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3

 

  “저 요즘 바빠요.”라는 핑계는 아마도 자만에서 나오는 넋두리일 것이다. 그 핑계를 명함처럼 내밀며, 이러저러한 연유로 근래 들어 책 읽을 시간도 없었다는 것은, 더군다나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사람을 그릇에 비유한 고사(古事)가 매우 적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뭘 담든 제 무게보다 많이 나가서 흡사 ‘고봉’이 얹힌 밥그릇이 되어도 중량의 고통을 견디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나처럼 제 몸 안의 물이 조금만 찰랑거려도 “넘치겠다!”며 투덜대는 소인도 있다. 제련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매일을 되도록 버텨가고 있지만 어떤 때에는 나의 역량이 한참 부족함을 깊게 채근한다. 틀리지 않는 직감이다.


  학기 중이다보니, 글은 많이 읽는다. 다독(多讀)인의 독서량에 버금가기야 하겠냐마는 적어도 쉬운 글은 안 읽으니, 이따금 독서를 통해 통증도 경험한다. 심오한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공을 초월하는 느낌도 든다. 이윽고 허무감이 찾아오고, 그것을 조원들과 토론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연이어 문을 두드린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던데, 학자들도 혀를 내두르는 종교와 철학적 문제들을 앞에 두고 있으면 용어들이 벌써 나에게 “굴종하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조금 과한 표현이었지만 나의 것이 아닌 한 전공자의 넋두리를 옮긴 것이다. 비전공자인 나와 조원들은 근래 들어 부쩍 집중력이 떨어졌다.


  속으로 자주 생각한다. 이런 집중의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미술사와 미학에게 투자한다면 나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논문을 섭렵했을 것이고, 벌써 큰 틀을 잡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오만이다. 좋아하는 것에는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소인배의 생각이기도 하다. 상황이 사람을 이렇게도 비굴하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예전에도 한 말이지만, 내가 존경하는 이가 최근 들어 바뀌었다. 아니, ‘이들’이라 해야 옳겠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데, 별 투정 없이 꿋꿋하게 해나가는 사람들. 이전까지의 나는 일상을 비범하게 보내고, 틀을 깨며,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인이라 여겨 거의 숭배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전자의 사람들이라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후자에게는 특별한 기회와 운도 따르고, 일반적으로 그럴 여건이 충분히 주어지기도 한다. 아니면 정말 뛰어난 인물인 경우일 것이다. 그들만 바라보던 시각이 나의 주변으로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면, 어른들이 말하는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이리라. 어른이라 불려도 무관한 나이인데도 여전히 들어야 할 철은 많고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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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오랜 만의 일탈이다. 해야 할 일들을 잠시 접어두고, 나름의 사치를 누리고 있다. 일상이 추슬러지는 기분이다. 환기도 시킬 겸, 잠시 임영방氏의 <중세미술과 도상>의 앞부분을 가볍게 읽어봤다. 호주 시드니에서 잠시 어학연수를 했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주중에는 아침마다 breakfast를 먹었다. 빵과 잼, 그리고 우유나 커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먹긴 하나보다 생각했다. 시내에 나가 차이나타운을 지날라치면 그 매콤하고도 느끼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기도 했으니. 그러다 주말이 되면 김치와 김밥을 먹었다. 나에게 근래 들어 미술책은 ‘김치와 김밥’인 셈이 되었다. 읽어본 책들의 커버를 스윽 훑어보거나 괜히 손으로 만져보면 “많이 배우고 있어도 허한 머리”에 양분이 가득 차는 기분이다. 무슨 말인지, 이 글을 읽는 몇 안 되는 이들은 분명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런 책들, 곁에 몇 권씩 끼고 있을 테니까.

 

 

 

 

 

 

 

 

 

 

 

 

 

 

 

 

 


  간만에 이곳의 장바구니를 들여다봤다. 5권이 있기에, “예전에 무슨 책을 리스트에 올려놨었지?”, 궁금하여 마치 오래된 일기를 펼쳐보듯 봤는데, 아,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파농의 책이 두 권 있었다. 인종주의와 관련된 한 책을 읽고, 리뷰를 쓴 적이 있었다. 인문학 서적들이 대개 그렇듯 읽고 나도 명확하게 잡히는 바가 없는 상태로 써내려간 리뷰라 지금 읽으면 뭔 말인지 모르는 그런 글인데, 여하튼 그 책이 나름의 경각심을 줬고, 그간 벼르고 있던 파농 읽기에 도전하겠다는 요량으로 장바구니에 넣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름방학이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미간을 찌푸리며, 한 장 한 장으로부터 분명 무거운 고통을 느끼겠지만 인문학의 기본정신에서 위배되는 회피는 하지 않으리라, 또한 여겨보며.

 

 

 

 

 


 

 

 

 

 

 

 

 

 

 

 

 

 

  종교 관련 강의를 두 개나 듣고 있는지라, 위의 두 책 <테러리즘, 누군가의 해방 투쟁>과 <진화의 종말>도 아마 학기 초에 읽어보겠다고 장바구니에 넣어놨던 모양이다. 칼 세이건과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작년 말에 한 권씩 접해보고, 믿음과 관련된 두 권의 서적을 탐독한터라, ‘진화의 종말’이라는 제목은 특히 매력적이게 느껴진다. <잘 표현된 불행>은 한 유명 서평가의 인터넷 공간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의 독서수준이 워낙 높아 내가 추려낼 수 있는 책들의 수가 적은 것이 사실이나, 매번 귀감이 된다. 사실 ‘생각하는 삶’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음은 그렇지 않은 삶 속에서 항상 반성만 하는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투정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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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5-2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때 어학연수를 갔어요? 탕기님을 얼른 루브르로 보내야 하는데.. 르네상스 화가들 얘기 예전에 제가 참 좋아했잖아요. 기억나요? 그걸로 우리 처음 만나게 됐었는데^^

잘 지내네요, 여전히 열심히 어려운 책 읽으려고 하고.. 봄학기 끝나가는데 그럼 좀 한가해지나요? 프란츠 파농 저거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탕기님 리뷰읽고 보고나서 나도 사려고 찜해뒀어요. 책이 다 옛날 거라서 낡아서 좀 그런 것 빼고.. 저한테도 탕기님이 귀감이 돼요!!!

