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폭음을 했다. 
술이 나를 먹어버리는 단계까지..
사실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절대 다른 사람과는 음주를 조심해 왔는데, 
울고불고 난리치는 추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였다.. 

나는 당췌 어찌 집에 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폭음후에 집열쇠를 잃어버렸나보다. 
술은 취했지 집문은 안열리지 한시간을 대성통곡을 했단다.
인근 h선배가 '무섭다'며 우는 내 전화를 받고 기겁해서 구출해주지 않았다면, 
같은 오피스텔 주민의 신고로 경찰서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민망해하고 있는 내게 h는 뜬금없이 무척 진지한 눈빛으로 묻는다.. 

'너 혹시 언제 심하게 맞은 적 있니?' 

"엥?" 

'나 어제 한숨도 못잤다. 너 상담 받아봐야 하는거 아닌가 싶어서..
넌 기억 못하는데 그런적 있는거 아니야?' 

"나 엄마한테도 한대도 안맞아 받는데? 왜 그러는데?" 

'그러게 니 연애도 그렇고 그럴만한 일이 아무리 생각해도 없을 거 같은데.. 
니가 어제밤에 나를 만나더니 두 손을 맞대고 싹싹 빌면서, 꼭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는거야.
열쇠가 없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무섭다면서 집이 아니면 안가겠다잖아.
근데 그렇게 비는 행위는 아주 비굴하잖아. 난 영화에서 말곤 본 적이 없거든..'  

그 때 내 머리를 치는 기억..  

어렸을 때 우리어머니는 내가 잘못하면 무릎을 꿇고 두손을 비비며 빌라고 했던 것이다.. 
퇴행.. 술에 꼬른 나는 5살배기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

뭐 우리어머니가 완벽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나를 키우고 사랑했던 것을 의심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이여, 자녀도 인격체이니 이런 비굴한 행동을 강요하지는 말지다. 무의식중에 나오기 마련이다.. 

어쨌든 사랑스런 h여 

'나 니가 전화를 걸어줘서 내가 전화를 받아서 너무 감사하더라. 아 내가 잠이라도 들어서 니 전화 못받았으면 어쨌을까. 이 밤에 이 위험한 집 밖에 니가 혼자 있었으면 어떻했을까. 밤새 그 전화를 내가 받은 게 너무 감사한거 있지' 

술먹고 온갖 행패를 일삼아도, 이렇게 말해주는 당신이 있어서 내 삶이 그닥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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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0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3-20 13:22   좋아요 0 | URL
이 글을 읽고 즐거워해주는 님이 있어 이포스트를 쓴 맛이 나는군요 ㅎㅎ

2009-03-20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3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09-03-20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손을 맞대고 싹싹 빌면서 집에 데려달라'고 하는 휘모리님은 잘 상상이 안 가는데요? 그건 뭐랄까.. 너무 귀엽잖아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3-23 08:10   좋아요 0 | URL
음허허 제가 사실 술을 먹으면 수다와 애교가 넘치는 편입니다 ^^;;

시비돌이 2009-03-2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비슷한 기억이 .... ㅠ.ㅠ

무해한모리군 2009-03-23 08:10   좋아요 0 | URL
시비돌이님도 집에 못들어 가셨나요? 그래도 집에서 기다려주는 식구들이 있으시잖아요. 저같은 독거는 ㅠ.ㅠ

Arch 2009-03-21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탐난다 h선배.
어렸을때 말고, 뭔가 자꾸 아프게 건드리는게 있는건 아닐까란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휘모리님, 너무 많이 먹지 말아요. 미잘님 말처럼 귀여움을 남발하는 듯. 흡!

무해한모리군 2009-03-23 08:11   좋아요 0 | URL
우울과 외로움이 뒤엉킨 술주정이었으나~~
퇴행인건 맞는듯 ㅎㅎ

[해이] 2009-03-21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선배 같은 친구가 진짜 친구!ㅋ 제 주변은 술먹으면 그냥 버려놓고 가던데 ㅎㅎㅎ(남자들 얘기이긴 하지만;;)

무해한모리군 2009-03-23 08:11   좋아요 0 | URL
전 그래도 길에서 잠들면 얼굴은 꼭 가려줍니다 ㅎㅎ

2009-03-21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3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3-2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h선배 완전 짱 좋은데요!!

그나저나 저도 어제 폭음하고, 타부서 사람들 앞에서 계단에서 굴렀어요. 으윽. 월요일에 회사를 어찌갈지, 회사가서 어떻게 그들의 얼굴을 볼지 심히 걱정되요. 아, 폭음은 정말 안좋은거에요.전 오랜만에 젊은 남자들 여럿과(그래봤자 유부남들) 술을 마셨더니 기분이 좋았나봐요. 왜 계단에서 구를 정도로 폭음을 한건지. ㅠㅠ


우리 폭음하지 말아요, 휘모리님. 엉엉.






그런데,
폭음없이 어떻게 이 봄을 견디죠? 네?

무해한모리군 2009-03-23 08:13   좋아요 0 | URL
저도 굴러서 어제 하루종일 장단지가 아픕니다~~
뭐 선수끼리 구른거 정도 민망해하지 마시기를 ^^;;

이 봄, 우리 운동이나 열심히 하면서 보내는건 어떨지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