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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예문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지난해 '난장판'이라는 작은 수다모임을 만들면서, 수다꺼리로 선정된 노신의 책. 기억을 더듬어도 제대로 된 문장 하나 욀 수 없는 참담함. 하지만 당시의 단상을 끄적거려놓은 '부침'이 있다. 물론 이미 '절판'의 멍에를 쓴 책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자칫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원래부터가 부질없는 일의 연속 아니던가. 오늘도 부질없이 쓸데없는 글 하나 부려놓는다.
희망 없는 시대에도 여전히 희망을 외치는 이들의 남루는 눈물겹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든지, 믿음 같은 것이든지 간에 오늘날의 세상에서 희망의 징후를 찾아내기란 간단치 않은 일이다. 그저 나는 시간적 속성에 의해서만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노신의 말처럼 말이다. 그렇다. 나는 내 나름의 확신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희망이라는 것을 말살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미래에 속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없다고 하는 내 주장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냉소적인 그의 말투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희망은 절망의 다른 이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은 별도 없고, 달도 없”고, “죽은 나비도, 웃음의 허망함도, 사랑의 무도도 없”는 그런 시대기 때문이기에 그렇다. 그야말로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하듯이.” 사실 노신의 눈에 비친 당대 중국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이 사라진 땅이었다. 그곳은 노예근성에 일그러진 '아Q'들이 질펀하게 넘실거리는 곳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노리는 식인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서. 이처럼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이 사라진 자리에서 빚어진 노신의 절망은 비로소 이해된다.
길들여지지 않는 정신이란 삶의 터와 그 터를 메우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적시 없이는 불가능한 법. 함부로 희망을 발설하는 일 역시 ‘노예’에 길들여진 인간들의 환각제가 될 수 있으니 조심에 조심을 기울일 것. 개혁은 본디 민중의 어두운 측면을 직시할 용기와 강인함에서 비롯되는 것! 그러니 민중과 그들의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에 취해있어서는 아니 될 것. 먼저 어두운 곳까지 가감 없이 들여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갖추어라. 그 혜안을 갖추기 위해 너의 정신을 무시로 벼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