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 문학동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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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년을 두고 볼때 내가 읽는 시라고는 고작 10편 내외로 한정된다. 그리고 그 10편 내외의 시라고 해야 늘 알고있는 시를 한번 더 읽어보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4월이오면 김수영과 신동엽 시인의 시를, 가을이면 김현승과 윤동주, 김광균 시인의 시를 다시 펼쳐드는 정도이다. 그러한 시들도 처음 접하게 된 것이 고등학교 시절 입시준비를 위해 공부했던 시들을 다시 읽는 것이니 문학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 사람으로서는 아주 미천한 수준의 시읽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 나에게 절친한 교회후배가 시집 한권을 선물해줬으니 바로 그 책이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안도현의 시집이다. 신문지면이나 잡지 또는 인터넷을 통해 안도현 시인의 시를 간간히 접해보았던 경험이 있는지라 나름대로는 이 기회에 시집 한번 제대로 읽어보리라고 생각하며 펼쳐들었다.

이미 듣던 바대로 안도현의 시는 구수했다. 시 한절 한절 마치 어린아이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할머니처럼, 주름진 손으로 화롯불에 구워주시던 그 밤맛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순간 순간 절절하게 마음을 울리는 시구들이 꼿꼿한 마음을 녹아내리게도 해주는 듯 하였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부박한 현실과 이상 속에서 괴리하던 나의 마음을 더 복잡하고, 답답하게 만들어준 것은 나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p.13 '고래를 기다리며' 中)

'세상은 혁명을 해도
나는 찬 소주 한 병에다
숭어회 한 접시를 주문하는 거라
밤바다가, 뒤척이며, 자꾸 내 옆에 앉고 싶어하면
나는 그날 밤바다의 애인이 될 수도 있을 거라'
(p.16 '숭어회 한 접시'中)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p.40 '양철지붕에 대하여'中)

다른 시인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삶'이라는 화두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사여구로 치장하는 시쓰기가 아닌 '삶'그대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 몸뚱이로 살아내려는 마음들이, 그 언어들이 시 속에 구구절절 박혀있었다.

그 누구라도 삶이 지치고 힘들다면, 이 시집 한권 읽어보며 힘든 삶에 눈물 흘려봅시다. 찬 소주 한병에 숭어회 한 접시 먹은 것처럼 콸콸해진 마음을 느낄 수 있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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