학교생활 잘하고 학점도 잘 받고 얼른 서평도 내놔요^^

탕기 2012-05-26 20:20   좋아요 0 | URL
저도 르네상스 화가 이야기 블로그에 올릴 때가 가장 '신명'났었어요. 그럼요. 다 기억하죠.^^ 봄학기 끝나면 영어/미술/운동에만 올인할 생각이에요. 여름(계절)학기는 들을 과목이 없어서 패스했거든요. 아마 많은 미술책, 또 제가 읽고픈 파농, 인문학책도 꼼꼼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른 서평 내놓을 수 있도록(?) 열심히 책 읽어야겠네요.ㅎㅎ 잘 지내세요.^^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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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30

 

  읽기 힘든 책이다. “힘들다.”가 마냥 부정적으로 들리는 요즘 풍토에 저런 표현으로 리뷰를 여는 것이 자칫 위험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봤으나, 정직하게 말해 이 책은 정말 읽기 힘들다. 뜻이 난해해 독서를 중단하게 되는 부류의 책은 아니다. 윤상욱氏는 무수히 많은 사례들로 아프리카의 심장을 관통한 저자이다. 사려 깊다. 그만큼 독자의 부담은 줄어든다. 그러나 책은 그저 읽고 그치는 수준의 단순한 ‘앎의 벗’이 아니다. 좋든 싫든 책은 우리에게 아픔과 상흔을 남긴다. 그것은 앎 이상의 것이다. 동기가 되고, 그로부터 어떤 행동을 유발하며, 그 행동이 한 사람의 평균적인 몫보다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우리를 부추길 수도 있다.


  이런 역할은 대개 ‘문제작’이라 불리는 책들이 도맡아했다. 저자의 문제의식에 비판적으로 동참하게 되고, 독서의 순간만큼은 너도 나도 미간을 찡그리며 마음의 무게를 버텨본다. 하나라도 피해간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겁쟁이라 여기게 된다. 하지만 하나도 피하지 않았다고 해서 뿌듯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책들은 자신을 다 읽고 덮은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마음에 어떤 거대하고 육중한 무언가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분이 들 것이다. 지난주까지 연속되는 발표, 시험, 리포트 따위에 시달린 까닭도 있겠으나, 나의 리뷰가 늦어진 까닭(거의 한 달을 이 책만 붙잡고 있었으니)은 무거워진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는 소심한 핑계를 슬쩍 글에 얹어본다.


  어떤 바이러스가 있다. 병증이 다양한 ‘사회적 바이러스’라고 부르면 좋을 것이다. 그것이 이형(異形)과 변종을 통해 아프리카 각 지역들에 숱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발병의 빈도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문가들의 통계이다. 이틀이 멀다하고 보도되는 중동 어느 곳의 폭탄테러사건을 볼 때마다 “중동은 왜 만날 저 모양이야?”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혀를 차는데, 그들은 아프리카에게도 비슷한 시선을 보낸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몇몇 부정적 대명사들이 선명하다. 제 3자에게 아프리카 긍정론을 이해시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땅은 드넓지만 대개 농경에 부적합한 사막과 정글로 이뤄져 있고, 지하자원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지만 그것은 곧 검은 돈을 낳으며, 점차 민주화되어가는 추세라지만 그곳의 ‘더위’는 미풍(微風)으로 돌아가는 선풍기 팬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또한 심각한 것은 그 중 대다수의 문제들이 아무리 을러도 숨통을 죄어오는 맹수를 앞에 둔 상황처럼 곧장 생사를 가를 급박함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윤상욱氏는 그 문제들이 언제 어디서부터 야기되었는지, 왜 지금도 그 문제들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지 역사적 배경을 상세하게 알려주고자 여러 장(場)에 걸쳐 반복과 강조를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1장에서는 그의 표현대로 ‘미아(迷兒)’나 다름없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뭉뚱그려나마 파악해보고, 2장과 3장에서는 빈곤과 독재를, 4장에서는 폭력을 야기하는 두 거대 종교를 고발한다. 문제는 이것들이 다 “따로 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가 유기적이라는 진리가 이런 때에는 참 잔인한 말 같다. 5장에서 약간의 긍정론을 내비치지만 단정 짓기 좋아하는 몇몇 독자들은 (속된 표현으로) “뭐 이런 망해가는 집구석이 다 있나?”라는 생각이 필연적으로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낙관론은 사치인 것처럼 보인다.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는 이 책을 통해 하나씩 살펴보면 된다. 필요하다면 검색하는 것도 좋다. 때문에 굳이 이 자리를 구실 삼아 “나 이만큼 읽고 알았다.”고 자랑할 거리가 되진 못한다. 한편으로 나는 그들의 문제를 알고, 고통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그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함께 모색하는 것이 세계인의 자세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그 자세에는 공허함이 있다. 우리가 도심 속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화려한 부품’처럼 생활하는 중 지구 반대편의 어느 곳에서는 집단테러, 강간, 방화, 소년병 양성, 말도 안 되는 종교전쟁, 나라의 예산을 횡령한 ‘왕’ 같은 대통령이 판을 친다고 해서 나에게 저 사막의 뜨거움이 체감되진 않는다.


  ‘검은 대륙’의 빈곤과 기아를 위해 모금과 봉사활동을 하자는 홍보 요원들의 미소와 손을 정중하게 거절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곧 도착할 버스들의 번호를 확인한다. 다반사이다. 지적 태만을 책을 통해 해소한다고 해도 그것은 ‘미(未)행동’의 죄목을 가진 우리에 대한 판결을 유예시킬 만한 긍정적 요인이 되진 못하는 것이다. 케케묵은 이런 표현으로 늘 반성만 하고 마는 내가 과연 이 책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사실 첫 삽을 뜰 때부터 나는 상당히 겁을 먹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리뷰가 거짓말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시리아에서는 또 다시 유혈사태가 발생했고, 오늘 아침 뉴스를 보는 중 나는 나이지리아의 난사테러를 전해 들었다. 한 쪽은 독재자를 몰아내려는 재스민 혁명의 후발 사태가 얼마나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고, 다른 한 쪽은 너무나도 빈번했던 두 거대 종교 간의 무력 싸움이다. 이들 국가에는 못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권력자의 힘은 황제 부럽지 않을 정도로 크고, 에리히 프롬의 말마따나 ‘전제형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충돌은 인간에게 신이 아닌 죽음을 남겨놓고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두 마리의 사자인 양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이 국민을 위한 국가인가? 무엇이 인간을 위한 종교인가? 민주화와 세속화라면 세계적으로 손에 꼽힐 정도로 빠르게 달성(물론 그 후속 진통을 묵과할 수는 없겠지만)한 우리나라에서 두 질문에 대한 답은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아프리카인들에게는 그럴 역량이 없다. 이를 두고 “아프리카인들은 멍청하니까.”라며 구시대적 ‘악플’을 다는 몇몇 몰상식한 사람들에게 윤상욱氏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요목조목 설명해준다. 그 부분에서 독자들은 숨이 턱까지 차오를 것이다. 그들이 자력으로 민주주의를 달성하고, 국민들이 정부로부터 최소한의 생명권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날은 적어도 반세기 내에는 찾아오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론이 그들의 서술형 답안지를 가득 채울 것이다. 부실한 국가들의 권력자들로부터 아프리카의 막대한 자원을 수입할 수 있는 강대국들의 전략적 외교가 이 비관론을 현실적으로 지원해주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낡은 아프리카식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며 언젠가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낙관론을 조심스럽게 꺼내든다. 내전이 줄어 그들이 남긴 자해(自害)의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물 것이고, 충격적인 기억들은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현실감각들로 대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혁명의 여파로 독재자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고, 교육의 기회와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들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요구할 것이며, 그로부터 국민들의 갈라진 정체성을 하나로 모아줄 수 있는 정당한 정치인이 선출될 것이다. 아프리카의 지위가 상승하면 그들이 달고 있던 꼬리표는 유물로 남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긍정적 역사의 흐름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저자의 작업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그가 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책날개에는 “아프리카가 겪고 있는 모순과 고통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해결책이 없다. 9할이 문제에 대한 지적이고, 1할이 그나마 몇몇 긍정론의 사례 언급이다. 미미한 수준의 변화로부터 희망의 불씨를 목도하려면 약간의 관심만 가지고 뉴스 기사 몇 개만 시간의 흐름별로 분석해보면 된다. 그런데 그 불씨의 무게가 무거운 비관을 한 쪽 팔에 얹고 있는, 아니 무거운 비관에 한 쪽 팔이 짓눌린 저울의 평형을 되찾을 수 있을 만한 것인가를 우리는 현실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저자는 그것에 답하지 못한다. 실전에서 활약 중인 국제단체의 수뇌부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저자가 거둔 절반의 성공이라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이 책의 의미를 높이 사야 한다. 바로 “아프리카인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감정은 추상적이고 감성적 차원의 동정심에 머무르고” 마는 우리의 인식에 변화를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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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의 몸 몸문화연구총서 1
몸문화연구소 엮음 / 쿠북(건국대학교출판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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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2

