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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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세상이다. 울분을 삼키다 보니 울화가 쌓였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릴없이 마른 기침 뿐이다.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오래 전 어느 시인의 눌함이 새삼 그립다. 정처 없이 길을 오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가련하다 느끼고 있을 무렵, 주름진 노인이 말을 건네 왔다. “분노하십시오!” 그는 자신을 레지스탕스라고 했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그는 차분하되, 틀림없이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는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를 분노로 정리했고, 분노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다만 분노해야할 것들을 찾고자 하는 이들만이 자신의 존엄과 행복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가령 생산 위주의 사고방식이나 정치적 무관심,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 현실 등은 그에게 있어 분노해야만 할 것들이었다. 분노는 저항을 낳고, 저항은 더 나은 세상을 창조한다고 그는 믿었다. 하지만 그는 자칫 분노가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경계했고, 폭력은 희망에 등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그의 이야기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부침 많았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신선할 것도, 흥미로울 것도 내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장황하거나 진부하지 않게, 차분차분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그의 말은 따뜻했다. 지나친 과장이나 격앙은 없었다. 기실 그의 언어는 분노의 능력을 상실한 세대에 보내는 진심어린 격려의 메시지였다. 억압당한, 자신도 모르는 채 자유를 잃고, 저항의 발톱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을 향한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였다.

 

그의 말은 그쳤고, 나는 곱씹는다. “잘 되어가는 사회란 무엇입니까? 모든 시민에게 생존의 방편이 보장되는 사회, 특정 개인의 이익보다 일반의 이익이 우선하는 사회, 금권에 휘둘리지 않고 부가 정의롭게 분배되는 사회입니다.”(61-62) 우리는 지금 잘 되어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라면, 왜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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