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비상을 꿈꾼다. 그러나 참된 비상이란 속세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날개를 달아 참 자유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아닐까?
윤종찬의 청연을 마주하면서 인간의 영혼에 날개를 다는 일은 자신의 꿈을 이루게된 결과에서 평가될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발견되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줄곧 나의 머릿 속을 맴돌았다. 속세의 눈으로 비추어볼 때 '결과적인' 비상은 대중의 환호를 얻을 수 있지만 인간 자신에게 있어서 올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곧 비상하는 날개는 이미 부러져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한다는 말일 수 있겠다.
박경원. 친일파라는 역사적 오명 이전에 한 인간이 고뇌했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나에게 있어 이상의 성취, 곧 비상을 위한 현실과의 타협으로 비추어졌다. 이유인즉슨 과정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독 자신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그녀의 날개는 결과적으로도 부러지고 말았다. 그것이 숭고한 죽음으로 묘사되었다 해도 숭고함을 느끼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그녀의 죽음은 말그대로 '허무'했기 때문이다.
뉴스를 켠다. 오늘도 황우석에 대한 검찰의 조사는 계속되고 있다. 황우석의 재기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나는 '소름'에서 보여줬던 윤종찬 감독의 역량에서 여전히 희망을 본다. 그의 재기를 기대한다.
(2006. 2. 3. 작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