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12.11.06

 

 

  이 책을 덮은 건 자정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무렵 즈음이었다. 아무도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나의 방에서, 나는 아무도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음량에 나의 심정을 한껏 실어 길게 발음했다.
  욕이다.
  굳이 쓰진 않겠다. -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은 못 되니.


  생각해보니 나의 심경을 대변해줄 발언이 소설에 있어 옮겨본다. 혹 이 누추한 공간을 찾아 나의 글을 읽어주는 이가 있다면, 밑의 구절 중 내가 어디를 밑줄 친 진한 서체로 쓰고자 했는지, 십분 헤아려줬으면 한다.


  “선생님들, 저는 배우지 못하고 아는 것도 없지만 그 어린게 얼마나 아팠을지, 얼마나 서럽고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하면 내가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그놈들 부자지를 잡아서 다 찢어버려도 속이 시원치가 않을 거예요.”


  230쪽부터는 좀처럼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예수는 이 세계에서 부활할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진리고 나발이고.’ 나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영화 보셨어요?”
  어머니께서는 흐릿하게 답하셨다.
  “소설로 읽었지. 그런데……”


  나는 이 여섯 개의 방점들로부터 나의 글을 열려고 한다. “부자지를 잡아서 다 찢어버릴 그놈들”을 서울광장 한복판에 세워두고자 하는 마음으로. 미간이 펴지질 않는다.
  <도가니>를 읽었다.

 

 

*    *    *

 

 

  지난 해, 수능 때 한 여고생이 자살했다. 뉴스가 나갔다. 사설도 반응했다. <한겨레>에는 청소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 결성을 촉구하는 한 대학생의 짧은 글이 올라왔다. 예전에도 이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지젝을 떠올리며, 속으로는 그게 사회 전체의 간곡한 연민의 눈길을 받을 만한 사건이 안 되는 현실이라는 점을 굳이 들춰냈다. 나는 대체로 회의론자였던 탓이다.


  토론과 연대의 힘을 못 믿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충분치 못한 규모이다. 수많은 이익집단들의 싸움 속에서 정의가 불특정다수를 위한 태양처럼만 보이는 것이 문제이다. 생각하기 싫으면 우리는 이 불특정다수를 편의상 ‘우리’라고 부르고 만다. 범인(凡人)들은 생각하는 지성, 실천하는 지성을 요구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생각하고 실천하며 베푸는 지성은 힘의 주변에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떨 때, 나는 차라리 이런 생각도 했었다. ‘대규모의 민란(民亂)이라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의 ‘적’은 - 만약 이렇게 불러도 된다면 - 멀리 있지 않다. 웹툰 <이웃사람>을 보다가 나는 작가 강풀이 우리사회의 ‘적의 정체’를 꿰뚫어봤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 극단적 픽션이 시쳇말로 “레알(real)”이었듯이 수많은 “픽션 같은 레알”들이 여기에 존재한다. 한 강의에서 들은 교수의 일침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SF소설은 성공하지 못할 거예요. 현실이 SF인데.”


  회의는 의외로 짙었고, 나는 아직도 나의 어딘가에 있는 방풍되지 않는 창문이 나를 시리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렇다. 우리가 비근하게 써서 별 의미도 없어진 이 부사 ‘그럴수록’, 이 단어를 도구로 삼아 더욱 연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강인호와 서유진에게 필요했던 것은 진정한 의미의, 어느 정도 힘을 가져 이씨 형제 측과 대등한 싸움을 해볼 수 있는 연대였다. 적어도 그런 의식은 필요했다. 연대는 분노해야 했다. 에셀이 우리에게 그러라고 했었다. 작년의 대유행이었던 슬로건. 분노하라. 하지만 이 용광로 같은 불길 속에서 우리는 제각각 버틸 만큼만 참는다. 그러다 제 형체가 훼손될 것 같다 싶으면 본능적으로 몸을 빼낸다. 데일 것 같으니까. 불사른 이들의 죽음과 그들이 토로하는 이 세계의 부조리만 살아남는다. 그것들은 시지포스의 바위처럼 불멸한다.


  이쪽이, 그러니까 ‘우리’가 정의롭다고 믿는 쪽이 분노한다면, 저쪽은 - 이강석, 이강복, 박보현, 윤자애, 황변호사, 교인들 - 증오한다. 이 감정의 차이는 크다. 한쪽에서는 “저 죽일 놈”이라고 한다. 다른 편에서는 그들이 정말 죽을 것 같으니까 궁지에 몰린 쥐처럼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며 칼날을 내민다. 비교해 봐도 강력한 건 후자이다. 소설에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가 나오는데, 그 중 ‘성냥’이 ‘우리’의 연대를 의미한다면 후자는 그걸 불어서 단숨에 꺼버리는 부조리의 생존력이다. 철학자들도, 어른들도, 그리고 나도 생각하건대 저 세 글자 ‘부조리’는 우리가 죽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예정된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서 사는 계획적이고 소시민적인 기쁨을 누리자는 결심”을 가졌던 강인호는 불멸의 세계로 뛰어들면서 이리저리 정신적 구타를 당한다. 정신을 못 차리니 ‘길거리의 미니스커트’들로부터 망측한 일도 당한다. 그에게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차마 말 못할 진실을 보는 것은 “듣는다는 것[聽]”을 의미한다. 그것이 엄청난 일일 줄이야. 서유진의 말마따나 이건 ‘광란의 도가니’이고, 이 나라는 ‘발정난 나라’이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 나라 아닌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그지 같은 줄은 몰랐어.” 우리는 상식을 앞에 세우고 청문회를 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상식에는 ‘거짓말’도 포함되어 있다. 장경사의 말이다.
  “사방에서 거짓말을 하며 서로서로 눈감아주고 있어요. ……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직도 정의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 한번만 눈감아 주면 다들 행복한데, 한두 명만 양보하면 - 그들은 이걸 양보라고 부르죠 - 세상이 다 조용한데, 그런데 당신은 지금 그들을 흔들고 있어요.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변화를 하자고 덤빈단 말이지요.”


