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력과 탐구가 동시에 필요해서 사드의 소설을 몇 권 사들였다. 사상가인지 문학가인지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일명 사드 후작(1740-1814)은 스물 두 살즈음 영화로 처음 만났다. 누구와 함께 볼 영화는 아니고 스무살이 되기도 전에 나온 영화라 혼자 보게 됐던 것 같다. 이제 그를 단지 외설적이고 도착적인 성적묘사로 이루어진 형편없는 작품 몇을 발표한 퇴폐적이고 난잡한 성생활을 한 프랑스 어느 작가라고만 기억하기엔 세월이 많이 흘렀고, 그에 대한 평가나 판단 또한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왜 그런 작품들을 썼는지, 어째서 그토록 방탕한 성생활에 몰두했는지 같은 것들을 아는 게 어떤 도움이 될 지는 모르지만 욕 듣고 씹히는 와중에도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읽히고 회자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리라.

 

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재밌다기 보다는 호기심에 가득차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읽는다. '초롱초롱한'은 역시 내 바람일 뿐이겠지만. 하지만 처음 사드를 만났을 때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출생으로 어떤 시대와 환경에서 자랐는지 관심없었다. 음란하고 외설적인 글 때문에 쓰지 못한 채 감옥에 갇히자, 배설물로 벽에 글을 휘갈기던 광적존재로 기억에 남아있는데, 그 영화는 사드의 여느 작품이 아닌 사드의 일대기를 다룬 [퀼스]였다. "쾌락은 내 인생의 모든 것, 생명과도 바꿀 수 없다"던 사드의 목소리가 두 시간 러닝타임 내내 머릿속에서 뱅뱅 울리는 그런 충격의 도가니를 체험했다. 외설적이거나 사디즘적인 면들이 거부스러웠던 게 아니라, 이토록 쾌락에만 집중하여 온갖 스캔들을 뿌리고 다니다 장모에 의해 감옥에 갇히고, 그녀의 호소로 왕에게 사면장 없는 구금명령을 받았던 그가 문학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다. 사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음란하고 외설적인 작품을 썼다는 것 뿐 아니라 실제 삶이 방탕과 쾌락으로 점철되어 감옥과 정신병원을 오가며 일생을 보냈다는 사실이 논하기 좋기 때문이다. 이후 우연한 호기심으로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을 보는데 구역질이 올라왔다. 한편 처절하면서도 잔혹한 성적묘사로 일관하는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올 여름 동서문화사에서 <살로 소돔의 120일>을 출간했는데 적나라한 내용 때문에 문화부에서 배포와 수거를 결정중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설마 이런 시대, 이런 세상에서 책 한 권을 수거한다고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파졸리니의 영화는 차라리 고어에 가깝다. 좀비물,하드코어 심지어 뱀파이어물에도 그다지 흥미는 없는데, 이성의 분뇨에 흥분하고 심취하여 먹고 먹이기까지 하는 장면을 흥미와 경악의 중간 즈음한 비명과 탄식 없이 지나치기는 힘들다. 사드는 귀족의 아들이었다. 인간답지 않은 성적취향을 논할 때 처제와의 불륜을 예로 드미는 건 이제 그리 수위높은 예는 아닌 듯하다. 문정희 시인이 골반 위에 부서지는 집으로 그 인생을 표현한 프리다 칼로의 사랑 디에고 리베라 또한 처제 크리스티나 혹은 아내의 친구와의 관계가 탄로나면서 그녀와 이혼한다. 아내가 해주지 못하는 욕구충족을 했다고 말하면 할말 없지만 이후 프리다 칼로와 재혼을 하면서 평생 그녀에게 절망과 고통, 상처를 안겨준다.

 

칸트와 사드와 라캉을 한 번에 철학과 정신분석학적으로 비교하면 재미나겠지만 일단 사드만. 그는 프로방스 지방의 명문 출신으로 통칭 사드 후작으로 불리고, 사디즘이란 명칭을 낳았다. 가학적 변태성욕의 대명사로 자신의 가문마저 사디즘의 대명사로 만들어버렸다. 부친이 죽으며 물려받은 후작 지위에도 불구, 가산을 탕진할 정도로 마르세유의 홍등가에서 매춘부들과 쾌락을 즐겼다. 성 도착증과 매춘, 음란물 유포죄 등 줄줄이 열거가능한 죗값을 치르느라 인생의 3분의 1을 감금당한 채 살던 그는 정신병원 또한 번갈아 들락거렸다.

