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그 도시가 하나의 색채로 기억되는 경험이 종종 있다. 인도 자이살메르가 골목 곳곳에 부서져 내리던 황금빛으로 기억되는가 하면 바라나시는 화장터 주변을 감돌던 엄숙한 기운과 묘하게 어울리던 회색과 검정의 어느 중간색으로 기억되곤 한다. 시리아 국경을 넘어서던 알레포행 버스 안에서 나도 모르게 그만 감탄사를 뱉어내고 말았다. 아마 터키에서 느끼지 못한 중동에 대한 나의 색감이 딱 맞아떨어진 때문이리라.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이 풍경마저 갈라놓은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말았는데 터키의 녹색 산림이 순식간에 시들어 황토빛 벌거숭이 산으로 변한 듯 하고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민가는 회색 콘크리트의 무거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삭막한 내륙의 도로 위에서 문득 고향의 비 내리던 항구가 떠올랐다. 비 내리는 잿빛 항구는 그 비내음 속에 항구 특유의 비린내를 품곤 하는데 묘하게 얼버무려진 비와 바다의 내음은 음울한 항구의 잿빛 하늘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곤 하였다. 그 잊을 수 없던 유년시절의 비 내리던 풍경이 햇살 찬란한 중동의 어느 삭막한 길 위에서 묘하게 일치해 버린 것이다. 때론 눈부신 태양이 더 우울할 때도 있다. 지금도 한 대의 버스가 달리던 황량의 그 길위의 풍경을 잿빛인지 황토빛인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 알레포 전경 - 알레포 성 위에서 바라본 시내 풍경>

 

 

중동의 이미지를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검은색 챠도르를 고를 것이다. 온 몸을 감싼 챠도르 사이로 반짝이는 두 눈, 그것이 내포하는 중동의 여성에 대한 억압. 책을 통해서든 매체를 통하여 내가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중동 문화의 한 단면일 것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챠도르를 입은 여성들과 종종 눈이 마주치곤 했는데 챠도르 사이로 슬쩍 보이는 웃음기 하나 보이지 않는 모습이 낯설고 어색했다. 성에 대한 억압이 어느 한쪽 성에 대한 편향된 억압임을 여실히 보여주던 풍경은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치던 삼류 에로 극장과 화려한 여성 속옷 가게였다. 가슴과 허벅지를 드러낸 여성의 나체가 그려진 극장의 간판은 온 몸을 검은 장막으로 감싸고 지나가던 여인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창문 너머 붉은 색의 화려한 속옷을 입은 마네킹 앞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던 가게 앞 검은 챠도르 차림의 여성은 아내의 속옷을 직접 고른 듯 쇼핑백을 들고 나온 남편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뜨면서도 못내 아쉬운 듯 눈길을 쉽사리 거두지 못하는 눈치였다. 속옷을 고르는 선택권마저 차압당한 느낌이었다. 한동안 벽에 기대어 길을 오가는 숱한 차도르의 물결을 바라보았지만 어떤 거센 바람이 불어 그들 삶의 이면이 벗겨지고 재구성될지 이방인의 눈으로 가늠하기 힘든 일이었다.

 

 

<알레포성 - 다리 위의 작은 검은 점이 사람이다>

 

 

알레포로 향하는 버스에서 만난 일본 여행자는 꽤나 여행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숙소에 대한 정보도 없는지라 그를 따라 숙소를 잡았다. 저녁 식사후 그가 중동 남자들이 즐기는 무언가를 소개해준다길래 무작정 따라나섰다. 이미 어두워진 골목길을 따라서 도착한 곳은 물담배를 파는 곳이었다. 여행을 한 도시마다 그곳 사람들이 여유로운 저녁 나절을 보내는 장소가 있곤 했다. 터키 골목의 은은한 불빛 아래 찻집이 있었다면 시리아는 어두운 골목 유리문 뒤로 뽀얀 연기를 품으며 물담배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쳐다보는 그들 사이에 자리를 하였다. 시샤 라고 불리는 물담배는 파이프에 물을 넣은 후 맨 위 쿠킹 호일로 싼 부위에 석탄을 올린다. 파이프로 흡입하면 가벼운 물소리와 함께 연기를 흡입하게 되는데 재료가 과일인지라 과일향이 많다. 그때 피운 향이 무엇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장미향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슬람 전통 복장부터 퇴근 길의 양복 입은 신사까지 각양각색의 그들과 눈웃음을 주고 받으며 한 시간 가량을 피고 나왔다.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도 물담배 연기가 뽀얗게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물담배를 한시간 피면 일반 담배 200개비와 맞먹는다고 한다. 얼씨구나.

