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
이언 바버 지음, 이철우 옮김 / 김영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신학자들이 어떤 전문 지식이 있기에 과학자들이 할 수 없는 
심오한 우주론적 질문들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인가?1)

 - 리처드 도킨스  

■ 들어가는 말

  지난 해 여름, 출판계를 강타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하 만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종교(기독교)에 대한 일종의 인식론적 반향을 일으켰던 이 책은 수 주간 베스트셀러의 수위를 다투면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고, 특히 평소 기독교에 대한 모종의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게는 마치 ‘성서’와도 같은 권위를 수여받게 되었다. 물론 지난날 종교에 대한 비판서들이 꾸준히 출간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선교를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던 20여명의 한국인들이 피랍된 사건-그리고 그로인해 촉발된 논쟁들-과 맞물려 <만신>에 대한 이목의 집중은 급속도로 파급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신> 열풍의 내밀한 의미를 궁구(窮究)하기 위해서는 당시 대중들에게 확산되어 있던 반기독교 정서에 대한 고려도 동반되어야 할 바임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신> 열풍을 반기독교적 정서의 지대한 영향 탓으로만 분석한다면 그 또한 타당치 않을 것이다. 이 타당치 않음은 다원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인으로서 지녀야할 책임 의식의 부재를 염려하는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상황에 대한 일단의 고려를 차치하고서라도 <만신>에서 나타난 반종교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종교와 과학, 과학과 종교의 이해 결핍, 그로인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양 학문간 적극적인 긴장 속에 학제적 공존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종교와 과학의 관계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검토할 것이냐는 문제가 선행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어쩌면 그보다 먼저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름 아닌 경청과 관용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신학자들은 가치 있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라는 식의 도킨스의 입장에 선다면 과학과 종교 간 답보, 혹은 대립 상태는 해소될 리 없을뿐더러 아득한 간극만을 만들어놓게 될 뿐이다. 이러한 상황들, 그리고 이로 인한 대립들을 이안 바버(Ian G.Barbour)는 과학과 신학의 주제별로 묶어서 정리하였다. 그의 책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의 내용을 짧게나마 정리하면서 과학과 종교의 온당한 관계성에 대하여 생각해보도록 한다.

 

