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신약 -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성경 옆의 성경 The Message 시리즈
유진 피터슨 지음, 김순현 외 옮김, 김영봉 감수 / 복있는사람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읽혀야 책이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고, 밑줄이 그어져야 비로소 책이다. 성서라고 다르겠는가? 책장의 무게만 더하는 성서는 이미 성서가 아니다. 손이 닿고, 눈이 머물고, 침이 고여야 진짜 살아있는 글이다. 살아있는 글이라야 ‘거룩한 말씀’(聖書)이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으로 펄펄히 살아 움직여 읽는 이를 거룩의 지평으로 인도할 때, 바야흐로 성서는 성서가 된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선사하신 최고의 선물은 ‘하늘의 언어’였다. 하늘의 언어는 천상에 갇힌 언어가 아니다. 두루 막힘이 없이 통通하는, 자유의 언어다. 땅과 만나고, 사람과 만나고, 모둠살이(日常)와 만나는 언어다. 하느님은 그런 언어를 통해 세상과 관계 맺고 싶으셨던 게다. 하지만 말이 문제였다. 사람의 말이라는 게 원래 그러해서 하늘의 언어를 옮겨 적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괜스레 복잡한 단어와 개념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그 배후를 탐색하고 번안하는 일에 성서학자들이 애를 썼지만, 범상한 이들은 ‘그 말씀’ 앞에서 늘 속수무책이었다.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은 더 쉽고 평이한 말씀을 원했다. 그래서 각종 번역판이 등장했지만, 그마저도 살갑지는 않았던가 보다.  

줄탁동시(啐啄同時)! 알 속의 병아리와 알 밖의 어미닭이 동시에 껍질을 쪼는 순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말씀 앞에서라면 까막눈 신세를 면치 못했던 이들의 곤란과, 그러한 이들을 바라보던 연민의 마음이 감응感應하여 새로운 말씀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되었다. ‘메시지’-전언傳言이다. 하늘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이다. 유진 피터슨이 그 통로가 되었다.(그의 노고는 두고두고 감사해도 모자라겠다.) 그리고 번역자들은 기꺼이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슬그머니 산상수훈(예수께서 산에 올라 하신 말씀, 마태복음 5-7장) 말씀의 한 자락을 펼쳐 본다. 기가 막히다. 내친 김에 적어본다. 

“거울 앞에서 설친다고 해서 키가 단 1센티미터라도 커진 사람이 있더냐? 유행을 따르느라 버린 돈과 시간이 그토록 많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 같더냐? 옷을 볼 것이 아니라 들판에 나가 들꽃을 보아라. 들꽃은 절대로 치장하거나 옷을 사들이는 법이 없지만, 너희는 여태 그런 색깔이나 디자인을 본 적이 있느냐? 이 나라의 남녀 베스트드레서 열 명이라도 그 옆에 서면 초라해 보인다.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들꽃의 겉모습에도 그토록 정성을 들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너희를 돌보시고 자랑스러워하시며,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지 않겠느냐? 나는 지금 너희로 여유를 갖게 하려는 것이며, 손에 넣는 데 온통 정신을 빼앗기지 않게 해서, 베푸시는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일하시는 방식을 모르는 사람은 그런 일로 안달하지만, 너희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일하시는 방식도 안다. 너희는 하나님이 실체가 되시고, 하나님이 주도하시며,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삶에 흠뻑 젖어 살아라. 뭔가 놓칠까 봐 걱정하지 마라. 너희 매일의 삶에 필요한 것은 모두 채워주실 것이다.”(메시지, 58. <마태복음6:27-33>) 

하늘의 언어가 이렇게 촉촉할 수 있다니! 우리의 삶도 그 속에 흠뻑 적실 일이다. 다만 욕심내서 읽을 필요는 없지 싶다. 손닿는 가까운 곳에 두어 조금씩이라도 자주 자주 펼쳐보는 일이 마냥 즐거울 것 같다. 그렇게 그 분의 메시지에 잇대어 살면서, 매일 매일의 일상이 한 편의 시가 되고, 한 장의 편지가 된다면 참으로 더할 나위 없겠다. 

“여러분의 참된 삶이야말로 누구나 보고 읽을 수 있는 편지입니다.”(메시지, 486. <고린도후서 3:1-3 일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