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빠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효진아, 지금 어디니?"

"저 집이에요."

"그래, 알았다. 지금 갈테니까 나랑 어디 좀 가자."

"네, 오세요."

전화를 끊고 주위를 둘러본다. 꽤 넓은 아파트다.

창 밖으로 내려다보니 까마득한게 꽤나 높은 층인가보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있다. 누군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남자다. 나보다 조금 어려보인다.

뭐라고 뭐라고 말을 걸어왔는데 존대 했던 걸 보니.

어느새 작은 아빠가 도착했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 작은 아빠의 봉고차에 올랐다.

작은 아빠가 운전대를 잡았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그리고 남자 녀석은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간을 달리다 보니 한 마을에 도착했다.

작은 아빠는 볼 일을 좀 보고 오겠다며 냉큼 차에서 내린다.

나와 또 다른 일행은 그제서야 씻고 나오지 못한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도 서둘러 차에서 내려 씻을 곳을 찾는다.

어느틈엔가 나보다 어린 그 남자 녀석은 벌써 다 씻었다.

머리를 털고 있는 녀석의 수건을 받아들고는 어느 건물로 들어갔다.

침침하다. 그런데 저 구석에 수도꼭지가 보인다.

옆에 비누와 샴푸가 놓여있는 걸 보니 세면대는 맞는가 보다.

머리를 감는다. 샴푸를 묻혀서 머리를 감고 있지만 거품이 나질 않는다.

샴푸가 조금 부족한가 싶어서 더 발라본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뒤에서 작은 아빠가 빨리 가야된다며 재촉한다.

머리를 감다 말고 다시 차에 올랐다. 젖은 머리를 계속 만지작 거린다.

거품이 조금씩 나오고, 손도 미끈미끈해지는 것이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창 밖을 보니 어느새 다른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좁은 길을 달리는데 양 옆으로 가게들이 즐비하다.

사이 사이 일반 가정집들도 보인다.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얼마쯤 가다보니 집 안에서 물을 긷고 있는 노파가 보인다.

안되겠다 싶어서 작은 아빠에게 차를 멈춰달라고 말했다.

차가 서자마자 나는 그 집으로 들어가서 노파에게 물었다.

"저 물 한 바가지만 쓸 수 있을까요?"

노파는 빙그레 웃으며 흔쾌히 물 한 바가지를 내어준다.

나는 얼른 물을 받아들고는 허리를 굽히고 머리에 물을 붓는다.

한 손으로는 바가지를 들고, 한 손으로 머리를 감는다.

아, 그런데 물이 다 떨어져간다. 마음은 조급해진다.

머리에서는 거품이 계속 나오는데 물이 모자라다.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노파에게 물 한 바가지를 더 구하는 것도 뻔뻔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불안감이 엄습하고, 마음은 답답하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한참동안 바가지를 기울였는데 물은 끊이지 않고 계속 흘러나온다.

게다가 아까보다 더 큰 물심(水力)이 느껴진다. 분명 물이 더 많이 흘러나오고 있다.

바가지를 든 손은 진작에 가벼워졌다. 이상한 일이다.

시나브로 물의 온도가 변한다. 차가웠던 물이 갑자기 따뜻해졌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고개를 들었다.

"아니, 어떻게 집사님이...?"

내 눈 속에는 우리 교회 집사님의 얼굴이 비쳤다.

집사님은 빙그레 웃어보였다. 내 바가지 너머로 제법 큼직한 세숫대야를 들고는.

그렇다. 바가지 위에서 나에게 물을 쏟아붓고 계셨던 것이다.

세숫대야에 담겨져있던 물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솟고 있었다.

나는 집사님과 마주보며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