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코츠키의 경우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7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이수연.이득재 옮김 / 들녘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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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볼셰비키-멘셰비키는 물론 러시아혁명사에 대한 시대적 배경이 아예 없기 때문에 러시아 작품은 늘 멀리했다. 학교 때 착실하게 다른 과 문학수업을 듣지도 못한 결과이다. 내가 애살이 있었다면 철학과 문학수업들을 욕심내거나 그때 이미 웬만한 인문학 고전에 도달해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남달리 게으르고 미친 것마냥 신경이 딴 데로 가 있어서 그러지 못한 게 후회로 남는다. 그래서 러시아 소설 한 권에 이런 힘든 과정을 겪는다. 푸슈킨, 투르게네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서 체호프, 솔제니친과 파스테르나크 이후의 계보에나 낄 울리츠카야는 <소네치카>(1992)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쿠코츠키의 경우>는 세 편의 장편 중 2001년 러시아 부커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24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1990년 고르바초프의 냉전종식 정책으로 1991년 소련 해체. 1943년 태생인 그녀는 2차대전의 진행 중에 유년기를 보내면서 소비에트 체제하를 살았다. 소비에트 체제 하에서의 고통이나 억압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강도높게 풍자되기도 하고,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소련 수용소 안 강제노동의 가혹함이 묘사되기도 한다. 이런 시대상황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작가 울리츠카야의 작품에서 소비에트 체제 하의 가족이 살아가는 법이 등장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가정의 일상이나 행복 보다는 국가의 이념에 충성해야 하는 소비에트 시대에 자유와 도덕 불감증에 시달리며 자기들만의 이성적 논리와 감성적 도덕으로 이 사회를 살아나가는 이들의 눈물겹고 따뜻한 이야기이다.

 

반소비에트적 성향을 가진 아버지 파벨을 중심으로 아내 엘레나와 그녀의 어머니뻘 바실리사, 딸 타냐와 프롤레타리아 계급 대표격인 청소부의 딸이자 타냐의 친구인 토마가 한집에 산다. 파벨과 엘레나의 만남, 파벨의 이념 혹은 신념, 톨스토이주의자였던 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에 대한 엘레나의 회상, 바실리사의 이야기나 토마의 사연 등 한 지붕 아래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각자의 시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훑는다. 멀티카메라기법의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사회심리학적으로 인물을 고찰하는 생생한 문체가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국가의 낙태금지법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사 파벨인데, 자칫 생명경시로 이어질 법한 일인데도 불구, 파벨의 주장을 경청한다면 이내 생각이 바뀌다가 곧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노동자로 남편 없이 아이 셋을 키우다가 바로 그 임신 때문에 피흘리며 죽어간 토마의 엄마는, 국가의 부주의와 무책임을 대변하는 훌륭한 예다. 최소한의 비용과 책임으로 최대한의 불행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엄마를 잃음으로서 남은 아이 셋은 오갈곳 없는 고아신세가 되어 뿔뿔이 흩어진다. 낙태금지법은 계급이 낮은 여성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며 법을 고치기 위해 애쓴 파벨의 행동이 차츰 이해가 되었다. 엘레나는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결코 찬반론으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다. 낙태금지법에 인생이 저당잡히는 여자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누구나 윤리적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낙태를 권하거나 도우면 끌려가 고문 당하거나 죽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는 언제나 여자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

 

소설을 관통하는 두 가지의 윤리적 문제 중 다른 하나가 바로 자신의 딸이 아닌 타냐를 누구보다 예뻐하는 파벨의 부성이다. 타냐는 두 살 때 만난 아버지를 친아버지로 안다. 친구 토마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지내게 한 것도 이런 아버지의 풍부한 사랑 덕에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 악착같이 타냐의 가정에 순응하려는 토마를 보면 안쓰럽다. 어린시절의 가난했던 기억과 임신 중 죽은 엄마로 때문에 사랑과 출산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오랫동안 식물에만 애정과 관심을 쏟는 토마는 꿈보다는 현실안주형의 인물일 수밖에 없다. 소비에트 체제에 순응해야만 하는 힘없는 계급의 표본이다. 의식주를 획득하는 일은 타냐의 집에 머물러야만 해결할 수 있는 그녀에게는 가장 어렵고 힘겨운 일이었을 테니까. 수용과 잔류를 향한 악착같은 발버둥은 이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연구실에 들어오는 조교나 조수를 대상으로 반복되어 오던 간소프스키의 만행은 이 사회의 실루엣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심지어 타냐의 처녀성마저 위협하는 걸로 끝장판에 도달한다. 이후부터는 파벨과 엘레나, 타냐와 골드베르그 형제, 바실리사, 토마, 연주자 세르게이의 삶을 향해 질주하는 독서가 시작된다. 죽지 않으면 살아야 한다. 생명이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는 순간까지. 가족의 진혼곡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죽은 자의 흔적과 산 자의 추억으로 가족의 연대는 계속된다.

 

억압과 불통으로 시대를 이어가던 소비에트 체제의 한 가족을 통해 울라츠카야는 가족이라는 의미를 새로 정립시키려 한다. 핏줄로 얽히지 않아도, 아픈 가족을 돌보면서도 끝내 지키려 했던 가치. 가족이라는 이름. 가족애. 사랑과 보호를 통해 세상 어디보다 따뜻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곳. 잃지 말아야 할, 잊혀지지 않아야 할 가치를 굳건하게 품을 수 있도록 돕는 곳. 생명윤리와 낙태찬반론, 유전학에 대한 사실적이고 자연적인 묘사는 놀랄 만큼 정연하다. 실험동물들을 죄책감 없이 죽이며 거기서 원하는 것을 얻는 연구과정에서 충격받은 타냐가 학위와 연구 활동을 그만두고 방황하는 장면에는 공감한다. 우성유전과 열성유전에 관한 이론은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면역이 약해진 타나가 임신 중 감염으로 목숨을 잃은 후 파벨은 타냐의 딸 줴냐를 키운다. 파벨이 죽자 엘레나만 남는다. 줴냐가 아이를 낳는다. 세상은 묻지마 범죄가 성행하는 흉악한 도시가 된다. 운이 좋으면 살고 운이 나쁘면 죽는다. 모든 것이 운에 달린 사회는 불안하다. 자유와 도덕은 모든 시대 모든 세대에 통용되는 가치이다. <쿠코츠키의 경우>는 넓고 복잡한 소설이 아니라 좁고 깊은 소설인 듯하다. 가족 개개인의 삶을 내적으로는 물론 외적으로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그중에는 파벨의 내면투시나 엘레나의 꿈 속 세상 같은 이상적인 세계관도 보인다. 이들은 소비에트 시대를 벗어나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영유하는 자유로운 가족으로 탈바꿈해나간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지켜가야 할 가치는 여전히 죽지 않았음을 역설한다. 억압과 불통으로 인해 자유와 도덕이 부재하는 사회에서 가족이 가져야 할 의미에 대해 이토록 열정적으로 그려내는 작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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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이야기 성서 - 가장 오래된 사랑의 기록
오정희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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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평생에 걸쳐 성경읽기와 베껴쓰기를 하기로 했다는데 나는 간혹 그녀의 소설을 필사하려 끙끙대다 말았다. 대학 전까진 펜을 들고 뭘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 편에 속했지만 이제 하루하루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메모하기도 벅차다. 나는 별로 꼼꼼하거나 치열한 편도 아니어서 게다가 심한 다혈질이고, 이러니까 성격파탄자 같다.(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지금도 필사를 생각하며 책상 앞으로 불러오는 책은 <무진기행>과 <중국인 거리> 아니면 <유년의 뜰> 같은 작품. 습관이 되어버린 당연함들. 화려한 낮과 외로운 밤이 번갈아 계속되던 날들, 오정희의 <완구점 여인>과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이 심장을 훑고 지나던 그 순간을 여전히 기억한다. 소설가의 꿈을 되려 앗아가던, 내 안의 찌꺼기 한 톨을 마저 데려가던 어떤 상징들. 그녀들이 나의 뿌리였다. 바로 그때 사주에도 없는 소설가의 꿈을 버렸다. 그런 꿈을 꾼 적이 있던가. 오해마시라, 재능없음을 확신해서가 아니라, 혼자 싸우는 치열한 고독의 그림자를 내 인생에서 몰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공동체 작업에 더 매력을 느껴서 한때 PD나 극작가의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창작희곡을 척척 써내고 제 이름으로 연극을 올리는 동기를 간혹 부러워했다. 거기까지였다. 뛰쳐나가고 싶었다. 수사지휘권을 휘두르는 뒷전의 검사보다 일선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달려드는 경찰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는 어느 고시합격자의 경찰 지원 인터뷰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정적인 것들을 깨부수고 싶었다.

 

소설가가 되지 못하는 것보다 그늘진 生과 외로운 삶이 더 두렵다. 詩를 읽을 때면 느껴지는 밑바닥을 헤매는 감성과 꼿꼿한 이성이 맞닿는 지점이 아프다. 다행히도 여지껏 소설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순간이 거의 없었다. 남의 좋은 문장을, 소설을, 궁극적으로는 글을 조우할 때마다 불행히도 내 것은 자꾸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글솜씨가 아니라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이 필요한 게 소설가라면 예선에서 탈락이었다. 바보들에게 둘러싸여 천재가 되기는 쉽지만, 천재들에게 둘러싸여 바보가 되기는 더 쉽다. 절망의 윗 단계 체념. 어떤 단어를 온갖 자존감으로 배우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순간. 꿈에서도 그런 순간이 다시 올까 두려워 나는 인터넷 서점 한 귀퉁이 프로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에 글을 쓰며 자위하는 것일까. 고개만 돌려도 나락으로 떨어질 이유가 충분한 이곳에서. 한 순간도 이곳이 위안이 된 적이 없었음을 내 마음은 알고 있다. 징글징글하게 의욕적이지 못하다. 글이 생계가 되지 못한 순간, 여기에 자존심을 실을 수는 없다. 남의 책에 대한 글을 하나 더 올릴 때마다 한 계단씩 추락한다. 가끔은 비참했다. 그때마다 읽지 않고 못 배기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글읽기도 중단했다.

 

고민은 없었다. 나는 글로 벌어먹고 살 일이 없을 것이고, 없게 할 것이므로. 쓰러져 잠들 때까지 드라마를 봤다. 쉽게 살고 있었다. 가을은 미드 새 시즌기란 걸 잊은 여름이 있었던가. 의학드라마 앞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플 지경이 되자, 질주가 중단됐고 비로소 정신이 들었고 책을 몇 권 주문했다. 내 손에 도착했을 때, 당장 성경책을 가져와 비슷한 장을 폈다.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를 읽을 때, 사무엘하 13장을 함께 읽었다. 공교롭게도 그즈음 읽던 책들은 대부분 성경구절을 안고 있었다. 나는 쉽게 사는 법과 어렵게 사는 법을 너무나 잘 알았다. 성경책은 미니사이즈였고 속엣 것은 더 작았다. 깨알 같은 글씨 속에는 큰 울림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문학보다 더 문학적이라는 구약은 길을 잃을 때마다 샘물 같았다. 거기서 이야기를 퍼올리거나 길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원전(성경도 어차피 누군가의 번역)과 해석서(이 책)를 비교하며 읽는 작업은 시간 뿐 아니라 능력 면에서도 어려운 일이지만, 먼 이야기는 잊었던 시공간에 다시 불을 지핀다. 마침내 2000년도 훨씬 전의 성스럽고 다채로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간다. 살라딘과 십자군의 그 이스라엘은 어찌나 다채롭고 버라이어티한지.

 

1.