 

 

  움베르토 에코의 <추의 역사>를 토시 하나하나 따져가며 공부할 무렵이었다. 아버지께서 몇 페이지 넘기다가 루벤스의 작품 <메두사의 머리(c.1618)>를 보시더니, “이런 그림을 보면 밤에 잠 못 자겠다.”고 농담하셨다. 나는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학문의 눈을 빌려 ‘이런 그림’들 수 십 편을 봐온 내가 그 충격 때문에 밤잠 설친 적은 없었다. 또한 수전 손택의 말마따나, 작품을 통해 충격적인 추(醜)를 목격하는 것과 실제 그것을 목격하는 것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극사실주의의 작품이라고 해도 그것이 ‘작품’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순간(다른 말로는 ‘복제’되는 순간), 베냐민 식으로 말하자면 “실제 추의 아우라가 사라지는” 것이다. 작품은 항상 특정 장소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실제 추는 ‘사건’으로 다가온다. 쉽게 비유해보자면 우리가 철창 안에 갇혀 있는 괴물을 보느냐, 아니면 괴물과 일대일로 대면하고 있느냐의 차이라는 뜻이다. 후자의 경험을 우리는 바로 ‘공포’라 부른다.


  나는 최근 대학교 강의 중 <변강쇠가>를 맡아 발표해야 하기에 나름 예습을 하겠다는 심산으로 몇 권의 책과 여러 논문을 찾아 얼마 전 읽은 적이 있다. 그 중 한 권이 몸문화연구소에서 펴낸 <그로테스크의 몸>이다. 제목을 잘 붙였다는 생각이 독서가 끝나고 나자마자 가장 먼저 들었다. 제목 ‘Grotesque body’는 우리의 몸(자아, 주체, 생리 등을 모두 포괄한 ‘철학적인 몸’)과 관련된 기괴함을 다룬다는 뜻이다. 만약 이것을 ‘Body of grotesque(몸의 그로테스크)’로 바꿨다면 독자들은 시각적인 그로테스크에만 집중하게 되었을 것이고, 이 책의 여러 논의들과도 맞지 않았을 것이다. 사소한 점이긴 하나, 책을 덮고 난 후 착잡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키기에 위해서는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봄도 좋다. 그로테스크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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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한 말인데, 우리가 ‘기괴(奇怪 : 외관이나 분위기가 괴상하고 기이하다.)’, ‘괴기(怪奇 : 괴상하고 기이하다.)’, 혹은 ‘괴상(怪狀 : 보통과 달리 괴이하고 이상하다.)’이라고 번역하는 그로테스크와 관련된 이론은 대부분이 서양에서 온 것이다. 그 중 바흐친, 카이저, P. 톰슨 등의 종합적인 이론이 유명하나, 이들 외의 논의들이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소개된 적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로테스크하다.”라는 말을 별 어려움 없이 사용한다. 교양인들에게 이 용어는 각종 현대예술과 관련된 잊을 수 없는 상식 중 하나로 통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로테스크가 수많은 작품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로테스크의 철학적 배경은 무엇인지와 같은 성찰은 감히 시도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사용빈도에 비해 그 속뜻이 매우 오묘하고, 때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까닭이다. 멀찌감치 서서 그것을 바라보면 이해될 것 같지만 그것이 가까이 오면 뒷걸음치게 된다.


  <그로테스크의 몸>에는 제목 그대로 ‘그로테스크’, 그리고 ‘신체’와 관련된 여러 논의들이 실려 있다. 발췌독을 하기에도 좋고, 각 논의들의 분량도 알맞기 때문에 한 주제를 가지고 하루 종일 생각하곤 하는 나 같은 ‘아날로그적’인 사람들에게는 참 사려 깊은 책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막상 논의에 발을 담그면 하루가 너무 짧다는 기분이 들게 된다. 각 논의의 저자들이 여러 날들을 공부해서 쓴 글을 한 번 읽고 대충 넘어가는 것은 도둑의 심보이기도 하겠으나, 사실 그보다는 면면이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로테스크’라는 단어에 단순히 매료된 수준의 독자가 아니라면 저들의 철학적 고민과 통찰을 따라가기에 벅차다고는 할 수 없다. ‘그로테스크’를 파헤쳐보겠다며 충격적인 현대미술 작품 하나 안 본 이 없을 것이고, 정상과 비정상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의심해보지 않은 이 없을 것이기에.


