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반양장) - 하나님께 가는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길
필립 얀시 지음, 최종훈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1월
절판


인간은 삶 속에서 만난 멋지고 아름다운 순간에 대해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인가에 감사하고 싶을 때 기도를 드린다. 자신이 너무나도 왜소하고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절감할 때, 그리하여 깊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순간에도 기도가 나온다. 용서를 받고 힘을 얻기 위해, '스스로 존재하는 분'을 만나기 위해,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받기 위해서도 기도한다.-15쪽

토머스 머튼의 말처럼 "기도는 인간이란 존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행위다. 인간은 불완전성 그 자체다. 반드시 무언가로 채워져야 할 간격이나 공간과 같다."-15쪽

세상은 날이 갈수록 빨리 돌아가고 있으며 느긋하게 앉아서 기도할 여유는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점점 짧아지고 더 비밀스러워졌다. 편지 한 장도 버거워서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로 처리해버리고 만다. 대화는 줄어들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없어"가 붙는 말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시간이 없고, 쉴 틈이 없고, 운동할 여유가 없고, 놀 짬이 없다. 이렇게 온갖 스케줄이 꽉 들어차 있는 삶에 무슨 여백이 있어 하나님이 끼어드실 수 있겠는가?-19-20쪽

기도는 마음의 근시를 바로잡게 해준다. 잊어버리기 쉬운 하나님 관점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역할을 뒤집어버린다.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위해 봉사한다고 착각하기 일쑤다.-29쪽

손튼 와일더의 연극 <우리 읍내our town>에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어느 날 제인에게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그런데 겉봉에 적힌 주소가 특이하다. 주소는 농장의 이름과 읍, 면, 군의 명칭을 적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길게 이어진다. "미국, 북아메리카 대륙, 북반구, 지구, 태양계, 우주, 하나님 마음." 그리스도인은 순서를 거꾸로 바꿔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토대를 두고 삶을 바라본다면 그 밖에 잡다한 일들은 저절로 제자리를 찾게 마련이다. 설령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최소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상황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32-33쪽

은혜는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른다. 사랑도 시냇물처럼 흘러내린다.-34쪽

기도, 오직 기도만이 하나님과 같은 관점을 갖도록 시력을 회복시켜 준다. 눈을 가렸던 비늘이 떨어지면서 부의 이면에 무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인종이나 지위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내재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진리가 새롭게 다가온다.-35쪽

"근본적으로 기도는 자세, 즉 자신을 어디에 놓느냐의 문제다. 초점을 맞추는 기도란 시야를 제한한다는 뜻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실체에 주의를 집중하는 습관이 기도라는 말이다."-37쪽

"하나님은 조금 쉬자고, 잠시 농땡이를 치자고 부르신다. 하나님의 자리를 차고앉아서 제 힘으로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려 들지 말고 그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되시도록 모든 일을 맡겨버리자." 기도는 인간의 연약함을 한없는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주님 앞에 온갖 실수와 약점, 한계 따위를 인정할 힘을 주는 것이다.-38쪽

기도는 질서를 재조정하는 과정이다. 우주를 아우르는 진리를 회복시켜주시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과 자신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44-45쪽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순간부터 우주는 질서를 회복한다. 고백이란 피조물이 창조주를 바라보면서 자기 자리를 제대로 잡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일 뿐이다.-49쪽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는 척도다.-49쪽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한다. "기도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온전한 빛 속을 걸어가며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저는 인간이고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일이다. 바로 그 순간 변화가 일어난다.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된다. 인간은 가끔 실수를 저지르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 역시 가끔씩 용서를 베푸는 창조주가 아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정의가 잘못됐다. 인류는 총체적으로 죄인이며 하나님은 총체적으로 사랑이시다."-53-57쪽

도움을 청하는 자세야말로 기도의 뿌리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만 봐도 온갖 요청이 줄줄이 이어진다.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선언, 그것이 기도다.-57쪽

성공을 으뜸으로 떠받드는 세상에서 스스로 약점을 인정하는 태도는 교만한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동시에 은혜 입을 준비를 갖추어 준다. 연약함을 기도를 부른다. 긍휼과 권능으로 응답해주시도록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시 105:4)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의사 앞에서, 인간이 취해야할 가장 적절한 행동은 상처를 보여드리는 것뿐이다.-57쪽

모든 행동 뒤에 감춰진 이기적인 동기나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욕망과 야심, 완벽해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게 만드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 따위는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삶 전체를 들고 나와서 정결하게 씻어내고 제 모습을 되찾으라고 초청하는 안내장이다.-70쪽

관계가 아니라 거래로서의 기도는 기쁨이기보다 정해진 규정을 지키는 관습으로 변질된다. 생명과는 별 관계가 없는 순간적이고 임시변통적인 숙제로 전락하는 것이다.-76쪽

그리스도인은 한 손으로는 창조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는 진리를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시는 주님의 마음에 매달리는 것이다.-81쪽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지내면서도 일기 쓰기를 잊지 않았던 에티 힐레숨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글을 남겼다. 도덕의 불모지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힐레숨은 진리를 꿰뚤어보고 있었다. "가끔 수용소 한 모퉁이에 서서 두 다리로 주님의 땅을 딛고 눈을 들어 하늘나라를 우러러보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깊은 감동과 감사의 눈물입니다."-85쪽

글을 맺으며 힐레숨은 말한다. "일단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다면 꾸준히 그분과 더불어 걸어가야 합니다. 삶이란 긴 산책과도 같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85쪽

기도란 하나님을 가까이 불러오는 도구가 아니라 거룩한 임재에 반응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기도하는 쪽에서 실감하든 못하든 주님은 엄연히 그 자리에 계신다.-86쪽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마음이 평온할수록 기도는 더 강렬해지고, 더 소중해지고, 더 깊어지고, 더 풍성해지고, 더 완전해진다"고 했다. -91쪽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묵상하는 기도를 드리다보면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상태에 이른다. 개중에는 이런 형태를 '무심한' 기도라고 부른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매달리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사심 없이 자연스럽게 간구한다는 뜻이다. 주님과 더불어 충분한 시간을 가진 뒤에는 여태까지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긴급하게 구하던 일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93쪽

거래가 아니라 관계에 토대를 둔 기도야말로 하나님께 다가서는 가장 자율적인 방식일 것이다.-93-94쪽

기도의 주목적은 생활을 더 편하게 만들거나 기적적인 능력을 얻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데 있다.-95쪽

하늘 아버지는 진즉부터 자녀들을 돌보고 계시며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깊이 관여하신다. 기도는 하나님께 새로운 정보를 드리는 의식이 아니다.-99쪽

앨런 에클스턴은 "기도한다는 것은 인식의 기회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일"이라고 했다. 하나님과 나란히 "사건이 일어난 상황에 멈춰서서, 선물을 뜯어보듯 차근차근 살펴보고, 과거와 미래의 맥락에 넣어보고, 마음속으로 가능성을 진단해본 다음에 그 안에 담긴 것들을 끄집어낸다." 게다가 하나님은 시종일관 현장에 계신다.-107쪽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비결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저 기도할 따름입니다. 기도는 꾸밈없이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듣습니다. 우리가 말씀드립니다. 그분은 듣습니다. 양방향의 교감, 말하고 듣는 것입니다."-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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