하느님의 목소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충성이 대견한 아브라함의 일가만을 도피시킨 후 불태워지는 소돔은 언제봐도 카타르시스. 소돔이 실제로도 가능하다면 좋을 것이다. 잡다한 모든 것을 청소기 돌리듯 쓸어버리고, 구겨진 내장을 탈탈 털어 따사로운 햇볕에 말려 심장 옆으로 재배열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이 세상에 남을 자는 누구일까. 세상이 창조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넌더리가 난다. 나는 본능적으로 진화론자는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앞선다면 신을 믿지 말아야 할텐데, 나는 종교는 없지만 철저한 무신론자라고 칭하기 어려울 만큼 신이 이 세상을 내다보고 있을 거라 믿는 쪽이고, 신이 인간을 이렇게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도 여긴다. 그게 아니라면 이 세상은 너무나 살아내기가 힘들다. 창세기는 희망이자 구원이요, 탄생이자 소멸이다. 소설가 박민규는 자본주의가 뱉어놓은 모든 허상을 언제든 재반죽시킬 수 있는 발효덩어리 카스테라로 만들어 냉장고에 처박았고, 나는 그곳에 없으려 했다. 똑바로 볼 수도 없었고, 다시는 냉장고 문을 열려고도 하지 않았다. 버리는 일, 새로 만드는 일 모두 가진 것 이상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느님은 인간의 오만과 태만과 욕심과 불행을 거두기 위해 바벨탑을 저지하거나 노아의 방주를 닫거나 소돔을 몰락시켰다. 본인이 만든 어떤 것도 도자기 장인의 그것마냥 한 치의 어긋남을 보기 싫어하였다. 하지만 아벨을 죽인 카인을 용서하였다. 철저하지만 야박한 분은 아니었다. 형인 척 연기해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아낸 야곱은 열두 명의 아들 중 하나로 이집트의 총리 대신이 된 요셉으로 인해 태평성대를 누린다.

 

야곱과 요셉과 그 형제들 그리고 자손들까지 대대손손 자기네들의 문화를 번성시키며 살던 히브리인들은 400년이 흐르는 동안 대도시로 흩어져 이집트인들과 섞여 동화된다. 히브리인 요셉이 자기네 선조들을 기근에서 구해준 사실을 잊은 이집트인들은 자기네들의 땅과 일자리를 뺏는 히브리인들을 쫓아내기로 결심하고 자유와 독립을 빼앗은 다음 노예로 전락시킨다. 히브리인에 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버려졌다 구해진 한 아이는 힘이 세고 의협심 강한 파라오 딸의 양자가 되어 화려한 왕궁에서 자란다. 그의 이름은 모세. 이후 모세는 하느님의 충실한 신하가 되어 파라오에게 히브리인들에 대한 억압을 풀 것을 명하는 협상을 제안하지만 다섯 번의 재앙이 지나고 나일의 물이 홍해로 변할 때까지 이들의 갈등은 계속된다. 마침내 홍해를 건넌 히브리인들에게 황량한 땅과 굶주림은 오히려 비참하다. 하느님은 다시 먹을 것을 내릴 터이니 그날 먹을 양만 거두어들이라고 명한다. 먹을 것을 얻었으나 광야에서는 다른 유목민족의 침입을 피할 수가 없어, 치열한 전투가 계속된다. 야곱의 형 에사우의 아들인 엘리바즈가 얻은 아말렉의 후손으로 아말렉족이란 이름을 가진 자들이었다. 비로소 아말렉족을 무찌른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다.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석 달째 되는 날 시나이 광야에 이른 이들은 모세가 나팔로 하느님을 불러낼 때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하느님 나라의 헌법 십계명을 받는다. 이들은 신의 존재를 찾기 위해 수송아지로 모세의 형상을 만들지만 그는 기다렸다는 듯 박살내 이스라엘인들에게 마시게 한다. 이제 이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맹세한 하느님의 말씀을 받들어 기다린다.

 

"나는 야훼다. 야훼다. 자비와 은총의 신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베푸는 신, 거슬러 반항하고 실수하는 죄를 용서해주는 신이다. 그렇다고 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상이 거스르는 죄를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사대까지 벌한다." (p.219)

 

이후 40년 간 모세가 숨을 놓을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또한 이스라엘에서는 두 번 다시 모세와 같은 예언자, 주님과 친구처럼 마주 대하여 사귀는 사람이 태어나지 않았다.

 

2.

마태복음 1장은 다윗의 자손이자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시작한다. 나열하면 밤샌다. 성경책 펴서 소리내 읽은 적도 있는데 쓸데 없었다. 마지막만 빼놓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14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14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14대이다. (p.228)

 

다윗의 자손 요셉에게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를 받아들이란 천사의 말씀이 내려와 그렇게 한다. 그때 동방에서 온 세 사람의 박사가 헤로데 왕을 찾아와 그 사실을 알렸더니, 왕이 이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없애라 한다. 요셉은 다시 꿈을 찾아온 주님의 천사의 말대로 아기와 아내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한다. 헤로데가 죽은 후 요셉의 가족은 이스라엘로 돌아와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에 자리 잡고 살았다. 현재 중동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팔레스티나'는 성서 속 위대한 사건들이 일어난 땅이다. 지리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통로인 탓에 오랜 고난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예수는 기원 전 37년부터 팔레스티나 전체를 통치하던 헤로데 왕의 집권 말년, 아우구스토(카이사르)가 로마의 황제였을 때 탄생했다. 아우구스토가 죽고 아들 티베리오가 즉위한 후 서기 27~28년경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특사가 되어 나타난다.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부탁하고 그는 그렇게 한다.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다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며 자기를 따르라 하고, 시몬에게 아람어로 '게파'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그것은 바위라는 뜻이고, 바위는 그리스어로 '페트로스'이다. 시몬은 그렇게 게파, 페트로스를 거쳐 '베드로'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두 형제, 야고보와 요한을 불러 자기를 따르라 했고, 이 제자들은 훗날 항상 예수님과 함께 살고 전도 활동에 참여하며 마침내 십자가를 지게 된다. 예수님의 활약상은 가르침, 선포, 치유였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즉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그대로 갚아주라는 법은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 대왕이 편찬한 법전의 기본법으로서 '동태복수법' 혹은 '대당명제'라 칭하기도 한다. 구약성경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는 유다교의 율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쟁과 보복이 아닌 용서와 완전한 사랑을 최고의 선으로 두셨다. (p.256)

 

1) 화해하여라.

2) 극기하여라.

3)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4) 정직하여라.

5) 폭력을 포기하여라.

6)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크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은 험하여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생명의 길이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즉 의로움을 이룩하는 것이다.) (p.270)

 

으아, 내가 사랑하는 지드의 <좁은 문>에 나오는 구절이잖아.

 

마태오복음서의 산상설교는 반석 위에 집 짓는 사람과 모래 위에 집 짓는 사람들의 비유로 끝맺는다. 이어지는 마태복음은 정말로 지루하지만 예수님 나라의 윤리와 생활규범이자 율법이니, 포도나무를 심어 포도주를 짜내는 기분으로 끝까지 읽는다. 세상에, 진짜 지루하다. 아홉 살, 열다섯 살 이후 교회 가본 적도 없지만 그것조차도 신앙이란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냥 친구/오빠(실제로 목사님 아들이었던 아홉살 때의 옆집오빠는 내 첫사랑이었다) 따라가 재미있게 노는 걸로 알았던 시절의 설교시간에는 이런 얘기들을 들었을 터, 옳은 얘기, 듣기 좋은 얘기도 반복해 들으면 지겹듯이 딱 그런 기분.

 

구약시대부터 단식은 속죄와 회개의 뜻이었다. 예수님은 이를 마땅치 않게 보았고, 온갖 질병과 고통과 절망에 빠져 모여드는 사람들을 가엾게 여겨 열두 제자를 모아 능력을 주셨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파견하였다.

 

심판자 메시아, 구세주 메시아, 613가지나 되는 유대교의 율법계율에 짓눌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것을 황금률과 사랑의 계명으로 단순화시킴으로서 자신의 짐과 명에는 가볍다고 하였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예수님에게 놀란 제자들이 묻자,

 

"너희는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였느냐?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뱃속을 거쳐 배설하게끔 되어 있지 않느냐.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즉,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살인,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 증언, 모독과 같은 악한 생각들로,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고 악하게 만들지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다." (p.330)

 

라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스승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란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대답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한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행복하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p.336)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 할 것이다'의 상황에 맞닥뜨린 자신의 배반에 베드로는 슬퍼한다. 한갓 죄인으로 묶여 뭇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받으며 끌려가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은 후회와 비탄과 두려움, 죄책감과 슬픔으로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받은 은돈을 성전 안에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어 죽었다. 그 돈으로 산 옹기장이의 밭은 오늘날까지 '피밭(하겔다하마)'이라 불린다. 예수님에게 씌인 죄는 신성모독죄였다. 빌라도는 유다인들의 한목소리에 바라빠를 풀어주고 예수님에게 채찍질을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골고타'로 데리고 갔다. 그렇게 예수는 온갖 조롱과 멸시 속에 '유다인들의 왕 예수'라는 죄명이 붙여진 십자가에 못박혔다. 무덤 안의 예수님의 시신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부활을 일러준다. 사흘 만에 무덤에서 깨어난 예수님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성서를 요약하면 이런 글이 된다. [1]은 구약이고, [2]는 신약이다. 첫부분 외에는 내 말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 별로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고, 특히 복음은 정말 종교인 아닌 내게는 쥐약이기도 한데, 착한 사람이 되기는 별로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예루살렘. 지금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 알아볼 생각을 하기에도 지쳐있지만, 어제의 뉴스 속 가자지구는 정말로 단테의 지옥과 다름없었다. 단테를 제대로 읽은 건 아니지만, 우리는 왜 평범하게 학교 다니면서 제대로 된 집에 살면 안되냐는 여자아이의 말이 가슴에 박혀서일까, 어제 밤새도록 폭격맞고 있는 건물에서 옆 건물로 뛰어다니며 동생 구하겠다고 전전긍긍했더니, 하루가 다 피곤하다. 적어도 한 달, 길면 두 달에 걸친 이야기 성서 읽기는 여기서 막을 내린다. 다시 읽으라면 차라리 예루살렘 여행을 가는 편을 택하겠다. 테러와 폭격은 이후에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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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0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2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1 0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1 0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2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2-11-20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정희 작가님께서 평생을 걸쳐 성경읽기와 필사를 하셨군요. 몰랐었는데, 알고나니 오정희 작가님이 더욱 좋아져요. 이 글 정말정말 좋아요. 정말. 지금 영화 보는 중에 잠깐 들른 거라 영화 다 끝나면 더 자세히 읽고 더 자세히 평 남겨야 겠어요. 영화 끝나자마자 북어처럼 퀭하게 침대로 직행할 지는 미지수이지만요. 나는, 드림걸즈 봅니다~

아이리시스 2012-11-22 19:34   좋아요 0 | URL
드림걸즈는 명작이죠! 좋아하는 영화예요. 소이진님은 벌써 오정희 작가님도 좋아하고 김영애 배우님도 좋아하고 이런 이런 조숙한 문학소년이 내 곁에 있다니!!!

얼른 와요, 리쓰은~~~~~~~~~~~~~ 아엠얼론애러크롯로드~~~~~~~~~~~~~~~ 불러줘요!!!

2012-11-21 0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2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11-21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차리고 읽어보려다가 아무래도 상태가 좋을 때 읽어봐야 할 글인듯 해서 인사만 전하고 가요. 잘 타이밍을 놓쳐서 이러고 있는데, 이제 자기는 해야겠죠?

맥거핀 2012-11-21 15:55   좋아요 0 | URL
정신이 그다지 맑지는 않았지만, 읽었어요. 구약과 신약을 이렇게 간단하게 줄이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죠. 저는 성경을 볼 때마다(뭐 거의 보지 않지만), 어떤 질문들이 떠올라서 읽기가 힘들어요.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 그게 무슨 의미일까를 되묻고는 하지요. 성경을 죽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보면 여러가지로 대단하다 싶어요(빈정대는 게 아니라).

그래도 글쓰기를 멈추지 마세요.^^

아이리시스 2012-11-22 19:46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은 잘 타이밍을 놓치고 저 시간에 주무심 대체로 몇 시까지 주무십니까?(궁금)

쓴 저보다 남이 쓴 글을, 이렇게 긴 글을 읽는 분이 더 대단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시간도 좀 남고 여유도 좀 있고 저든 책이든 이야기에든 관심이 있어야 읽힐 거라고 생각을 해보니까요.. 구약까지만 쓰고 올리려고 했는데 뒷부분도 써야겠다는 이상한 오기로 썼더니 이렇게 되었고 요즘은 다시 핵심리뷰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게 될까요? 이 글들은 타인보다는 나를 먼저 만족시켜야 하는데 저는 책을 통해(뒤에 숨어) 저를 쓰고 있어서, 제게 무슨 핵심이 있을까 싶어요.