 

 

 

 

 

 

 

 

 

 

 

 

 

 

 

두 자매가 있다. 쥘리에뜨와 쥐스띤느는 분명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매가 맞다. <미덕의 불운>(1791)과<악덕의 번영>(1797)은 두 자매의 이야기를 각각 담는다. 두 자매 중 언니인 쥘리에뜨는 <악덕의 번영>, 동생 쥐스띤느는 <미덕의 불운>의 주인공이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 유산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쫓겨나다시피 가문을 나와 세상에 내던져진 어린 두 자매는 갈 곳을 잃고 헤매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든 살기로 다짐하는데, 그 다짐의 양상이 자매치고는 판이하다. 언니 쥘리에뜨는 여자로서 할 수 있고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거나 그러모아 남자를 홀리거나 재산을 모아서 돈 많은 남편을 가진 귀부인의 자리에 오른다. 일명 악덕의 번영. 동생 쥐스띤느는 몸을 팔거나 훔치거나 거짓을 말하는 일을 모두 거부하지만 그녀에게 다가오는 이들은 누구나 그녀를 이용하고 짓밟고 팔아넘기고 성적학대하는 이들 뿐이다. 길에서 굶거나 맞고 있는 거지를 도와 일으켜세워도 그들은 은혜를 갚겠다며 어디론가 데려가서는 팔아넘겨 이득을 취하거나 성적노리개로 이용하거나 일을 시켜먹거나 하는데 일명 미덕의 불운. 두 자매의 일생은 보여준다. 미덕과 악덕의 역설을 논하며 선과 악을 전복시키고 어느 쪽이 더 견디기 쉽고 이용하고 쉽겠냐고 묻는다. 먼저 출간된 <미덕의 불운>에서는 나열할 수도 없을 만큼의 역경과 고통 끝에 귀부인에게 당도해 죽지 못해 산 이야기, 죽을 뻔하다 도망친 이야기, 죽음에서 갓 도망쳐나온 이야기를 열거하며 도움을 요청하던 동생 쥐스띤느의 얘기를 듣던 귀부인이 바로 언니와 형부임을, 그래서 지금껏 받고 있던 모든 혐의를 벗겨주는 운명론적 결론으로 약간 김빠지지만 그 과정이 워낙 흥미진진하고 생생한 고통 속 증언이라 어렵지 않게 문학성을 획득한다. 구구절절하고 눈물겹다.

 

<살로 소돔의 120일>은 루이 14세 치하 4명의 권력자가 젊은 남녀 노예들을 거느리고 120일간 벌이는 향락을 그린다. 파졸리니의 영화에서는 파시즘 정권하로 무대와 시대가 옮겨진다. 권력과 향락이 닿아있고, 쾌락과 허무가 다르지 않음을 이 한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시대와 배경을 완전히 옮겼는데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 기존의 것들. 가만보면 쾌락을 즐기는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 노예라는 이름으로 거부할 특권도 없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근친상간, 남색, 혼음 등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았을 그지만 결혼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신성모독으로 체포된 걸 보면 그의 변태성과 가학성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간다. 그는 온갖 묘사로 이 작품을 채우면서 비록 어긋난 방향인지도 모르지만 기성의 종교와 도덕에 반기를 들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도가 지나쳐 인생을 감옥과 정신병원, 작품을 검열의 표적으로 만든 것만 제외한다면 그는 기실 가장 강하게 기존질서를 반박하는 혁명분자였던 셈이다. 실제로 훗날 반혁명분자로 찍혀 나폴레옹 치하에도 자유롭지 못했다.

 

사드를 두고 성윤리를 논하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쾌락을 인생 최대의 가치이자 모든 것으로 여겼고, 권력과 기성질서와 도덕에 매인 삶을 부정하고 오로지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그의 작품묘사 중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상당수는 나치정권에서 상대에게 가혹함을 가할 때 응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오늘날 그가 추구한 쾌락적 가치는 독재와 권력, 강요와 부자유 등 기존의 것을 반박하는 하나의 혁명 혹은 반항의 이미지로 여겨지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새로 쓰여지고 있긴 한 모양이다. 더불어 사드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수도원의 풍경은 스산하고 타락한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성스럽고 경건해야 할 지상 유일한 장소의 추악한 면을 들춰내 상세하게 묘사한다. 하루도 참지 못한다는 비금욕의 수도사들. 같은 대상인 것조차 지겨워 이틀에 한 번씩 다른 여자들을 안는 것. 감금된 여자들을 차례로 취하다 지겨워지면 방사한다는 명분으로 아무도 모르게 죽이므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것. 종교가 성스럽다는 건 오늘날도 통용되지 않는 일인데, 역사상 한 번도 그 성스러움과 경건함을 가진 적이 있을지 의심되는 그 종교라는 이름으로 도덕을 요구받고, 정치라는 이름으로 억압을 강요당하는 현실이 그는 싫었던 것일까. 눈에는 눈, 이에서 이를 명분삼아 같은 방법으로 이 모든 벽을 허물어보려 한 것일까.

