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진영의 죽음은 내내 가슴을 짓누른다. 먹먹하고, 비애롭다. 왜 일까? 이미 작고하신 두 분, 前 대통령들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보다 더 큰 슬픔이다 아픔이다.
故 김대중 대통령은 대단히 훌륭한 분임에 틀림없지만, 두고 두고 아쉬운 구석이 있다. 돌아보면 그 분의 집권 당시 나는 거리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수많은 기업들은 정부 추진 하에 해외자본에 매각되었고,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최대 피해자 중의 하나였던 '대우'는 이제 '정리해고'의 거대한 상징으로 남았다. 2000년, 서울에서 성대하게 열린 ASEM회의는 당시의 망국적 분위기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故 노무현 대통령 또한 훌륭한 분임에 틀림없지만, 그 분의 집권 당시를 잠깐이라도 상기해보자. 참혹하게 이지러진 대추리의 논밭을 나는 잊지 못한다. 이라크 파병 당시의 분노 또한 생생히 기억한다. 탈레반에 죽어간 어느 청년의 울부짖음은 지금도 쟁쟁하다. 미국과의 FTA도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정부가 한 일이라곤 기껏해야 굴욕적인 대미외교를 확증하는 일 뿐이었고, 이로인해 민중들의 한숨은 더 깊어졌다. 이러한 두 분 대통령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염하는 일은 참으로 버겁다. 존경은 어렵고, 다만 명복을 비는 일 밖에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배우 장진영은 달랐다. 단 한 번도 그녀는 敵일 수 없었다. 비록 스크린을 통해 마주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녀가, 혹은 그녀의 연기가 참 살가웠다. 빼어난 연기자였고, 좋은 배우였다. 그녀의 출연작들을 모두 챙겨볼 정도의 팬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소름'과 '청연', '연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만난 그녀는 레벨이 달랐다. 차갑지 않고, 따뜻했다. 캐릭터 속에서도 자신의 인간미를 물씬 풍겼다. 이제 그녀는 없고, 그녀가 출연한 좋은 영화 몇 편만이 남았다. 두 명의 전 대통령이 남긴 업적을 회상하는 일보다 그녀의 영화를 챙겨보는 일이 나에겐 훨씬 좋은 일일 것 같다.
덤: 물론 나는 작고하신 두 분의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