  <변강쇠가>의 발표준비를 명분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지만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독한 뒤에 나는 <추의 역사>를 샅샅이 공부한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예술과 철학의 세계로 살짝 발을 들여놓았다. 나와 비슷한 고민과 성찰의 주제를 갖고 있을 ‘동포’, 혹은 ‘인민’을 위해 서평을 더 곱게 써보자면 이 책은 단 하나의 코드만 알고 있어도 그것과 연결된 수많은 노드들을 통해 전문(全文)을 호기심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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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 관심은 모두 다를 것이다. 여러 주제가 있다. 그러나 책의 구조상 첫 번째 논의인 <철학적 스캔들로서의 괴물(김종갑氏)>은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시동을 걸지 않은 차가 스스로 엔진을 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대뜸 데리다를 이야기 한다. 괴물에게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래는 정상으로부터의 단절일 수 있으며, 그것은 ‘괴물성’으로서 선포되거나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우니 내가 잘 아는 미술사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르네상스는 겉으로 드러난 숭고미의 방벽이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보다 더 치열하고, 한편으로는 비열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궁중 문화가 막강한 재력을 만나고, 로만가톨릭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면서 미술 역시 그것에 호응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고대(古代)에의 향수가 이탈리아 발(發) 르네상스의 트렌드를 형성했다. 그런데 이 ‘르네상스’라는 단어(사실 이탈리아어로 ‘부활’이라는 뜻의 ‘리나시타’가 어원이다.)는 이상할 정도로 정상적이다. 이를 ‘기준점’이라는 의미로 ‘데코룸’이라 불러보자. 르네상스를 전후해서 고딕과 마니에리스모가 있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의 저의(底意)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크도 그렇고, 인상주의, 야수파 등도 그러하다. 한 시대를 정의내림에 있어 용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하면 르네상스는 그야말로 “언제든지 회고하기에 영광스러운 세월”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후 실제로 신고전주의와 아카데미즘은 르네상스를 ‘고증’했다. 이 고증은 미술사에서 아주 오래토록 정상 패턴의 곡선을 그려 가는데 큰 도움을 줬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술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데리다가 말하는 ‘단절’에 해당한다. 대학생들은 교양 미술사 시간 때, 그리고 일반인들은 대중적인 미술서적으로 그 단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그와 관련된 여러 일화들은 국내에도 여럿 소개된 바 있다.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을 재미있어 할까? 데리다의 말이 생소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 ‘단절’이 뭔지 이미 알고 있다. 아카데미즘의 추락과 함께 등장한 후기인상주의, 그리고 그로부터 거인이 된 마티스와 피카소, 몬드리안, 말레비치, 칸딘스키, 마르크 등. 그들은 ‘괴물’이었다. 괴물이 미래를 선포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사람들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괴물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니! 그러나 이미 진리라는 것이 누구의 손에서 제시되었는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모더니즘에 그토록 매료된 까닭이다.


  그렇다면 ‘괴물’이란 과연 무엇일까? 영어로 표기하면 이렇다. [either A or B]가 보통의 우리이다. 여기서는 자기동일성이 확인된다. 우리는 A이거나 B이기 때문에 만약 A라면 동류인 A를 자기동일성의 증거로 삼고, B는 배타성의 사례가 된다. 하지만 이건 어떤가? [both A and B]. 사람들은 너그럽게 생각할 것이다. 사람의 주체성이 단일하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평등, 민주 등과 함께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말. 상대성. 그러나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인 사람(Androgyny). 사람이면서 코끼리 얼굴을 한 사람(Joseph Merrick). 여성이면서 비정상적으로 엉덩이가 큰 여인(Sarah Bartmann). 분명치 않으나, 우리에게는 ‘기준’, ‘일반’, ‘보통’이라든지, 아니 그보다는 ‘정상’이라는 개념의 테두리가 있다. 그것은 뿌연 안개와 같으나, 어떤 때에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견고하기도 하다. 저들을 ‘나’의 인식 범위 안으로 ‘입성(入城)’하도록 허락할 수 있을까? 아니면 19세기 유럽인들처럼 철창 안에 갇힌 저들을 마치 원숭인 양 구경하기 위해 돈을 내고 낄낄거리거나, 대개의 사람들이 그러듯이 역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외면할까? 과연 주체의 다양성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확고하게 인지하고 있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도덕적 인식으로 자신을 무장시키고자 하는, 평범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이렇게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주체는 다양하다면서 [both A and B]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세련된 철학적 도전도 이윽고 벽에 부딪히게 된다. 흄(D. Hume)처럼.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 우리나라는 성전환자가 살아가기 힘든 나라 중의 하나이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그들은 남자이면서 여자이고 싶어 하거나, 혹은 여자이면서 남자이고 싶어 한다. [both A and B]의 특성을 A와 B 중 하나로 결정하고 싶은데, 불행이도 그것이 이미 결정된 성으로 인해 막대한 장애를 받은 이들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철학적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은 차치하고, “괴물이다.”라고 정의해버린다. 이는 이방인을 괴물로 그리거나, 혹은 이단을 악마로 형상화하는 저 서쪽의 역사와 다를 바 없다.


  문제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하는 것이다. 앞서 예로 든 르네상스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상은 허구이다. 나는 옛 미술 블로그를 꾸릴 때, 하우저의 글을 읽고 “르네상스는 허구이다.”라는 제목의 포스트 하나를 올린 적이 있다. 그것은 ‘정상’이라는 것이 (나는 그것을 ‘데코룸’이라고 썼는데)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밝히고, 또한 무슨 이유로 해체되는지를 다룬 글이었다. 분량 상 전문을 옮길 수 없지만 그 내용은 우리가 모더니즘에 주목하는 까닭과 닿아 있으니, 인용 없이도 충분히 이해될 것이라 생각한다. 논의는 진전되었다. 정상이 허구라면 괴물을 보고 놀라는 우리의 본성은 ‘괴물’을 지정하는 우리의 제도, 주의, 사상 등과 분리될 수 있다. 쉽게 말해 “괴물을 만드는 과정”에 주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달 초, 나는 알리 라탄시의 <인종주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서평을 이 공간에 올렸다. 그의 논점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것은 인종주의가 인간의 본성과는 상관없이 제도로써 형성된 것이라는 간파이다. A가 생각하기에 B는 타자이다. 자신과 전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B에게 본능적으로 적대감을 느낄까? 아니면 그렇게 하도록 문화적 학습을 받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괴물은 어떠한가? 괴물은 기본적으로 추하고 무서우며, 위협을 주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된다. 공포는 적대감과 닿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다. 우리가 ‘괴물’이라는 부르는 이들에게 과연 그 명칭이 합당한 것인가? 혹은 너무 단순한 ‘명명하기’로 괴물이 양산되는 것은 아닌가? 다시 기준으로 돌아와 이곳, 즉 정상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런 철학적 질의를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 우리는 세상이 규정한 ‘괴물’이라는 각종 대상들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배척에서 중립으로, 더 나아가 중립에서 환영으로. 이 환영에서 우리는 이른바 “괴물 견뎌내기”의 과정에 돌입한다. 윤리가 태어나는 지점인 것이다.

 

 

*   *   *

 

 

  첫 번째 논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로테스크에 대한 적대감을 논리적으로 해제시키는 과정이 녹록할 리 없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어지는 논의 ‘아브젝시옹(abjection)’에서 그로테스크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뚜렷한 이미지로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현대예술가들 중에서 유명한 여성들만 100명을 선별해 나름의 정리를 한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도 선명한 기억으로는 그들 중 대다수의 여성들이 선정, 비정상, 과격(그런데 대관절 이들의 기준은 또 무엇일까?) 등 테마를 활용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현대예술은 항상 붕괴로부터 창조된다. 그러나 그 ‘박식’하다는 현대인들은 그녀들의 말에 귀를 쉽사리 기울이지 못한다. 일단 그로테스크하기에 적대감을 갖거나 기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무엇을 부수고자 하는지 알게 되면 그 그로테스크가 강력한 시대적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명백하게 깨달을 것이다.


