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의 의무를 우위에 두었던 지난 시대의 유물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철저히 '자기만의 방'으로 진입한 '개인'들에게조차 여전히 집단의 이데올로기는 온갖 장치를 통해 개입한다. 그 장치란 대개 미디어를 필두로 한 선전/선동 전략을 통해서 주조되는데 이를테면 한 대상에 대한 왜곡된 정보의 유출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구분한다든가 하는 것들로써 이를 통해 사회 집단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각자의 내밀한 의식 가운데 금기의 영역을 조장해내는 것들이다. 이러한 개인들은 집단 속에서 자신들의 의식을 공통적으로 확인-합의하고 일련의 규제장치들을 만들어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한다. 이는 월터 리프먼이 주창한 '동의의 조작'이란 개념처럼 집단(사회 혹은 국가)이 개인을 '쓸모있는 존재'로 빚어내기 위한 얼개들이다. 여기에서 '쓸모있게'빚어진 존재들이란 결국 집단의 이익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예속 상태에 처한 개인들에 다름 아니다.

 영화 '괴물'은 이와 같은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일단 영화는 한강에서 신출귀몰하는 괴물을 통해 '보이는 적'을 설정하고, '박강두'를 바이러스의 원흉으로 지목한 국가와 보건기구, 미디어를 '보이지 않는 적'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관객은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 중에서)진정한 적이란 괴물이 아니라 국가이며, 국가가 곧 괴물의 숙주였음을 감지할 수 있다. 괴물이 바이러스의 숙주라는 미디어의 보도는 바이러스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잠식해 들어간다. 기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를 생성했다는 점에서 일체의 권력 집단들은 바이러스의 숙주이며, 나아가 바이러스 그 자체이기도 하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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