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그 마법적이고 주술적인 시어를 담은 노래의 힘

 

 

  오랜만에 글을 통해 혼잣말들을 하기 시작해서일까? 갑자기 원래 개인적으로 가끔씩 느끼는 어떤 홀림이거나 기시감처럼 일을 하다가 무언가를 콧노래로 읊조리고 있었다. ‘연분홍 치마가 어쩌고저쩌고.......’ 어 무슨 노래지? 분홍이라는 어감 때문인지 순간 어이없게도 광복절 특사에 나오는 송윤아의 분홍빛 립스틱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미 문장 속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듯이 떠올린 그 순간 느낀 그대로 어이없는 연상이었다. 차라리 봄날은 간다란 영화에서 할머니가 무언가를 연신 읊조리던 기억이 스쳐갔다. 그래! 무언가, 마법 같고 주술 같은 낮은 읊조림으로 약간은 홀린 상태에서 중얼거리던 노래....... 그래서 당장 인터넷에 노래, 연분홍치마라고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봄날은 간다에 왜? ‘봄날은 간다하면 떠오르는 김윤아란 고유명사가 아닌, 백설희, 이미자, 장사익, 한영애 등 조금은 더 고전적인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 노래가 주인공 할머니 테마곡으로 쓰였다는 검색내용도 보였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 영화 봄날은 간다20대 중반쯤, 그래서 이제는 거의 기억도 없는, 단지 두 유명한 대사만 기억에 남아 있는 정도였다. ‘라면 먹고 갈래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당시 우리 세대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쓰이던 그 말, 나도 한 번은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 다시 말해서, 할머니가 읊조리던 그 노래와는 전혀 관계없이 영화 속 너무나도 예뻤던 이영애와 순진무구했던 유지태에 대한 기억만이 존재하는 영화다. 그런데 갑자기 왜 생뚱맞게 영화 속 할머니의 그 노래가 마법처럼 주술의 힘을 담아 어제부터 오늘까지 종일 내 입술에 맴돌게 된 것일까?

 

  어제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원곡 버전인 가수 고 백설희 님의 봄날은 간다를 들어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백설희와 이미자가 듀엣으로 부른 버전, 조용필, 주현미, 한영애, 장사익이 부른 버전을 차례차례로 들어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검색하다보니 복면가왕이란 프로그램에서 가수 린이 부른 버전까지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약간 길이 틀어져 그 회 방송분 복면가왕을 다운받아 보게 되고 또 다시 다른 한 편 보게 되면서, 결국 원래 어제 다시 보려던 영화 봄날은 간다를 오늘 보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찌됐든, 어제부터 오늘까지 가수 고 백설희 님의 노래 봄날은 간다에 대해 원하는 전반적인 정보는 대충 얻어낼 수 있었다. 아니, 왜 갑자기 홀린 기시감 같은 현상이 내게 벌어졌는지 대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말 그대로 홀렸고, 또 현재로선 기시감이란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내 기억들은 조금씩 왜곡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할머니의 노래는 내 생각과 달리 그렇게 홀린 모습도 주술적인 음색도 아니었다. 물론, 영화 속에서 할머니가 젊을 적 할아버지와의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도피하여 약간의 치매기가 있는 것으로 나오기는 한다. 때문에 누군가는 할머니에 대한 그런 설정 자체가 할머니의 노래 음색을 반 미쳐서 나오게 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장면, 사실 아주 짧은 장면이고, 게다가 가사도 1절의 초반부만 나오는 그 장면에서 할머니의 음색은 봄날의 추억에 대한 환희가 담겨있다. 영화 맥락상으로도 그 장면은 유지태가 이영애와 막 사랑을 하기 시작하면서 찬란한 봄날을 맞는 때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게다가 내 개인적으로 가장 어처구니없던 것은 영화 속 주인공의 할머니는 내가 기억하던 영화배우가 아니었다. 얼굴은 알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분이 할머니 역할을 했기에, 내 기억이 완전히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내가 백설희 버전의 봄날은 간다를 영화 속 말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 음악파일 속에 장사익 버전으로 봄날은 간다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장사익 노래 중 그 노래를 자주 들었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장사익 씨의 노래는 따로 몇 곡 정해져 있다. 아마 그래서 이곡저곡 마구잡이로 다운받는 와중에 아마 한두 번 정도 장사익 씨 버전으로 봄날은 간다를 들었을 거라 생각해본다. 그런데 사실 오히려 더 내게 친근하게 들린 버전은 한영애 씨 버전이었다. 아니, 한 마디로 말해서 이것은 뜨악이었다. 사실, ‘뜨악이란 원 표현이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고 꺼림칙하다.’란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근래 뜨악이란 단어는 무언가 신선한 충격을 받아 놀랐을 때 자주 쓰이곤 한다. 그렇다면 내 감정은 아마도 어제이거나 혹은 그 이전 언젠가도 마찬가지로 이 두 가지 상충되는 의미를 다 포함한 뜨악이라 말해야할 거 같다. 사실, 엄밀하게 따져서, 비록 내가 앞에선 상충된다 말했지만, 이 두 가지 뜻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너무 신선한 충격인데, 그것이 너무 마법 같고 주술 같아서, 섬뜩 놀라 피해버림으로써 기억에서 말소시켜버렸다고 말해야 할까? 그리고 지금도 이 감정은 비슷하다. 왜냐하면 이 곡에 있어서 한영애 씨의 그러한 곡 해석은 물론 신선하지만, 이 곡이 담고 있는 가사 본질의 아름다운 처연함을 다 살려낼 수가 없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 곡이 담고 있는 가사 본연의 시적인 힘에 대해서, 그리고 특히나 우리 고유의 정서적인 맥락과 닿아있는 주술적인 읊조림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보고 싶다.