  이후 논의들은 위의 두 논의보다 좁은 스펙트럼을 갖는다. 죽음, 판소리, 전쟁, 우리의 몸, 입양인, 기억, 미래기술의 그로테스크(사이보그) 등이다. 내가 앞서 <철학적 스캔들로서의 그로테스크>를 반드시 읽고 다음 논의들을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한 말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로테스크로 ‘정의됨’을 이해해야 그것의 ‘해체적 활용(아브젝시옹)’과 기타 쟁점들의 깊은 성찰을 음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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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의 경우처럼 그로테스크를 철학의 특성으로 생각해봤을 때, 다시 말해 괴물이 우리를 혼란스럽거나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처럼 철학자들이 그런다는 뜻인데, 이 경우 사람들은 “그로테스크한 것을 피하고 싶다고 해서 매번 피할 수는 없다.”는 진리 하나를 얻게 된다. 그것이 윤리와 직결된다면 그 진리의 의무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맞는데, 그 말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괴물과 같은 그 말은 피하면 안 된다. 이 상황은 어느 시대든 적용된다. 더불어 이 사회의 우리에게도 소중한 진리로 기억되어야만 한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만을 바라보고, 그것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외치는 삶은 얼마나 간드러진 맛이 있는가. 한 곡의 노래와도 같고, 한 편의 시와도 같고, 아니면 멋진 산수화나 서양화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미와 멋을 조금이라고 아는 이라면 그것에 자신의 이성과 감각을 모두 맡기고 삶의 아름다운 것들을 기억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것 중에 진리가 없다고 하진 않겠다. 그것으로 향하는 것이 최종의 지혜인 것도 안다. 그러나 불행히도 외면되는 것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아름다움에의 맹종’이라면 지양해야 하는 것이 저 더러운 똥과 소크라테스의 어려운 철학과 여성 현대예술가들의 기괴한 몸동작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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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4-1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탕기님, 학교 잘 다니고 있죠? 이 글은 많이 늦게 와서 보지만 역시 흥미로워요. 저도저도 '그로테스크'한 그림들 좋아해요. 처음 그림을 보게 된 것도 메두사 같은 거였던 것 같고..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서평도 뜸한데..^^

탕기 2012-04-30 23:38   좋아요 0 | URL
그간 시험이다, 레포트다, 발표다, 해서 나름의 핑계를 대자면 바빴습니다.^^; 운이 나쁘게도 중간시험 전에 과제들이 몰려 있게 됐어요. 한 고비 넘기긴 했습니다만 학기말까지 또 어떤 과제들이 주어질지 살짝 겁부터 나네요. 틈틈 읽었던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를 올리려고 들어왔는데, 아이리님의 댓글을 이제사 확인했습니다. 이 공간을 너무 오래 방치해둔 감이 있네요.

맘을 놔야 읽고픈 책을 펼칠 수 있는 성격이라, 참 고쳐야 하긴 하는데, 그런 면에서 바쁜 직장생활 중에 다독하는 분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존경스럽기도 하고요. 리뷰 올려놓고서야 "이제부터는 정신 없어도 책 읽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뭔가 벼려봅니다. 여하튼 오랜 만에 아이리님 만나니까 마음 편해지고 좋네요.^^
 

2012.03.19

 

  아침기온이 영하이다. 단단히 동여매고 기세 좋게 나섰으나, 9시에 예약된 치과치료가 나의 넋을 뺀다. 치과에 가면 뭔가에 잡아먹히는 기분이 든다. 기세고 뭐고, 다시 피곤해진다. 광화문행 버스 안에서 나는 등받이 위를 굴러다닌다. 주말 내내 나의 머리를 괴롭혔던 아감벤의 '게니우스'를 좀 더 독파해보겠노라 벼르고 가방에 넣어온 <세속화 예찬>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다행이도 옆 좌석에 앉은 한 여성분의 머리도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타인의 피곤을 목격하는 것이 적잖은 위로가 되는, 씁쓸한 미소의 아침이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보도로 내려간다. 아직은 춥다. 스마트폰 액정에는 분명 10시 15분이라 적혀 있는데도. 그대로 나는 K문고에 들어갔다. 한산하다. 네 권의 책을, 마치 장보러 마트에 간 사람처럼 들고 다니면서 여유를 맛본다. 이대로 있다간 수업 들어가기 싫어질 것 같아 부랴부랴 전철을 타고 신촌까지 간다. 그제야 따뜻해진다. 한 손 두둑하게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초등학생인 양 노트에 낙서해가며 강의 정리를 한 뒤, 아감벤을 편다. "게니우스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빈곤함을 질책하기 전, 오늘 구입한 책들은 집에 가서 꺼내보리라 가방에 종이봉투 채 곱게 넣는다. 이 책들이다.

 

 

 

 

 

 

 

 

 

 

 

 

 

 

 

 

  입대 전, 2월이었다. 창문에 내린 서리를 보고 쓴 시가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나도록 한 행도 쓴 적이 없다. 사춘기를 나름 '시의 노예'로 지냈었다. 배설하듯 그것을 써본 때가 있었기에 시는 각별하다. 한 손에 잡힐 정도로 아담한 시집 한 권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주변으로 빛이 영롱한 파장을 일으키며 퍼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올 봄 꽃 피는 날에는 애써 눌러왔던 시작(詩作)의 감성을 되찾아보리라 벼르는 중, 한 신문에 소개된 김선우氏의 시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를 읽었다. "뜨거운 심장을 구근으로 묻은 철골 크레인 /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나는 바로 마음이 꽂혔다.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를 읽은 후로부터 정말 오랜 만에 느낀, 울컥 하는 감정이었다.

  오늘 아침 K문고로 '등교'한 까닭은 순전히 이 시집을 손에 잡아보기 위함이었다. 택배로 받는 것은 '물건'이라는 느낌이 강하니까. 진열된 것과 택배로 받는 것이 달라봤자 실제 얼마나 다르겠냐마는, 그래도 어느 것은 숨 쉬는 생명 같이 고이 모시고 싶어 하는 것이 독자의 생리가 아닌가 싶으니. 더 각별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첫 장의 첫 시의 첫 구절에서 나는 주저앉을 뻔 했다.

  "백수인 걸 부끄러워한 적 없어요."

  <바다풀 시집>이라는 시의 제 1행이다. 광화문에서 도서관까지, 마주 오는 사람을 보기 위해 잠시 고개를 든 것 빼곤 온통 정신이 이 시를 읽고 또 읽는데 빼앗겨 있었다. 시인이 되겠다며 컨베이어벨트처럼 시를 찍어내고, 하루에 몇 편이고 쓰면서도 마음공부는 게을리 했던 그 때가 떠올랐다. 나도 바다풀 공장이 있으면 취직하고 싶더라. "그만 손 씻을래."라며 펜을 툭 떨어뜨리는 저 시인의 마음이, 처음에는 아주 조금, 그 다음에는 조금씩 더 이해되면서, 아, 빠져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J코너의 '한국시' 진열대 사이에서 이 책 저 책 기웃기웃하시던, 연세 지긋한 한 할아버지의 빵모자가, 막 신촌 언덕을 넘어가는 중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올해는 정말 시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시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 읽는 사람으로. 시는 나를 갱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3년 전, 미학을 공부했던 무렵을 떠올리며, 나는 허버트 리드의 <예술의 의미>, 최근에 나온 오타베 다네히사의 <예술의 역설>, 그리고 미학도들의 교과서와 다름없다는 박이문氏의 <예술철학>을 김선우氏의 시집과 더불어 한 손 가득 들었다.

