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시인이라면



만약에 그대가 진정 시인이라면

매일 동네 어귀에 트럭 한 대 대놓고서

20년 동안 한결같이 회를 팔아온 아저씨의

파닥파닥 물차 오르는 생선 대가리에

탕탕 칼을 쏘고 쓱싹쓱싹 배 가르는 소리를

시에 담아

다리에 실금이 가 입원한 어느 어머님의

못난 아들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몰래 병원에서 나와

둔탁둔탁 걸어오는 석고붕대의 저린 발자국 소리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고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타인인 그대와 나의

엷디엷은 층층 사이사이에 긴 다리를 놓아

그대와 나의 체온 사이로 영혼의 습도를 녹여서

겨울에 성에 낀 버스 창가에 그대 입김으로

한여름 하염없이 창밖에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깊은 한 숨을 내쉬는 어느 아픈 소년의 숨결을 섞어

시를 적어 놓을 수 있을 텐데

만약에 그대가 진정 시인이라면

그렇게 세상의 모든 고통의 멍에와 슬픔의 결들 사이에서

한 마리 날아오르는 새가 되어 꿈이 되어

차창 밖 갇혀버린 풍경들 속에 풍경화가 되어버린

우리들의 잃어버린 표정들을 환하게 비추어

되살려 놓을 수 있을 텐데

우리가 모르게 흥얼거리는 못다한 노래들을 

한 없이 부르게 할 수 있을 텐데

 

그대가 진정 시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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