  그렇다. 우리에게 ‘상식’이란 “이건 아니잖아.”라며 한 사건에 대해 우리가 증거로 내밀 수 있는 종류의 정의로운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변화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세상은 빠르다는데, 과연 우리는 얼마나 이 세상이 변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누군가가 그랬다. 여성운동은 여성이 시작했고, 노예해방운동은 노예들이, 제 3세계 운동은 제 3세계가, 그리고 학생운동은 학생들이 시작했다고. SNS와 Youtube 등 범세계적 매체를 통해 여기저기서 혁명이 성공하고 있다며 사람들은 고무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지금의 이집트를 보고 있으면 우리의 찬사가 너무 섣불렀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본다. 상식의 ‘오념(汚念)’을 바꿔보자고, 나는 서유진이 장경사에게,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진의 안개 낀 거리를 바라보며 분명하게 말한 구절을 들여다봤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변화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믿음. 이에 대항하는, 세상은 더러워도 나는 더러워지지 않겠다는 무변화(無變化)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 나는 굴원(屈原)이 떠올랐다. 어른들이 나에게 굴원의 어부처럼 말한다면 나는 과연 서유진처럼 답할 수 있을까. 세상에 대드는 것 같아 주변에서는 날 아니꼽게 보지 않을까. 그럴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바로 이거다. 남들이 날 튕겨낼 것 같으니까 되도록 노련하게 붙어있는 것이다.


  “저래서 배운 사람은 쓰면 안 돼.”
  나는 군대에서 한 원사에게 들은 말이 돌연 생각났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거짓말의 종류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배워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처럼 약삭빠르게 진실을 변호할 줄 알아야 한다. 안 그러면, 너무 착하면, 거짓말이 우리의 코를 눈뜬 사이에 베어갈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J.S.밀은 <자유론>에서 교육을 그토록 강조했다. 교육을 위해서라면 ‘선의의 독재’도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이 소설의 법정에서 농아들이 힘없이 떨어져 나가고, 어느 때에는 다섯 명이나 한꺼번에 구속되는 광경을 보면서 배운 자들의 권력과 그 음흉한 속내을 다시 한 번 혐오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게 되었다. 저들은 심지어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진실에 대해 예를 지키면서도 거짓말에 버금가는 악랄한 진실을 유포할 줄 알지 않던가.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그러나 위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진실의 편에 서려는 사람들이 견뎌야 하는 고독을 잠시나마 물릴 수 있는 ‘진실’이다.
  “언제나 공포는 상상할 때 더 크다.”


  침묵의 카르텔을 농아들의 어눌한 비명소리로는 깰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슬픔이다. 두 번째 슬픔은 더 슬픈데, 그것은 우리가 대체로 저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어쩌면, 이건 정말 조심스럽게 꺼낼 수밖에 없는 말인데, 이 사회가 다름 아닌 자애학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나의 침묵에 채찍질을 가해본다.

 

 

 

*    *    *

 

 

 

  오늘은 늦게까지 비가 오락가락했다. 천둥도 쳤고, 바람은 이따금 깜짝 놀랄 만치 차가웠다. 나는 <도가니>를 생각하며, 신촌을 지나 연대 앞에서 버스를 탔다.


  연신내 즈음에서 신호 때문에 버스가 멈췄고, 나는 창밖을 무심코 내려다봤다. 무진의 안개 같은 혼탁한 구정물이 도로 위에 고여 있었다. 오직 바다만이 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더러운 혼융의 세계를 청렴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비는 그치고 서쪽에서 강한 햇살이 들어와 그쪽 창가의 승객들은 하나둘 버스의 커튼을 쳤다.


  어쩌면 말이다. 지극(至極)할 수 없는 태양이 상식의 세계, 혹은 정의의 정토(淨土)이고, 우리는 그것의 광휘를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질문을 툭 던져봤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연둣빛의 아름다운 소설 표지를 바라보며 그 속에 들어 있는 도로 위 구정물 같은 세계에게 비명을 질러본다.


  너, 이 책 안에만 있어라. <도가니> 안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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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14: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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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14: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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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15: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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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2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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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5

 

 

  저번 주였다. 나는 강의들이 다 끝나고 잠시 이병주의 <소설·알렉산드리아>와 단편 <삐에로와 국화>를 읽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 들렀다. 대충 기억하자면, 대략 반시간 정도 집중해서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복사대 쪽에서 “복사해주시오!”라는 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서관의 정적은 얇은 얼음장이 박살나는 것처럼 깨져버렸다. 나는 깜짝 놀라 그곳을 내려다봤다. 주변의 학우들도 모두 그쪽을 보고 있었다. 하긴 도서관이라는 곳은 늘 조용하기 마련이니 옆 사람 기침소리에도 깜짝 놀라곤 하지 않던가. 잘은 모르나, 생각해보면 혹 귀가 안 좋으신 까닭인 듯도 했다. 공공의 예를 모르는 분은 전연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큰 목소리 덕분에 나를 비롯해 복사대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대화의 내용을 소상히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지만 사실 별 내용은 없었다. 내 복사 좀 맡기려 하는데 말이오. 책 페이지 말씀해주세요. 내 그러니깐, 여기 목차 다음부터 180페이지까지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얼마나 걸리겠소? 한 시간이면 되겠소? 내 여기 옆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복사가 다 되면 불러주시오. 예.


  10분도 안 됐을 것이다. 직원은 복사물을 가지고 할아버지를 부르러갔다가 할아버지와 함께 복사대로 돌아왔다. 할아버지께서는 복사가 빨리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하셨었는지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하셨다. 고맙소. 고맙소. 소낙비 같은 감사에 직원은 웃으며 멋쩍어했다.


  한바탕 ‘소란’은 그렇게 끝났다. 미소를 지으신 할아버지를 나는 잠시 바라봤고, 할아버지께서는 입구 반대편으로 걸어가셨다. 책 넘기는 소리, 기침소리, 도서관 ‘알바’들이 책 수거용 카트를 밀고 다니는 소리, ‘또각또각’하는 하이힐 소리가 전부였다.


  나는 그 광경을 곰곰이 복기했다. 이병주의 작품을 읽으면서 낙서했던 이면지 구석에 “할아버지. 고맙소. 복사. 공부.”라는 네 개의 단어들을 적어놓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한 시간이 넘게 나는 이따금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연로하신 분들의 ‘공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할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소중한 자료를 찾으셨기에, 우리 세대가 봤을 때에는 시쳇말로 거의 ‘오버’에 가깝게 고마움을 표현하셨을까. 집중해서 읽는다면 180페이지 정도야 반나절이면 정리하면서 읽을 수 있다. 무엇이었을까? 아니,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갑작스레 의미를 부여한 것은 할아버지에게서 볼 수 있었던 미소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런 질문이 나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공부를 하며 저런 미소를 지어본 적이 있었나?’