이 글들이 훗날 제 영감의 원천이 되어줄 거예요! (작가로서가 아니라도)

루쉰P 2012-11-21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아이리시스님 제대로 된 성경 읽으시는데요. 후후후 어려워요. 어려워. 저 같은 무신론자에게는 ㅋㅋ 근데 전 아인슈타인의 말은 참 좋아해요. 신은 믿지 않으나 인간이 모르는 우주의 법칙은 있다.고 물론 여기서 신은 인격신이겠죠. ^^ 저도 신은 믿지 않으나 뭐랄까 우연도 그렇고 뭔가 내가 모르는 법칙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전 그래서 항상 중력을 거스른다는 마음으로 역주행을 노리고 있죠. ㅋㅋ
근데요 아이리시스님 글을 이렇게 잘 쓰시고 하시는데 소설가에 대한 꿈을 멈추셨다는 거, 물론 거기에 본인의 이유가 있으시겠지만 지금처럼 쓰시면서 나아가시면 좋지 않을까요? 본격적으로 쓰겠다고 하니까, 더 못 쓰는 것이 소설인 것 같아요. 힘 내세요. 아이리시스님.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구요!!

아이리시스 2012-11-22 19:50   좋아요 0 | URL
루쉰님 이 글에 오시니까 정말로 교주님 같아요. 그나저나 아인슈타인의 말은 제 맘과 같아요. 저는 신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당신을 믿습니다..이런 건 아니지만 이렇게 생겨먹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삭막해서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정도는 투정하며 살아야겠어요. 중력을 거스른다는 마음이 멋져요. 제가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뭐든 되려고 애써볼게요!!!

2012-11-21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2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댈러웨이 2012-11-2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정희 작가라는 분을 소이진님 방에서 처음 접했었는데, <중국인 거리> 저도 읽어볼 거에요. 저도 필사할 거에요. (응?) 성서 얘기는 머리 아파서 안 읽었어요. 우리 식구들이 들려주는 얘기만으로도 충분해요 그건. --; 아, 1번 시작되기 전의 글은 잘 읽었어요, 아이님.

아이리시스 2012-11-22 20:01   좋아요 0 | URL
1번까지는 최선을 다해 썼고 2번은 이해를 잘 못했어요. 쓰긴 했는데 읽힐 거란 생각도 못했어요. 로마제국으로 다시 되돌아가 독서를 해야겠다 그 정도의 생각만 하고 덮었는데 진짜 두 달이나 읽었네요(씨익). 저는 주위에 독실한 신자분이 없는데 윗집 아주머니는 여호와의 증인이세요!! 필사는 원래 문체를 닮고 싶어서 하는 거라 그랬는데요, 저는 문체를 남의 문체로 바꿀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학교다닐 때 문체를 오롯이 공부하고 싶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쓰라고 배웠는데요. 일단은 오정희 작가님이 단편치고는 현대적인 문체에다 이상가는 여류작가가 드물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누가 추천해줬어요.

댈러웨이님은 몇 시에 주무세요? (시차를 깨닫고나서 생긴 궁금증;;)

댈러웨이 2012-11-23 10:36   좋아요 0 | URL
열두 시, 한 시, 두 시, 세 시. 대중 없어요. 컨디션이나 다음 날 상황에 따라. 성향은 새벽형을 지향하는 야행성. ^^

아이리시스 2012-11-23 19:5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구나. 그러면 얼른 와요!! 와요!!

Shining 2012-11-2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머. 제가 매번 놀랍다고만 하고 좋다고는 안 했죠, 아이님(그렇다고 여지껏 다른 글이 좋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아이님의 글은 대단하군_-b 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는 말입니다!). 이 글 정말 좋네요.

사실 댈러웨이님과 비슷합니다만ㅎㅎ 성서 얘기는 속독한 편이고 1번, 시작되기 전 프롤로그 글이 참 좋아요. 적확하면서도 영민한 느낌. 좋습니다그려d-_-b (원숭이 아니고! 투 썸즈 업, 입니다ㅋ)

2012-11-22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11-22 20:09   좋아요 0 | URL
저는 계속 좋다고 말한 게 진짜 좋아서 한 건데 듣는 샤이닝님이 이런 기분인지 몰랐어요(으쓱). 요즘은 정말 좋은 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리뷰로서, 문학으로서, 인문서로서, 칼럼으로서. 한동안 숲을 보는 리뷰를 쓰고 싶었던 것 같은데 다시 보니까 '나 이거 다 안다' 느낌이라서 재수없어요(응?). 모든 것을 시도해보다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한 번 보고 싶은데 그걸 다 참아주려면 이웃분들이 고생스럽겠다..그런 생각을 했어요(요즘 심심해서;;).

Have a good time!!!

댈러웨이 2012-11-23 10:33   좋아요 0 | URL
쫌 고생스럽긴 해요. --; 뭐 그치만 예쁘게 봐주고 있는 거에요. =333==3333333333

아이리시스 2012-11-23 19:59   좋아요 0 | URL
원래 한 번씩 자발적 주관평가를 해줘야 하거든요. 지금은 평가중-_-;
예쁘게 봐주세요(꾸벅).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누군가 그랬다.

간절함은 인연을 만들고, 기억만이 그 순간을 이루게 한다고."

-드라마, <신의>

 

 

올해는 정말 많은 시간여행자를 만났다. 사실 시간여행자는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주인공이다. 영화 [나비효과]는 시간여행 자체가 아니라 사소한 행동과 말, 상황 하나를 원인으로 해서 결과가 뒤바뀐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므로 제외. 끝난 후 시간이 꽤 흐른 몇몇 드라마들도 제외. 할리우드 영화가 가장 많이 써먹은 시공간적 소재들 전부 제외. 더불어 어릴 적 모험소재로 가장 좋아한 만화 돈데기리의 [시간탐험대]도 제외. 그러면 뭐가 남냐면, 음, 일단 점과 선에 대해 말해보자. 책제목 말하는 거 아니다. 그리고 평행이론에 대해서도. 과학이 아니다. 과학은 모른다. 잘난 척할 철학자의 견해에 대한 지식이 없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유지태와 김하늘이 나오던 영화 [동감]에서 시작됐는데, 그 영화를 떠올리면 그저 지금은 스타가 된 두 배우의 신인시절만 기억난다.

 

고1때 불어시간. 교과서에 실린 [그랑블루]라는 영화의 포스터에 대해 눈짓발짓 동원해 잡담하다 딱 걸려서 짝꿍은 교실 밖에 서있고, 나는 교실 뒤에 무릎꿇고 앉아야 했던 그때를 말해볼까. 나무로 된 바닥이 차고 딱딱하다며 뒤에 앉은 친구들이 저마다 교과서 한 권이나 책받침을 내밀던 사랑스러웠던 순간. 친구들아, 그때 정말로 사랑스러웠어, 소리라도 치고 싶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그 짝꿍과 나는 키가 비슷해 키순서대로 하면 언제나 짝이 되었는데(전혀 서로에게 호감가질 타입들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 걸 보면;; 걔는 새침한 모범생 타입이었고 나는ㅠㅠ), 그래서 억지로 우정과 신뢰를 같은 시공간에서 쌓아나갔다는 게 더 정확한데, 어쨌든 또 다른 어느 날에 우리는 연습장인가 노트에 동그라미를 크게 하나 그려놓고 공간의 1차원,2차원,3차원에 대해 논하는 중이었다. 공대 지원이 당연시되는 조숙한 이과반 여학생들의 드물게 쓸데있는 쉬는 시간의 심오한 대화였달까. 1학년 때는 문과/이과를 나누지 않았지만 친구와 나는 이과반을 지망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지구와 우주를 갈라놓고 인간은 동그라미 선 위에 살고 이것이 1차원,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면 2차원, 동그라미를 벗어나 살면 3차원 뭐 그렇게. 쉬는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하다가 까다로운 과목쌤 수업시간에 또 걸렸을 때 우린 벌서며 킥킥댔고 교무실까지 불려가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우린 어떤 프랑스 영화와 시공간의 과학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혼나야 하는 건가, 뭐 그런 대화를 하면서 다시 교실로 돌아와서도 대화를 이어갔던 웃긴 기억이 있다. 1999년의 일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시간여행자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 하루키. 그의 소설은 대부분 그렇지만 일단 이 긴 리뷰를 써갈겨댔던 <1Q84>는 어떤가. 난 언제나 하루키 소설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았지만 경이로울 만큼 매료되어서는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가지치기가 가능해 다채롭게 읽히고 또한 해석이 가능한 그의 소설리뷰를 쓸 때 주목한 부분 역시 여러 명으로 쪼개지는 '나'라는 존재와 시공간여행이었다. 두 개의 달이 가르는 세상. 나이와 시간이 인위적으로 가르는 나. 방금 전의 나와 잠시 후의 나. 10년 전의 나와 10년 후의 나를 상상하면 충분히 하루키 소설 속 인물이 되고도 남았다. 이 모든 시작이 반드시, if에서 비롯되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은수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 그러니까 대장을 구하기 위해 태양의 흑점이 폭발하는 때마다 제모습을 여는 하늘문을 오가며 외롭고 아프게 혼자만의 시간여행을 진행중일 것이다. 시간여행은, 영원히 함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면, 언제나 비극일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하늘 아래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이들은 결코 없지만. 내가 여기, 그가 거기 있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에 그런 것. 하나의 선에서 두 개의 점이 함께 평생토록 행복하기란 애초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처음 하늘문을 넘어 그를 구할 온갖 약과 도구를 챙겨 다시 하늘문을 넘었을 때 하늘문 너머 세상은 그와 함께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울고 웃었던 그 세상이 아니었다. 그를 만나기 100년 전의 세상이었다. 제기랄,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도 아니고-_-;;

 

그래서 그녀는 쓴다. 방금 살았던 그와의 추억 속에 있는 시간들 중에 겪었던 수많은 고비마다의 해결법을, 사실 해결이라기에는 가이드라인에도 못 미치는 메모이지만 혹시 몰라서, 그가 위험한 순간, 왕에게로 가야 하는 순간, 사랑한 순간, 아파한 순간, 헤어질 지도 모르는 순간들에 대해서. 그리고 여기저기 숨겨놓는다. 100년 후 고려 공민왕 시대. 세상을 손아귀에 넣고자 하는 기철은 이것들 중 몇 개를 손에 넣는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것이라 굳게 믿은 나머지 거의 유물 다루듯 그렇게. 거기에는 100년 후 나타날 은수가 쓰던 의료도구와 은수만이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적힌 수첩, 빼곡한 일기와 메모들. 앞으로 펼쳐질 미래들. 100년 후 맞닥뜨려 헤쳐나가야 할 시간들이 빽빽히 적혀있다. 그것들이 허기를 채울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갖고자 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는 고려의 현대인이었던 것이다. 가지고 더 가지고 손에 넣고 다시 버리고 그렇게 공허와 탐욕 사이를 한없이 방황하는 그런 현대인.

 

시간은 평행하다. 과거를 보내고 미래를 맞이하는 게 아니라, 100년 전의 나와 10년 전의 나와 1000년 후의 내가 모두 이 세상 아래 존재하는 거라고 시간여행자는 말한다. 각자의 내가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이걸 인정해야 당신과 내가 지금 이 순간 만난 일이 기적이 된다고. 은수에게 최영이 그랬던 것처럼. 그를 되살리기 위해 시간여행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은수의 운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이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른 세상에 떨어져 나의 그리움이 모자랐을까, 아니면 믿음이..라고 자책하던 은수는 언제까지나 그를 만나기 위해, 다시 사랑하기 위해 그에게로 가는 시간여행자를 자처할테니까. 그의 목숨이 곧 사랑이었음을 알고 있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사랑은 그것 뿐일테니까.

