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마리아



한 소녀가 속으로 울며

언덕을 걸어가고 있었다.

지나치는 행인의 걸음에도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는 몸짓들에도

아련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가야할 길 하나

생각지 아니하고

높은 언덕길을 외로이

걷고만 있었다.

그 아래로 거리에 차들이

불야성의 나방처럼

수없이 지나쳐가고

소녀는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부서지는

눈물을 견디며

한 걸음 한 걸음

바람에 흔들리는 잔풀처럼

움터 오르고

한 걸음 한 걸음 꽃잎처럼

만져지고 짓이겨지고

뜯기고 물러져

벌레들이 소녀의 몸 위로

기어 다니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낙엽처럼

썩어지고 문드러져

사라져간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길가에 밟혀진 꽃잎 하나가

무엇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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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벌레를 씹다



꿈틀꿈틀거리며 느물느물한 밥알을 씹는다.

넘어올 것 같은 역겨움을 참으며 꼭꼭 씹어 삼킨다.

폐부보다 깊숙한 위장 밑바닥까지 내려앉아

새롭게 태어날 변기 속에서 흩어져

어데 모르는 땅에서 자라나

모진 비바람에 다시 꿈틀꿈틀거리며 느물느물해지라고

그래서 꼭꼭 씹어 삼키는 거라고 거짓말을 한다.

차라리 내 속에 영영 잠들어

다시는 누군가의 모진 이빨 틈새에 끼지 말라고

꾹꾹 참으며 거짓말을 되뇐다.

속안이 메스꺼워진다.

그래도 꾹꾹 씹어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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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8 19: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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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8 2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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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8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앙 없는 자의 기도



떠나간 아이

돌아오지 못해도 살려 달라

애원을 한다

부처님, 예수님

그 누구라도 좋으니 살려 달라

애원을 한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허공에 대고 살려 달라

애원을 한다

목멤으로 삼켜

다 잊어버릴 것을 살려 달라

애원을 한다

원망을 한다

저주를 한다

그 아무도 없는 아모에게

살려 달라

주문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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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얀 종이 한 장

흠 하나 내지 아니하고

남아 있어 달라고

내 자국 깊게 드리운다.


뚝뚝 떨구어지여

깊게 번지어 스며들라고

그토록 추악해진 너를

어이하라고


내가 아닌 것들로

뒤범벅 되어버린

네 흔적의 그림자가

나를 머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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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모가지



나는 그대의 굶주린 아가리에 처박힌

슬픈 모가지이다.

찢겨진 몸뚱이를 바동거리며 더욱 깊숙이

그대 목구멍 속으로 쳐들어가는

슬픈 모가지이다.

그대, 더욱 깊은 속 슬픈 창시가 있어

내 만약 속속들이 바라볼 수 있다면

생선가시처럼 뻐센 모가지를 곧추 세우고

그대 목구멍 속에 내내 걸려

지우지 못할 그대 영혼의 목멤이련만

그대, 굶주린 아가리가 더욱 옥죄어오면

그만 견디지 못하고

내 단 한 번도 알아보지 못한

그대 슬픈 창시 속으로 피를 토하며

그대에게 안녕을 고한다.


나는 그대의 슬픈 모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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