  몇 번 있었던 듯하다. 국문이 전공이지만 소질에 맞지 않아 미술사로 전향하겠노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언한 이후 나는 큰 희열들을 맛봤었다.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는 대체로 교양강의들이 나에게 배움의 기쁨을 줬다. 시간이 지나자, 전공에서도 이따금 무릎을 치는 순간들에 점차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 꼬여버렸던 실타래가 이런 모양으로 내 안에서 서서히 정렬되어가자 나는 할아버지의 미소로부터 그간의 쓰라린 경험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헛배우지 않고 있다는 모종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마음의 중심이 이동한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시험, 내기, 경쟁 같은 것에 영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이 대학의 내로라하는 소위 ‘머리’들의 성적이나 향후 목표 등등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기도 하거니와 잘 할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지향하는 바들이 나와는 때때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보다 나를 더 많이 자극하는 것은 바로 위의 할아버지, 아니면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도우미 학생의 보조를 받아야만 강의를 겨우겨우 들을 수 있는 전신지체 장애우 학생,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백발의 외국인 교수이다.


  그들에게서 나는 ‘대학(大學)’이라는 이 시대의 잊힌 단어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느낀다. 이 열정에 ‘순수’라는 점수로 어떤 등급을 매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가 가진 열정보다 그들의 열정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뒤지고 있다는 자괴감과 본받아야겠다는 긍정적인 충격은 말 그대로 손바닥과 손등의 차이인 듯하다.

 

 

 

*     *     *

 

 

 

 

  일산에는 ‘백마교’라는 다리가 있다. 그 밑으로 경의선이 지나간다. 이 다리는 출퇴근시간마다 차량소통이 많은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 주 목요일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였다. 백마교 사거리에서 내가 탄 921번 버스는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피곤을 쫓고 있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피요네(Fjordne)의 음악이었을 것이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여하튼 그때 마침 버스 옆에 서 있던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스멀스멀 감기던 눈이 떠진 건 내가 그 승용차 운전석에 탄 한 남자가 실내등을 밝게 켜고 무언가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깨알 같이 쓴 손글씨라 내용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때문인지 나는 관심이 갔다. 무엇을 읽는 것일까.


  직진 신호가 들어오자 남자는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하는 앞차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기어를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손글씨가 적힌 노트를 덮었다. 나는 그걸 봤다. 표지에는 - 아마도 매직으로 쓴 것 같은 - ‘잠언집’이라는 단어가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직진을 받아 백마교를 넘어갔고, 이어 좌회전을 받은 버스에서 나는 제 갈 길을 갔다.


  책 읽는 이라면 읽으면서도 “독서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게 된다. 답을 구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질문은 참으로 매력적이어서 독서의 일상에 자주 중지(pause)의 표지를 심어놓는다. 그 남자의 잠언집이 나에게 또 한 번의 중지명령을 내렸다.


  나는 중지의 표지판 앞에 서서 한참을 생각했다. 백마교에서 내가 내리는 곳까지는 대략 15분 정도 걸린다. 음악을 들으며, 마침 일산의 유명한 먹자골목인 ‘애니골’ 입구의 정체 때문에 5분 가량 가다서다 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읽는다.”라는 행위의 정체를 어떤 검은 베일 앞으로 끌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내가 끌어당기는 만큼 나의 다른 한 손은 그것을 다시 베일 뒤로 숨기려는 고집을 부렸다. 결국 나와의 대결이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그래서 이런 것인가 보다.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것. 한편으로 - 이제 곧 눈이 내릴 테니 잠깐 생각을 겨울에 닿아보건대 - 독서는 그 이름을 가진 설원에서 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하나의 커다란 눈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저마다 구른 방향에 따라 형체가 다를 것이다. 수많은 것들이 몸을 숨기거나 제 몸의 부피를 줄여나간다고 했을 때, 그러한 겨울의 한복판에서 독서는 우리의 몸집을 스스로 불려나가는 것이니 제아무리 시린 것이 삶이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풍성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심심한 위로를 여기에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번 주중은, 그런 까닭에, 이래저래 독서와 공부에 대해 뜻밖의 많은 생각을 해보고 나 스스로도 정신을 앙양시키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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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1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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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23: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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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9

 

※ 이 글은 김경수 교수님의 '현대소설론' 중 '법과 문학'이라는 테마의 수강을 위해 오늘 읽은 이병주의 작품 <소설·알렉산드리아>에 대한, A4용지 4장 분량 되는 나의 갈무리이다. [한길사]에서 펴낸 3쇄 2010년판을 읽었다. 조촐하지만 이 공간에 옮겨본다.

 

 

 

 

 

  그렇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면 사회의 미덕으로부터 응당한 선처를 바라지도, 법에게 처지를 호소하지도 않는다. 전자의 경우는 이 글에서 차지한다. 열풍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그것에 대한 ‘국내산’ 비판적 텍스트들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이 사회의 미덕에 대해 저마다의 정리를 해봤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후자의 경우인 법이 아쉽게도 미덕의 반영에 있어 허점을 보이는 탓이기도 하다. 법이 ‘우리’의 든든한 수호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 하나의 픽션인 법에 대해 분명한 잣대를 손에 쥘 필요가 있다.


  ‘법과 문학’이라는 면에서 내가 본 이병주(李炳注)의 「소설·알렉산드리아」에는 두 개의 법이 지배하는 무대가 등장한다. 하나는 - 나는 여기서 ‘안타깝게도’라는 부사를 써야겠는데 - 서울의 서대문 형무소이고, 다른 하나는 그 유명한 도시 알렉산드리아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 중 저 이집트의 유서 깊은 영광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내가 독서를 하며 한 가지 확신에 가까운 전제를 한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 ‘나’의 입장에 서 있을 것이라는 현실이었다. ‘나’는 누구였나? 관악기에 대해서는 도가 터서 소위 “피리만 불 수 있다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별 상관 않는 부류이다. 그런 ‘나’에게,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나’의 형이라는 이의 삶은 도통 이해될 수가 없다. 형의 삶은 시대를 분석하는 한편, 저자세와 소시민적 태도에 부단히 항거하는 사상적 삶이다. 그는 스스로를 ‘황제’라 부른다. 그러나 당당한 황제는 아니다.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았으니, 태양을 향해 오르다 보면 - 이상(李箱)의 「권태」 속 불나방처럼 - 정열이 그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었다. 남은 것은 황제로 지니고 있었던 영광. “궁전에서 나가라고 해도 나는 안 나가고 버틸 작정”이라니, 이거야 말로 대쪽의 정신이 아니던가.


  반면 ‘나’는 사상을 미워한다. 정(正)이냐 불(不)이냐의 판단이란 인간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기에, 보다 솔직한 인간이라면 “내겐 의견이 없다.”고 토로하는 부류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형의 삶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도 갖는다. “세상과 충돌했을 때 상하는 건 세상이 아니고 그 사상을 지닌 사람”이라는 한숨 섞인 고백에서는 형에게 보낸 안타까운 마음이 드러난다.