 

이것이 이 모든 시간여행자들의 사랑과 추억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이야기를 불러일으키는 이론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시간은 앞으로만 흐를 뿐 절대 뒤로는 흐르지 못한다. 하늘문이 열려야만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뿐. 100년 전 써둔 바위틈의 이끼낀 필름통 속 메모를 100년 후에 발견할 수는 있어도 시간을 거스르거나 빨리감지는 못하는 법. 그래서 시간여행을 잘못한 그녀를 그는 알아보지 못한다. 아직 그는 그녀를 만난 기억이 없으니까. 손택은 저서 [문학은 자유다]에서 "시간은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지 말라고 존재하는 것이고 공간은 모든 일이 나한테 일어나지 말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이 시공간을 시간여행자들은 초월하는 것이다. 두 개 중 어느 하나만 벗어나도 나와 너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데 두 개 모두 합치하거나 하나도 합치하지 못하는 건 그야말로 기적이다. 읽지 않은 책임에도 기억하고 있었다면 확 빨려든 문장이었단 얘긴데, 우연찮게 얼마 전 신형철의 칼럼에서도 손택의 이 문장을 만나고는 얼마나 반갑던지. 손택은 진리다. 어제는 손택의 비평집을 후보군의 책들을 끌어내리며 눈물을 머금고 질렀다. 다른 텍스트에 대해 얘기해보자.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보다 이곳과 저곳이라는 공간으로 더 먹혀드는 곳이 있다. 드라마 [울랄라 부부]에 의하면 전생의 원수가 이승에서 부부로 만나는 거란다. 개는 인간들로부터 얼마나 상처를 받는지, 이승의 인간이 죄를 많이 지으면 다음 생에 개로 태어난다는 말까지 있다. 게다가 나는 이 말이 사실이라면 좋겠다. 다음은, 바로 그 사랑이 이뤄지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이승과 저승을 말하는 드라마 [아랑사또전] 얘기다. 아랑은 무슨 연유인지 모른 채 저승사자를 따라 망각의 강을 건너 저승의 숲으로 들어간 와중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도망치지만 이승에서 대체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누구였는지, 왜 죽었는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랑은 자신에 대해 찾기 위해 사또 은오를 찾아갔다 사랑에 빠진다. 억울하게 죽은 아랑은 맘씨 좋은 옥황상제에게 보름달 세 개의 시간을 받고 죽음의 비밀을 찾아나선다. 둘 다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면서 사람으로 이승을 떠돌다 만나 사랑에 빠진 이들을 가로막는 건 한 공간에 있을 수 없고 한 시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은오는 아랑을 살리기 위해 저승길로 가고 아랑은 한 번 가본 저승길을 떠올리며 가는 길에 만나는 망각의 물을 절대 떠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옥황상제의 배려로 환생한 그들은 꼬마로 만난다. 이승과 저승 두 개만 있는 게 아니다. 이승에 살더라도 이 시대와 저 시대가 또 두 사람을 가를 수 있으니까. 그럼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는 또 어떤가.

 

이 소설은 수없이 많은 갈래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일단 30년의 세월에 초점을 맞춰보자. 다분히 의도로 보이는 장면이고 그래서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갈등이 첨예하지 못하다. 더 깊고 뭉클한 데가 많다. 여백의 美 보다는 보여주기가 우선하는 영화로는 적합치 않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문학으로만 존재해야 할 이 소설은 바로 그 문학적인 면이 해석과 상상과 비극을 동시에 불러온다. 과거의 일을 원인으로, 미래의 일을 결과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 모든 이들은 자기가 처한 혹은 만들어낸 현실의 기준으로 사건을 천명(闡明)하는 것. 해석. 시공간의 괴리는 그것을 불가능케 하고, 소설의 바깥에서 우리가 보는 진실 역시, 마지막 남은 이의 목소리 뿐이다. 마지막 남은 이가 바라보는 시점에서의 보이는 진실이다. 시공간의 왜곡이란, 진실을 얼만큼 빗겨갈 수 있나.

 

천산수도원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발자국. 30년의 시차를 두고 각각 펼쳐지는 두 개의 진실들. 마주하는 명제는 이것. 시공간의 일방향성.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시공간은 변하는 것. 나 없이 만들어지는 영화같은 것. 과거는 미래를 바꾸지만 미래는 과거를 바꿀 수 없다. 닮았을지언정 둘은 결코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합할 수 없으므로. 천산수도원 묘지 안의 벽서. 성경구절들. 맞춰지는 퍼즐은 누군가의 상상 속 소설이 아니라 진실이 확실한가.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 이제는 확인해줄 수 없는, 누구도 전체조각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각각의 입장에서 서술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 그게 이 소설의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인현왕후의 남자] 속 남자 붕도는 저곳에서는 쿠데타에 얽매인, 왕비를 지켜야 하는 비운의 무사로 적에게 죽임 당할 위기에 있지만, 이곳에서도 인현왕후의 남자로밖에는 살지 못한다. 조선 숙종 시대의 인현왕후 시해시도의 밤과 재기를 앞둔 발랄한 스캔들메이커 여배우 희진을 이어주는 건, 조선시대 붕도를 마음에 품은 어느 유곽의 기생이 준 부적 한 장이다. 이 드라마는 로맨스면에서만 탁월하다. 그리고 생생히 재생되는 조선시대상. 현대는 억지스럽지만 그 긴박함은 좋았다. 그리고 애정씬. 둘은 미치게 잘 어울렸다. 사랑을 하고 싶어질 정도로 잘 어울렸다. 함께 있지 못하면 어떻게 서로가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서로가 서로를 껴안을 수 있을까. 둘은 늘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경복궁에서도 제주 공중전화박스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기다린다. 시공간을 다루는 어느 드라마도 이토록 빈번히 이동을 시도하지는 않았는데 이 드라마만은 유일하게 이곳에서 필요할 때마다 이곳에 나타나고, 저곳에서 필요할 때마다 저곳에 나타나는 인현왕후의 남자를 만들어냈다. 그는 동해번쩍, 서해번쩍 홍길동 아니 이 세상에 번쩍, 저 세상에 번쩍 하는 인현왕후의 호위무사 김붕도였다. 둘이 처음 만난 경복궁. 지금 이 순간, 인현왕후와 그녀의 잊혀진 무사에 대한 숨겨진 역사다큐의 내레이션을 맡은 희진. 희진은 붕도를 느낀다. 둘은 그렇게 400년의 역사를 뛰어넘어 한곳에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그렇게 시공간을 뛰어넘어 진실을 부여잡은 채, 자신의 목숨보다 서로를 더 사랑하고 있었다.

 

<모든 인간, 모든 식물, 모든 동물이 모두 같은 방법으로 성장하고 서식하며 서로 파괴하는 과정에서, 절대 실질적인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 속에서 하나의 다양성을 맞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모두 무심하게 서로 밀치고 파괴하며 번식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형태를 가지고 잠시 나타났다가는 얼마 후 또 다른 형태를 취하며, 그들을 움직이기를 원하거나 혹은 그렇게 할 능력이 있는 존재의 뜻에 따라, 단 하루 사이에도 수천 번씩 그 형태를 바꿀 수도 있으되, 자연의 어느 한 법칙도 그 일로 인해 단 한순간이나마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사드, <미덕의 불운> 중에서]

 

사드의 소설 속 맥락은 그런 게 아니지만, 딱 이 문장만 놓고 본다면, 그래, 괜찮다. 우리가 어떤 존재라도, 어떤 형태라도, 어떤 변화를 맞이하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으니. 시간여행자를 이해하려면 남이 볼 수 없는 것까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내 생각은, 사드의 문장을 끌어오기 전 이 페이퍼를 딱 끝냈으면 좋을 뻔했다. 말이 길어지면 늘 후회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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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11-17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님, 저는 시간 여행 보다는 평행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더 좋아요. 어쨌든, 이건 할 소리가 아니고, 저는 예전에 시간여행자의 아내 였던가 하는 책에 구미가 당겨 언젠간 읽겠다 다짐을 했었지만 입때껏 읽지 않고 있어요. 시간 여행은 그 이름 만큼 흥미롭고 다채로운 주제이지만 또 그만큼 뻔하고 지루한 소재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나저나 아이님 아랑사또전 정말 좋아하시나봅니다ㅎㅎ 또 오랜만이에요!

아이리시스 2012-11-17 15:57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안녕. 우왕 반가운 마나짱!!! 안녕안녕.

저도요, 그때 그 책 구판으로 우리집에 있다니까요. 먼지 쌓여서. 별로 재미가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읽다 말았어--; 아랑사또전(이거 말하기 싫지만) 진짜 재미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근데 나는 스무번을 봤어요. 스무시간을 넘도록 봤어..( '')

오랜만이에요! 주말에 뭐해요?

댈러웨이 2012-11-17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새로운 거 하나 배웠어요. 시간여행이라는 용어가 있는 거네요. 상대성 이론이랑 막 연결되네요? (지금 공부 못한 거 티 내는 거죠? --;)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저는 올해 그런 걸 다룬 책이나 영화를 뭘 봤나 싶은데, 생각나는 게 마땅히 없네요.

이 다방면으로 커버한 페이퍼에 어떤 댓글을 달까 무지 고민하다가, 1. 손택 질렀군요? <타인의 고통>은 완독한 거에요? 2. <지상의 노래>는 이번 주문에서도 밀렸어요. 생각도 못하고 있었네요. ㅠ.ㅠ 3. 저 문단만 저렇게 떼어놓고 보니까 사드의 <미덕의 불운>이 정말 읽고 싶어지는 거에요. orz.

한 페이퍼당 한약 일주일치, 도합 한약 2주일치를 폭탄으로다가! 이 페이펀 참 재미나서 용서해주겠어요! 아이님, 안녕!

아이리시스 2012-11-17 21:51   좋아요 0 | URL
저도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시간여행자라고 했어요. 과학공부하기 싫어요. 재밌을 것 같은데 혼자하기는 싫어요. 멋지지 않아요? 시간여행해서 꼬마 댈러웨이님 만나러 가거나 20대 댈러웨이님 만나러 가고 싶어요. 사실은 저를 만나러 가고 싶어요. 못다한 사랑을 이루러..( '')

<타인의 고통> 다 못 읽었어요. 매번 펼쳐서 읽다가 자고 읽다가 자고 그래요. 어제는 [해석에 반대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고 잤어요. 논문공부하는 줄 알았;; <지상의 노래>는 재미있어요. 그러니까요. <미덕의 불운>의 가독성은 저한테 짱이었어요. 그리 길지도 않았지만 최근에 그렇게 잘 읽히는 책이 없었거든요.

사실은 이거는 <신의> 마지막회볼 때 썼던 거니까 오래 전에 쓴 건데, 지난 달에 쓴 거예요. 지금 끝나고 시작한 드라마가 2주나 방영했어요--; 게으름이 하늘에 닿으려 하고 있어요.

댈러웨이 2012-11-17 22:03   좋아요 0 | URL
저는 못 읽은 책들을 좀 읽으러..(쿨럭~) 그리고 저는 지금의 모습이 더 나아요! 근데 꼬마 때는 정말정말 구엽긴 했어요..(쿨럭~) 아 이 페이퍼는 이런 댓글 다는 페이퍼가 아닌거죠??? 저는 제 방인줄 알았다는. --;

아이리시스 2012-11-17 22:18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님, 거긴 지금 12시 17분이예요? 그러니까 일요일? 저는 지금까지 쭈욱 우리가 처음 알게된 때부터 방금까지 쭈욱 제가 더 빨리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저는 말을 안하고 있으면 꽤 똑똑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2-11-18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 님, 안녕? 여전히 잘 하고 계세요. 흐뭇...ㅋ

아이리시스 2012-11-19 02:07   좋아요 0 | URL
페크님, 우리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

맥거핀 2012-11-18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 솔직히 추천을 잘 안하는데 이글에는 추천을 눌렀습니다. 드라마나 소설, 영화 같은 수많은 이야기들은 결국 시간이나 공간을 늘이거나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뭐 꼭 시간여행이나 시간 거스르기 같은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예를 들어 어떤 영화에서 어떤 한 장면에서 며칠 후의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은 시간을 압축하는 것이고, 그 시간을 생략하겠다는 작가의 결단이기도 하고, 또 그 (압축된) 중간을 상상하라는 관객에게 보내는 권유이기도 하죠. (물론 공간에 대해서도 비슷한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구요.) 그런데 그것이 종종 색다른 패턴을 보여주는 경우들이 있고, 그런 영화들, 그런 이야기들에는 늘 매료되는 것 같아요. (오..진짜 손택의 저 말은 명문이군요.)

