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_요즘 매일같이 입가를 떠나지 않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기형도의 '빈 집'이지요. 사랑에 상처받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이 시에 눈물 흘렸던가요. 김현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이 시를 읽지 말 것을 당부했다고 하더군요. 혹시라도 이 시를 읽고 누군가가 슬픈 베르테르처럼 생을 마감하는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나 봅니다. 요즘 속수무책으로 이 시를 읊조리며, 저는 틈만나면 우두커니가 되어 있습니다. 마음엔 빗장이, 가엾은 내 사랑은 그렇게 빈 집에 갇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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