■ 몸 말 

 -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관한 네 가지 이론 유형 

  이안 바버는 본 책,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에서 과학과 신학과의 관계를 네거티브 유형, 즉 갈등이론과 독립이론, 그리고 포지티브 유형인 대화이론과 통합이론의 네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간략하게나마 각 유형들에 대해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먼저 갈등 이론은 종교와 과학 둘 중 하나만을 진리로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교조주의의 형태를 가리킨다. 과학적 유물론(환원주의)과 성서 문자주의(근본주의)와 같은 입장들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두 입장 모두 ‘자연의 역사라는 똑같은 영역에 대해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2) 이외에도 유물론, 범신론 등과 같은 극단적인 입장들 또한 갈등 이론에 속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갈등 이론에서는 과학적․종교적 입장에서 극단에 처함으로써 진화와 하느님을 동시에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 독립이론은 ‘과학과 종교가 방법론 및 다루는 영역, 그리고 인간 생활에서 수행하는 기능 등이 상이한 완전히 독립적인 분야’3)라는 인식에 기초한 일종의 ‘독신 선언’(이정배)이다. 이와 같이 두 분야를 철저히 분리시켜 따로따로 생각하는 것은 과학과 종교 간의 갈등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써 각각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확보한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이안 바버는 “독립이론은 과학과 종교 각각의 독특한 성격을 인정한다. 그리고 과학과 종교의 갈등을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는 유용한 전략”4)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를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 볼 때, 갈등을 피할 수는 있지만 건설적인 대화를 통한 상호 발전의 기회를 잃게 된다고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 삶 전체의 주님이시라는 성서적 근거로 볼 때에도 이는 신학적으로 타당한 입장이라고 할 수 없다. 언어분석철학(과학)과 신정통주의(신학)의 개별 노선이 바로 독립이론 유형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 대화이론은 과학과 종교의 전제와 방법과 개념의 유사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종교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독립 이론과는 그 성격상 차이를 지니는 공명론적 입장에 속한다. 따라서 대화이론에서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는 좀 더 건설적인 형태를 띠지만 통합 이론에서처럼 개념적 통일성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바버는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성과를 포함한 새로운 식견을 받아들일 만큼 자기 비판적이며, 또한 외부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체계의 신학을 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는 만큼 대화이론에서의 과학, 종교 간 교류는 자못 활발한 형태를 띠게 된다. 자연신학5)과 같은 경우가 바로 이 유형에 속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합이론은 대화이론 그 이상으로 특별한 종교적 신념과 개별적인 과학 이론들 간의 밀접한 연관성을 모색할뿐더러 더 나아가 종교와 과학의 일치와 통합까지도 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6) 여기에서는 생화학자이자 신학자인 아서 피코크의 “하느님은 우연과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개입함으로써 창조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법칙과 우연으로 이루어진 전 과정을 통하여 창조하신다”7)는 주장의 궤와 잇닿아있는 자연의 신학이 포함되며 진화적 사유를 통한 상호의존성을 표한 과정 사상적 견해들도 마찬가지로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버의 지적대로 통합이론에서는 ‘예상된 종합화’8)를 경계하며 실재에 대한 일관성 있는 관점의 꼴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각각의 과학적․종교적 주제들은 이와 같은 네 가지 유형에 따라 각각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가? 본 자는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관한 네 가지 유형들에 대해 다룬 1장은 위에서 언급했기에 생략토록 하고, 2장부터 6장까지의 내용들을 가능한대로 정리하여 네 가지 유형에 따른 논의의 추이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단 6장의 경우 전 장에서 논의된 주제가 반복되는 내용이 많으므로 생략하도록 한다.

 

 - 일련의 과학범주들과 신학적 대응, 혹은 만남의 이력

  2장 <천문학과 창조론>에서 과학과 종교 간의 갈등은 초기 우주에서의 힘의 균형이 생명과 지능을 출현 시킬 만한 조건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우연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들로부터 야기된다고 이안 바버는 말한다. 반면에 성서 문자주의자들은 상대성 이론이 창세기의 설명을 빅뱅이론과 조화할 수 있게 해준다고 주장하면서 무신론자들의 대척점에 위치한다.9) 한편 독립이론에서는 성서는 문자 그대로 아니라 신중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신정통주의 신조를 토대로 한 신학자들의 주장, 즉 <창세기> 집필 당시의 전(前) 과학적 우주론에 대한 고려를 통해 창세기의 상징적이고, 시적인 설화 이해로부터 과학과의 갈등 가능성을 예단한다.

  대화이론의 입장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일언, “이 세계에 관해 이해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라는 명제 아래 우주의 우발성과 하느님의 자유의지에 의한 창조 행위를 상관(相觀)하고자 시도한다. 이를테면 빅뱅을 통해 풀려 나온 힘에 대해 신비감과 외경심을 느낀다고 말하는 천문학자들의 입장이 과학과 종교의 대화 가능성을 방증해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나아가 통합이론의 지지자들은 빅뱅이론과 같은 새로운 우주이론들이 예측한 물리학적 상수들의 정밀함에 따라 인간주의 원리를 정립한다. 예컨대 호킹과 같은 물리학자는 “우리 우주가 출현한 것에는 분명 종교적 의미가 들어 있다”라고 말하면서 창조론 또는 우주론적 관점에 있어서 신적인 의지가 개입되어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과학과 종교의 통합적 관점에 가담한다.