  내게 미술 공부의 척추는 미학이었다. 미술사 공부를 게을리 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미학의 주변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덕분에 좋아하는 화가(카라바조)가 생기긴 했어도 나는 미술을 둘러싼 예술의 시대별 미학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공부하며 인간 정신의 역사를 추적해보고 싶었다. 각종 근대미학이 현대미학의 파격으로부터 위기를 맞이하고, "말도 안 되는" 이론들이 신진 학문의 도움을 받았던, 모더니즘이 그리하여 내가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진 대목이기도 했다.

  학기 중에 이 책들을 다 읽는다는 것은 나의 지적 '게으름'을 고려해본다면 어려운 일이지만 미술 서적만큼은 곁에 두면 든든한 것이 언제라도 열어보고 마음 내키면 몇 장(章)이든 빠르게 읽을 수 있으니 좋다. 올해 여름 방학 중에는 마가레테 브룬스의 책 두 권(<눈의 지혜>와 <색의 수수께끼>), 래리 쉬너의 책 한 권(<예술의 탄생>), 허버트 리드의 것 한 권(<도상과 사상>)도 각각 재독한 뒤, 저 책들과 같이 긴 리뷰를 써볼 계획도 미리 짜본다.

 

 

 

 

 

 

 

 

 

 

 

 

 

 

 

 

 

 

  최근 <변강쇠가>의 발표 준비 때문에 도서관에서 대출 받은 책 두 권이 있다. 두 책 모두 '그로테스크'를 주제로 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추의 역사>를 읽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이라, 훗날 서점 마일리지가 두둑이 쌓이면 구입해 내 서재에 꽂아둘 생각이다. 발표 탓에 어쩔 수 없이 발췌독만 하고, 곧 반납해야 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혹 그로테스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읽을 만한 책이라는 생각에 이곳에 두 권을 소개해둔다.

  국내에 '그로테스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이론의 학자는 아무래도 바흐친이다. 하지만 볼프강 카이저도 못지않다. (필립 톰슨의 책도 있는데, 마땅한 번역본은 없는 듯하다.) 그의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는 움베르토 에코의 <추의 역사>를 꼼꼼하게 공부해본 이라면 분명 좋아할 만한 책이다. 그로테스크의 어원을 쫓는 것은 동류의 책들과 같아 비근한 작업이라 하겠으나, 이후 낭만주의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로테스크의 사례를 다루는 그의 솜씨가 대단하다.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미술사 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명한 그로테스크의 예를 설명하는 장들도 제각기 명료하며, 더불어 재미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술과 연관된 부분만을 골라 읽었지만 연극과 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예들, 가령 카프카와 토마스 만, 앨런 포 등 대표 작가들의 설명도 많다.

  다른 하나는 몸문화연구소가 편찬한 <그로테스크의 몸>이라는 책이다. 여러 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는 책이라 전문적인 분위기는 있으나, 막상 관심을 갖고 읽어보면 그리 어려운 주제들은 아니다. 어렵다기보다는 '그로테스크'라는 특정 영역을 연구한 수많은 시도들이 반갑고, 때문에 호기심을 더욱 자아낸다고 해야 옳겠다. 개인적으로는 "판소리의 기괴 혹은 그로테스크(서유석氏)"를 발표 준비 상 정독했는데, 그 외에도 현대미술과 관련된 "여성적 숭고와 아브젝시옹(김주현氏)", 루저와 '재현된 몸'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몸인가, 그로테스크한 세계인가(최은주氏)"도 흥미롭게 읽었다. 단, 각주가 튼실하지 않은 것이 흠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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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는 본성인가 - 인종, 인종주의, 인종주의자에 대한 오랜 역사 한겨레지식문고 9
알리 라탄시 지음, 구정은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2012.03.03

 

  얼마 전이었다. 알리 라탄시의 <인종주의는 본성인가>를 읽는 중 ‘genocide’라는 영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뜻이 가물가물하기에 인터넷 검색을 했다. 집단학살. 예컨대 홀로코스트를 뜻하는 것이다. 머릿속에는 <쉰들러리스트>가 떠올랐다. 속초에서 군복무를 하던 때, 나는 공용업무 차 간부들과 한 달에 한 번은 꼭 시내에 나갔다. 그 때마다 군용 지프는 일본 731부대(ななさんいちぶたい)의 생체실험이 있었다는 오랜 건물 하나를 지나갔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역사는 대개 추상적이기 마련이나, 핏빛의 역사는 몸을 떨게 만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핏빛의 역사’를 굳이 과거로부터 배울 필요는 없다. ‘genocide’를 검색한 뒤, 더 찾아보거나 읽을 만한 자료가 있을까 싶어 드래그를 하던 차에 나는 이 단어를 길드(guild : 온라인게임의 유저들이 다양한 목적을 위해 만든 온/오프라인모임) 이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별로 놀라진 않았다. 온라인게임들의 대부분이 전투를 모티프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제노사이드”라고 발음하는 것도 그럭저럭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genocide’의 일면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집단학살”이라 번역되는, 소름끼치는 저 단어를 길드의 이름으로 사용하고자 했을까. 이는 사소한 문제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무감각이나 무지의 문제이다.


  알리의 이 책을 읽고자 한 이유는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프란츠 파농을 읽기 위해서였다. 프란츠를 알게 된 지 오래된 것은 아니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이현우氏의 알라딘 서재 <로쟈의 저공비행>에서 우연히 견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니, 이유를 더 따져보라면 종교분쟁관련 대학교 강의에서 교수의 참고로 된 한나 아렌트와 홀로코스트를 들 수 있겠다. 독실한 신자는 아니나 늘 종교에 관심을 갖고 있고, 첨예한 갈등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갈등이 분출되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던 차라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모여 알리와 프란츠의 글을 읽고 싶어진 것이리라. 혹은 사춘기 때, 먼 타지 호주에서 백호주의(백인호주우월주의)를 직접 겪어봤기에 “왜 내가 차별을 겪어야 했을까?”를 알아내고자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달, 미국 댈러스에서는 한 주유소 업주인 박氏의 발언(다른 주유소보다 휘발유 값이 비싸다 항의한 흑인 목사제프리 무하마드氏에게 “아프리카로 가라.”라고 한 발언)이 화두가 되어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시위대는 아시아계 이주민들의 추방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유대계 여성과 결혼했으면서도 현대 반유대주의의 선교사가 됐던 빌헬름 마르”에 대한 이야기로 알리는 논의를 시작한다. 그가 책의 후반부 논의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인종주의의 정체성’은 사실 이 부분에서 미리 결론된다. 한나 아렌트가 경악을 금치 못한 한 유명한 나치전범재판도 빌헬름 마르와 같은 경우이다. 집에서는 자상한 아버지가 밖에서는 유대인들을 ‘청소’하고 다닌다. 그럴 수 있다. 인간은 다양한 정체성으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종주의자’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 수많은 제약이 있음을 이 도입부에서부터 알게 된다.


