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한 사내가 있다. 신성한 권능의 상징인 '검'은 이미 그의 목전에서 사라진 터였다. 그 사내가 순례의 길에 오르게 된 것은 바로 그 '검'을 상실한 때문이었다.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검을 찾으라는 '람'의 명령은 검을 되찾기 위해 그에게 부여된 숙제였다. 사내는 산티아고 순례의 장정에 오른다. 검을 되찾기 위한 일념 하나로. 생장피에드포르에서부터 산티아고에 이르기까지 '검'을 찾기 위한 그의 여정은 지난하다. 이미 순례의 길목에는 그를 막아설 역경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선한 싸움'의 순례를 걷는 그에게, 닥친 역경은 기어코 그가 넘어서야할 적이자, 동지였다. 마스터의 권유대로 실행한 훈련들은 그가 이 역경을 넘어서도록 인도해주었고 고통스러운 그 길을 사내는 걷고, 또 걸었다. 골곡진 여정의 끝에는 '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지 그가 순례의 길을 끝까지 걸어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순례의 길에서 그가 밝혀낸 진리.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있었다. 그것이 욕망의 대상이었던 검의 비밀이었고, 그곳은 오만과 탐욕이 사라진 자리였다.

2.

 '결과보다는 과정의 적실함에 천착하라'는 선인들의 경구를 기억한다. 하지만 우리는 과정이 생략된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어떠한 방법이나 수단을 통해서라도 목적을 성취한다면 그 과정의 부정함을 눈감아주는 오늘날. 그러나 참된 삶이란, 오만과 탐욕으로 점철된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열정을 믿고 주어진 삶에 겸손하게 도전해가는 '선한 싸움'에 있다고, 고통과 좌절이 어린 산티아고 순례의 길은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한 싸움'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있는 비범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해줄 거라고. '우리도 솔로몬 왕처럼 지혜롭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강인해질 수 있다'고,그렇게. 신은 평범한 매일의 삶 가운데 우리를 기적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느끼며,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3.

 한 사내가 있다. 그 사내는 이제 이십 년이 지난 그 길 위에서 이렇게 회고하고 있었다.

"선택된 자들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거지? 라고 묻는 대신 마음속의 열정을 깨워줄 무언가를 실행하겠다고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었고, 천국문의 열쇠는 열정을 쏟아 행하는 그 일 속에 있었다. 그렇게 사랑은 변화를 부르고,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우리를 신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닿게 해주는 것은 열정이지, 수백 수천의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고. 비밀의식이나 심오한 교리를 따르는 입문식이 아닌, 삶이 기적임을 믿으려는 의지가 기적을 낳는 것이라고."(337~338쪽)

 우리의 삶 자체가 기적이었고, 기적임을 믿으려는 의지가 기적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그 기적 속에는 기어코 우리가 만나야할 '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검은 어떠한 신비로서가 아니라 영예로운 도전, 그 자체였고, 기적같은 우리의 삶을 도도히 관통하는 진리였다. 비로소 산티아고의 길은 우리의 삶에 대한 상징이었고, 순례의 여정은 우리가 살아내고는 말아야할 인생의 내용이었다. 그렇게, 이십 년전 순례자로 산티아고의 길을 걷던 그 사내는 이렇게 우리를 그 순례의 길로 이끌고 있었다. 기적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하는 진리의 초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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