  3장 <양자 물리학의 신학적 의미>에서 저자는 양자 물리학으로부터 발견-출원한 생명 이해의 입장에서 나타난 개별 논의들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특히 불확정성의 원리가 논의의 주 쟁점이 되고 있다. 먼저 갈등이론에 서있는 과학자들은 유물론의 입장에서 확정 불능성의 문제를 ‘우연’으로 귀결시키면서 우연적 법칙들이 우주의 목적 없음을 반증한다고 보았다. 반면 신학자들은 하느님께서 자연 법칙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과학적 탐지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확정 불능한 사건들을 만들어내신다고 보았다. 그리고 독립이론에서 도구주의자들은 양자이론과 종교적 믿음에 대한 설명을 결부시켜 과학과 종교는 인간 생활에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기능을 수행하는 다른 언어들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한편으로는 양자물리학에서 파동과 입자 모델들의 상보성에 대한 개념을 확장함으로써 과학과 종교는 서로 독립적이고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실재에 관한 상보적인 모델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10)

  반면에 대화이론자들과 통합이론자들은 유사한 입장에서 양자물리학에서의 관찰자, 양자계의 전일론적 특징 등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공명을 주장한다. 특히 “과학은 하느님의 존재를 이해하는 믿을 만한 방법에 대한 기초를 제공해 왔다.”는 진 스톤의 주장은 이를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또한 바버는 확정 불능성에 대해 ‘대안적 잠재 가능성’이라는 말로 유물론적 환원주의의 입장을 일축함으로써 양자물리학과 신학적 의미의 대화와 통합이 가능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4장 <진화와 연속창조>에서 갈등이론에 속한 과학자들-리처드 도킨스 등을 위시한 진화유물론자들, 또는 신다원주의자들-은 진화가 의도와 목적이 없는 과정의 산물임을 주장한 반면 신학자들은 목적성이 담지된 하느님의 지적 설계를 주장하였다. 독립이론에서는 일부 생물학자, 신정통주의 신학자, 언어분석학자들의 주장대로 과학과 종교의 영역과 기능을 분리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대화이론에서는 다윈식 진화의 복잡성, 그리고 그 복잡계의 자기조직화, DNA와 같은 정보들의 지각 등의 문제를 다룬 과학자들과 이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은 하위 수준에서의 사건을 설명하는 법칙들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상위 수준에서의 하향식 인과관계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신학자들의 주장이 대화의 여지를 주는 것으로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한편 이안 바버는 통합이론에 제일 공감하면서 자연의 신학과 과정철학을 심도있게 다룬다. 앞서 기술했듯이 자연의 신학은 진화를 통한 하느님의 연속창조에 관한 개념으로 대변되는데, 여기에서는 피코크의 말대로 ‘사건들의 자연적 인과관계에 의한 창조적 유대 자체’를 하느님의 창조적 행위로 보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통한 연속 창조사상을 옹호한다. 또한 과정철학에서는 결정론과 절대 기준을 부정하면서 모든 실체의 관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보고, 그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일어나는 잠재적인 진화의 가능성들을 인정한다. 이러한 과정 사상의 입장은 결국 질서(네트워크)와 새로움(진화적 변화)의 원천으로서 하느님을 이해한다.

  5장 <유전학, 신경과학 그리고 인간의 본질> 편에서 바버는 인간 행동의 모든 면모가 물질의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유물론과 인간의 도덕성이 초기 인류의 생존에 기여했던 먼 초기 조상들의 행동으로부터 발전되어 왔다는 사회생물학, 우리가 유전자에 의해 통제되며 자유란 착각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행동유전학의 연구 각각을 전제한다. 이에 신학자들은 인간 의식의 신비성, 도덕성에 관한 신학과 철학의 필요성, 하느님의 창조에 대한 위배 등을 주장하면서 과학과 갈등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독립이론에서는 육체와 영혼의 문제에 관하여 그 둘의 대조적인 수행 기능, 상보적 관점 등으로 독립된 형태를 취하였다. 물론 죄와 구속의 문제에 관해서도 과학의 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대화이론에 대해서 바버는 신경과학, 인류학에 의해서 발전된 감정의 중요성, 정신의 신체적 구현, 그리고 인간의 생리학적 시스템이 종교와 별다른 장애 없이 흡수-수용되는 것으로 본다. 한편, 생물학적 유기체인 동시에 책임지는 자아, 여러 수준에 걸친 심신 통일체라는 견해는 종교와 통합될 뿐만 아니라 과정 철학에서의 유기체적 이해, 전일적 사고방식 등은 이와 무리 없이 통(通)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나가는 말 

