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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 - 믿는 대로 된다
조엘 오스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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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라는 종교적 정체 속에 몸담아 온 나는, 좀 유별나게도 소위 ‘신앙서적’에 대한 일종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건 아마도 인간의 이성과 자유에 대한 종교적 속박에서 기인하는 거부감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종교적 속박’이란 ‘오직 성서대로’, 혹은 ‘오직 믿음으로만’과 같은 수사들에서 나타나는 ‘오직’이란 단어의 일의성, 배타성이 선사하는 구속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걸핏하면 하나님의 축복 운운하는 작태는 심기불편의 또 다른 이유였다.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전면에 내세운 채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기독교’에 대한 모종의 배타를 제 나름으로 표출하곤 했다. 아마 그러한 방식 중 하나가 ‘신앙 서적’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 태도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얼마 전 잘 알고 지내던 한 교우의 선물로 받은 이 ‘신앙 서적’을 들게 된 것은 의무감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랜 기간 기독교 서적의 베스트셀러로 널리 알려진 이 책에 대한 궁금 또한 시독(始讀)의 이유였던 게 사실이다. 조심스럽게 펼쳐든 책 속에는 아니나 다를까 내가 염려하던 부분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믿는대로 된다’던 표제처럼 책의 전편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믿는다면 복을 받는다’라는 지극히 단순한 명제가 관통하고 있었고, 그러한 명제의 논리는 저자인 조엘 오스틴 목사의 개인적 체험으로부터 유출된 것이었고, 여기에서 말하는 ‘복’이란 ‘성공’의 다른 말로, 즉 돈을 많이 벌어 출세한다는 뜻의 다름 아니었다. 

 왜 꼭 기독교에서는 ‘복’을 받아야한다고 말할까? 물론 복 받은 삶은 좋다. 하지만 복받은 삶이란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과 동의어일 수 있는가? 일례로 예수는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부자로서 사는 것’이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임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하였는데 왜 그렇게들 부자가 되라고들 하는가? 오히려 복된 삶이란 이 땅에서 사람답고, 따뜻하고, 아름답게 사는 삶을 말하는 것 아닐까? 경제적으로 부요하지 않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그것으로 복된 삶은 아닐까?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 복을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이미 복받은 삶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긍정적인 시각, 긍정적인 말,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믿음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꼭 성공을 위한 것일 수는 없다. 이미 그러한 삶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인 것이다. 때문에 복은 다른데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현실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감춰진 보물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끊임없이 더 (경제적으로)부요하고, 풍성한 삶을 동경한다. 따라서 믿음은 철저히 복 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해진다는 혐의를 지니게 된다. 일례로, “하나님의 복, 예컨대 승진과 놀라운 성장을 기대하면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가 찾아온다”(17쪽)는 식의 주장이 바로 그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마지막으로 책의 근본 질문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부정하길 원치 않는다. 오히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긍정에의 희망’이 거세당한 사람들은 도처에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이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체제 속에서, 현실의 상황 속에서 긍정을 꿈꿀 수 없는 곳으로 내몰린 이들이다. 이러한 구조적 현실은 역시나 고려의 대상이 되질 않는다. 다만 저자는 ‘믿으면 된다’라는 식의 선동적 수사를 남발 할 뿐이다. 이것은 마치 ‘하면 된다’라는 70년대식 구호를 연상시킨다. ‘믿을 수도’, ‘할 수도’없는 상황과 구조에 놓인 이들의 절망은 (간접적으로) 더욱 무시되거나 강화될 뿐이다. 이로써 인간의 이성과 자유는 믿음과 축복의 뒤안으로 내쫓긴다. 그냥 믿어라. 그러면 된다!

 책을 내려놓으며 느끼는 참담함은 이러한 서적들이 기독교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많은 교회들이 여전히 이와 같은 가치관 속에서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글프다.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미명 하에 기술되는 뻔한(?) 말들 속에서 나는 난감할 뿐이다. 이 난감함은 지금 처치곤란이다. TV를 켠다. 수일 째 투쟁하고 있는 이랜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모습이 암담하다. 하나님께 축복받아 성장했다던 박성수 사장의 간증이 오버랩 된다. 축복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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