아..물론 이 글의 핵심은 나는 고딩 쉬는 시간에도 '차원'이라는 것에 대해서 논했던 여자야, 라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

아이리시스 2012-11-19 02:13   좋아요 0 | URL
우왕, 추천 잘 안하는 남자 맥거핀님께 낙점된 글입니다(으쌰으쌰).. 그런데 같은 이유로 저도 이 글이 맘에 들어요. 살짝 서정성도 있고 철학성도 있고. 그런데 텍스트를 드라마로 채워버린 건 어쩔 수 없는 제 드라마 편애 때문이기도 하고, 제 생각에는 맥거핀님이 이 주제로 글을 쓰면 참 재밌을 것 같아요. 좋은 영화들이 등장하는 멋진 글이 나올 것 같아요. 저는 이미 손택의 저 말을 외워버렸어요..

네, 이 글의 핵심은 고딩 쉬는 시간의 심오한 대화로 타임슬립한 저의 시간여행에 대한 얘기랍니다. 딴 얘기를 시작하면 오늘 안에 안 끝나고 또 오글거리니까..

굳나잇ㅡ 맥거핀님.

Shining 2012-11-1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드라마... 나는 왜 드라마를 못 보는가... 네, 저 그래서 아이님 드라마 얘기는 타임슬립(!)합니다. 고백할게요, 저는 드라마를 못 볼 뿐 아니라 드라마 관련 얘기도 못 읽더군요(흑).

지상의 노래, 에서 죽어가는 아내와의 이야기, 가 제일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신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아내의 말, 그런 아내를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의 말. 전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용서하거나 용납하는 데 결코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주말 내내 초바빴어요_- 오늘 새벽에 글 하나 올리고 지금 다시 보니까 오타와 비문이 장난 아닌... 부끄러워요_-

아이리시스 2012-11-19 15:54   좋아요 0 | URL
어.. 나는 아내와의 이야기 따위는 완전히 까먹어버렸는데요? 저는 교차편집만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성서구절.. 저 성경책 펼쳐서 사무엘하 13장 읽었어요. 요즘은 랭보의 시를 베껴쓰고 있어요!

같은 드라마(적 요소라고는 해도) 저는 시트콤을 못보거든요. 그냥 그렇게 안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왜 그런 지는 나름 분석이 가능하고 샤이닝님도 알 것 같은데 그거에 대해서는 패스. 저는 아마 잠을 줄여서라도 볼 것 같은 이런 집착--;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배우들의 필모그래피 확인차원이랄까. 얼마 전까지는 송중기의 사랑을 받는 문채원한테 빙의했다가.. 이제는.. [뮤직뱅크 in 칠레] 이런 거 보면서 흐뭇하다는;; (도대체 나의 취향은--;)

그러면 샤이닝님은 미드나 영드도 안봐요? 이건 좀 궁금하다.. 그건 뭐랄까, 좀 아쉬운데요?

Shining 2012-11-20 11:55   좋아요 0 | URL
일드는 본 적 없지만 미드나 영드는 꽤 좋아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만 많이 본 건 아니고 보다가 중간쯤 버려둔(로스트, 나 그레이 아나토미, 위기의 주부들 등등) 것들이 많구요_-; CSI는 광팬이고 멘탈리스트나 캐슬, 화이트 칼라 같은 거 잘 보는 편인데 대신 한 시즌을 이틀에 다 보는ㅋㅋㅋㅋ

그러니까 저는 연재를 못 기다리나봐요! 연재소설도 연재만화도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보는 걸 보면 그것도 하나의 요인인 것 같아요. 드라마는 최소 16시간 적어도 20시간의 연재를 기다려야하고 클리셰를 견뎌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요_- 한 번 보고 오 재밌네, 해도 잊어버리는; 그 다음날 챙겨보는 건 못해요. 아니다, 사실 TV 자체를 잘 안 봐요. 뉴스, 스포츠채널, OCN이나 채널 CGV, 주말 예능(무한도전 빼곤 그것도 챙겨보진 않고;) 이 정도만 봐요ㅎㅎ

근데 뭐지... 쓰다 보니 저의 TV시청 패턴을 다 쓰고 있어ㅋㅋ

아이리시스 2012-11-20 17:04   좋아요 0 | URL
응, 샤이닝님 얘기를 똑같이 하는 동생이 우리집에도 있거든요. 미드나 영드는 원래 한 시즌을 이틀에 다 끝내는 게 정석입니다(!) 요즘 물이 올라서 우리나라 것도 그렇게 보고 있어요. 근데 역시 드라마는 일상 속으로 침투시켜서 하루에 한 회씩 보는 연재물 같은 느낌이 더 좋은 것 같다고 송중기를 주말 내도록 보면서 생각했어요ㅋㅋㅋ

게다가 드라마 보다는 늘 제 '드라마에 관한 글'이 더 재미있다고 확신합니다!!!(응?)
^_______________^

2012-11-19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0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너무 길어서 중간쯤의 감흥과 댓글용 코멘트를 다 잊어버렸어요. 핸폰으로 읽고 쓰는 중이라 정교하지 못해요~. 아 컴터하기 넘 힘들어요. 집에선 인터넷이 안 되고 직장에선 빨리 퇴근하고 싶고.. 집에 가면 전 석기시대여요. 요즘은 티비도 안 보니까 집에 가면 목욕하고 음악듣고 책읽으며 동굴 파다가 잔다지요~.ㅎㅎ 아이님 이 글 중간에 좋은 게 많았어요. 1q84부분, 고딩회상부분, 손택의 명문장.. 다른 부분의 글이 나쁘다는 건 아니고 특히 더 좋았더라는.. 신의, 마지막 세 개만 봤는데 그런 내용이었군요~. 댓글 엉망이죠? 이해하세요.. 투썸에서 야밤에 마땅히 멀리 해야 할 케잌과 커피를 먹고 마시며 검지만으로 이 글 쓰고 있어요~~*

아이리시스 2012-11-20 17:18   좋아요 0 | URL
아니 핸폰으로 이렇게 긴 댓글도 쓰다니, 섬님 짱!! 집에서는 왜 인터넷이 안되는 거여요? 저희집에는 제가 와이파이도 손수 넣어놓고 원래 데스크탑에 들어오는 과속 케이블로부터 연결된 공유기도 있고, 다른집 인터넷도 엄청 잡히던데 그래서 하나 드리고 싶은 심정이여요. 그런데 케잌과 커피와 함께하는 야밤의 알라딘도 재미가 있으니까요. 시골가면 그렇게 되잖아요. 예전에는 산으로 뛰어다니고 나가서 숨바꼭질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커서 각자 노트북/스맛폰 이런 거 다들 들고 시골로 모여드니까 여튼 풍경이 확 변했어요. 동굴 파는 느낌 그것도 굉장히 괜찮은데~ㅎㅎ

제 글이 좋은 건 저도 알아요. 제가 요즘 좀 미친 것 같으니까요, 제 말은 걸러서 들으셔야 돼요!! 꼭이요!!!

루쉰P 2012-11-1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시간여행자 한 명 돌아왔어요 제 서재 가 보세요 ^^

아이리시스 2012-11-20 17:19   좋아요 0 | URL
루쉰님 진짜 시간여행자 같아요. 다른 세계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낯설고 반갑고!!
 

 

 

 

활력과 탐구가 동시에 필요해서 사드의 소설을 몇 권 사들였다. 사상가인지 문학가인지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일명 사드 후작(1740-1814)은 스물 두 살즈음 영화로 처음 만났다. 누구와 함께 볼 영화는 아니고 스무살이 되기도 전에 나온 영화라 혼자 보게 됐던 것 같다. 이제 그를 단지 외설적이고 도착적인 성적묘사로 이루어진 형편없는 작품 몇을 발표한 퇴폐적이고 난잡한 성생활을 한 프랑스 어느 작가라고만 기억하기엔 세월이 많이 흘렀고, 그에 대한 평가나 판단 또한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왜 그런 작품들을 썼는지, 어째서 그토록 방탕한 성생활에 몰두했는지 같은 것들을 아는 게 어떤 도움이 될 지는 모르지만 욕 듣고 씹히는 와중에도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읽히고 회자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리라.

 

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재밌다기 보다는 호기심에 가득차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읽는다. '초롱초롱한'은 역시 내 바람일 뿐이겠지만. 하지만 처음 사드를 만났을 때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출생으로 어떤 시대와 환경에서 자랐는지 관심없었다. 음란하고 외설적인 글 때문에 쓰지 못한 채 감옥에 갇히자, 배설물로 벽에 글을 휘갈기던 광적존재로 기억에 남아있는데, 그 영화는 사드의 여느 작품이 아닌 사드의 일대기를 다룬 [퀼스]였다. "쾌락은 내 인생의 모든 것, 생명과도 바꿀 수 없다"던 사드의 목소리가 두 시간 러닝타임 내내 머릿속에서 뱅뱅 울리는 그런 충격의 도가니를 체험했다. 외설적이거나 사디즘적인 면들이 거부스러웠던 게 아니라, 이토록 쾌락에만 집중하여 온갖 스캔들을 뿌리고 다니다 장모에 의해 감옥에 갇히고, 그녀의 호소로 왕에게 사면장 없는 구금명령을 받았던 그가 문학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다. 사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음란하고 외설적인 작품을 썼다는 것 뿐 아니라 실제 삶이 방탕과 쾌락으로 점철되어 감옥과 정신병원을 오가며 일생을 보냈다는 사실이 논하기 좋기 때문이다. 이후 우연한 호기심으로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을 보는데 구역질이 올라왔다. 한편 처절하면서도 잔혹한 성적묘사로 일관하는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올 여름 동서문화사에서 <살로 소돔의 120일>을 출간했는데 적나라한 내용 때문에 문화부에서 배포와 수거를 결정중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설마 이런 시대, 이런 세상에서 책 한 권을 수거한다고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파졸리니의 영화는 차라리 고어에 가깝다. 좀비물,하드코어 심지어 뱀파이어물에도 그다지 흥미는 없는데, 이성의 분뇨에 흥분하고 심취하여 먹고 먹이기까지 하는 장면을 흥미와 경악의 중간 즈음한 비명과 탄식 없이 지나치기는 힘들다. 사드는 귀족의 아들이었다. 인간답지 않은 성적취향을 논할 때 처제와의 불륜을 예로 드미는 건 이제 그리 수위높은 예는 아닌 듯하다. 문정희 시인이 골반 위에 부서지는 집으로 그 인생을 표현한 프리다 칼로의 사랑 디에고 리베라 또한 처제 크리스티나 혹은 아내의 친구와의 관계가 탄로나면서 그녀와 이혼한다. 아내가 해주지 못하는 욕구충족을 했다고 말하면 할말 없지만 이후 프리다 칼로와 재혼을 하면서 평생 그녀에게 절망과 고통, 상처를 안겨준다.

 

칸트와 사드와 라캉을 한 번에 철학과 정신분석학적으로 비교하면 재미나겠지만 일단 사드만. 그는 프로방스 지방의 명문 출신으로 통칭 사드 후작으로 불리고, 사디즘이란 명칭을 낳았다. 가학적 변태성욕의 대명사로 자신의 가문마저 사디즘의 대명사로 만들어버렸다. 부친이 죽으며 물려받은 후작 지위에도 불구, 가산을 탕진할 정도로 마르세유의 홍등가에서 매춘부들과 쾌락을 즐겼다. 성 도착증과 매춘, 음란물 유포죄 등 줄줄이 열거가능한 죗값을 치르느라 인생의 3분의 1을 감금당한 채 살던 그는 정신병원 또한 번갈아 들락거렸다.

