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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 (50만 부 기념 드림 에디션)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ㅣ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어른들을 위한 환상적인 동화
모임에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기성작 합평으로 결정할 때 클라우딩 펀딩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들었다. 기존 출판사에서 외면받았지만, 일반 대중들이 그 값어치를 인정하여 자금을 조금씩 투자한 책이란 이야기다. 확실히 그 값어치를 하는 책이었다. 현재 우리 한국 문학과는 전혀 다른 서사와 배경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였다. 특히, 도입부의 환상적인 기획력은 이 책에 바로 빠져들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아주 먼 옛날 시간의 신에게는 세 제자가 있었다. 시간의 신은 이제 자신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고, 세 제자에게 각자가 원하는 시간을 나누어 준다. 첫 제자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가져간다. 마음이 여린 두 번째 제자는 추억에 빠져 향수에 잠길 수 있는 과거를 가져간다. 그럼 대충 생각하기를, 보통 이쯤이면 마지막 제자가 아주 순간이지만 찰나의 현재를 가져갈 것이라 예상하기가 쉽다. 그래야 이야기가 매끄럽게 진행되고, 누구나 생각해도 미래, 과거보다는 현재가 중요하다는 설정이 이야기를 풀어가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제자의 선택은 생각지도 못하게 잠이었다. 인생에서 거의 버리는 시간과도 같은 잠을 왜 마지막 제자는 선택한 것일까?
미래를 선택했던 제자는 과거를 잊으면서, 자신의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미래에 갇혔는데, 미래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모순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과거를 선택했던 제자는 과거의 추억에 빠져 그대로 침체되어 버렸다. 이에 스승은 잠을 선택한 제자에게 찾아가, 잠을 자는 시간에 사람들의 그림자들을 대신 깨어있도록 하고, 꿈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달라구트 꿈 백화점의 사장은 바로 이 셋째 제자의 후손이다. 즉, 꿈을 지배하는 족속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어찌 됐든, 이 때문인지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는 사람들을 위한 수천 가지 꿈을 판매한다. 키스를 부르는 꿈부터,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꿈, 동물들을 위한 꿈, 낮잠을 위한 꿈, 유통기한이 지난 흑백인 꿈까지, 모든 종족을 망라한 꿈을 판매하고 있다. 주인공 페니는 이 달라구트 꿈 백화점에 지원하여, 사장인 달러구트와 면접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페니가 의외로 현실적인 사람이란 점이다. 페니는 꿈이 현실을 지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높이 산 달러구트는 페니를 채용한다. 달라구트 꿈 백화점은 총 5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1층은 인기 상품, 한정판, 예약상품 등으로 구성되어있고, 2층은 평범한 일상을 다루는 꿈, 3층은 획기적이고 역동적인 꿈, 4층은 낮잠용 꿈과 동물들을 위한 꿈, 5층은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지나서 군데군데 천연색이 훼손되거나 바랜 흑백 컬러의 꿈들을 판매하고 있다. 각 층에 맞게 매니저들이 있고, 각 매니저의 캐릭터는 마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처럼 색깔이 뚜렷하다. 페니는 입사 첫날 각층별 매니저에게 인사를 하고 면접을 보지만,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찾지 못한다. 그러다 1층 로비의 웨더 아주머니와 달러구트 사장이 일손을 따로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어, 그날부터 바로 1층에서 일하게 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첫날부터 백화점은 대성황이다.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백화점에 모든 물건이 동이나, 임시휴일을 갖게 된다. 일찍 퇴근할 생각에 모든 층 직원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백화점 모든 입구에 영업 마감 프린트를 붙고, 모든 직원들은 퇴근한다. 그런데 이때부터 달러구트 사장의 예약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사실 지금부터 이야기가 재밌기는 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자신의 맘을 정확하게 모르는 여자부터, 예전의 악몽을 계속 되풀이해서 꾸는 사람의 이야기, 니콜라스 불리는 산타클로스의 꿈을 파는 이야기, 남의 인생을 대신 살게 하는 꿈에 관한 이야기와 마지막 죽은 이가 나오는 꿈에 관한 이야기까지, 모든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한 편의 동화를 보는 기분을 만든다. 재미, 설렘, 긴장, 감동까지 두루두루 갖춘, 정말 잘 기획된 작품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점이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이 작품이 서두가 지난 줄거리 삼 분의 일쯤 지났을 때 이 모든 그림이 벌써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때부터 이 책을 솔직히 끝까지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들 정도였다. 물론, 끝까지 읽었고, 결론적으론 잘 읽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나는 중간도 읽기 전에 그런 마음이 들어버린 걸까? 이 책에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아니면, 나의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이다. 누구나 빠져들 수 있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재미에 있다. 그런데 반대로 이 책의 단점은 바로 그 재미이다. 일단, 어느 정도 줄거리가 예상된 상태에선 그 재미가 반감되게 된다. 즉, 환상적인 배경과 서사가 차츰 그 힘을 잃어가면서, 윤곽이 드러나면, 흥미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독자는 이 책을 좋아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특히 마지막에 이르러 꿈의 제작자 도제가 만든 죽은 이의 메시지 같은 꿈 이야기는 이 글의 감동을 주고, 여운까지 끌어내기에 충분하기에, 내 개인적으로도 권장할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시리즈로 나오는 제2권에 대해서 나는 다소 회의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이 책이 주는 재미와 감동은 인정하지만, 지금 내가 추구하는 문학의 지점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나는 지금 갈등하고 있는 중이다. 문학이 과연 폼만 가득 잡으면서 어려운 이야기만 해야 하는지, 아니면 재미를 추구하면서 쉽게 소통해야 하는지, 혹은 이 둘을 모두 잡을 수 없는 건지. 물론, 마지막은 지나친 욕심이거나, 과한 허영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직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허영과 과장으로 포장된 그 이상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