  죄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형의 죄에 대해 나는 빨리 속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소설의 배경(1965년 발표)을 고려하면 그 죄라는 것이 무엇일지 독자들은 대강 짐작할 것이다. 그 상세한 이유가 드러나 있는데, 한마디로 ‘종북(從北)’의 뉘앙스인 것이었다. ‘나’는 사상에 대해 일종의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형은 분명 잘못했고, 시인만 하면 될 것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반면 형은 그의 죄를 “세상에 나지 않아야 할 사람으로 태어난 죄”라고 이해한다. 그는 여전히 궁전 속에 있다. 나는 ‘나’와 형을 각각 즉자적/대자적 인물로 분석해보려고 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나’에게 반성이 없을까.


  줄거리로 돌아가 본다. 프랑스 선원 - 이병주는 프랑스어에 능통했다 - 인 말셀 가브리엘을 만나 ‘프린스 김’이라 불리게 된 ‘나’는 알렉산드리아로 가게 되었다. 그곳은 소위 ‘대사건’이 터지는 곳이다. 무대와 사건을 말하기 전에 잠시 ‘나’의 성향에 대해 조금의 고찰이 필요할 듯하다. 말셀과 나눈 대화가 ‘나’의 사람됨을 또 한 번 드러내기 때문이다. 말셀의 말 중에는 선원생활이 여자와의 관계에 도움을 준다며 ‘생명의 앙양(昻揚 : 정신이나 사기 따위를 드높이고 북돋움)’과 ‘생명의 파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무슨 말일까? (지극히 남성이 중심이 된 저급한 대화이긴 하지만 ‘여자’를 욕망에의 상징으로 놓고 보는 배려가 다소간 요구된다고 하겠다.)


  말셀이 들려준 ‘생명의 앙양’이란 이런 것이다. 그는 여자를 가장 좋아한다. ‘나’가 그럼 선원 일을 하지 말고 여자만 파지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말셀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여자만 파는 것은 ‘생명의 파멸’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나’를 애송이라고 부른다. 바다에 나가 정기를 받으며 여자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생기가 충족된 몸으로 육지에서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독서를 멈추고 ‘앙양’을 “원근의 능동적 조절과 그를 기초로 추구”로, ‘파멸’을 “일단의 부단한 일차원적 추구”로 이해하면서 나의 삶에도 명백히 대입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냐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말 그대로의 육욕이든, 아니면 성공에 대한 욕구이든, 무슨 욕구이든 간에. 얼마간 나는 책을 못 읽었다.


  여하튼 다시 돌아와 내가 본 ‘나’의 성격이란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몰두하는 경향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병주가 ‘암묵의 의사’라 표현한 것은 다름 아닌 알렉산드리아의 퇴폐적인 육욕일 것인데, 다양한 형태의 육욕들로부터 번롱당하기 싫어한다는 ‘나’의 고백은 앙양이든 파멸이든 그러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소위 아마추어 수준의 금욕주의를 상상케 하는 것이다. 실제 이병주가 그린 알렉산드리아는 그로테스크한 성(性)의 도시, 관능의 바다 속 그 자체이다. 사상에 대해서도 의견이 없었으니, 욕(慾)에 대해서도 함구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로지 그는 ‘피리’만을 부는 사람이었고, 그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나’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마지막까지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 ‘나’는 카바레 안드로메다의 여왕 사라 엔젤을 만난다. 그녀는 흡사 레비나스가 <시간과 타자>에서 말한 미래로서의 여성성을 연상케 했다. 육욕으로부터 신성에 이르기까지, 동양철학적 표현대로라면 그야말로 ‘지극(至極)’할 수 없는 존재. 그런 그녀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고, ‘나’는 훌륭한 플롯 연주실력 덕분에 그녀와 가까워져 그것을 알게 된다. 사라는 게르니카가 고향이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아는 이라면 그녀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금방 눈치 챌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꿈꾸는 ‘복수’라는 것의 정체도.


  ‘나’는 사라에게 형이 보낸 일곱 통의 편지를 보여준다. 형의 세계관이 농축되어 있는 편지들이라 나는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편지에서는 앞서 말한 이카로스의 날개가 등장한다. 그런데 두 번째 편지로 형은 그래도 황제의 고적한 품위는 지킬 수밖에 없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는 다음 편지에 나온다. “강력한 유혹력 없는 금지란 무의미하다.”라면서 그는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금지규정이 있어 지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요컨대 자유가 우리를 지치게 한다는 논조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대문 형무소에서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랬으면 하는 뉘앙스를 내비치지만 그는 항거정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곳에 나가 짐을 지고 가는 이의 공간적 자유를 누릴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이다.


  다섯 번째 편지에는 “권력은 보잘것없는 책략”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지배계급의 먹이”라는 표현도 있다. 상부에 대한 경멸적 시선이 확인가능하다. 그러한 상부는 여섯 번째 편지에서 애도한 케네디의 “선명하고 진취성 있는 비전”과 대조된다. 그러다가 ‘나’가 사라에게 읽어준 마지막 편지에서 형의 목소리가 갑자기 수그러든다. ‘나’는 검열을 통과해야 편지가 발송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사라에게 형은 여전히 항거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들려준다. 하지만 형은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 그것은 소설 말미에서 확인된다.


  이제 그가 등장한다. 한스 셀러. 이 독일인의 등장에서부터 소설은 빠르게 진행된다. 그에게도 비밀이 있다. 동생 요한이 유태인 소년을 숨겨줬다는 죄목 때문에 게슈타포 앞잡이인 ‘엔드레드’라는 독일인에게 고문을 당하다가 두개골이 함몰되어 죽은 것이었다. 한스와 요한의 어머니는 한스에게 복수의 유언을 남겼고, 한스는 유럽에서부터 일본 등지를 떠돌면서 엔드레드를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곧 독자들은 이후의 스토리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병주는 한스와 사라를 이어준다. ‘나’가 그 중재자가 되었고, 그리하여 ‘나’는 한스와 사라가 계획한 대사건의 중심부로 휘말려 들어간다. 그것은 엔드레드를 카바레 안드로메다의 15층 퀸즈룸으로 오게 해서 어떻게든 복수하겠다는 것이었다.