  그간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바버의 분류대로- 갈등과 독립의 형태로 별리상태를 고집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과학과 종교는 크나큰 간극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군의 과학자들, 그리고 신학자들은 끊임없이 과학과 종교 간 대화를 시도해왔으며 이러한 시도들은 어쩌면 시대의 요구와 부름에 대한 응당의 책임, 혹은 그동안의 반목과 대립으로부터의 부채의식을 탕감하기 위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안 바버는 본 책에서 네 가지 유형의 분류를 통해 과학과 종교 간 관계에서 나타난 부정의 길과 긍정의 길을 종합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서 피코크로 대표되는 자연의 신학과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을 지지하면서 과학과 신학의 통합을 바라고 있다. 그의 주장처럼 다원화된 오늘날의 문명 속에서 과학, 그리고 종교의 관계에 있어서 “갈등이론이나 독립이론보다는 대화이론과 통합이론이 과학적 통찰과 종교적 성찰을 결합시키는 훨씬 유망한 방안이 될 것이다.”11)

  그러므로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한 유물론적 과학주의의 가차 없음에 대한 나름의 고민은 이안 바버의 본 책,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를 만나면서 많은 부분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과학과 영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앞으로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여야 할 주제로 생각한다. 이안 바버의 말대로 “종교의 목적은 삶의 방식에 있으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므로 종교는 단순한 지적 체계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12) 때문에 종교와 과학의 긍정의 길을 묻고, 사유하는 일은 놓쳐서는 아니 될 숙명적 과제이다. 도킨스의 비아냥거림과는 반대로 신학자들이, 혹은 신학도들이 심오한 우주론적 질문들을 다뤄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분명 “어떠한 사고 체계의 주장과 하느님의 신비를 예배 속에서만 인정할 수 있다”는 겸비(謙卑)의 자세를 겸비(兼備)하는데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1) Richard Dawkins, 이한음 역,『만들어진 신』, 김영사, 90. 

2) Ian Barbour, 이철우 역,『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 김영사, 33.

3) Ibid., 174.

4) Ibid., 50.

5) “하느님의 존재가 자연에 내재한 설계의 증거에 의해 유추되거나 뒷받침될 수 있으며 과학은 우리로 하여금 설계의 증거를 깨닫게 한다는 주장”, Ibid., 59.

6) 이정배, 『켄 윌버와 신학』, 시와 진실, 24-26쪽 참고.

7) Ibid., 66. 

8) “과학이나 종교 그 어느 것도 형이상학적 체계와 동일시 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처럼 모든 실재를 포괄하려는 예상된 종합화를 시도하면 과학적 또는 종교적 개념이 왜곡될 위험이 따”른다. Ibid., 75.

9) 피터 애트킨스와 앨런 구스와 같은 무신론자들은 양자요동이론을 지지하면서 정밀하게 조율된 상수들의 존재는 우주들 가운데서 일어난 우연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한편 슈뢰더와 로스는 하느님의 ‘특별 차원성’(인간은 부여된 시간틀 속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은 모두 하나님께 포함된다는 이론), 초끈 이론 등을 동원하여 성서의 과학적 전거를 구성하고자 시도한다. Ibid., 82-90 참조.

10) Ibid., 132. 

11) Ibid., 304.  
12) Ibid.,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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