 

  원래 이 곡은 작사가 손로원 님께서 3절까지 지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백설희의 레코드 초판엔 1절과 3절만 나오고 2절은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재 레코딩하면서 2절을 첨가하게 되었고, 이후로 백설희 자신과 대부분의 리메이크 가수들도 굳이 3절까지 부르지 않고, 2절까지 된 가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절이면 이 가사는 충분히 전달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3, 그리고 다른 시인들이 덧붙인 4절과 5절까지 가면,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가사 하나하나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우리 전통 민요적인 측면에서 이런 반복되는 연 구성이 하나의 특색이기는 하지만, 원래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시적인 힘을 반감시키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것은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여하튼 그래서 지금부터 순전히 내 개인적인 차원에서 1,2절을 해석해보고, 3절이 왜 불필요한지 조금은 설을 덧붙이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맹세의 옛말

 

  1절의 시작은 내가 나도 모르게 읊조리기 시작한 연분홍 치마란 가사부터 시작한다. 일단, ‘연분홍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이 우리 고유 정서에 있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모두 알리라 생각한다. 그 어감만으로도 무언가 미쁘고 달뜬 기분인데, 2행에 보면 이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3행에서는 옷고름을 씹어가며라는 표현을 쓰면서 약간의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해석하기 조금 곤란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옷고름을 씹는다는 표현이 당시에 어떤 어감이었는지 내가 잘 모를뿐더러, 다소간의 중의적인 어감을 띠고 있는 까닭이다. 뭐랄까? 봄바람에 살짝 달뜬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옷고름을 부여잡으면서도, 씹는다는 어휘 속에는 무언가 초조함이 담겨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를 들어, 아이들이 자신의 손가락을 빨아먹는 행위를 볼 때, 그것은 무언가를 먹고 싶지만 동시에 참아야 하는 불만족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다음 행으로 이어지는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란 어휘들도 같은 맥락으로 읽혀야 할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도 다소 묘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과연 산제비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인데, 사전에는 따로 나와 있지 않다. 그래서 어떤 이는 호랑나비과의 한 종인 산제비나비라고 하고, 어떤 이는 그냥 제비대한 표현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봄을 알리는 측면에서, 그리고 성황당이란 어떤 소망과 기도의 장소를 넘나든다는 측면에서 그냥 제비로 보는 것이 조금 더 유연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맥락상으로도 그 전 행과 어울리려면, 그리고 다음 2,3절에서도 제비나비보다는 조금 더 어울린 거란 판단을 해본다. 어찌됐든 이렇게 성황당까지 이르는 바람과 기도 때문일까? 그저 철 지나가면 떠나갈 제비라도 꽃 피면 같이 웃고, 꽃 지면 같이 울면서, 알뜰한 맹서까지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조금 더 이 가사를 음미하기에 좋은 단어는 알뜰한이란 단어다. 아마 우리 대부분은 그저 알뜰하다란 뜻이 일이나 살림살이를 빈틈없이 잘 처리하는 의미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사전에도 그 의미가 첫 번째로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두 번째 뜻을 보면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함이 참되고 지극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제비의 맹서라도 알뜰한 맹서라면 그 누가 그 찬란한 봄날의 맹서를 마다하겠는가?