  계획은 성공한다. 그러나 나는 ‘성공’이라 표현하기가 조금 머뭇거려진다. 한스는 총을 꺼내든 엔드레드에게 정당방위를 하고자 테이블을 엎었고, 그 바람에 엔드레드는 뒤로 나자빠졌다. 그 순간 후두부를 땅에 세게 박아 죽었고, 그런 엔드레드의 어깨를 사라의 총에서 발포된 총탄이 뚫고 지나갔다. 한스는 살의를 가졌다고 진술했고, 사라는 한스에게는 살의가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건 복수였을까? 이건 살인이었을까? 알렉산드리아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이 부분에 이어 이병주는 곧바로 형의 또 다른 편지 한 통을 보여준다. 그것은 13인이 들어가면 12인만 나온다는 문, 즉 사형장으로 통하는 문에 대한 형의 이야기이다. 편지의 내용은 분명하다.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배려’사형제 - 사형수에게 부모가 있다면 사형수는 그 부모가 자연사 한 후에 사형당해야 한다는 것 - 가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면서 사형폐지론의 오래된 역사를 언급하며 근대형법학의 선구자인 체사레 베카리아 - 유럽의 법을 종교로부터 해방시킨 인물 - 의 이름을 적는다. 출옥하면 사형폐지운동을 하겠다는 의사도 분명하게 들어난다.


  그리고 ‘예수’, ‘부활’, ‘마리아’ 등 앞선 편지에서 드러난 생각의 상징이 다음 편지에 이어지며 니체를 등장시킨다. 니체로부터 그는 “항거하라!”라는 이 시대의 발칙한 슬로건을 도출한다. 형의 편지가 알렉산드리아 일심 판결에 앞서 이 소설에 삽입된 것은 이병주의 다분한 의도이기도 하겠거니와 그 의미가 특별하다.


  알렉산드리아의 시민들을 열광케 한 것은 사라와 한스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라는 자신의 발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행위였으며, 모든 계획은 자신이 세웠고, 한스에게는 살의도, 살인행위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한스는 사라의 총격으로는 엔드레드가 죽지 않았고, 자신에게 살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을 움직였다. ‘이 얼마나 위대한 희생정신이란 말인가!’ 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알렉산드리아 데일리 미러》의 사설과 《알렉산드리아 가제트》의 사설은 각각 의미가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복수는 깨어 있는 의식”이지만 악순환이 우려되니 용납할 수는 없다면서 알렉산드리아 법정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참작될 만한 동기가 있으니 고려하라는 중립적인 어조로 마무리된다. 후자의 사설은 훨씬 급진적이고 열정적이다. 법률이 징치하지 못하는 개인의 원한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 그 글은 테러가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드리아 데일리 미러》에서 ‘딜레마’라 표현한 그것은 테러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검사의 논고, 변호인 A와 변호인 B의 변론이 이어진다. 이들의 논고와 변론은 우리가 예상하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우리는 이미 이병주의 의도 안에 들어와 있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검사는 참작해서 징역 15년을 선고해달라고 요구한다. 시 사직당국이 나치, 게슈타포, 게르니카 등 국제 사건에 관여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것이다. 반면, 변호인 A는 거의 《알렉산드리아 가제트》의 어조로 “불법이지만 정당한 일”의 동기를 고려해야 한다고 변호한다. 변호인 B는 A의 열정적 변호에 이어 구체적 분석을 내놓아 한스의 행위는 정당방위이며 사라는 시체에게 총을 쏜 것이라 둘은 무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언급한다.


  이후 판결은 내려졌다. 한 달 이내로 알렉산드리아에서 퇴거. 그러나 판결문의 마지막 문장은 독자들에게 큰 질문거리를 준다.
  “이 결정은 판결이 아니므로 판결로써 취급하지 않는다.”


  사라와 한스는 뉴질랜드 인근의 섬을 사서 그곳에서 살겠다며 ‘나’와 형을 초대한다. 그러나 형의 편지를 마지막으로 읽어줄 때, 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형은 편지에서 지쳐가고 있었다. 형의 이 인용구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알렉산드리아의 법과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형을 가둔 법’은 얼마나 다른가 말이다.


  “희망은 무한하다. 그러나 나는 글러먹었다.” -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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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0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31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11-02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병주를 읽는 탕기님 멋져요! 국문학도의 국문학 리뷰의 정수 같은데요. 5년 전인가 이병주 전집읽기 시도했었는데 반갑기도 하고.. 물론 다 못읽었고 지금은 읽은 것마저도 기억에 없지만.. 저는 그때 엄청 장편들만 봤는데.. 이 분 소설 보면 자꾸 카잔차키스 생각이 나요. 너무 많고 너무 방대하고 너무 다양해서요.

재밌을 것 같아서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요^^ (근데 담으려는데 책이 없;;)

탕기 2012-11-02 21:12   좋아요 0 | URL
저는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셔서, 이번 방학 때에 조금씩 <관부연락선(1,2권)> 읽어보려구요. 사실 방학 이용해서 카뮈/위화 읽기 하려고 했는데, 교수님 왈 "일단 읽어보세요. 아마 손을 놓치 못할 거에요."라고 하셔서요.^^

나름 방학독서계획 세워놨는데, 벌써 기대되고 설레요.ㅠㅠ
모옌도 한 번 읽어보고 싶고, <호빗> 개봉 겸 톨킨 3부작(반지제왕,호빗,후린의 아이들) 리뷰도 쓰고 싶고, 움베르토 에코 <미의 역사>도 다시 공부해보고 싶고, J.S.밀 <여성의 종속>, 에리히 프롬... 빨리 학기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ㅠ

아이리시스 2012-11-08 20:13   좋아요 0 | URL
탕기님 호빗 예전부터 좋아했잖아요, 그게 기억에 남아있어요. 좋아한 게 아니라 호빗이 종종 등장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기억하나봐요. 빨리 학기가 끝났으면 저도 좋겠습니다.ㅠ

지금 모옌 지르고 있어요!
 
추의 역사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2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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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4

 

 

  태어난 지 얼마나 되었고, 지금까지 얼마나 공부했고, 또한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를 논하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내가 무슨 자신을 부릴 수 있을까. 양(量)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러니 나는 언제나 내가 넓혀가는 ‘나’의 영토의 경계에 서서 늘 변화하는 최대치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나 스스로를 변호할 수단으로 삼아보고 말하건대, 움베르토 에코의 <추의 역사>는 바로 이 순간까지 내가 읽었던 여러 책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다.


  읽고 난 후의 애착이 아니다. 읽을 때의 애착을 나는 일일이 기록했었다. 짧은 챕터는 3장 정도이다. 원문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도판이거나 참조할 구절들의 나열이다. 에코 자신도 추의 사례들을 주로 제시만 했다. (그래서 이따금 나오는 분석들이 중요하다.) 여러 사례들 사이를 앞뒤로 연결하며 독자들은 스스로 아라크네가 되어야만 한다.


