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떼의 앞자리는 영광의 자리일까? 희생의 자리일까? 영광의 자리든지 희생의 자리든지 맨 앞자리에서 나는 새가 한 마리 있어야 무리가 형성된다. 앞으로 불쑥 나선 새의 뒤를 따라서 무리없이 재편성되는 기러기 떼의 대형으로 보아서 그 앞자리는 자기를 희생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러기들이 무리의 맨 앞자리를 영광의 자리로 탐냈다면 다툼으로 대형이 흔들려 대장정은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까마귀 떼처럼 흩어졌을지 모른다.
늦가을 빈들 위를 나는 까마귀 떼를 보면 혼란스럽다. 거기에는 선두가 없든지, 전부 다 선두든지 하다. 오합지졸인 것이다. 선두가 없는 것은 선두가 살신성인하는 자리로 인식되어 기피하기 때문일 것이고, 전부 다 선두인 것은 선두가 영광의 자리라서 서로 탐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 의식 수준의 무리라면 통제나 질서 유지가 안 된다.
기러기들은 맨 앞자리의 필요성을 잘 안다. 그래서 존중한다. 기러기 떼의 앞자리는 선거법에 의해서 선출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서슴없이 앞으로 나서고, 죽지의 힘이 떨어지면 서슴없이 물러난다. 임기 5년의 단임제의 자리가 아니다. 연임도 할 수 있고 2년만 하고 말 수도 있다. 힘의 본능으로 자리를 서로 교대하면서 시베리아의 저희들 서식지로 돌아간다. 기리기 떼의 앞자리-, 기러기들은 그 자리에서 나는 기러기를 고마워할지언정 선망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날지 못하는 자신의 힘 모자람이 부끄럽다기보다 미안할 뿐이다. 그 자리는 유세하는 자리가 아니고 살신성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p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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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들이지만 뻔뻔하게도 청문회까지 나타난 이들의 면면을 보면 대한민국 장관의 자리는 결코 자기를 희생하여 살신성인하는 자리가 아닌 영광의 자리에 대한 탐욕의 장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개인의 영달, 가문의 영광, 그저 개인의 명함 수집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