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의 전화는 매년 이맘때쯤에 온다. 내가 걸수 없는 입장이니 일방적이라 할수 있다. 오오츠크해와 캄차카 반도의 칼날같은 바다바람을 일년간 쐬고 돌아오는 항구에서 그는 어김없이 전화를 한다. 육지 생활이 할만하냐고 껄껄거리며 물어보는 그의 목소리에는 머나먼 이국의 바다를 일년씩이나 누벼야하는 마도로스의 아련한 향수가 젖어있다. 난 그의 목소리에서 바다를 그리곤 한다. 그는 육지를 꿈꾸고 난 바다를 꿈꾸는 짧은 소통의 시간이다.

어린 시절, 우리의 꿈은 단연 해적이었다. 그 당시 인기를 끌었던 < 보물섬 >의 외다리 실버선장이 내뿜는 카리스마앞에 작은 꼬마들은 매료될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실버 선장이 두려워하던 유일한 인물이 애꾸눈 플린트 선장이었다. 우린 둘의 특별한 신체적 모습을 합성하여 외다리에 애꾸눈 선장을 해적의 대명사처럼 여기곤 했다. 허리띠를 잘라 안대를 만들어 검게 칠하고 외발뛰기로 달려가던 그 시절의 모습은 외눈의 시각적 한계와 외발의 신체적 절망감을 느끼면서 하나둘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어촌에서는 자식들에게 결코 어부의 길을 가도록 하지 않는다. 배를 가지고 있는 선주의 경우는 예외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어부들은 자식들이 고향을 떠나기를 바란다. 우리 또한 각자의 삶의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났고 해적이라는 단어는 그냥 아련한 추억일 따름이었다. 그냥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한번 정도 지껄이는 그렇고 그런 단어였다. 해적선의 깃발은 더 이상 펄럭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바다바람의 칼날위에 서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바다를 찾아, 해적을 찾아 잠시나마 이국의 바다바람위에 세워졌던 나의 회상은 초겨울의 쌀쌀한 바람과 아직은 포근한 햇살속으로 돌아오고 있다. 두 발 굳건히 디디고 서야하는 이 육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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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12-13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생에 한번쯤 되고 싶은 걸 맘대로 해 볼 수 있다면 ...뱃사람이 되어 보아도 좋을텐데~ 합니다...~ 바라마지않던 뱃사람이 되어 막상 육지를 지독하게 그리워하게 될지라도요..

미네르바 2004-12-13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지금 바다를 그리워 하고 있네요.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시원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복순이 언니님 말씀처럼 저도 일생에 한번쯤 되고 싶은 걸 맘대로 해 볼 수 있다면... 잠시 뱃사람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은 칼날 같은 바다 바람이 그리워지는 오후에요.

Laika 2004-12-1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번주에 바다 보러가요...여러분께 바닷바람 쉬이익 담아다 드릴께요..쫌만 기다리세요..^^

겨울 2004-12-13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바다를 떠올리면 멀미부터 납니다. 바로 어제도 흐뭇하게 산을 보다 왔는데, 망망대해를 상상만 해도 무섬증이 ^^ 내세에는 부디 바다 근처에서 태어나 바다가 그리웠으면 싶네요.

잉크냄새 2004-12-1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바다를 그리워합니다만 왜 사람들은 바다를 가슴에 품고 싶어하는 열망에 사로잡힐까요. 사람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오늘 문득 궁금해집니다.

로드무비 2004-12-1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남자라면 마도로스를 꿈꾸었을 겁니다.^^

파란여우 2004-12-1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아, 바다에 가고 싶어요....

잉크냄새 2004-12-14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랫가락을 들으니 마도로스를 주제로 한 노래가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도로스를 꿈꾸고 바다를 꿈꾸고.... 여해적단의 결성이 멀지 않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