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를 거닐다
이윤기 외 지음 / 옹기장이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가끔씩 정처없이 삶이 외로워지고, 무미건조해질때면 좋은 글 한편이 참 그리워집니다. 저도 모르는새 팍팍해진 마음을 더듬고, 보듬어주는 그런 글 하나 말입니다. 요며칠 그래서인지 인터넷 서점을 구경하다 좋은 수필 한편 그리워 눈에 띄는 책 한권 주문목록에 더했습니다. 해인사를 거닐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이 책의 미덕은 세가지 정도로 살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첫째,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무려 스물두분의 글을 앞뒤 순서의 특별한 배열없이 묶어놓았지만, 글 한편 한편이 책 한권 안에 잘 스며들어 일관된 분위기와 목소리가 각 저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함몰시키지 않고 아우르는 느낌입니다. 물론 '월간해인'이라는 간행지에 게재되었던 글이라는 공통분모가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와 성향을 비슷하게 구축하겠지만 무엇보다 저자 개개인의 글쓰기가 지니고 있는 장점들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소박한 가슴으로 만나는...산문'이란 말이 적실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우리네 일상 속에서 무심코 스쳐지나가기 쉬운 아주 작은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 속에서의 깨달음, 환상이나 공상이 아닌 삶의 자리에서 진솔하게 묻어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시선이 평상심을 견지한 담담한 필치로 그려져나가는 글쓰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게 바로 좋은 글이라 하는구나!'감탄하게 됩니다. 하여 읽혀지는 글이 아닌 느껴지는 글의 경지에 '캬~'하며 찬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좋은 생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날이 더해갈수록 치열해지고,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서, 또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 민망스러울만큼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스물네편의 산문을 통해서 과연 참 삶이 무엇인지, 진정 사람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것을 요청합니다. '불립문자', 즉 궁극진리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음으로 희망을 안고 사시는 이윤기 님,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발 두발 길을 밟고 밟으면서 동시에 버리는 것이지요'(p.24)라며 버림과 비움을 통한 깨달음을 이야기하신 이현주 님, '콩 한 쪽도 나누면 큰 나눔입니다.'(p.42)라고 아주 당연한 말씀을 다시한번 새겨주신 이철수 님, 빗나간 사랑이라도 사랑하라고 말하시던 윤구병 님, 당산나무를 통해 참 자유로서의 믿음과 종교를 말씀하신 권정생 님, 이외에도 다른 님들의 글 속에서도 마찬가지 일상의 깨달음들이 나태해졌던 나의 삶에 죽비되어 내리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삶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와 둘째의 미덕 모두 이것으로 포괄될 수도 있겠습니다. 비록 '어찌 글 한편을 통해 그 사람을 알고, 그 삶을 가늠할 수 있겠는가?'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몇자 되지않는 글을 통해서 풍겨나오는 내음은 그 삶을 짐작케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작은 것들에서도 큰 깨달음을 얻고, 내내 반추하시는 그들의 삶은 좋은 글쓰기와 좋은 생각을 넘어서 좋은 삶으로 귀결될 수 있겠습니다. 바라기는 저 또한 자그마한 일상사에도 내내 눈부릅뜨고, 귀 기울이고, 정신바짝 차려서 매양매듭 나의 손과 발, 나의 온 몸뚱이를 맘대로 함부로 굴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또한 '소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많은 사람들, 세상 만물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물론 이 책의 단점도 있습니다. 한분 한분 만나다보면 무려 스물두분의 글을 만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한분의 글을 읽을 때보다는 독서의 흐름(감정의 맥이라고 할까요?)이 끊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모쪼록 하룻밤내 다 읽기보다는 며칠을 두고 글 하나 하나 마음 열어놓고 만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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