    

 

새파란 꽃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딸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사실, 이미 1절의 가사에서 산제비란 가사가 등장하면서 아무리 찬란한 봄날이라도 그 짧음에 대한 예감을 누구나 언뜻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2절에선 1행부터 새파란 꽃잎이 등장한다. 그냥 1절의 첫 가사인 연분홍 치마와 비교 해봐도 그 어감부터 차이가 확연히 달라진다. 물론, 새파란 꽃잎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새파란 꽃잎이 지니는 어감은 무언가 시퍼런 멍이거나 서슬 퍼런 한같은, 그런 퍼란 어감이 있다. 서양에서 말하는 파랑새이거나 파란 나라와는 무언가 확연히 구별되는 느낌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2행에서 보면 그 꽃들이 물에 떠서 흘러가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물론, 이 역시 얼마나 아름답지 않냐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강물에 꽃잎을 띄우는 풍습이 있어왔다. 물론, 이것이 우리 고유의 이별 풍습이라 할 순 없지만, 왜 나는 이 풍경이 자꾸 이별을 연상시키는 걸까? 혹은 누군가를 향한 가 닿을 수 없는 편지가 왜 자꾸 떠오르는 것일까? 그 때문일까? 오늘도 꽃편지를 내던지는 이거나 혹은 그녀는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로 누군가를 자꾸 찾아나서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미 제비 떠난 그 길에 역마차로 누가 되돌아온단 말인가? 아무도 없는 그 길에서 이제 꽃이 아닌 별을 보며 '그'이거나 '그녀'는 지난날을 자꾸 돌이켜본다. 하지만 별은 희미하다. 우리네 정서에서 그것은 희망을 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끝나지 않는 기다림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이유로 이제는 같이 웃고 같이 울던 님이 아닌 서로 웃고 서로 울던으로  님으로 교묘하게 님과의 거리를 표현하고 있다. 사실, '같이'라는 말은 거의 거리가 없는 말과 같다. 하지만 '서로'라 했을 때는 이제 상대방의 입장이라는 차이, 즉 '너'와 '나'라는 거리가 생긴다. 게다가 시가 절대로 번역될 수 없는 이유로 언어의 소리적인 측면에서 비슷한 어감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여기서 바로 그런 점이 확연히 드러나는데, 말은 서로 웃고 서로 울던이라고 해놓았지만, 실상 들리는 소리는 서럽게 웃고, 서럽게 울던처럼 들리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언어의 어감에 대한 내 인상이고 해석이다. 하지만 아무리 원래 소리인 '서로'라 할지라도 알뜰했던 그 모든 맹서는 결국 실없는 기약이었기에, 그렇게 속절없는 배반의 약속에 대한 믿음 속에 우리네 봄날은 끝나고 만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 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3절은 사실 너무나 확연해진 상태에서 시작된다. 때문에 더 이상 가사들이 숨김으로써 중의적 표현이 있는 시어의 기능을 담고 있기보다는 그냥 다 보여주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한 마디로 지나갈 봄날이란 시절에 대한 다소간의 한을 노래하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다만, 후렴구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운다는 연은 1연과 비교해 생각해볼만한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그 새가 우리는 이미 어떤 새인지 추측할 수 있는 까닭이다. 때문에 새의 노래인지 이 노래인지 혹은 두 노래를 모두 지칭하는지 알 순 없지만, 얄궂은 노래에 이미 끝나버린 봄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 봤을 땐 이미 1,2절에서 이 부분까지 다루었다 생각하기에, 이 노래에 시적인 미학을 생각했을 땐 3절이 없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이 노래의 매력은 너무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봄날의 그 잔혹한 짧음, 그곳에 미학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원초적인 시어의 힘이 주술적인 가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때도 (‘구지가형태이든, ‘정읍사형태이든, 그 비슷한 무엇이든 간에) 한 사건에 대해 간결하게 반복하는 것이 더 시적인 마법을 더해준다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는 까닭도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듯이 우리 전통 가요 중엔 아리랑과 같이 여러 연이 반복되면서 이루어진 노래가 많기는 하다. 하지만 이 노래들은 주로 명절의 놀이나 혹은 노동요와 관계가 많다. 때문에 주술적인 힘보다는 흥이거나 한풀이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추상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시가 꼭 주술적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원초적인 시가 추상보다는 주술적인 구어의 반복으로 왔다고 봤을 때, 이 노래는 그러한 시적 주술성을 다소 갖고 있다고 내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때문에 내가 홀린 듯 기시감을 느끼고, 이렇게 이틀 간 미쳐서 이 노래에 대해 빠져 이렇게 글까지 쓰게까지 됐으리라고, 자꾸만 그렇게 믿어보고 싶다. 억지 춘향 식으로라도 그렇게.

