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얻어 서울에 들른 누이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오랜만에 맞이한, 일상의 여유가 주는 나른함을 즐길 작정이었으나,
누이의 요청에 '모네展'을 찾은 건 하고보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예술에는 영 문외한인지라 그림이나 음악에 대한 조애가 있다고는
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전시회에서 느꼈던
'색다름'의 포만을 욕심삼아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해 '피카소展'에서의 실망감이 엄습하기도 하였으나,
모자라긴 하나 '인상파'혹은 '인상주의'에 대한 나름의 애정이
모종의 관심을 부추기기에는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이러한 기대와 관심은 그 이상으로
충족되었다. 워낙에 잘 알려진 '수련' 연작보다는 '센느강과 바다'를 소재로 한
몇 점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색채의 풍광은 그야말로 나를 압도했다.

예컨대, <사쏘의 골짜기>(1884)라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색채가 발하는 빛에 의해 어떻게 형태가 무의미해지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눈부심은 말그대로 '살아움직이는' 그림의 역동성이었다.
줄곧, 그리고 내내
"나는 자연의 법칙과 조화 속에 그림을 그리고 생활하는 것
이외에 다른 운명을 갈망하지 않는다"던 모네의 말을 되뇌었다.
그림은, 빛은,
다른 것에서 추출된 영인이 아니라 오로지 그 속에서 살아낸 자만이
획득할 수 있는 '아우라aura'임을.
피아노를 전공한 누이의 조언대로, 나는 오늘밤 드뷔시의 음악을 찾아
들을 작정이다. 그와 모네가 나누었던 정신의 공유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 여운이 가시기 전에 느껴볼 작정이다.
그러고나서는, 절대로 모네의 그림을 인터넷에서 뒤지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의 아우라는 깊이 각인될 뿐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