  어려운 책이다. 바꿔 말하자면 세세하게 공부하려고 접할 수 있는 책으로는 아주 매력적이다. 그가 예시로 소개한 수많은 사례들만 놓고 보더라도, <미의 역사>와 비교했을 때 이 책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단언할 수 없다. 나는 그 가치를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들로 음미하기 위해 한 챕터를 나의 글로 10~13장 정도 늘여 쓰고, 또 다른 도판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연구하는 즐거운 강행군을 감행했었다. (내가 지난 <케테 콜비츠> 리뷰에 적었던, 미술사 공부할 적 세세한 것들에 열광했다고 한 시기가 바로 <추의 역사>를 읽던 때였다. 나는 디테일들을 아침 삼아 먹곤 했었다.)


  몇몇 독자들은 앞에서부터 몇 장 넘기다가 루벤스의 메두사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잘려나간 메두사의 머리 주변에 미꾸라지와 거미 등이 있는 것도 그러하고, 눈을 아래로 무섭게 뜨고 있는 그녀의 표정도 점점 익숙해지다가 유치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자극으로부터의 적응은 의외로 빠르다. 나는 현대미술을 공부할 무렵에 지금 생각해도 역겹기 그지없는 작품들을 여러 개 본 적이 있는데, 다시 보면 별 것 아닌 미미한 자극만 받을 뿐이다.


  한창 미술블로그를 할 때, 나는 <추의 역사>를 나의 글로 편집하고 에코의 관점과 사례들을 보다 자세하게, 그리고 내가 찾은 다른 예시들과 함께 소개하는 포스팅을 10회 정도 했었다. 나는 매번 포스팅 위에 “비위가 좋지 않은 분은 읽지 마세요.”라는 빨간색 경고문을 썼었다. 내가 그 전까지 올리던 포스팅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글을 읽는 이웃블로거들과 누리꾼들은 이내 적응했다. 어느 미술팬은 별다른 자극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었다. 그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감정일 것이다. 온갖 것들에 노출된 적이 있을 현대인들은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를 보고 깜짝 놀라 뒤로 놀라 넘어졌다는 - 이는 바사리의 기록인데, 과장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물론 바사리는 소위 ‘뻥튀기’를 즐겨 쓴 전기작가이자 화가이지만 - 일화의 주인공이 되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추’라는 것은 달가운, 혹은 친근한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어떤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위치란 안방보다는 화장실, 세면대보다는 변기 근처일 것이다. 비유가 조금 단순했으나, 다들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 비근함이란 우리가 그것을 대했을 때, 자극의 세기가 어찌 되었든 간에 거의 일차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거나 시선을 다소간 회피하려고 하는 추의 핵심을 관통한다. 의식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추는 극복될 수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편리한 기술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추가 돌연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충분히 비명을 지를 수 있다.


  움베르토의 이 책은 앞서 말한 것처럼 수없이 나열된 도판들을 하나둘 넘겨보는 것으로도 그 가치가 있다. 뭔가 보는 걸 좋아하는데, 미술사는 잘 모르겠는 독자라면 먼저 도판들을 쭉 살펴보는 것을 권한다. 그러다가 문득 “도대체 이것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왜 이것들 앞에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갖게 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면 그/그녀는 움베르토의 서문을 천천히 읽어보고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독서란 그런 것이 아닌가. 질문을 던져 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건 질문한 자의 예의도 아닐 것이고. 그렇게 오랜 여정을 움베르토가 만든 길 위에서 보내다 보면 그 수많았던 추가 한순간 모든 시선을 나 자신에게 소급시켜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추를 바라보고 있는 나’이다. 나와 ‘그것’ 사이의 거리이다. 저마다 다른 형태의 추들이 나와 갖는 관계이다. 움베르토의 말마따나 아프리카의 제의용 가면은 우리의 눈에 섬뜩하게 보일 것이다. 11페이지를 보라. 아프리카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라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불길하다는 생각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대적 차이는 우리들이 이미 시대정신으로 다 체득한 상대주의의 산물이다. “너와 나는 달라.”에서 나오는 인식 말이다. 굳이 이를 위해 추를 예로 삼지 않아도 된다. 미술비평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인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부시맨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예도 있다.


  경계는 이미, 한참 전에 애매해졌다. 무엇이 미(美)이고, 무엇이 추(醜)인가. 안이한 직관주의로 보자면 대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아름답고, 데미언 허스트의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가능성>은 추하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구체적인 대상들을 그저 콕콕 언급한 것일 뿐이다. 문제는 판단의 경계이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미와 추의 분할을 시작하는가? 움베르토의 이 질문은 어떤가?


  “추를 미의 반대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움베르토가 제시한 역사적 사례들을 쭉 살펴보면서 더러는 계보학의 형사가 된 듯한 착각을 통해 쾌락을, 더러는 자세한 사실들을 알아간다는 쾌락을 느끼겠지만 그러한 이해 속에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날의 ‘나’가 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니, 굳이 ‘추’ 하나만 관계 지을 필요는 없다. 미든 추든 상관없다. 이 둘을 ‘대조적 모델’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혹은 우리가 이 둘을 어느 위치에 놓은 것일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질문에 우리는 꽤 쉽게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그것은 아마 움베르토의 이 말과 같을 것이다. 426페이지이다.


  “오늘날 우리가 서로 대조적인 모델들과 공존하는 것은 미/추의 대립이 더 이상 어떤 미학적 가치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와 추가 중립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 두 가지의 가능한 선택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많은 젊은이들의 행위로 확인된다. 영화, 텔레비전, 잡지, 광고, 패션 등은 모두가 고대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미의 모델들을 제시하고, 우리는 르네상스 화가가 그린 브래드 피트, 섀런 스톤, 조지 클루니, 니콜 키드먼의 얼굴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이상들(미적으로든 성적으로든)과 일체감을 느끼는 바로 그 젊은이들이 른네상스 시대 사람들이 혐오스럽다고 여겼을 외모의 록 가수를 보고 미칠 듯이 환호하기도 한다. …… 매릴린 맨슨과 닮아 보이기 위해 종종 화장을 하고 문신을 하며, 핀으로 살을 뚫고 피어싱을 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움베르토의 생각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르네상스적이다.”라고 선언할 수도 있다. 미/추의 중립성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히려 낯선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 특성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중립성이 혹시 별다른 생각 없이 나온 것이라면 미/추에 붙어 있었던 고전적 의미의 도덕 가치들은 말 그대로 “별다른 생각 없이” 그 의미들을 잃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상실이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미/추를 구분하려고 하는 ‘나’의 애매모호한 판단에 푹 빠져 있다가도 다시 추의 본질적 특성으로 회귀하게 된다. 책의 순서상으로도 자연스럽다. 마지막 챕터에 움베르토는 그가 하고자 한 말의 핵심을 실었다. 그의 질문은 이것이다. 왜 예술은 추에 집착했었는가? 그리고 집착하고 있는가? 그는 예술의 힘이 일상의 판단에 비하면 주변적일 수도 있음을 토로하면서도 예술의 집요를 “이 세계에는 냉엄하고 슬프게도 악한 어떤 것이 있음을” 상기시키려는 시도라고 판단했다.