 

 

 

 

 

 

 

 

 

 

 

 

 

 

 

 

사드를 검색하니 이렇게 많은 책들이 딸려나왔다. 사드를 시대의 혁명아나 반항아 혹은 사상가로 접근하다가 나도 안드로메다 갈지도 모른다. 역시 사드를 두고 성윤리와 종교적 성에 대한 철학과 사상 강의하기가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는 역시 변함이 없다. 다소 어릴 때는 뭘 몰라서 비위가 좋았나 보다. orz 다시 본 파졸리니의 영화는 몇 장면만 겨우 봤는데도 토할 것처럼 메슥거려 참기 힘들었다. 그의 생애와 몇 작품만 보고는 단지 외설적이라든가 저질 작품성이라든가 근본적으로 뒤틀린 반항아라든가 그런 판단을 내릴 수도 없어 보류하겠다. 사랑과 쾌락이 맞닿아 있을 수 있을까. 정작 중요한 건 내가 사드의 작품 속에서 남성의 성적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또 다른 인간(약한 남녀 모두)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랑이라든가 증오라든가 미움이라든가 그런 감정들을 하나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페미니스트들에게 한없이 회자될 작품이자, 종교계에서도 거부하겠고, 문학계나 예술계도 미쳤다고들 하는데 대체 이 괴짜 사드를 어디에다 끼워야 하나. 절대본능과 절대자유를 추구했다고 한다면 지독한 쾌락주의자로 보겠는데, 그렇다면 자기 쾌락을 최대한으로 달성하기 위해 끼친 방탕아적 실생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작품 속 권력자/수도자/가해자들에 자신을 빙의한 채 써내려간 저 많은 작품들 속 피해자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자유를 추구하기만 하면 쾌락이 달성되고, 쾌락이 달성되기만 하면 끝인가. 실제 그는 감옥과 정신병원을 들락날락거리며, 어린시절 봐온 아버지의 권위와 강요당한 정략결혼에서 폭력과 억압을 당했고 그것을 사디즘의 시초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 가하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 받은 상대방의 '반응'에서 쾌락을 얻는다는 사디즘의 어디쯤.

 

그의 상상력이 끼친 나치즘의 어마어마한 가학적 고통의 끝에 사드를 올려놓으면 그가 약간은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살로 소돔의 120일]을 제정신으로 보면서 나는 적어도 사흘 내내 끼니 때만 되면 떠올리지 말아야 할 것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이건 사드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파졸리니의 잘못으로 돌려도 맞다. 문화부에서 거부하는 책 <소돔의 120일>을 읽지 않고 파졸리니의 영화 만으로도 충분히 지옥을 경험했으니, 역으로 더욱 더 그의 작품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미덕의 불운>에 상응하는 <악덕의 번영>과 <소돔의 120일>을 나도 모르는 내 손으로 결국 장바구니에 넣어 주문버튼을 누르고 만다. 고통을 가하며 받는 자의 얼굴에 드러나는 고통의 적나라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흥분과 쾌락을 즐겼던 이들, 나중에는 눈을 뽑고 혀를 자르고 유방을 잘라냈다. 나는 책을 주문하는 내 손을 자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상상력이 더 필요한 건지 기어이 보겠다고 사드와 맞짱을 뜨려하나 말이다. 백발백중 내가 질 것 같고, 나는 기대와 충격을 동시에 경험하는 색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참, 4년 전에는 그래도 (아직은) 어디가서 나 젊어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스물 몇 살이었다.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뽑은 백인 나라는 지금도 그때도 오바마를 선택했지만 나는 그들의 선거제도에 대해 몰랐다. 그리고 이제 공부한다. 알고 싶었다. 혹자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룰을 가진 선거제도라고도 한다. 1787 헌법 규정 후 단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투표.. 25년간 미국이 현재 우리나라처럼 직선제를 하는 줄 알았다가 (내) 무식함에 충격이 컸다. 미국은 대선을 치르고 다음날 오후에나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당연히 3억표를 다 개표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줄로만 알던 것이다. 동서부 시차가 만들어내는 당연한 현상인 줄은 몰랐다. 이제와 보니, 아무와도 미국의 선거제도를 주제 삼아 대화라는 걸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튼 몇몇 티비 프로그램에서 미국대선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들을 얘기하는데 다른 건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지금껏 많이 봐주고 있는 오바마가 2기 행정부에선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북한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일 거라고 진단하는 어떤 교수 앞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별로 좋지 않잖아-_-;; 전투와 전쟁과 갈등조장에서 쾌락을 얻는 이들도 다소 있는 것 같으니, 자, 이제 사드에게서 우리가 취해야 할, 상상의 강도를 가장 높여줄 쾌락적인 무언가를 취할 때다.