 

 

 

 

 

 

 

 

 

 

 

 

 

 

 

두 자매가 있다. 쥘리에뜨와 쥐스띤느는 분명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매가 맞다. <미덕의 불운>(1791)과<악덕의 번영>(1797)은 두 자매의 이야기를 각각 담는다. 두 자매 중 언니인 쥘리에뜨는 <악덕의 번영>, 동생 쥐스띤느는 <미덕의 불운>의 주인공이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 유산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쫓겨나다시피 가문을 나와 세상에 내던져진 어린 두 자매는 갈 곳을 잃고 헤매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든 살기로 다짐하는데, 그 다짐의 양상이 자매치고는 판이하다. 언니 쥘리에뜨는 여자로서 할 수 있고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거나 그러모아 남자를 홀리거나 재산을 모아서 돈 많은 남편을 가진 귀부인의 자리에 오른다. 일명 악덕의 번영. 동생 쥐스띤느는 몸을 팔거나 훔치거나 거짓을 말하는 일을 모두 거부하지만 그녀에게 다가오는 이들은 누구나 그녀를 이용하고 짓밟고 팔아넘기고 성적학대하는 이들 뿐이다. 길에서 굶거나 맞고 있는 거지를 도와 일으켜세워도 그들은 은혜를 갚겠다며 어디론가 데려가서는 팔아넘겨 이득을 취하거나 성적노리개로 이용하거나 일을 시켜먹거나 하는데 일명 미덕의 불운. 두 자매의 일생은 보여준다. 미덕과 악덕의 역설을 논하며 선과 악을 전복시키고 어느 쪽이 더 견디기 쉽고 이용하고 쉽겠냐고 묻는다. 먼저 출간된 <미덕의 불운>에서는 나열할 수도 없을 만큼의 역경과 고통 끝에 귀부인에게 당도해 죽지 못해 산 이야기, 죽을 뻔하다 도망친 이야기, 죽음에서 갓 도망쳐나온 이야기를 열거하며 도움을 요청하던 동생 쥐스띤느의 얘기를 듣던 귀부인이 바로 언니와 형부임을, 그래서 지금껏 받고 있던 모든 혐의를 벗겨주는 운명론적 결론으로 약간 김빠지지만 그 과정이 워낙 흥미진진하고 생생한 고통 속 증언이라 어렵지 않게 문학성을 획득한다. 구구절절하고 눈물겹다.

 

<살로 소돔의 120일>은 루이 14세 치하 4명의 권력자가 젊은 남녀 노예들을 거느리고 120일간 벌이는 향락을 그린다. 파졸리니의 영화에서는 파시즘 정권하로 무대와 시대가 옮겨진다. 권력과 향락이 닿아있고, 쾌락과 허무가 다르지 않음을 이 한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시대와 배경을 완전히 옮겼는데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 기존의 것들. 가만보면 쾌락을 즐기는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 노예라는 이름으로 거부할 특권도 없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근친상간, 남색, 혼음 등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았을 그지만 결혼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신성모독으로 체포된 걸 보면 그의 변태성과 가학성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간다. 그는 온갖 묘사로 이 작품을 채우면서 비록 어긋난 방향인지도 모르지만 기성의 종교와 도덕에 반기를 들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도가 지나쳐 인생을 감옥과 정신병원, 작품을 검열의 표적으로 만든 것만 제외한다면 그는 기실 가장 강하게 기존질서를 반박하는 혁명분자였던 셈이다. 실제로 훗날 반혁명분자로 찍혀 나폴레옹 치하에도 자유롭지 못했다.

 

사드를 두고 성윤리를 논하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쾌락을 인생 최대의 가치이자 모든 것으로 여겼고, 권력과 기성질서와 도덕에 매인 삶을 부정하고 오로지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그의 작품묘사 중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상당수는 나치정권에서 상대에게 가혹함을 가할 때 응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오늘날 그가 추구한 쾌락적 가치는 독재와 권력, 강요와 부자유 등 기존의 것을 반박하는 하나의 혁명 혹은 반항의 이미지로 여겨지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새로 쓰여지고 있긴 한 모양이다. 더불어 사드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수도원의 풍경은 스산하고 타락한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성스럽고 경건해야 할 지상 유일한 장소의 추악한 면을 들춰내 상세하게 묘사한다. 하루도 참지 못한다는 비금욕의 수도사들. 같은 대상인 것조차 지겨워 이틀에 한 번씩 다른 여자들을 안는 것. 감금된 여자들을 차례로 취하다 지겨워지면 방사한다는 명분으로 아무도 모르게 죽이므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것. 종교가 성스럽다는 건 오늘날도 통용되지 않는 일인데, 역사상 한 번도 그 성스러움과 경건함을 가진 적이 있을지 의심되는 그 종교라는 이름으로 도덕을 요구받고, 정치라는 이름으로 억압을 강요당하는 현실이 그는 싫었던 것일까. 눈에는 눈, 이에서 이를 명분삼아 같은 방법으로 이 모든 벽을 허물어보려 한 것일까.

 

 

 

 

 

 

 

 

 

 

 

 

 

 

 

 

사드를 검색하니 이렇게 많은 책들이 딸려나왔다. 사드를 시대의 혁명아나 반항아 혹은 사상가로 접근하다가 나도 안드로메다 갈지도 모른다. 역시 사드를 두고 성윤리와 종교적 성에 대한 철학과 사상 강의하기가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는 역시 변함이 없다. 다소 어릴 때는 뭘 몰라서 비위가 좋았나 보다. orz 다시 본 파졸리니의 영화는 몇 장면만 겨우 봤는데도 토할 것처럼 메슥거려 참기 힘들었다. 그의 생애와 몇 작품만 보고는 단지 외설적이라든가 저질 작품성이라든가 근본적으로 뒤틀린 반항아라든가 그런 판단을 내릴 수도 없어 보류하겠다. 사랑과 쾌락이 맞닿아 있을 수 있을까. 정작 중요한 건 내가 사드의 작품 속에서 남성의 성적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또 다른 인간(약한 남녀 모두)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랑이라든가 증오라든가 미움이라든가 그런 감정들을 하나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페미니스트들에게 한없이 회자될 작품이자, 종교계에서도 거부하겠고, 문학계나 예술계도 미쳤다고들 하는데 대체 이 괴짜 사드를 어디에다 끼워야 하나. 절대본능과 절대자유를 추구했다고 한다면 지독한 쾌락주의자로 보겠는데, 그렇다면 자기 쾌락을 최대한으로 달성하기 위해 끼친 방탕아적 실생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작품 속 권력자/수도자/가해자들에 자신을 빙의한 채 써내려간 저 많은 작품들 속 피해자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자유를 추구하기만 하면 쾌락이 달성되고, 쾌락이 달성되기만 하면 끝인가. 실제 그는 감옥과 정신병원을 들락날락거리며, 어린시절 봐온 아버지의 권위와 강요당한 정략결혼에서 폭력과 억압을 당했고 그것을 사디즘의 시초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 가하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 받은 상대방의 '반응'에서 쾌락을 얻는다는 사디즘의 어디쯤.

 

그의 상상력이 끼친 나치즘의 어마어마한 가학적 고통의 끝에 사드를 올려놓으면 그가 약간은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살로 소돔의 120일]을 제정신으로 보면서 나는 적어도 사흘 내내 끼니 때만 되면 떠올리지 말아야 할 것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이건 사드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파졸리니의 잘못으로 돌려도 맞다. 문화부에서 거부하는 책 <소돔의 120일>을 읽지 않고 파졸리니의 영화 만으로도 충분히 지옥을 경험했으니, 역으로 더욱 더 그의 작품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미덕의 불운>에 상응하는 <악덕의 번영>과 <소돔의 120일>을 나도 모르는 내 손으로 결국 장바구니에 넣어 주문버튼을 누르고 만다. 고통을 가하며 받는 자의 얼굴에 드러나는 고통의 적나라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흥분과 쾌락을 즐겼던 이들, 나중에는 눈을 뽑고 혀를 자르고 유방을 잘라냈다. 나는 책을 주문하는 내 손을 자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상상력이 더 필요한 건지 기어이 보겠다고 사드와 맞짱을 뜨려하나 말이다. 백발백중 내가 질 것 같고, 나는 기대와 충격을 동시에 경험하는 색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참, 4년 전에는 그래도 (아직은) 어디가서 나 젊어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스물 몇 살이었다.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뽑은 백인 나라는 지금도 그때도 오바마를 선택했지만 나는 그들의 선거제도에 대해 몰랐다. 그리고 이제 공부한다. 알고 싶었다. 혹자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룰을 가진 선거제도라고도 한다. 1787 헌법 규정 후 단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투표.. 25년간 미국이 현재 우리나라처럼 직선제를 하는 줄 알았다가 (내) 무식함에 충격이 컸다. 미국은 대선을 치르고 다음날 오후에나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당연히 3억표를 다 개표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줄로만 알던 것이다. 동서부 시차가 만들어내는 당연한 현상인 줄은 몰랐다. 이제와 보니, 아무와도 미국의 선거제도를 주제 삼아 대화라는 걸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튼 몇몇 티비 프로그램에서 미국대선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들을 얘기하는데 다른 건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지금껏 많이 봐주고 있는 오바마가 2기 행정부에선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북한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일 거라고 진단하는 어떤 교수 앞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별로 좋지 않잖아-_-;; 전투와 전쟁과 갈등조장에서 쾌락을 얻는 이들도 다소 있는 것 같으니, 자, 이제 사드에게서 우리가 취해야 할, 상상의 강도를 가장 높여줄 쾌락적인 무언가를 취할 때다.

 

p.s 동서문화사 번역은 여기저기 말이 많다. 보지 못했는데 말로만 들어도 질릴 만큼 많다. 이상해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이상한지 콕 집어내지도 못하는 독자에게, 좀 많이 가혹한 일인데, 일단 이 정도 사전지식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또 산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궁금하니까. 그리고 또 읽는다. 읽고나서 낱낱이 까발려준다. 그러다가 내가 번역한다. 마지막 문장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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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6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6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댈러웨이 2012-11-1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님, 이 페이퍼 정말 잘 읽었어요. 별 체크! 사실 이런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저는 너무 궁금한 거에요. 사드라는 사람 말만 들었지, 요목조목 정리가 잘 되서 따로 알아볼 필요도 없겠어요. 내숭을 떠는 게 아니라 읽으면서도 저는 속이 안 좋아져서. 그런데, <미덕의 불운>이나 <악덕의 번영>은 재미있기도 할 것 같은데 좀 세요??? 문학적 가치가 있어요? 저는 <피아노 치는 여자>를 너무 못 읽어서, 이쪽으로 한 번 어떻게 계통을 세워봐야 하나 싶은데, 어떻게 읽기 시도를 해야할지 감이 안 와요. 저 이런 쪽으로 너무 모르니까 (음 저는 순수하니까. --;) 아이님이 좀 알려줘요. 땡큐! 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11-17 21:44   좋아요 0 | URL
저는 <미덕의 불운> 괜찮은 것 같아요. 소돔만 빼면 둘은 함께 읽어야 좋을 것 같고, 문학성도 어느정도(생각보다) 획득하는 것 같아요. 저도 <피아노 치는 여자>를 안 읽어봐서(몇 번 중단;;) 비슷한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안 순수한가 봐요--; 재밌어요ㅎㅎㅎ 댈러웨이님 근데 자카란다는 봄꽃이예요? 보라색이 봄에 피는 건 좀 안 순수한 것 같아요.(뭐래?)

댈러웨이 2012-11-17 21:58   좋아요 0 | URL
자꾸 그럼 정말 맨날맨날 빵꾸똥꾸라고 그럴꺼에요. ㅠ.ㅠ 봄에 피니까 봄꽃인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ㅠ.ㅠ 보라색이 그럼 언제 피어야 하는 거죠? 여름?이 더 적격일까요? 가을은 좀 아니고... 멀리서 보면 색감이 정말 끝내줘요. 드문드문 가로수로 있어도 그렇게 끝내주는데 자카란다가 서울 윤중로 벗꽃나무들처럼 있다고 생각해봐요! <미덕의 불운> 장바구니에 넣었어요. <피아노->는 한 번에 주욱 읽었는데, 너무 건조하게 읽었어요. 그러니까, 작품에 이입이, 그게 뭐였든, 전혀 안된 상태에서, 그래서?라는 토를 달고 계속 읽은 꼴. 그러니까 다 놓친거겠죠??? --; 이 페이퍼도 드문드문 위트! 아이님 위트!

아이리시스 2012-11-17 22:31   좋아요 0 | URL
아니 예전에 퍼플 웨이브 나왔을 때는 봄이 아니어서 그때 피는 꽃이라고 생각했다가 봄에 또 피길래 일 년내도록 피는건가 싶어서요(푸핫). 소나무인가;; 바보 인증--;

아이리시스 2012-11-17 22:38   좋아요 0 | URL
그럼 기다려주세요, 제가 올해 안에 <피아노->읽고나서ㅎㅎㅎㅎㅎ 비교문학을 한 번 해본 담에 댈러웨이님이 감정이입이 안되는 이유로 저 작품을 비판하는 레포트 쓸게요..(라고 거짓말한다..)

