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거워짐에 대하여
- 박 상 천-
맞는다는 것은
단순히 폭과 길이가
같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오늘 아침,
내 발 사이즈에 맞는
250미리 새 구두를 신었는데
하루종일
발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어요, 맞지 않아요.
맞는다는 것은 사이즈가 같음을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어제까지 신었던 신발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맞는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헐거워지는 것인지 모릅니다.
서로 조금 헐거워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편안해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게지요.
이제, 나도 헐거워지고 싶어요
헌 신발처럼 낡음의 평화를 갖고 싶어요.
발을 구부리면 함께 구부러지는
헐거운 신발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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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말했던가요?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이다라고.
낡음, 오래됨 같은 단어에서는 왠지 포근함과 아늑함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그 오랜 세월을 통해 서로에게 편하게 길들여진것 같아요. 낡은 신발속의 발처럼 말이죠.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조금은 헐거워서 편안한 그런 사람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