 

 

 

 

    

 

 

  

 

 

 

https://youtu.be/IpKoCaiCV-s      백설희 버전

 

 

https://youtu.be/NG1_E3HQVkc   한영애 버전

 

 

https://youtu.be/ao5O_CNzbCU   장사익 버전

 

 

https://youtu.be/Zm6Ldd3toMU    린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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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 특별전을 다녀와서 - 너저분한 여백에 관한 단상

 

 

  사실, 이제까지 미술 전시회에 가본 적은 거의 없다. 이번을 포함해서 한 세 번쯤? 그것도 한 번은 과거 여친이랑 그냥 잘 모르는 회랑에 들려서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른 한 번은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였는데, 기대가 컸는지 실망감이 오히려 더 컸다. 그래서 전시회에 대한 내 기억은 거의 전무하다. 다만, 스무 살 때 한 선배의 선물로 ‘루오’ 화집을 선물 받아, 그때부터 다소간 그림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미술에 대한 관심이란 건 고작, 루오의 ‘거울 속에 비친 나부’를 보면서 느낀 자기연민과 유사하다. 그래서 피카소를 처음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우는 여인’이란 작품을 통해서였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입체적으로 내 개인의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호안 미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실, 거의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이가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것과 똑같은 소리일 것이다. 다만, 이전에도 그랬고 또 지금도 그럴 수밖에 없기에, 여전히 나는 내 개인적 투영을 심하게 담은 전시회 소감을 적으려 한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그래도 무언가 스스로 간과할 수 없는 단상을 얻은 까닭이다.

    

 

  이번 전시회를 나는 크게 세 가지 그림 영역으로 분류하고 싶다. 첫째는 유아성에서 비롯한 추상적 세계에 대한 표현이고, 둘째는 그림의 시적 형상화에 관한 부분이고, 마지막으로 서양화된 동양화의 관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와 마지막 이야기는 다소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첫 번째 이야기를 아주 짧게 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말이 좋아 유아성에 비롯한 추상적 세계에 대한 표현이지, 그냥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계의 세계를 화폭에 담아 놓은 느낌이었다. 그것도 제목도 없이 거의 무제로 벌려놓아서,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게다가 개중에 몇몇은 피카소와 친분이 있어서 그런지, 피카소의 ‘빨간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의 누드’의 형상과 닮아 있는 그림이 아주 많았다. 물론, 그냥 딱 봐도 닮았다는 게 아니라, 어떤 그런 여인의 형상을 다소 과장되게 그린 선들이 호안 미로의 형상에서도 많이 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목이 없어서 그게 대체 뭘 그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설령, 제목이 있던 몇몇 작품들은 ‘새’나 ‘여인’이란 제목을 달고 걸어놓았지만, 거기서 개인적으론 어떤 단상을 떠올릴만한 것은 없었다. 아마 이 부분은 그림에 대해 거의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의 경우 대다수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다만, 중간에 스페인의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를 위한 도안들’이란 작품들은 개인적으로 가우디의 건축물에 대한 인상이 남아 있어 비교해보는 재미는 있었다. 그렇지만 이 역시 내 개인의 어떤 단상을 끄집어내기엔 어려웠다. 때문에, 지금부터는 내 개인적인 단상과 연결된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둘째로 내가 분류해놓은 ‘그림의 시적 형상화’에 대한 부분은 호안 미로의 개인적 견해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호안 미로는 그림과 시의 경계를 특별하게 두지 않고, 시가 글로써 어떤 형상화된 작업을 추구한다면, 그림은 어떤 선과 형태로써 형상화된 작업을 추구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전시회 중간에 보면 어떤 문자들 옆에 형상들이 나란히 붙어있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처음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불어였다. 사실, 스페인 화가라 불어를 썼으리라 전혀 예상하지를 못했는데, 뜻밖에 불어여서 그나마 해석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내 불어 실력이란 게 애초에도 없는데다 아주 녹슬어, 앱으로 깔아놓은 사전을 겨우겨우 찾아가며 해석해야 하는 실력이지만, 그래도 그 덕에 조금은 옆에 형상들과 문자들의 관계에 대해 유추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쉬운 작업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호안 미로의 경우 문자 자체도 그림으로 이해한 탓에 너무나 흘려 그려서 알아보기 힘든 문자도 많은데다, 또 바로 그 이유로 문자의 의미 자체보다는 문자의 형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어떤 단상의 단초는 얻을 수가 있었다. 그림이라는 형상의 시적 가능성에 대한 단상을. 하지만 만약 내가 호안 미로의 동양적 시도의 그림들을 보지 못했다면, 이 또한 단초란 의미 그대로 감겨있거나 헝클어진 실의 첫머리일 뿐이었을 것이다. 불이 붙여지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고, 쓸데도 없는, 그래서 애초에 그랬듯이 혼돈의 형태로밖에 영영 남을 수 없는.