 

p.s 동서문화사 번역은 여기저기 말이 많다. 보지 못했는데 말로만 들어도 질릴 만큼 많다. 이상해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이상한지 콕 집어내지도 못하는 독자에게, 좀 많이 가혹한 일인데, 일단 이 정도 사전지식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또 산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궁금하니까. 그리고 또 읽는다. 읽고나서 낱낱이 까발려준다. 그러다가 내가 번역한다. 마지막 문장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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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6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6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댈러웨이 2012-11-1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님, 이 페이퍼 정말 잘 읽었어요. 별 체크! 사실 이런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저는 너무 궁금한 거에요. 사드라는 사람 말만 들었지, 요목조목 정리가 잘 되서 따로 알아볼 필요도 없겠어요. 내숭을 떠는 게 아니라 읽으면서도 저는 속이 안 좋아져서. 그런데, <미덕의 불운>이나 <악덕의 번영>은 재미있기도 할 것 같은데 좀 세요??? 문학적 가치가 있어요? 저는 <피아노 치는 여자>를 너무 못 읽어서, 이쪽으로 한 번 어떻게 계통을 세워봐야 하나 싶은데, 어떻게 읽기 시도를 해야할지 감이 안 와요. 저 이런 쪽으로 너무 모르니까 (음 저는 순수하니까. --;) 아이님이 좀 알려줘요. 땡큐! 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11-17 21:44   좋아요 0 | URL
저는 <미덕의 불운> 괜찮은 것 같아요. 소돔만 빼면 둘은 함께 읽어야 좋을 것 같고, 문학성도 어느정도(생각보다) 획득하는 것 같아요. 저도 <피아노 치는 여자>를 안 읽어봐서(몇 번 중단;;) 비슷한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안 순수한가 봐요--; 재밌어요ㅎㅎㅎ 댈러웨이님 근데 자카란다는 봄꽃이예요? 보라색이 봄에 피는 건 좀 안 순수한 것 같아요.(뭐래?)

댈러웨이 2012-11-17 21:58   좋아요 0 | URL
자꾸 그럼 정말 맨날맨날 빵꾸똥꾸라고 그럴꺼에요. ㅠ.ㅠ 봄에 피니까 봄꽃인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ㅠ.ㅠ 보라색이 그럼 언제 피어야 하는 거죠? 여름?이 더 적격일까요? 가을은 좀 아니고... 멀리서 보면 색감이 정말 끝내줘요. 드문드문 가로수로 있어도 그렇게 끝내주는데 자카란다가 서울 윤중로 벗꽃나무들처럼 있다고 생각해봐요! <미덕의 불운> 장바구니에 넣었어요. <피아노->는 한 번에 주욱 읽었는데, 너무 건조하게 읽었어요. 그러니까, 작품에 이입이, 그게 뭐였든, 전혀 안된 상태에서, 그래서?라는 토를 달고 계속 읽은 꼴. 그러니까 다 놓친거겠죠??? --; 이 페이퍼도 드문드문 위트! 아이님 위트!

아이리시스 2012-11-17 22:31   좋아요 0 | URL
아니 예전에 퍼플 웨이브 나왔을 때는 봄이 아니어서 그때 피는 꽃이라고 생각했다가 봄에 또 피길래 일 년내도록 피는건가 싶어서요(푸핫). 소나무인가;; 바보 인증--;

아이리시스 2012-11-17 22:38   좋아요 0 | URL
그럼 기다려주세요, 제가 올해 안에 <피아노->읽고나서ㅎㅎㅎㅎㅎ 비교문학을 한 번 해본 담에 댈러웨이님이 감정이입이 안되는 이유로 저 작품을 비판하는 레포트 쓸게요..(라고 거짓말한다..)

맥거핀 2012-11-18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는 잔혹함이나 외설적인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서 이 영화를 보게 되면 필시 실망하게 될 것 같은데 말이죠(라고 짐짓 3인칭으로 말해봅니다). 제 생각에도 (그런 것을 보기 위해서) 파졸리니의 작품을 보느니 책을 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이리시스 2012-11-19 02:18   좋아요 0 | URL
파졸리니는 저 영화 속 어떤 소년에게 촬영 후 살해당했다는 게 제일 충격적인 반전인 것 같아요. 의외로 벗고있어도 포르노적 느낌보다는 비위상한다는 느낌이 압도적인 영화여서 잔혹함이나 외설적인 것을 기대하면 말씀대로 실망이예요;; 그런데 저 이제는 밥을 잘 먹습니다..

저도 책이 더 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