 

< 알레포 물담배 가게에서>

 

 

어느 시인은 잘 빨아서 다리미로 잘 다리기까지한 와이셔츠를 세탁기에 집어놓고 돌리는 순간, 어디론가 떠난다고 한다. 물론 저런 운치 있는 표현을 붙일 수 없지만 즉흥적이고 대책 없기는 별반 차이가 없지 않나 싶다. 첫 여행 이후 이상한 버릇이 생겼는데 단 하나의 여행지만 선택한다는 거다. 그 여행지에서 다음 여정을 정하는 건 그때 그때의 몫이다. 시리아로 떠나기 전 머물던 숙소의 주인에게 물어본 것은 시리아 알레포로 가는 버스편과 비자 발급 여부 뿐이었다. 시리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만난 한국 여행자기 알려주기 전까지 시리아가 한국과 국교 수교가 맺어지지 않은 상태임을 알지 못했다. 어느 여행자처럼 허벅지에 여권을 테이프로 감는 정도는 아니지만 가방 제일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숙소를 찾지 못해 위험한 어둠 속 밤길을 하염없이 거닐 때, 끊어진 차 편으로 역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때, 곤혹스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다음 여행은 미리 준비해야지 하고 수도 없이 다짐하지만 아직도 나의 여행은 즉흥적이다. 그래서 바람을 좋아하지 라고 스스로 웃어넘기면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어느 마을로 걸어 들어가곤 한다. 아마 다음 여행도 그러하리라. 제 버릇은 개 못주니까.

 

<알레포행 버스 안에서>

 

 

 

< 알레포 시장에서 스카프 팔던 아저씨- 누가 저런 문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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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1-03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역시 진지한 문체 뒤의 은근한 유머가 빠지지 않으시는군요 ㅋㅋ
시리아는 가볼 생각도 안했던 나라인데.. 중동은 어쩐지 우울한 이미지라서요. 역동적이진 않죠?

갑자기 물담배가 그립네요 ㅎㅎ

잉크냄새 2012-01-03 15:33   좋아요 0 | URL
네, 전반적으로 과묵한 분위기지만 그리 우울한 분위기는 아닙니다. 사람들도 처음 어색한 분위기만 넘어서면 아주 낙천적인걸 느낄수 있어요. 사람들도 아주 친절해요. 유목 민족의 후예들답게 이방인에게 관대하고 친절합니다. 사실 중동 남자들이 여자 여행객들에게 친절의 수준을 넘어서서 너무 치근덕거리는 것이 문제죠.

물담배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2012-01-03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4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01-04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을 좋아하는 분에게 마침한 여행이로군요ㅎㅎ 한 시간에 200개비라... 대단하네요. 물담배라고 해서 전 외려 순할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과일향이 난다니 기회가 되면 딱 한 모금만 경험해보고 싶네요^^

잉크냄새 2012-01-04 12:26   좋아요 0 | URL
바람, 관련 이야기는 나중에 한번 써볼까 합니다. 여행과 바람은 무관한듯 하면서도 아주 밀접한 사이거든요.

저도 물담배가 아주 순하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피워보아도 몸에 전혀 무리가 느껴지지 않고요. 다만 한시간 피워보면 좀 어질어질 합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1-04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루트를 정해놓긴 하나 그 루트가 꼭 합리적이지 않은 루트로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즉흥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해요. 전 늘 전부 다 보고 싶기도 하고 한 군데만 집중해서 보고 싶기도 한 마음 때문에 갈팡질팡 했거든요.

잉크냄새 2012-01-04 12:28   좋아요 0 | URL
루트를 정하고 그 일정대로 움직이는 분들도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저도 님처럼 루트가 발길 닿는대로 변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일정의 문제로 정해진 루트로 움직였는데 여행이 길어질수록 발길이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가곤 했어요.
전 여행지에서 무언가 특정한 것을 보는것보다는 오래된 골목을 거닌다던가 하는 목적성없는 것에 더 이끌리곤 했지요.

風流男兒 2012-01-1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예전에 강남역 어디에선가 인도+동남아시아+중동을 약간 섞어놓은 듯한 바에서 물담배를 펴본적이 있었어요. 좋다. 고 하면서 계속 피워댔는데, 시간당 담배 200개피라니. 놀랍네요.

여행을 항상 준비하려고 하지만, 저도 결국은 즉흥적으로 가게 되더라구요,
돌아 생각해보면 즉흥으로 가지 못하면 항상 못가게 되는 게 여행이었던 듯도 하구요.

그나저나 마지막 아저씨 칼을 들고 계시는 게 압권인데요. 게다가 시어머니라니 ㅎㅎㅎㅎ
정말 대단해요

잉크냄새 2012-02-03 11:16   좋아요 0 | URL
가끔은 즉흥적인 선택으로 어려움을 겪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후회하지만 한번 습관되어진 습성은 쉽게 변하지 않나 봅니다.

시어머니께 선물을 권하는걸 보니 저 문구는 남성분이 써준것 같네요.ㅎㅎ

2012-02-13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3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