맥거핀 2012-11-18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는 잔혹함이나 외설적인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서 이 영화를 보게 되면 필시 실망하게 될 것 같은데 말이죠(라고 짐짓 3인칭으로 말해봅니다). 제 생각에도 (그런 것을 보기 위해서) 파졸리니의 작품을 보느니 책을 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이리시스 2012-11-19 02:18   좋아요 0 | URL
파졸리니는 저 영화 속 어떤 소년에게 촬영 후 살해당했다는 게 제일 충격적인 반전인 것 같아요. 의외로 벗고있어도 포르노적 느낌보다는 비위상한다는 느낌이 압도적인 영화여서 잔혹함이나 외설적인 것을 기대하면 말씀대로 실망이예요;; 그런데 저 이제는 밥을 잘 먹습니다..

저도 책이 더 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미안해요, 봐버렸어요. 개봉도 안했는데. 그러니까 요즘 같은 세상엔 꼭 외국과 동시개봉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대신에, 개봉하면 지난 번처럼 꼭 보러간다고 약속할게요. 안갈 수도 있지만. 미안. 사실은 나 본 거 다시 보는 거 엄청 안 좋아해요. 살아갈 날 중 많은 시간, 그 시간 동안 봤던 걸 또 본다고 생각하니까 막 아까워요. 근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그것도 이해가 가요. 동의해요. 그러니까 뭘 어쩌겠다고 이랬다저랬다 하냐고요? 아니, 뭘 어쩌겠다는 게 아니고요.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이쪽도 맞고 저쪽도 맞는 것 같은데 두 편으로 갈라져 싸우는 걸 구경하면서 킥킥대는 듯한 느낌이라는 거죠. 둘 다 이해가 되고 맞는 말이지만 나는 본 걸 또 보는 게 아직은 싫은 걸 어쩌겠습니다. 물론 다시 보고 싶은 것들이 많죠. 어쨌거나, 사운드트랙이 엄청나네요. 이 자체로 충분해요. 훌륭해요. 음악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귀에 쏙 들어오는 게 별로 없었거든요. 저는요, 제가 클래식 보다 재즈에 더 귀가 열려있는 것 같거든요. 팝도 올드팝으로 배웠고, 락보다 컨트리가 좋은 걸 어쩌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할머니인 건 아니잖아요. 할머니 취향인지는 모르지만.. 물론 하루키만큼 엄청난 재즈박사라거나 한 건 아니에요. 일례로, 사실은 [재즈피플] 몇 달 보다가 뒷목 잡았습니다. 무식은 깨라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세월이 흐를 수록 나날이 확인하게 되는 그런 무지라니.. 저는 무식함은 별로 확인하고 싶지가 않아요. 모르는 걸 좀 더 부풀리는 게 성향에 맞죠. 저는 사사키 아타루도 아니고 간디도 아니니까요. 저 요즘 <간디 자서전> 읽어요. 나 책을 요만큼 쌓아놨어요. 서재에 책사진 올리는 거 처음 같은데, 제가 사진을 잘 못 찍거든요, 특히 책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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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굴하지 않을 거예요, 재즈 아는 사람만 재즈바에 가란 법 있고, [On the Road] 사운드트랙 들으란 법 있습니까. 방문 닫고 책상 위에 아로마 향초 몇 개 켜고 시디 넣어놓고 아무데나 걸터앉으면(앉아도 웬만해선 바 분위기 안나죠, 그렇죠) 되죠. 게다가 저는 좀 이탈리아 매니아 아니 애호가잖아요. 스치듯 지나칠 수가 없었죠.

 

이봐요, 음반이에요. 이 음반은 예전부터 발매되어 있었어요. 제가 나왔나 안나왔나 한 번씩 영화를 검색하기 훨씬 전부터요.

 

 

 

 

 

 

 

 

 

 

 

[On the Road]는 재즈, [To Rome with Love]는 칸초네거든요. 혹시 영화 봤어요? 책 봤어요?

 

 

 

 

 

 

 

 

 

 

 

 

 

 

 

 

저는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두 번 읽었어요. 2009년 첫 출간 때 한 번, 2012년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또 한 번. 그런데 첫 번째는 아마도 끝까지 읽지 못한 채 덮었을 거예요. 어째서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했는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요. 저는 1940년대 미국을 살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1980년대생이죠. 거기다 한국 토박이. 조용필이 더 좋은. 아니 조용필을 좋아하는 엄마의 딸로 자라난.

 

분명히 잘 읽히는, 일반적 의미로서의 '소설'은 아닙니다. 여행이나 청춘 가이드로서의 산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버라이어티한 비극의 변주가 든 것도 아니죠. 그런데 아주 어깨가 들썩입니다. 책으로 만족이 안됩니다. 당장 어디로라도 가야할 것 같아요. 물론 가는 게 어렵진 않죠. 어디로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해진 거죠. 알다시피, 어디론가 가는 것, 너무 재고따지면 아무데도 못 갑니다. 가는 건 말이죠, 일단 출발하고나서 생각해야 해요. 직장에 다니는데 떠나고 싶어지면요, 일단 때.려.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도 편도티켓만 끊어서 여차저차한 경우 되돌아오지 못하도록요. 휴가 그런 거 쓰려고 재고따지기 시작하면 아무데도 못가요. 그리고 용기 없는 자기 대신 용기있게 박차고 떠난 이들의 무모함을 질투하죠. 질투만 하면 애교게요? 욕하죠. 미래에 대한 플랜이 있니없니 하면서요. 부끄럽죠? 그래요, 그럴 거예요.

 

그런데요, 이 책은 아무 것 없이도, 무작정 충동적으로 길을 걷게 해요. 달려나가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한다니까요. 그 길은요, 도시의 길이 물론 아니에요. 한적하기만 한 시골길도 아니고 구경할 거라곤 눈을 씻어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벌판을 걷자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알아요? 그 허허벌판이 내게 노래해주고 말을 걸어준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죠. 도시의 삶이 처량한 가운데도 반짝반짝 빛난다는 걸 알기 위해서는 도시의 삶 외의 삶 또한 알아야 공평하지요? 그러니까 저는 뭔가를 예찬하려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경험한 것 가운데'라는 말을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누가 이 세상에서 저 세상까지 다 알 수 있어요? 어느 누가 지구에서 우주까지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냐구요. 인간의 시야는 한없이 좁단 말입니다. 거기다 이곳에서 저곳까지 가는 것만이 목표가 되는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아요. 유명 혹은 무명의 장소에 가서 형체있는 걸 보고 마치 지구라도 구한 듯 사진이나 글로 변환해 올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여행법이잖아요?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오프닝 기억나요? 그럼요, 그걸 잊기란 꽤 힘들죠. 그냥 그런 장면일 뿐인데 어째서 잊히지 않는지 생각하다가, 그 여자는 왜 하필 그곳에서 내려버렸을까 오랜 시간 생각했었어요. 아무리 화가 나도 말이죠. 나라면 그런 황량한 곳에서는 절대 내리지 않았을 거예요. 어떻게 돌아가려고 그래요? 뒷일도 좀 생각하란 말예요. 네? 그런 경험이 있나요? 어떤 연인은 국도 톨게이트에서 다퉜고 여자는 홧김에 거기서 내려버려요, 한참을 걷고 또 걷다 문득 빽을 잃은 것, 지갑이 없다는 걸 상기하죠.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는 신만 압니다. 아니, 그 여자의 히치하이크 실력에 달렸죠. 아니면 그 여자의 몸매와 외모의 매력도에 달렸을까요? 또 어떤 여자는 아무도 없는 노루가 나타나도 하등 이상하지 않는 꼬불한 산길을 한 시간이나 걸었죠. 단지 그와 헤어지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실험하기 위해 걷는 여정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케루악은 그렇게 했고 그것을 기록으로 옮겼고, 새로운 문학을 탄생시켰어요. 꺄악 >.< 이게 바로 문학의 묘미 아니겠어요. 저는 기행문학을 좋아합니다. 먹고 노는 것보다는 기행이 좋아요. 제가 소이진님에게 따라 가고 싶다고 썼던 고인돌 답사는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는 기행문학의 계보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걸 다 들려줄 생각은 물론 아니에요. 이 책들을 읽거나 읽고 있어요. 여행은 어떤 방법으로든 멋진 일이니까요.

 

 

 

 

 

 

 

 

 

[To Rome with Love]의 첫장면은 여기서 시작해요! 어랏, 핀트가 맞는 사진이 하나도 없네요, 이름도 까먹었고, 그치만 파리의 그 강렬한 파스텔톤 아름다움으로 시작하지는 않는다는 것. 로마의 중심부에서 시작한다는 것. 그 길에는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이 전부 있어요. 전작이 아기자기한 시간여행을 낭만적으로 표현한다면 로마는 많이 수다스러워요. 로마의 풍경이 파리의 그것보다 아름답거나 훌륭하다고는 솔직히 말하기 어려워요. 다음 작품은 케이트 블란쳇과 브래들리 쿠퍼가 만나는 코펜하겐이라고 하니 이게 더 기대될 정도. 감독님, 이렇게 온 로망이 가득찬 유럽의 도시들을 차례로 훑으면서 사람을 낚으시면 안되는 겁니다, 네?

 

[On the Road] O.S.T.은 [브로크백 마운틴](꺄악, 제가 진짜 좋아하는 음반이에요!)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영화는 좋아하는데 음악이 기억 안나는데요)과 [바벨]의 음악을 만든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만들었어요. 그럼 한 곡.

 

 

 

또 한 곡.

 

 

다시 한 곡.

 

 

아, 음악만 듣다 페이퍼 끝나겠네.

뜨끈한 미역국을 들이켜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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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10-26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영화가 나왔네요. 그러고보니 여기 영화축제할 때도 초청받았었구나! 음악 지금 듣고 있어요. 유튜브 링크시켜주는 센스. 어쩐 일이에요? 게다가 책 사진도 올려주고? 저 이런 거 무지무지 좋아하는데. 오늘 기분 좋군요? 좋다요. ^^ 저도저도 뜨끈한 미역국 먹고 싶어요. 막 기분이 노랑노랑해져서 주렁주렁 댓글을 달고 싶은 페이퍼이지만(으악 케이트 블란쳇, 으악 브로크백 마운틴, 으악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으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꾹 참겠어요. ㅎㅎㅎ 그나저나 아이님의 이탈리아 사랑은 정말 어쩔 수가 없군요.

아이리시스 2012-10-26 22:48   좋아요 0 | URL
그걸 오늘부터 쓰세요, 저 보여줘야죠. 저를 이탈리아로 날려보내버려요(띄어쓰기를 어디에 해야하는 거야), 댈러웨이님. 이걸 세 곡 차례로 들었더니 그냥 미역국 생각이 나요. 끓여야 하나. 할 줄 몰라요. 으악, 댈러웨이님 엄청 기분 좋구나. 저도요. 크.

으악 괴물같은 페이퍼.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지 않았다고 말해주세요, 제발제발.. 꾹 참지 말고요, 페이퍼 양산은 주말 자정까지. 으하하.

저 진짜 책사진 못찍지 않아요? 아니면 우리 집이 더러워서 사진빨이 안살거나.

