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이 진 자리에서



허기진 숨결로 들어선

동네 어귀 산기슭에 배 밭

가슴 속 깊이 일렁이며

울컥, 싸하게 열리던 순간

천지사방에 온통 배꽃이

환하게 순백을 터뜨리고

문득 생애 처음으로 떠올린

먼 그대 생각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흐드러진 꽃잎이 떨어지던 날

흐드러지게 뿌려지던 내 욕정의 관념들을

모두 뒤로 하고

배꽃 같이 환한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사뿐히 즈려 감는 순백의 단꿈-

아스라이 사라지고

그늘 한 점 없는 배 밭 귀퉁이

언제 떨어진지도 모른

마른 아카시아 꽃잎들을 밟고서

배꽃처럼 너무 새하얘 다가설 수 없던 그대

이젠 고이 떠나가 주시기를

새하얗게 사라져 주시기를

내내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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