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

 

 

방귀 꽤나 뀐다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막상 뀌려고 힘을 주니 똥인지 방귀인지

잘 구분이 가질 않는다

변기에 앉아 힘을 쥐어짜 보니

토끼똥이 한덩이 잘쑥 나오는데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쑥인지 나물인지

대충 똥만 닦은 꼴이 골난 건지 꼴난 건지

된통 잘됐다 싶어 한마디 하려다

어설픈 변비 흉내이거나 흉보기같아

남사스럽고 찝찝한게 속만 쓰리다

 

거 참, 다 죽어가는 시들방귀도 아니고

혼자 똥 굵다고 배앓이 하는 꼴이

우습기 짝이 없어

이럴바엔 팬티에 조금 지려나 볼걸

네 모양새가 원래 그런 걸 어쩌겠냐고

스스로 자위해보지만 짜낸 정액도

너무 맥아리가 없어

혼자 처량해져 잠 못 드는 새벽녘

시끄러운 모기에 물려 가려운 등짝

긁어줄 이 하나 없고

허공에 손짓하는 몸부림

 

내 참, 그리운 건지 외로운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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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자꾸 거꾸로 되뇌게 된다

중세의 농노가 떠오른다

양분 없는 땅에 뿌리박혀

고목이 되고 혼령이 된

수만 가지 신의 이름이

거대한 톱니바퀴 아래

초 단위로 다시 태어난다

팔이 삐걱거리고

무릎이 시큰거리고

, 목이 뻑뻑하게 굳어

삐거덕삐거덕

가고 싶은 길을 가지만

경로를 이탈할 수 없다

가끔 피가 역류하여

거꾸로 돌아가려 하면

강철로 된 심장은

강력한 피스톤 운동으로

, 다리를 붙들어 매고

짜낼 수 있는

모든 기름을 짜낸 후

까무룩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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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에게

 

 

무지한 네 자신을 알라는 당신의 격언이

그저 밑도 끝도 없는 말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를 알면 둘을 모르고 둘을 알면 셋을 모르고

무언가 안다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우주의

쏟아지는 별들의 무량수처럼 그 먼 거리만큼

헤아릴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단 사실을

그 무지의 진실을 이제야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모른다는 진실을 배워

아무것도 모르는 태아적 지고무지의 경지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태아날 순 없지만

이제 차마 무언가를 안다 말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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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

 

 

태풍이 올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연일 거센 바람이 여기저기 불어왔지만

폭풍우는 어디에도 쏟아지지 않았고

높은 습도에 가끔 잔비만 흩뿌렸습니다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기승을 부리며

연일 들이칠 거라고 위협을 알리는데

소문만 무성하여 꼬리에 꼬리를 물고

미국에서 나래 짓을 한 나비효과라고

누군가는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더러는 북한의 고냉저습한 독립적 기후가

한반도 전체에 영향을 끼쳐 안전하다고

해괴한 해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과장에 과장을 더했지만

연일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았습니다

나도 아무 일 없이 그렇게 잘 지냈지만

뜻밖에 집에 김치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드르륵 드르륵 태풍 소리를 들어야했습니다

너무 낡아버린 김치냉장고를 바꿔야한다고

나와 어머니는 아버지께 간청했지만

나이가 들어 옹고집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수리하면 괜찮을 거라고 끝까지 버텼습니다

오래된 세월은 쉽게 청산할 수 없는 것인데

이젠 더 이상 어찌할 도리도 없이 방치되어

집에서 태풍 소리와 함께 김치 쉰내가

연일 진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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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과 한 덩어리

 

 

동네 편의점 그늘 쉼터 옆

이름도 생소한 고압 정유기

철책 너머 한 귀퉁이에

조그만 약과 한 덩어리를 보고

참새 한 마리가 날라왔다

짹짹, 짹짹거리며 쪼아 먹는데

어디서 알고 왔는지

여기저기서 참새들이 날라온다

다 먹지도 못 할 거면서

그 거 조금 붙어 먹어보려고

여기저기서 싸움이 붙는다

짹짹, 짹짹거리며 마치 투계인양

종종걸음으로 퍼덕이면서

서로 얼굴을 쪼아대기 시작하는데

그 사이를 피해 몰래 주워 먹는 놈

그걸 또 쪼아서 빼앗아 먹는 놈

여기저기서 정말 가관이 아니다

이러보아도 저리보아도

그 놈이 그 놈 같고 저 놈 같은데

그래도 그 안에서 제일 센 놈이

모두 쫓아내고 혼자서 독식한다

다음날 참새들은 어데 간 데 없고

개미들이 한데 달라붙어 있다

며칠 후 약과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누가 다 먹어버린 걸까?

참새일까? 개미일까? 시간일까?

아니면?

다 꼴 보기 싫어 누가 치워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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