  이어 알리는 여러 역사적 근거들을 추적해본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해 동양과 이슬람을 잠깐 거친 뒤, 중세 기독교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대인 차별에서도 그는 인종주의의 생물학적인 차별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가 흑인을 보면서, 혹은 유대인을 보면서, 아니면 중국인을 보면서 갖게 되는 전형화(편견)은 당시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추의 역사>에 보면 귀족들이 평민을 어떤 방식으로 희화화했는지가 적혀 있다. 도판으로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다. 동족 내부에 대한 시선도 이러한데, 그들이 적대시할 수밖에 없었던 무슬림들에게 ‘생물학적인 차별’이 과연 없었을까? 내가 문헌을 찾을 만큼의 고도로 정련된 학자가 아닌 만큼 의구심은 잠시 접어둬야 할 듯했다. 그리고 이 궁금증은 알리의 논점을 쫓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시대는 흘러 소위 ‘이성의 시대’라 불린 18세기에 분류학이 득세하며 인간을 범주화해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Americanus, Europaeus, Asiaticus, Afer 등이 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 발원한 4기질설에 대입된다. 별로 산뜻하진 않다. 하지만 이 시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칸트와 흄이 가졌던 흑인열등주의이다. 물론 그들은 흑인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단, “검다.”는 것이 곧 추(醜)와 연결되는 사상이 철학의 옹호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신고전주의 미술이론의 창시자이자, 아카데미파의 정신적 지주였던 빙켈만의 미의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서구는 세상을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영국이 아프리카의 노예시장을 개척한 뒤, 과학적 인종주의가 흑인과 백인을 명백히 구별하면서 이윽고 그 유명한 사라 바트만(Saartje Bartmann) 사건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시민’이라는 모델을 위한 보편주의가 퍼졌을 때에는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19세기, 유럽 열강들은 국가형성프로젝트를 위해 엄청난 자본과 사상을 쏟아 부었다. 유럽뿐만이 아니었다. 1790년 미 의회는 백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권을 포고하기에 이른다. 유럽보다는 미국의 경우가 매우 흥미롭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 웨일즈, 독일, 아일랜드, 유대계, 이탈리아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 나라에서는 자국 국민의 ‘백인됨(whiteness)’이 곧 인종적 규범이 됐다. 그리고 이들을 Caucasian이라고 묶었다. 잡혼이 금지됐고, KKK는 1890년부터 약 10년간 무려 1,100여 건의 린치사건을 일으켰다. Jim Crow 체제가 공고히 되기도 했다. 흑인들은 곧 경멸의 대상이 되었는데, 흑인이 아닌 유색인종 중 ‘백인됨’에 포함되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곳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여실히 드러낸다. 식민지에서도 상황은 같았다. 인도 벵골과 자메이카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영국에서는 카스트 제도를 고착화시키며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잔인함의 진수를 보여줬다.


  곧 우생학이 등장했다. 본래 서구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반유대주의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된 경제가 이것과 맞물리면서 홀로코스트의 서막을 열었다. 민족국가가 부상한 뒤, 우생학은 아주 쉽게 정치와 결합했다. 과학은 중립적이다. 도덕의 비호를 받지 못한 이 강력한 이론은 활활 타오르던 나치스의 반유대주의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코스모폴리탄으로 두각을 나타낸 유대인들을 독일인들은 아니꼽게 봤다. 표적이 되기 쉬웠다. 더욱 무서운 것은 나치스의 홀로코스트가 그들 정치의 주요사항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무려 600만 명이 죽었다.


  이것을 비이성의 소산이라고 진단했던 이들은 당시 전범재판 소식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치스 패망 후 숨어 지내던 아이히만을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잡았고, 곧 전범재판이 이뤄졌는데, 한나 아렌트가 술회하듯 그는 자신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라고 발을 뺐다. 여기서 “악의 평범함(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유명한 개념이 등장한다. 최근 내가 극우주의의 득세를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잠시 알리의 글을 인용한다. 무지와 태만의 소산이 얼마나 위험한지가 드러나 있다.
  “심리적인 후퇴와 통상적인 무관심이 겹쳐, 독일 시민 대다수는 유대인 등의 운명에 대해 더 알아볼 생각도 않고, 별다른 양심의 가책도 없이 하루하루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과학적 인종주의가 우생학 이후에도 진행됐지만 사람들은 상관관계와 인관관계를 혼동하는 무지를 범하며 인종주의를 더욱 합리화했다. 가령 이런 것이다. 흑인의 대부분은 무식하다. 문명화된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아는 것이 별로 없고, 싸움만 일삼는 ‘족속’으로 보일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의 낙후된 국가에 가면 그것이 현격하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들이 “흑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사회적 조건은 어떠한가? 혹은 개개인의 특질이 무시되는 것은 아닌가? A라는 사람 하나의 특질이 그가 속한 집단 전체로 비화되는 것은 대단한 비논리이지만 합리를 지향한다는 저 지성의 현대인들에게 그대로 먹혀든다.


  오늘날 홀로코스트는 없고, 아마 제도적 제약 덕분에 발생하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큰 위안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종의 개념 하에 핍박받는 집단들이 있고, 그 수는 매우 많다. 때론 불특정 다수에 대한 맹목적인 공격도 일어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애매모호해진 인종의 개념이 마치 19세기 후반에 득세한 그 개념처럼 강력하다는 것이다. 소위 ‘혼혈(mixed)’이 많은 시대이고, 개인의 정체성을 국가나 종교보다는 특정 문화, 혹은 사회적 위치 등에 두는 경향이 강한 오늘날 우리를 인종의 틀 안에 가두는 것은 어려운데도 말이다.


  한창 페이스북을 할 때, 나는 영어회화실력을 높여 보겠다는 심산으로 여러 외국인들과 채팅을 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모두 중동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아제르바이잔, 이집트, 그리고 쿠웨이트가 있었다.) 그 중 영국 카디프에서 유학 중이라는 한 이집트 여대생과 이슬람을 주제로 짧은 대화를 나눈 것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그녀는 자신은 유학생임에도 영국인이며, 동시에 이슬람교도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물었다. 국가와 종교는 상당히 밀접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직답을 피하고 대신 테러에 관한 생각을 말해줬다. 모든 이슬람교도들이 테러리스트는 아니며, 그들 대부분이 테러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는 <내 이름은 칸>이라는 화제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칸은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하게 된다. ‘종교, 폭력, 평화’라는 제목의 대학 강의를 듣고, 한편으로는 이슬람과 관련된 13부작 다큐멘터리를 다 본 후, 나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개인의 정체성. 알리는 말한다.
  “개인의 정체성과 행동 사이에 언제라도 모순이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개인의 정체성이 위치에 따라 달라지고, 또한 달리 선호되는데, 과연 인종이 ‘전형화’될 수 있을까? 사실 되기 때문에, 아니 만연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전형화가 전면에 부각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알리의 말마따나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겉으로 보이게 행동할 때에는 예의를 갖추게 마련이다. 적대감과 차별은 눈에 덜 띄는 물밑에서 일어난다.” 최근 ‘인종주의적 사건’은 대개 옛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처럼 소위 “대놓고” 행해지진 않는다. 그 은밀한 공격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흑인 불평등을 해소해왔다고 하지만 불평등은 누적되고, ‘악순환’된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해서 한 때 미국 시민성의 위대함이 부각되는 듯했지만 그것은 전면에 드러난 가짜일 뿐이었다. 여전히 흑인들은 턱없이 부족한 고용기회 탓에 일자리를 얻기 힘들고, 그들이 고용됐던 제조업이 신흥 산업들에 밀려 패망하면서 쫓겨나고, 또한 열악한 주거지 및 교육 환경으로 인해 불우한 유년을 보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려있다.


