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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 - 합본
신영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엽서 한장을 읽을때마다 책장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서 계셨을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찬바람을 맞았고 잉카문명 마추픽추의 폐허속을 거닐었습니다. 콜럼부스가 오욕에 가득찬 눈빛으로 서있는 우엘바 항구에서 새로운 태양의 그림을 우리의 과제로 남기신 태산의 일출로 마무리되는 여행 곳곳을 눈을 감고 따라갔습니다.
사람이 뿌리를 내리고 최선의 삶을 살아왔고 아직도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 나약하나 결코 무너지지 않는 삶의 모습을 명징한 사고와 냉철한 이성으로 하나 하나 엽서에 담았습니다. 강자의 논리로 지배되어온 과거의 문명속에 내재된 상처를 어루만지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의 방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길위에서 하나의 가치에 치우치지 않는 동반의 의미를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도록 차분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타성이다 ]는 구절은 참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찌할 수 없이 한곳에 뿌리박고 그곳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떠남을 어렵게 하는 것은 뿌리의 구속이 아닌 무쇠방과도 같이 우리를 둘러싼 타성에 젖은 사고입니다. 여행의 귀결이 결국은 돌아옴이라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어쩌면 현재의 우리의 상처를 둘러보고 보듬어 자신의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내는 일일 것입니다. 진주는 조개의 상처에서 나오고 샘물은 바위의 상처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진리일 겁니다. 그런 후에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고...
책을 읽는 내내 저의 사고의 그릇이 얼마나 오만하고 무지한지를 느꼈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담기에도 부족했고 그 작은 그릇마저도 차마 채우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작은 그릇에 담긴 말씀으로 망막의 비늘 한조각이라도 벗겨져 더 맑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