  추가 ‘불쾌감’, ‘혐오감’, ‘두려움’과 연결되는 것은 그렇게 인간이 문화적으로 학습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일그러지는 무언가, 2개가 아닌 3개의 눈, 폭발하는 물체의 징그러운 파편들은 모두 우리와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우리의 일상성을 위협한다. 그것은 비극과 궁극적으로 닿아 있다. 우리가 추도 학습인 것처럼 생각하는 까닭은 예술로 표현된 추의 구체적 대상들이 문화,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와 종교의 ‘적(敵)’과 다분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대상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드러나는 양상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추하다. 연민과 애착이 생기더라도 그건 부차적인 이해이다.


  다시 돌아가 보건대, 추는 ‘저기’에 있다. 내가 그것을 ‘여기’로 끌고 온다고 하더라도 내가 끌고 온 것은 추가 아니라 추를 바라보는 ‘나’에 지나지 않는다. 만족은 대부분 착각에서 온다고 하더라. 이 책을 읽은 지 2년이 다 되가는데, 나는 “나는 추를 이해했어.”라고 생각하던 옛 착각을 상당 부분 지워가고 있다. 이미 많이 지웠다. 다시금 이 책의 도판들을 보며 하나씩 회상에 잠겨보는데, 그것들은 모두 낯설어졌고, 모두 추했다. 나와 ‘그것’ 사이의 거리는 멀어졌다. 그 거리는 원래 먼 것이었다. 결국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추를 이해하고 그것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것은 실은 <추의 역사>에 대한 나의 오마주였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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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4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4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범우사상신서 9
E.H.CARR 지음, 김승일 옮김 / 범우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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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2.10.20

 

 

  많든 적든 우리는 누구다 한 번 쯤은 스스로 역사가가 되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나는 미술사를 공부할 때 그러했다. 카라바조를 좋아하는 나는 그와 나란히 두고 공부할 만한 화가로 렘브란트를 삼아 삶을 추적해본 일이 있었다. 그렇게 여러 외국 사이트들을 검색하며 도판을 확인하고, 국내 서적들과 논문들을 참조하여 정보들을 모은 뒤, 나는 2년 전 이런 글을 썼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본다.


  “어렸을 때, 렘브란트는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 레이던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그는 14세에 대학교를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당시 레이던에서 활동하던 역사화 화가인 야콥(Jacob van Swanenburgh)에게서 그림을 3년 동안 배웠지만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화가는 야콥보다 더 유명했던 피터르 라스트만(Pieter Lastman)이었다. 라스트만이 중요한 이유는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직접적인 연결, 즉 키아로스쿠로 부분에 있어서 가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는 이탈리아 유학을 간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유럽에 가본 적도 없다. 반면, 라스트만은 로마를 직접 방문한 유학파 중 한 명이었고, 당시 큰 인기를 누리던 카라바조와 엘스하이머의 키아로스쿠로 작품들을 보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었다. 라스트만에게서 6개월을 수학한 그는 그 무렵 카라바조의 독특한 스타일에 대해서 충분히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작품을 만족할 만큼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피터르에게 주목한 까닭은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명암(明暗)의 강렬한 대비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라스트만에게 반 년 동안 공부한 렘브란트가 카라바조를 알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렇게 사실들을 통해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지극히 초보적인 과정에서도 나는 상당한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이러한 희열에 중독되다보니, 나는 점점 세세한 정보들에 집착하게 되었다. 어떤 때에는 그러한 집착이 예술정신에 가까이 다가가는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보다 더 파고 들어간다는 일종의 - 그에 훨씬 못 미치겠으나 - ‘학자적 정신’ 때문에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현기증을 느끼게 되었다. 회의가 찾아왔고, 결국 나는 작품에 대한 ‘학문’을 잠시 내려놓고 예전의 작품 ‘감상’으로 돌아갔다.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1961)>를 읽는 중 내가 책의 첫 머리서부터 ‘움찔’했던 까닭은 위의 경험 때문이었다.

 

 

*     *     *

 

 

  에드워드는 역사가들이 무엇을 역사로 다루는가에 대해 우선 언급하면서 한 부류의 역사가들을 비판한다. 사실 그냥 역사가가 아니라 “사이비 역사가”라고 비난했다.
  “무미건조한 사실을 기초로 한 역사와 사실의 바다 속에 흔적도 없이 가라앉아 버릴 하찮은 사실들을 더 많이 아는 것으로 자긍심을 느끼는 사이비 역사가들에 의해 세분화된 전문성의 논문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찮은 사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리 모아도 지나침이 없다.”는 일종의 지적 신앙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는 나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에드워드에 따르면 역사는 지나치게 많이 모아진 사실들의 총체가 아니다. 그는 계속 강조한다. 약간 나의 식으로 가미하자면,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선택된 사실들을 재료로 삼은 일종의 요리이다. 레시피와 역사가의 ‘손맛’에 따라 역사는 달라진다.


  나는 최근 한 교수에게 장자(莊子)를 배우고 있다. 스케일이 크고, 생각의 전환이 잦은 도가(道家)의 사상에 나는 자주 무릎을 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소위 ‘장자적 깨달음’ 외에 교수의 여러 코멘트들에 집중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편집자’에 대한 것이었다.