    

 

  호안 미로는 동양에서 서예를 하는 작업을 보고서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중간에서부터 후반 마지막까지 그렇게 동서양을 아우르는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동양의 서예와 많이 다른 것은 그 기법의 너저분함에 있다. 여기서 대다수가 느끼겠지만 이 말은 완전히 모순된다. 왜냐하면 동양의 서예란 무릇 여백을 담아내는 작업인 까닭이다. 즉, 완전히 깨끗하고 숭고하게 비어진 공간을 통해 담겨진 문자를 보여주는 작업이 동양의 서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웬 너저분함이란 말인가? 사실, 그림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나는 다소 동양적 서예의 역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앞에서 말한대로 동양의 서예는 여백이라는 완전무결한 빈 공간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호안 미로가 서양인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를 못했는지, 아니면 애초에 관념이 달랐는지, 호안 미로의 그림의 여백은 물감이 줄줄 흘러있고, 심지어는 여기저기 손바닥 자국까지 나타나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앞에서 말한 그대로 ‘너저분함’ 그 자체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너저분함’이 동양의 서예를 보고서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가장 세밀하고 정밀하게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일본의 서풍을 보고서. 사실, 이 부분에 대해 내가 알 수 있는 길도 없고, 설명할 수 있는 바도 전혀 없다. 때문에, 질문을 내 개인적 투영으로 바꾸어보고자 한다. 어떻게 ‘너저분함’이 여백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이제까지 ‘너저분함’을 여백으로 이해하지 못한 걸까?

    

 

  우선, 위의 질문을 던지기 위해 내 개인적인 여백에 대한 이해에 대해 잠깐 밝히려 한다. 사실, 여백이란 단어를 떠올리기 전 내가 먼저 거쳐 간 단어는 ‘길 옆’이란 단어였다. 그리고 그 시작은 스무 살 때 혼자만의 여행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작정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인생의 커다란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깨달아 보려 했다. 그런데 그냥 걷는데, 어떻게 무언가가 막 떠오르고 심지어 해결되기까지 하겠는가? 다만, 무식하게 부산까지 걸으니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만은 알게 되었다. 정작 보름간 길을 걸었지만 그때까지 내가 본 것은 ‘길’이 아니라 ‘길 옆’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실은 ‘길’을 존재케 하는 것은 ‘길’이 아닌 ‘길 옆’이란 사색을 해볼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백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다. 온전하게 옆자리에 비어 있음으로 문자와 그림들을 더 온전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여백이란 미, 아마 이 부분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동양화를 자연스레 많이 접한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여하튼 그래서 여백에 집착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말이 좋아 여백이지, 정말 뜬구름 잡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너무 고결하고 온전해서 다가서고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표현하면 좋을까? 때문에, 내게 있어 여백은 곧 허무덩어리로 전락해버렸고, 더 이상 다가설 수 없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호안 미로의 여백의 너저분한 표현을 보고서, 왜 내가 여백을 그토록 고결하게만 생각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의 한계에 대해 성찰하게 된 것이다. 사실, 여백의 집착에 대한 단초가 되었던 내 개인적 여행에서 본 ‘길 옆’은 그렇게 고결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사람내 푸근하게 풍기는 시골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얼굴이었고, 혹은 길가를 진동하는 거름내였다. 그런데 어찌돼먹은 내 관념이란 놈은 그런 것은 싹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고상하고 이상적으로만 포장하려고 하였는지, 지금에 와선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너저분한 것은 너저분한 것이고, 그렇다 해서 그것이 더럽거나 추한 것이 아닌 것을. 왜 모든 것을 극단으로만 추구하려 들었던 것일까? 물론, 호안 미로의 경우 나와 같은 사유의 경로를 통해 그러한 그림들을 그렸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림의 시적 형상화라는 궁극적인 지점에서 바라봤을 때, 호안 미로에게 있어 굳이 여백이 동양의 서예나 그림처럼 완전무결하게 비어 있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즉, 아마도 그는 즉물적으로 여백이란 공간을 해석함으로써, 여백의 너저분함과 모순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했으리라 본다. 그리고 시란 결국 그러한 즉물적인 해석이거나 표현이라고 본다면, 그가 추구한 선과 모형의 시적 형상화는 분명 시라 말해도 좋은 것은 아닌지 잠깐 생각해보며, 동시에 나도 그러한 시를 꿈꿔보며, 전시회 다녀온 소감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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