프레이야 2012-10-2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님, 전 영화도 책도 안 봤지만 사운드트랙 당장 담아가요.
물론 '길 위에서'도요. 전에 댈러웨이님 페이퍼에서도 담아두곤 아직 미루고 있었는데 이젠 못 참겠어요.
브로크백마운틴과 모터사이클다이어리의 그 음악을 만든 분이라구요?!!! ^^
오늘처럼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이런 음악 진짜 좋으네요. 잘 들었어요^^
근데 뜨끈한 미역국.. 급히 들이켜면 입천장 다 벗겨져요.ㅎㅎ

아이리시스 2012-10-29 21:4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관심에 무한감사요, 애정을 표합니다ㅎㅎ
못 참겠다는 얘기는 되게 좋은 말이군요. 영화가 나왔으니 케루악 붐이 일어나서 과거나 해외말고 이 나라 안에서 걷기와 히치하이크로 젊음과 청춘을 찾는 신드롬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세 곡 들으면서 엉뚱하게 칵테일 제조법과 이름을 몇 개 공부했어요,ㅎㅎㅎ

맥거핀 2012-10-2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잭 케루악..어떤 영화에선가 주인공이 엄청 좋아하는 작가로 나왔었는데, 어떤 영화인지 도무지 기억이 안나네요.(뭐 제 기억력이 다 그렇죠.) 길은 저런길을 달려야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일단 저렇게 길만 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죠. 길 외에 온갖 잡다한 것들(그러니까 뭐 휴게소라던가, 특산물판매소라던가, 톨게이트 같은 것)을 만나야하기 때문에 길 위에서의 사색, 황량함 같은 것은 뭐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이 나라는 뭐가 비어있는 꼴을 못보니까요.)

결국 책 인증을 하셨군요. 저거 다 읽으셨으면 빨리 읽는 비결을, 다 안 읽으셨으면 읽지않은 책을 조바심내며 쌓아두는 것을 견뎌내는 비결을 알려주세요.^^

아이리시스 2012-10-29 21:47   좋아요 0 | URL
응, 저도요, 아니면 책 속에서였나 있었던 것 같은데요, 뭐 제 기억력이 항상 그렇죠. 이제 [밀레니엄]마지막권입니다. 스타트. 맞아요, 좁은 땅이니 어쩔 수 없지만 이 나라는 휴게소나 편의점이 없으면 죽는 줄 알아요. 근데 없으니까 진짜 죽긴 죽겠어..( '') 예전처럼 좀 꾸질한 우동과 핫바가 아니라 삐까뻔쩍하게 차려진 푸드코트형 식당에서 전자번호표 빼서 받으러가는 고속도로 휴게소 우동은 확실히 맛이 없더라고요. 비싸기도 엄청나고..

제가요, 한 번 가지런히 모아봤어요. 나름 착하게 정리해서 찍은 거랍니다. 원래는 온 천지에 널려있던 거여요. 한 권 정도 다 읽지 않았나 싶은데, 아, 그 조바심말인데, 책이 많으니까 주체를 못하겠어요, 맨날 펼쳐서 1장 읽고 다른 것도 그렇게 다른 것도 그런답니다. 비결.. 그런 게 있다면 부디 전수해주세요!

알로하 2012-10-29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o Rome with Love 재밌나요? '길 위에서'도 무척 흥미로워요. 어디든 가고 싶은 이 기분ㅋ 저도 빌리 홀리데이 좋아하는데요, 비 올때 들으니까 더 좋더라구요.

아이리시스 2012-10-29 21:54   좋아요 0 | URL
알로하님 오랜만이에요. 왜 한 번씩 나타나시는 건데요. 보고싶게.

빌리 홀리데이랑 엘라 피츠제럴드 좋아요. 오스카 피터슨도 좋고요. 혼자 마구잡이로 막 듣던 시절도 있었는데 계보가 없으니까 힘들어요, 음악은 누가 좀 차근차근 가르쳐주면 좋을텐데 그런 마음이에요.

특별히 재밌다고는 못해도 우디앨런을 좋아하고 유럽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충분히 볼만한 것 같아요. 토요일에 비가 많이 왔는데 정작 그때는 음악을 안듣다가 이런, 비오는 날 재즈와 올드팝은 환상궁합인데 말예요.

에세르 2012-10-2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리시스님의 페이퍼는 정말 매력적이네요.
흠뻑 빠져들게하는 마성같은 것이 글 속에 있습니다.
게다가 음악들으시는 취향이 너무 좋으십니다.ㅎㅎ
음악듣고 있자니,우디앨런의 To Rome with Love보고싶습니다.
소싯적에 우디앨런 좋아해서 시네마테크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열심히 보았었는데 말이죠.^^

아이리시스 2012-10-29 21:59   좋아요 0 | URL
에세르님은 우디앨런 좋아하시는구나. 저는 취향에 꼭 맞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초기작들은 좋던데요, 제 20대시절 개봉한 영화들은 워낙 그런 장르를 안보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와닿지 않다가요. 미국여행을 하고 유럽으로 건너온 어떤 언니를 유럽에서 만났을 때 좋아하는 감독이라며 우디앨런과 작품들에 대해 해준 얘기들이 이제 생각나더라고요.

저는 요즘 더 추워지기 전에 배낭매고 걷고 싶어요. [On the Road]의 영향이에요!

Shining 2012-10-30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디 앨런 감독은 도시 시리즈에 빠지셨나봐요ㅎㅎ 라고 쓰려다 보니까... 아이님은 알라딘의 우디 앨런이었군요!
도시 시리즈 매니아ㅋㅋ 저도 몇 년 전에 <길 위에서> 읽으려다 결국 실패. 아이님 말씀 공감. 전 1940년대 미국을 살지 않았으니까요..랄까. 전 여행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요새는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한국인 별로 없고ㅋ 작고 소박한 도시. 크로아티아나 노르웨이 정도가 좋겠어요(전혀 연관성 없는 두 나라;) :D

아이리시스 2012-10-30 13:28   좋아요 0 | URL
제 글은 이제 뭘 써도 도시시리즈 되는 거예요? 후훗. 누가 봐도 '길'이랑 '재즈'가 주제잖아요(라고 우긴다;) 오, 샤이닝님한테 걸린 크로아티아/노르웨이 나이스짱 부럽;; 크로아티아는 여행기 몇 번 봤는데 좋아요. 그런데 그 좋은 게, 관광객들이 막 갈 수 없어서 보존되어서 그런 것도 좀 있는 것 같아요.

한곳에 오래 살면 다른 지방과 도시로 가고 싶은 기분이 아주 오랫동안 계속돼서 이제 거의 포기지경. 이 동네 벗어날 날로 결혼을 꿈꾸고 있어요. :)

2012-11-03 0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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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2 0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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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2 1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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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4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디 자서전은 많이 읽었나요? (제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 식탁 위의 책 중에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반갑네요. 저도 서두만 좀 읽은 채로, 요즘 읽는 책의 목록에 올려져 있거든요.
"길 위에서"에 대해, 호기심 돋우는 페이퍼네요. 당장 떠나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 하니 말입니다. (실험적으로 써서 정신 많이 없으려니 했던 나의 편견이 있었는데. 이 책에 대해서요.) 그나저나 '어떤 여자'와 '또 어떤 여자'는 실존인물인가요, 책 속 주인공인가요? 궁금해요.
저도 진짜 본 거 또 보는 취미 없는 사람인데, (특히 영화), 근데 사실은 꽂힌 거 보고 또 보는 사람들 부러워해요. 그 사람들은 진짜 뭔가를 사랑하는 거 같아서... 가끔 강제적으로 여러 번 보게 되는 영화가 있는데, 진짜 볼수록 좋긴 하더군요. (빌리 엘리어트,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로 그런 경험 했어요.) 그래도 자의로는 또 보진 않아요.ㅎㅎ

여튼 이 페이퍼 읽으면서 두 번 웃었답니다. 풉, 쿡. 이런 웃음. (어디게요?)
늘 재밌게 글 쓰는 아이님이 부러워요~

이탈리아 애호 증세는 시작이 괴테의 기행문부터인 건가요? 이것도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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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다 한 것도 많고, 막 질문도 많은 댓글이지만, 대답 일일이 안 해도 됩니다.ㅋ (일일이 대답하려면 피곤한 질문이 많아서~)
아, 댓글은 오늘 쓰지만, 사실 이 글을 진작에 읽었었답니다. 좀 자주 써 주세요. 들어올 때 새글이 맨날 있던 옛날 아이님 서재가 새삼 생각나네요.^^

아이리시스 2012-11-14 17:17   좋아요 0 | URL
어떤 여자와 어떤 여자는 서로 다른 여자로, 아는 사람이에요. 소설 속에 안 나와요.. 저는 진짜 웃기게 드라마에 꽂혀서 해마다 또 보고 다시 보고 그래요. 그래서 진짜 뭔가를 사랑하는 느낌을 모르는 건 아닌데도 영화나 책은 자꾸 조바심 나서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자의로는 아닌 섬님처럼도 볼 일이 그다지 없..제 주위에서 책과 영화를 저보다 더 사랑하는 지인은 없는 것 같아서요(불행하다..)ㅠ.ㅠ

괴테 No. 다빈치요,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피렌체서, 단테와 다빈치로부터(ㅋㅋㅋ) 제 이상형 만능엔터테이너 다빈치가 이탈리아 애호 증세의 시작인 것 같아요. 섬님, 이거 대답하는 거 하나도 피곤하지 않네요. 완전 재밌어요. 이상하네(풉)

자주 재밌는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필승!)

참, 웃긴 부분 어디...( '') 이런 건 말씀해주셔야 제가 또 써먹죠(유머력이 빈곤해서..!)

아이리시스 2012-11-14 17:26   좋아요 0 | URL
아 맞다, 간디 다음으로 줄을 쫙 세워놨는데 다음은 만델라였거든요. 근데 간디가..간디가..끝나지가 않아요ㅠ.ㅠ 뭐 매일 한두장 이러고 저 요즘 뒤늦게 애니팡 한다고 미쳐서.. 근데 저 완전 못해요!! 게임도 못하는 애 처음 봤어요, 진짜.. 그래서 올해 간디 할아버지만 일단 읽기로 그렇게.. (올해라고 해봐야;;) 저도 옛날에 산 책 같은데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식탁 위에 왜 등장했는지.. 막 쓸어와서 읽으려고 급조한 사진이라 부끄러워지네요(큭큭)

섬님, 자주 오세요!!

2012-11-15 21:15   좋아요 0 | URL
와오~ 심지어 단테와 다빈치로부터 애호가 시작되었다니 시작부터 엄청났군요. 아이님의 이탈리아 사랑은~^^
늘 재밌게 쓰시니 굳이 유머 포인트는 안 알려드리겠습니다.
저의 많은 질문을 즐기셨다니, (저는 답을 즐겼습니다.ㅎㅎ)
날 잡아서 질문 100개 막 이런 거를?!ㅋㅋ
간디가, 진도가 안 나간다니 그냥 두라고 하고 싶군요. 어떤 식으로든 빨려들어가는 책이 아니라면 이제 읽지 말자는 주의거든요. 요즘 제가요.
만델라까지 읽으실 작정이시군요. 늘 느끼지만 아이님 독서는 진짜 좀 거대한 데가 있어요. 후후후
저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앞에 눈곱만큼 읽고 2달째 쉬고 있는 책이에요. 아이님과 비슷하죠? (분명 읽은 데까지 재미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네요. 흐흐.)

아이리시스 2012-11-16 18:41   좋아요 0 | URL
네!!! 담에 제가 해야겠어요, 섬님 파헤치기 질문 100. 오늘부터 질문모으기에 들어가겠어요^-^

sslmo 2012-11-1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도 책도 안 봤지만... 음반을 주문할래요, ㅋ~.
전 on the road하면 즐거운 나의 도시에서 'on the road'라는 이메일 계정을 쓰던 그가 생각나요.히힛~^^

근데여,브로크백 마운틴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 바벨을 들이대면서 부추기시면 말이죠.
제대로 지름신인거 알고 계시죠? ㅋ~.

글이 맛있어요.
소리내어 읽으면 읽을수록 맛잇어요, 헤에~^_________^

아이리시스 2012-11-14 17:20   좋아요 0 | URL
아..그걸 계정으로 쓰는 그가 있었나요? 보기도 많이 보고 까먹기도 대장이고 제가 쫌 그래요, 힛
제대로 지름신인 줄 알았는데..어디보자.. 아무도 음반 사겠다고 안하셨.. 몰래 사셨나?!
음악중에서 저는 O.S.T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스토리가 있고 음악이 떠오르는..

근데 댓글 답 앞으로 안 달아주심 저 삐칠겁니다, 네, 그럴 거예요!!

불꽃나무 2012-11-15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주로 활동하시는 분은 거의 평론가 수준이네요~^^ㅎㅎ
잘 읽고 갑니다.

아이리시스 2012-11-15 20:35   좋아요 0 | URL
불꽃나무님의 좋은 글들도 앞으로 기대할게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