  다행이도 교육에 있어서는 1960년대 활발했던 민권운동의 도움을 받아 약간의 개선이 있었다. 그 시절, 미국 연방정부들의 흑인 우대정책은 얼마간 실효를 거뒀고, 지금 흑인들은 사회 각층의 높은 자리에도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 중 흑인들에 대한 시선에는 가시지 않는 경멸이 담겨져 있다. 심지어 백인 빈곤층들조차 흑인들이 빈곤해진 것은 그들이 게으르고 멍청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인종주의의 각축전은 생활수준이 하위에 속하는, 소위 “잘 못 사는” 사람들의 주거지에서 자주 발생하며, 이는 영국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민할 당시 경제적으로 윤택해질 수 있는 교육조건을 만족시켰던 인도계, 아프리카 인도계, 혹은 중국계 이민자들은 그렇지 못한 이민자들보다 훨씬 높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개 그렇지 못하고, 특히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민자들의 60% 정도는 일자리가 없다. 경제적 제약이 크면 사회에서 받는 불평등의 감도가 훨씬 강하게 느껴지기 마련이고, 그런 분위기의 주거지에서는 백인 사회와 이민자 사회 사이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들은 소위 ‘기 싸움’에 밀리지 않기 위해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일부 흑인 아이들과 유사한 폭력성을 지니기도 한다.


  제도 상 인종차별은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냉전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제 3세계 운동, 학생운동, 여성운동 등 민권운동의 영향을 받아 인류는 서로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법을 알게 되었고, 좋은 실천사항들도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공익광고나 공교육개선, 봉사활동 등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안정 뒤에는 열대야처럼 기승을 부리는 인종주의의 폐단이 남아있다. 우리나라도 이슬람 혐오증이 꽤 강한 나라 중 하나이다. 직접적인 테러의 위협을 받은 횟수가 타국들에 비해 현저히 적으면서도 우리는 미국과 밀접한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말미암아 그들의 칼날을 느낀다. 이슬람교와 무슬림들의 삶에 대해 아는 바가 적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슬람 혐오증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무슬림들은 다 테러리스트이다.”라는 편견을 갖는다. 편견이라는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문화의 이미지가 그 편견을 조장한다. 집단을 ‘전형화’시키기 때문이다. 문화에도 마치 공식이 있는 듯 말이다.


  집단 간의 반목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인종의 개념은 18세기에 등장했다고 알리는 역설한다. 과연 그 집단과 인종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과학과 심리학이 오용됐던 실수의 역사가 있다면, 아니면 일조한 잘못된 사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필연적 연관관계’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알아본 것처럼 ‘인종’처럼 애매모호한 개념은 없다. 탈(脫)인종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단어에 집착해선 안 된다. 해결책 역시 모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알리는 낙관하자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제도적인 노력들이 현재까지 거둔 성과 때문이다. 그러나 극우주의가 팽창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알리와 같은 낙관은 금물이다. 더군다나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실패를 운운하고 있고, 그것을 극복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이론적, 혹은 실천적 행동들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최악의 경제상황은 극우세력의 성장을 돕고 있다. 그들은 자국에서 이민자들을 몰아내 ‘순수성’을 회복하면 자국민들의 경제적 형편이 더욱 나아질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주목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그 외의 경우에 있어서도 낙관보다는 비관이 앞서는 이유가 여럿 있다. 국가 간 전쟁이 첨예한 곳에서는 인종차별이 ‘인종공포’의 수준으로 비약되어 있다. 알리도 말한다.
  “인종주의를 넘어서는 데에 장애가 되는 것은 많다. 생물학적 결정론,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문화적, 생물학적 순수성을 현실로 만들고픈 욕망, 서로 다른 문화와 민족들 간에는 변치 않는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신화는 언제나 모습을 바꿔가며 새로운 강령과 관행인 양 다시 포장돼 나타나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그의 말마따나 현대사회는 초국적 디아스포라의 시대이다. 우리나라는 그런 것이 덜한 편인데, 다민족 국가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국가가 아닌 “장소, 문화, 성별 등 여러 정체성”에 두고, 그것에 굳건한 충성을 바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전통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주류가 탄생한다. 사실 그것이 더 오래된 문화적 전략이기도 하다. 일부 강경한 이슬람 사회는 서구에서 들어온 세속사회에 반대한다. 신도들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일부 서구에서 들여온 TV프로그램 방영을 금지하거나 코카콜라, 맥도날드와 같은 유명 수입품 판매를 조기에 차단하기도 한다. 전통과 서구 문화가 공존(사실 주류는 후자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우리’라는 뿌리 깊은 개념이 민족을 휘어잡는다.)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알리가 가장 경계하는 것을 인종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인종의 개념을 끌어다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 그 자체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센서스 조사원인 A가 B의 집에 찾아가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탈인종주의를 위해 너의 인종을 조사해야 돼. 너는 인도계이니, 아니면 아프리카계 인도계이니?” 같은 맥락으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혼혈(mixed)’이라는 말에도 탈인종주의를 지향하는데 방해가 되는 어폐가 들어 있다.


  저자가 누차 강조한 바인데, 인종주의는 매우 부실한 이데올로기이다. 하지만 인간은 마치 많든 적든 인종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설명되며, 인종은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은 합리적인 과학의 비호를 받는 것처럼 광고된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시작된 인종주의가 20세기에 들어서는 점차 쇠퇴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진실’이 아닌 ‘편견’일 뿐이며, 다양한 이해관계와 무지한 대중들의 지지를 얻어 연명하고 있는 고대의 악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알리 라탄시는 말한다. 인종은 없다. 인종‘주의’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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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3-03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종주의는 매우 부실한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평소 제가 생각한 것과 같아요. 오히려 저는 저랑 다른 인종이(그런 게 있다면 말이죠;) 더 신기하고 알고 싶고 그렇다는 점에서 나름의 인종 이데올로기를 실행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어요.

탕기님, 그동안 뭐했어요? 오랜만이에요.
프란츠 파농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어요. ^_______^

탕기 2012-03-03 16:56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아이리님. 독서도 지지부진하고, 개강 준비 전에 축 늘어졌죠.
어제 개강했어요. 머리도 생기를 찾았는지 남은 분량 다 읽고 오늘 독후감 썼습니다.
프란츠 파농 읽을 준비해야겠어요. 내달에 살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