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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전쟁가해자의 많은 수는 그저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다.
나치스하의 행정관료들이 과연 나치에 동의해서 일을 했을 것인가?
그들은 그저 왕정이든 군정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 나는 그저 나의 일을 하고 있기에 다른이를 착취하고 있는 것에 책임이 없는 것인가?
우리는 무수한 친일파를 '용서'하고 '이해'하며, 그들이 나의 부모임으로 화해해야 하는가?
'미래'를 위해 무익한 일이니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자도 있다.
그들이 진실로 용서를 빈다면 '이해'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용서'를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목숨을 댓가로 편히 살았던 사람이 마음의 짐마저 내려놓을 수 있다면 불공평한듯 싶다. 물론 우리나라의 그들은 용서를 빌지도 않지만 말이다.
p153
어른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돼
우리는 지금 행복이 아니라 품위와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
p199~120
어느 누가 제 때를 놓쳤을 경우, 어느 누가 무엇을 너무 오랜동안 거부했을 경우, 또 어느 누구에게 무엇이 너무나 오랫동안 거부되었을 경우, 그것이 나중에 가서 설사 힘차게 시작되고 또 환희에 찬 환영을 받는다고 해도 나는 그것은 이미 때가 너무 늦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너무 늦은'이라는 것은 없고 '늦은'이라는 것만 있는 것인가. '늦은' 것이 '결코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물론 이 글의 주인공이 가진 어려움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나는 자전거를 못타고, 수영은 잼뱅이다. 누구는 걷는 것과 같은데 왜 못하냐고 놀린다. 또 다른 자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집요하게 배우려는 나를 놀리기도 한다. 물론 내가 이걸 못한다고 해서 부끄럽거나 크게 불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삶의 성과물로 나는 자전거 타기와 수영을 성취하고 싶다. 많은 사람이 어린시절 쉽게 얻은 것이지만, 나는 무수한 시간을 투자해도 물 속에 버둥대는 수준일지라도 말이다. 누구도 어떤 일이 다른 사람에게 가지는 중요성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 내게 자전거타기와 수영이 삶의 주요 성과지점 중에 하나인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누구나 품위있는 삶을 향유하는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획득하는데 가지는 장애물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도 그 길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다양한 기회를 접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오늘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