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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하느님과 한국적 생명신학
이정배 지음 / 도서출판 새길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21세기 인류문명의 위기가 ‘생명’의 문제로 집약되면서, 인문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생명담론’은 일종의 학문적 화두가 되었다. 많은 이들은 인간과 인간의 문제로부터 자연과 인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억조창생이 진통하고 있는 전 우주적 ‘죽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신학’에도 마찬가지여서 일군의 신학자들은 이미 ‘생명’의 문제를 신학적 화두로 삼아 인류문명의 위기에 대한 응답을 시도하여 왔다.
이 책의 저자 이정배는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지난 10여 년 간 ‘생명’을 화두로 하여 신학적으로 사유해 왔던 조직신학자이다. 그가 지난 2002년 새길 기독사회문화원이 주관하는 <일요신학강좌>에서 ‘기독교 생명신학’이라는 주제 하에 진행한 10차례의 강연을 묶은 이 책은 역시 그의 신학적 방침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을 신학적 화두로 삼고 있으며, 그러한 하에 ‘생명신학’의 얼개를 구성하여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그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 자체에만 몰두하기보다는 철학, 과학과 같은 제반 학문과의 간(間)학문적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선 오늘날의 신학이 우리 시대에 사실 적합한 학문이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구성되어져야한다는 구성신학의 기제에 그 연원을 두고 있으며, 이와 같은 신학적 방침을 고수하면서 자신의 성서 해석원칙을 ‘자기 발견적 해석학’(heuristic hermeneutics)으로 설정한다. 그는 이러한 원칙하에 ‘생명신학’의 신학적 거점을 전통신학의 ‘하나님’ 개념이나 ‘예수’중심적 모델에서 벗어나 루아흐(Ruach), 즉 하나님의 영에 두고 있다. 이는 그간의 전통 신학적 교리를 벗어난, 다소 진취적인 신학적 도전으로 보인다. 나아가 ‘한국적’ 생명신학의 임계점을 ‘동학’의 주요 개념인 ‘지기’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것은 저자의 신학적 진보성을 방증할 뿐 아니라 그가 신학의 토착화 문제에 관하여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저자가 ‘한국적 생명신학’의 기틀을 다지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생명신학의 교회적 실천담론을 제시하는 대목은 눈길을 끈다. 그는 속도 늦추기, 침묵하기, 몸 비우기, ‘녹색은총’의 감각 회복, 마음 다하기, 일하기의 영성으로 제시되는 6가지의 제안을 통해 신학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의 생명문화 창출을 위한 실천적 과제에도 관심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반생명적,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해 나갈 종교적 수행의 다름 아니며, 이를 통해서 진정한 기독교 참여 영성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내에서의 이러한 신학적 논의들이 결론적으로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예언자적 외침이며, 참으로 아름답고, 살맛나는 하나님 나라를 열어가는 새 지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의 생명화, 신앙의 녹색화를 통해서만 이율배반에 빠진 오늘의 한국 사회와 온 지구 공동체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믿기 때문”(166쪽)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허황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