 2009-06-08 10:48   좋아요 0 | URL
저는 기다리지 못하고 서점에 가서 확 질렀습니다. 제겐 서경식 자체가 특별한듯 합니다. 그분의 한국 번연본은 모두 읽은듯 합니다. 팬이지요 ^^ 스물엔 생각이 녹색평론화 되더니, 서른엔 감성이 서경식화 되는듯 합니다 ㅎㅎㅎ

비로그인 2009-06-0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당한 알콜은 감수성의 촉매제죠...^ㅁ^

무해한모리군 2009-06-09 18:00   좋아요 0 | URL
그죠~~ 그런데 적당이 늘 어려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