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몰라)

 

 

까만 듯 까막까막 까마득하게

까마귀신이 들린다

까무러칠 듯 시커멓게

윤기 나는 검은 잿빛으로

퍼득거리며

짹각짹각 뚝 시간이 멈추고

어둑어둑 번쩍 섬뜩이다

아득아득 어두커니 아득하게

아둑시니 들린다

빛도 소리도 없는 무변의 세계

남은 것은 오직 거짓과 착란 뿐

더 이상 나도 나일 수 없고

당신도 내게 당신일 수 없는

사라진 기억 너머 저편의 존재

 

깨어나면 낯선 날 선 눈빛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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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오랫동안 고수했던 머릿결 방향을 바꾼다

툭 튀어 불거진 상흔을 어설프게 감춘

거울 속 내 모습이 영 거북스럽기만 하다

하루아침에 결이 쉬 바뀔 수는 없으리라

내 생에 그 얼마나 많은 결이 바뀌었던가

숱한 시도와 바람들로 한결같기를 꿈꿨지만

일렁이는 걸음에도 쉬 흐트러지는 머릿결

얼마나 자주 거센 바람을 맞으며 걸어왔는지

언젠가 아버지처럼 머리숱이 다 사라지면

그때쯤 모든 결이 사라진 진짜 내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마주할 수 있을까

더 이상 그 어떤 결도 없는 무결한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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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관한 명제

 

 

아름다운 길이 가장 위험한 까닭을 그대 아는가

눈 내린 다음날 나뭇가지 위 잔설을 바라보는

그 길 위에서 그대는 미끄러지고

벚꽃이 휘날리는 화려한 봄밤 그 뒤안 어둠 너머

그대가 향한 그 길에서 그대는 혼자가 된다

너무 정결하고 아름다워 꺾이는 것이 꽃이라면

너무 고고하게 피어난 까닭으로 그 누구의 손길도

가 닿을 수 없는 사실을 그대 혹시 아실는지

그렇게 모든 아름다움이 위태롭다는 그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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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혹은 그 사이

 

바람결 꿈결 숨결

긴 치맛자락 두루두루 펼쳐진 결

살결 당신과 나의 결 그 사이

층층이 쌓인 시간의 겹과 겁 사이

단 한 번도 매만져보지 못 한 그 한결

한없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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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리움에 관한 시

 

 

10년 만에 시낭송회를 하자고 해서

한껏 들떴는데 후배들이 바쁘다고

취소하겠다 전한다

그 후 자꾸 나를 피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리다

시를 나눌 수 있다는 기쁨보다는

어쩌면 다시 본다는 기쁨이었는데

시 때문에 다시 볼 수 없다니

혼자 마시는 커피 위에

흩날리는 눈발이 떨어지고

문득 자욱한 안개를 떠올린다

모든 생각의 편린들이

시가 될 수 없어

젖은 담배처럼 불이 붙지 않고

모든 그리움의 흔적들이

젖은 담배 연기처럼 피어나질 못하고

그래도 불을 켜고 연기를 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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