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병

 

가끔은 어느 몽환의

거리도 걸어보자꾸나

춤추는 다리 위에서

네 춤추는 다리 사이로

팔은 하늘을 향해

힘껏 뻗쳐도 보아라

네 그래도 머릿넋에

관통하는 상쾌함이 없거든

맘껏 몽환의 가시밭길에서

괴성을 지르며 달려도 보아라

순간 다리에 흥건히 젖은

네 피를 보거든

슬쩍 웃어 보이며 뒹굴어도 보자꾸나

네 심장에 네 머릿넋에

드디어 한 개 바람이 관통하면

맘껏 웃으며

이 네 피를 다 흘려보아라

마지막 한 줌의 피를 다 토하거든

순간 멎어버린 네 심장에

피 같은 눈물을 뿌리며 온 몸을 적셔

어느 몽환의 거리에서 뛰쳐나와

새벽의 언덕에 올라

그대로 영영 잠들어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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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

 

어차피 파도에 휩쓸려

무너져 내릴 성이라고

내부 통로도 없이

창문 하나 달지 않고서

뾰족한 지붕만 가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어차피 하나가 무너지는 것이

어려울 뿐

손 끝 닿으면 모두 무너져 내리는

도미노처럼

땅속에 박힌 뿌리도 없이

뼈대도 없이

 

만약 모두 무너지지 않고서

그 자리를 지켜낸다면

먼 바다 지켜내는 수평선 가리어

그 누구도 바라볼 수 없겠지만

 

너는 좀 더 배워야만 했다.

 

무너지는 법을

그리고 무너져 내려야 보이는

수평선이라는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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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잘이거나 음모이거나

 

 

심해의 산호에 감추어져

너는 도사리고 있었다.

나선형의 긴 촉수를

나른하게 늘어뜨리고선

검고 예리한 광채를

한순간 번뜩거리면서

핑크빛 陰府의 찌릿한

香, 이야기하면서

자석처럼 나를 빨아들여

삼키어 버렸다.

 

더 이상 꽃 되는 이야기

간지러워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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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 - 불안은 영혼에 침잠한다

 

 

그대의 불꽃은 언제나 짧은 불꽃이었다.

궁정사우나, 까치호프, 팝콘안마,,,,,,,

때론 그 어떤 이름도 없이

발가벗은 나체의 여신의 모습으로

이 호주머니에서 저 호주머니로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간단히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의미도

사랑도 될 수 없었던

그대의 불꽃은 언제나 짧은 불꽃이었다.

누군가의 애끓는 속을 달래주려고

번뇌로 지새우는 외로운 밤을 지켜주려고

쉴 새 없이 그대의 불꽃은 한밤을 밝히지만

너무 쉽게 흔들리는 그대!

오! 너무 위험한 그대의 자태!

그대의 불안한 몸짓이 허공에 사그라지고

나는 그대를 위한 향을 피운다.

불안이란 이름의 그대의 짧은 흔들림이

폐부 깊숙이 새까맣게 그을려

내 영혼에 오래도록 침잠하도록

 

그대의 불꽃은 언제나 짧은 불꽃이었다.

그러나 그대와의 짧은 입맞춤은

끝내 지울 수 없는 독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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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길의 추억

 

 

언제나 몰래 담배를 태우러 빠져나왔던

신학교 뒷길, 나는 그 길을 사랑했다.

모두 집으로 향해가는 오후의 해 질 무렵

아무도 오지 않을 그 길에서 나는 취하고

비틀거리며 잠시 멈추어 서성거리다

미로 같은 아파트 사이사이 길을 따라

하염없이 또 걸으며

누구도 쉬 알지 못할 어느 음울한 공원과 벤치와

갓길들을 종종 헤아려보곤 하였다.

분명 그 언젠가 내게도 뒷길이 아닌

하나의 길이 있었을 터이다.

오직 그 길만을 알았고 얼마나 오랫동안

그 길을 따라 걸어 왔는지

길 밖에 길이 무엇인지 길옆이란 길이

존재할 수 있는 길인지 나는 묻지 않았다.

그저 길은 하나의 길일 따름이었다.

그 어느 날이었을까? 길옆에 오만가지 잔상들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흩어지고 있었음을

또 그 가지 사이사이로 그 얼마나 많은 뒷길들이

갓길들을 뻗어내어 다시 길로 돌아서고 있었음을

그 뒷길을, 나는 그 길을 사랑했다.

그 길을 지나쳐가는 모든 낯선 이들과

그 모든 꽃들과 나무들과 사물들을

그리고 어둠과 빛을 생명을 죽음을

그렇게 굽은 등 뒤를 내게 보여주며

유유히 사라져간

어느 노파의 그 긴 그림자 끝자락을

그 뒷길을, 나는 그 길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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