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왔다. 

한국만화100년 전시회를 보려고 갔는데 6월 3일부터라 전시준비중인 곳에 몰래 잠입해서 공중전화기에 기대어 있는 목각으로 만든 태권V만 잠깐 구경했다.  

대신 인도현대미술전을 구경했는데, 꿩대신 닭이 아니라 아주 한우쯤은 되는 훌륭한 전시였다.

인도현대미술전 - 세 번째 눈을 떠라!

인도의 현대미술가들의 고민은 어떤 것일까? 

첫번째는 전통미술을 어떻게 재해석해서 내놓을 것인가였다. 전통인도신전을 작은 모형크기로도, 병풍정도 크기로도 전시하고 있었는데, 인도적 정취가 물씬 풍기면서도 다양한 현대의 문양을 넣어 두었다. 현대적이지만 누가봐도 인도의 정신을 구현한 미술품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두번째는 현재 인도의 상황에 대한 고찰이다. 인도 역시 빠른 산업화에 따른 극심한 주택란과 쓰레기 더미, 끔찍한 교통환경으로 고통받고 있다. 파키스탄과의 국지전에 따른 이주와 실종, 테러의 고통도 있다. 작가들은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섬찟하게 현실을 고발해 낸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많은 미술품도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인도의 현대 미술을 접하고는 마음 한켠이 시큰해짐을 어쩔 수 없다. 

현대미술관을 가득 매운 우리나라의 작품들은 서양인이 동양화를 흉내낸 것 같은 그림 또는 마치 고흐의 그림처럼 동양의 색채를 지닌 서양화 같았다. 

그런데 인도의 현대미술에는 인도에 살아가는 민중들의 고충이 옅보이고, 그들의 사상과 철학과 종교의 일단이 잘라들어가 있었다.  

왜일까? 

그들도 영국의 식민지를 보냈는데, 아마 그들의 주류 예술가들도 미국이나 파리로 젊은시절 유학을 갔다 돌아왔을텐데 왜 그들은 세계의 양식을 배워 인도의 정신 속으로 녹여낼 수 있고 우리의 작가들에겐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을까? 

친일하고 친미한 사람들이 한 순간의 공전도 없이 이 세상의 주류에 있었기 때문일까?  

전통은 모두 쓰레기장으로 보내 버린 때문일까? 

그게 우리네 정신이 녹아나지 않는 이유라곤 하더라도,

왜 우리네 사는 얘기가 우리 그림에선 잘보이지 않는걸까? 
(아주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좋은 곳을 산책하고 좋은 그림보고 왔는데, 
아.. 마음이 약간 아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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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6-01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편에선 전통을 이야기 하지만 개발의 논리에 유산들이 묻혀 버리는 것엔 침묵하는 이상한 나라 라고 <대한민국 사용후기>의 저자가 그러더군요.
그래도 문학은 '지금'을 이야기 하는 작품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6-01 08:02   좋아요 0 | URL
아 이름을 잊어버린 우리나라 작가의 재개발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재구성한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요. 온 사회가 재개발이니 부동산이니 들썩이는데 이런 일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게 아쉬워요..
인도작가들의 작품에는 그런 것들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흠.

2009-06-01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6-01 08:10   좋아요 0 | URL
아니 제가 미인을 그냥 지나칠리 없는데.. 어제 네시간쯤 미술관에 있느라 발이 아파서 그랬나?

설치미술들 아주 신선하더군요.
특히 '몸이 껍질'이라며 벽에 몸껍질을 붙여둔 전시 인상적이었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현대미술이 늘 가장 이해하기 쉬운 이유는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들 자체가 아주 어려서 부터 사진이나 회화 보다 컴퓨터 영상물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서 그렇겠지요?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정통적인 회화나 사진들은 무척 상업화가 많이 되다보니 아무래도 대중에서 낯선 충격을 주기가 쉽지 않아졌으니, 낯설어지기 라는 예술의 속성상 설치나 비디오아트로 가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Alicia 2009-06-01 11:30   좋아요 0 | URL

저두 오후 세시부터 한 세시간있었어요. 정신없어서 15분씩 상영하는 건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왔어요. '몸이 껍질'인 설치미술은 벽에 붙어있는 주물로 뜬 사람모형 말씀하신거죠? 꼭 바람빠진 고무풍선처럼 주름까지 탄력이 느껴지죠~ 섬유유리로 만든 거라는데. 그 작가 이름이 A.발라수브라마니암이네요. ^^

저는 <죽음의 격차>라는 1루피를 주물로 떠낸 작품도 인상적이었고, 특히 마음에 들었던 주제는 간디초상이 그려진 우표인지화폐 오브제아트였어요. <나는 그가 안경 안쓴 남자로 보인다> 크으. ^^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기억이 꼭 동일하지는 않다는 거. 지금 우리 상황과도 너무 맞아떨어지고요.

인도는 세습적신분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경제력은 강하면서 또 빈부격차가 가장심하고, 암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잠재력이 있는 나라같아요. 단지 성장기계만가동하는게 아니라 문화․정신적 토양이 두껍다는 것도 굉장히 부러운 점이고요.

낯설게하기위해서 설치미술이나 비디오아트로 가는게 아닌가 싶다고 생각하신 부분은 에프라임 키숀의 말을 떠올리게 해요:) 저는 새로운 매체로 이양해가는 지금의 과정이 작가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어떤 대안이 될수 있지 않을까라는 점에 주목했더랬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6-02 07:32   좋아요 0 | URL
오 저도 그 간디연작을 보고 박장대소했답니다.
명바기로 꼭 한번 해봐야지 ㅋㅋㅋ

저작권 보호의 관점이라면 퍼포먼스가 가장 확실하겠는데요. 일회적이고 남지 않으니.. 하긴 요즘엔 유명작가의 퍼포먼스도 CF에 활용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