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마치고 한참이 지난 후의 일이다. 여행 방송을 통하여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이 소개되고 있었다. 잠시후 인터뷰를 위해 출연한 한 중동남자의 얼굴이 어딘가 낯익다 싶더니 그의 아내라 소개된 한국여성분 얼굴이 나오는 순간 박수를 치고 말았다. 그 분은 암만에서 잠시 머물때 묵은 게스트하우스 여주인장이었다. 여행 도중 만난 중동남자와의 인연으로 그 곳에 정착하여 자식을 낳고 여자 아이 이름을 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슬람이지만 술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던 남편과 슬쩍슬쩍 눈치를 주던 아내분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여행은 제자리로 돌아옴이라는 일상적인 문구를 뒤로 하고 여행길이 삶이 되어버린 사람들, 인도와 중동을 여행하며 길에 멈춰 새로운 삶을 시작한 분들을 만났다. 대부분이 여성분들이라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을 길에 머물게 한 신호등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곤 했다. 붉은 신호등일까, 푸른 신호등일까. 그 신호등은 그들에게 무슨 말을 전했을까. 여기 멈추어서라고, 계속 나아가라고, 왼쪽 오른쪽으로 꺽어보라고.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것은 그들이 만난 어떤 인연과의 낭만도, 지난한 삶의 과정도 아닌 그들 자리와 방향을 보여준 알수 없는 신호등과 여기일꺼라고 멈춰선, 저기일꺼라고 돌아선 그들의 발걸음이 지닌 삶의 작은 용기이다.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바라본 골목길>
사해(死海)를 처음 알게된 건 지리학 교과서인것 같다. 신문을 펼쳐든 남자가 호수 위에서 유유히 신문을 보던 풍경. 사해에 도착후 바라본 호수 풍경은 마치 지리학 교과서를 다시 펼쳐든것 같은 기분이었다. 잡지를 펼쳐들고 책속의 모습을 따라하는 사람들, 두 팔 두 다리를 하늘로 뻗친채 오리떼를 흉내내는 사람들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그가 모습을 나타낸 건 호수에 들어간 일행과 전체 호수 풍경을 찍느라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을때쯤이었다. 호수 반대편 절벽에 카메라 앵글이 머물때쯤 그 사내는 말을 꺼냈다.
" 어디서 오셨소?"
" 한국 "
" 지금 찍는 호수 저편이 어딘줄 아시오?"
"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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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의 침묵이 궁금하여 옆을 돌아볼때까지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하는 순간, 그의 눈에서 알수 없는 떨림과 공허함이 피어올랐다.
" 저 곳은 팔레스타인이요"
아차 싶은 마음을 수습할 사이도 없이 그는 슬픈 표정을 마지막으로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손을 들어 그를 불러세워 뭐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일순간 움찔하며 멈춰섰다. 계절을 잊은 듯 두툼한 무채색 양복 상의는 가족과 놀러온 휴양객의 다채로운 색감속에서 더욱 침울하면서도 흑백과 칼라의 대조가 바뀐듯 또한 무척 도드라져 보였다. 실밥이 터진 듯 한쪽이 살며시 튀어나온 양복 속의 어깨는 한없이 낮아보였다. 사람은 뒷모습을 보일때 진심이 보인다고 하던가. 겨우 그 한마디 던지고 돌아서던 그의 모습은 그 어떤 슬픈 표정이나 말로는 다 할수 없는 아픔으로 쌓여있었다. 그저 낯선 동양이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팔레스타인"이라는 한마디 였을텐데. 지금 다시 만난다해도 그 말을 쉽게 할수 없을것 같다. 희망없는 진실은 때론 독이 되기에. 그저 술 한잔 같이 기울일수는 있어도.
<사해 - 반대편이 그가 말한 팔레스타인>
<암만의 한 카페 - 세번째는 25시의 앤소니 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