  장자는 그와 대척되는 공자[仲尼]를 빌려 와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하는 방식을 즐겨 썼다. 다시 말해 그 책의 ‘공자왈’이라는 걸 공자가 진짜 한 말이라고 여겨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책은 편집된 지식의 장이다. 곧이곧대로 수용하면 그것을 진정한 독서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그건 그저 ‘생각 감상’일 것이다. 나는 진정한 독서라는 것은 ‘편집’의 실체를 늘 인식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에드워드가 말하는 역사에 대해서도 우리는 위의 생각을 동일하게 해볼 수 있다. 역사는 어떻게 편집될까? 역사는 과거의 일들을 오늘날의 우리가 봤을 때, 그 때 ‘과거의 일들’에게 붙여지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에드워드의 저 유명한 말이 등장한 것이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제 1장의 마무리에 있는 문장 중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경구로 독립된 저 말의 실제 원문은 이렇다.
  “It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내가 본 김승일氏의 1996년 범우사 판 번역본은 이렇게 옮기고 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저 ‘대화’를 우리들이 나누는 일상적 대화와는 별개의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편집자의 가상적 대화일 뿐이다. 우리가 스스로 과거의 사실들과 대화하고자 한다면, 만약 그런 노력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역사가들과 다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대화’가 무엇에 기초해야 하냐는 것이다. 저마다의 기준으로 역사를 쓴다면 그건 그야말로 상대주의의 덫에 빠져 타인의 콧김을 맞을 뿐일 외톨이 신세가 될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이 경우는 회의주의로 발전된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는 본래 관점의 차이 탓에 상대성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닐 수밖에 없다.) 에드워드가 말하는 위대한 역사란 이런 것이다.
  “과거에 대한 역사가들의 전망이 현재의 문제에 대한 통찰에 기초하여 조명될 때에 위대한 역사는 쓰입니다.”


  에드워드가 인용한 부르크하르트의 말도 분명하게 드러내는 바가 있다.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이다.”

  역사가도 여러 사건들처럼, 하이데거의 표현을 잠깐 빌리자면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길 위[道上]에 있다. 이 통찰에는 시대에 대한 감수성과 과거에 대한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사실만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위대한 역사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사실을 통해 일반적인 가치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가치들 말이다. ‘역사’라는 매개체를 상정한다면 역사가와 그의 책을 읽는 독자는 일반화된 가치를 서로에게 적용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피치 못하는 일이다. 언어 자체가 과학의 논증처럼 우리의 일상을 일반화시키지 않던가 말이다. 에드워드도 일반화 위에서만 역사가 자랄 수 있다고 확언했다.


  3장에서 에드워드는 역사가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개념 중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신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의 문제이다. (그 밖의 여러 문제들도 언급되어 있다. 가령, 사회학과의 관계, 교훈, 예측, 주/객의 문제 등이다.) 에드워드는 역사가와 신의 관계를 이렇게 요약했다.
  “역사가란 자기 문제를 신의 조화력 따위에 의지하지 않고 풀어나가야 하며, 그리고 역사란 말하자면 조커 없이 노는 트럼프 놀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역사가는 재판관이 아니다.”는 소제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선악의 가치판단은 역사가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크로체의 인용문이다.
  “역사 이야기를 한다는 구실로, 마치 재판관처럼 한 쪽을 향해서는 죄를 묻고, 다른 편을 향해서는 무죄를 선고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 일반적으로 역사적 감각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주, 아베 신조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에 격분하는 까닭은 우리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있으며, 그것은 식민지 시대로부터 60여 년은 더 떨어진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통념은 에드워드의 “카를 대제와 나폴레옹의 죄를 규탄한다고 해서 누가 어떤 이득을 거둘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충분히 대답할 ‘의지’를 갖고 있다.


  에드워드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한 까닭은 특정 인물에게 도덕적 판단을 집중하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 인물에게 동조한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부도덕성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개인에 대한 찬양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역사 판단이 어렵다는 것을 에드워드는 공업화의 예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진보를 억제하고 공업화를 하지 않았던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주장할 사람은 없다. 내가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읽고 상당부분 수긍하면서도 결국에는 공감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주장한 역행(逆行) 때문이다. 메트로폴리스들을 없애고 농촌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과 자연을 위해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대부분이 동조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사에는 어떤 흐름들이 있고, 그 흐름이 불가피한 희생을 동반하면서도 막대한 이득을 준다면 - 희생의 입장에서는 분노할 것이지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득을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이를 인정한다.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이 이익을 얻는 사람과 일치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그리고 ‘기분 나쁠 정도로 적절한’ 엥겔스의 인용문도 언급한다.
  “유감스럽게도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는 매우 어리석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난에 견딜 수 없을 때까지는 진정한 진보를 위하여 용기를 북돋우려고 하지 않는다.”


  역사 판단은 이처럼 어렵기 때문에 역사가들에게는 가치중립의 어려운 사고가 요구된다. 이 사고는 일반인들이 ‘절대 가치’라고 믿는 평등, 자유, 정의 등이 시대별․대륙별로 다르다는 기본 이해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에드워드가 말하는 진정한 역사가란 “모든 가치의 역사적 피제약성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역사 판단은 - 당연하게도 - 인과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은 “불가피한”, “면할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면할 방법이 없는” 등의 말은 사용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표현은 흔히 말하는 ‘운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인과관계가 강했다는 것일 테지만 에드워드는 과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역사가가 우연을 쫓으면 안 된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우연이 한참 유행했을 때를 살펴보면 그 시대는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실존주의 영향으로, 혹은 국력이 꺾여 역사에 대한 ‘자신감’이 실추된 상황으로 그 공통점이 모아진다. 이런 때에 역사가들의 정신은 - 에드워드에 따르면 - ‘파산’된다. 우연을 믿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고, 그는 톨스토이로부터도 변호를 받는다.


  예컨대 조조(曹操)가 영화 <적벽대전>에서처럼 한 여인에게 반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 물론 책에 언급된 ‘클레오파트라의 코’와 마찬가지인 경우이겠지만 - 역사가들이 보기에 전혀 일반적인 명제가 아니다. 그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만이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고, 이렇게 구축된 일반적인 명제들은 그들이 “왜?”와 동시에 “어디로?”라는 미래지향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해준다.


  제 5장에서 에드워드는 사회적 진보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풀어준다. 사람들은 의외로 진보와 진화의 차이를 모른다. 사전적 의미만 보더라도 진보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이라는 뜻이고, 진화는 “생물이 생명의 기원 이후부터 점진적으로 변해 가는 현상.”, 혹은 “일이나 사물 따위가 점점 발달하여 감.”이라는 뜻이다. 사회가 ‘진화’하려면 ‘사회’라는 것에 DNA의 유전형질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최선의 방식을 찾으려는 생존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진보’하는 것이다. 이전 세대에서 획득된 기술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진보가 있어야 인간 역사의 지속, 그리고 시국의 타개 등을 모색해볼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그가 제 1장에서 미리 언급했던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인 역사가 과거와 미래와의 대화로 확장된다. 그는 이 대화, 즉 역사가들의 객관적인 해석이 시대가 지날수록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에드워드는 부제 그대로 지평선이 넓혀지면서 우리의 역사가 현대 이전과 비교했을 때 큰 진전을 보인다고 역설한다. 이 책이 1961년에 나왔다는 것을 고려하자. 그는 세계의 판이 새로 형성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공업화와 교육 보급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대영제국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영국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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