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부터 시작하여 6월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임금협상과 각종 처우 개선관련 협상이 여느 년도와는 다르게 장기화되더니 6월초 쟁의 신고가 들어가고 다음주부터는 파업이 예상된다. 쟁의 신고후부터 주현관과 회사 주변에서 각종 집회가 점심시간과 출퇴근 무렵에 이루어진다.

조합원과 비조합원, 나는 사규에서 규정한 개떡같은 가입조건(대졸은 조합가입 자격이 없다) 과 직책이 달라 비조합원이다. 회사 구성원의 비율로 따지면 50:50정도이다. 평상시에는 별다른 분위기없이 지내던 이 구조가 단체 행동 시기가 다가오면 비조합원은 방관자 , 주변인의 입장으로 설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다.

오늘도 점심시간에 사무실 창문을 울리는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래소리가 들린다. <임을 위한 행진곡> <철의 노동자>... 사측과 노조측 양쪽의 협상안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고 동참할 자격도 없기에 사무실에 있다가도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창가쪽이나 집회 주변으로 이끄는 것은 가슴속 심장박동수와 동일하게 울리는 이 노래들 때문이다.

90년대초 학번이기에 80년대 정점으로 치달았던 학생운동이 쇠퇴기를 맞이하는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그래도 각종 집회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매캐한 최루탄 향을 거의 매일 맡으며 다녔던것 같다. 아마 그 당시 수그러들던 분위기에 기름을 끼엊은 사건이 강경대군(이름이 가물가물하다)의 분신자살이었던것 같다.

사실 난 정치적인 견해같은 것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군사정권의 잔재와 자본주의의 병폐를 부르짖는 그들 앞을 지나면서도 크게 동감하지 못했던것 같다. 가방에 워커와 건빵바지를 넣고 다니며 시간날때마다 새벽시장, 노가다판을 전전하며 일당치기로 학생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머릿속에는 세상은 살만하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당 2만원에 12시간을 삽질하면서도 돌아오는 차속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느꼈으니까...강경대군의 분신자살관련 데모에 간것도 그가 가진 사상이 어떻고는 논외였고 단지 비슷한 년배의 청년이 목숨을 버린 그 사실 하나가 그토록 서글펐고 울분이 치솟았던 기억만이 난다.

잠잠하던 노래가 다시 들린다.  <임을 위한 행진곡> <철의 노동자> 등의 노래에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분명 가슴속의 울림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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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6-11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참...이중적인 모습을 연출해야 할 때가 있죠....그들의 울분을 이해하지만...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못하는...

음~ 정치적인 입지가 아직 서지도 않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겪지 않은 갖 대학 초년생에게 자본주의의 병폐와 민주화의 부르짖음에 공감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힘들지요~! 특히 90년대 초 학번들은 더더욱요...

호밀밭 2004-06-11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쟁이라면 등록금 투쟁밖에 해 본 적은 없지만 저도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거 학교 들어가자마자 부르곤 했었어요. 5월 1일 노동절날 노동 영화를 보았는데 그 노래를 레미콘 운전사 아저씨들이 부르는 것을 들었는데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세상은 공평해지기에는 너무 모순이 많죠. 모순임이 분명한데도 행동으로 나설 수 없다는 거. 왠지 세상의 약자가 된 느낌이 들어요.

미네르바 2004-06-12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끔 세상에 대해, 역사에 대해, 때론 누군가에 대해 많이 빚졌다는 생각을 갖곤 해요. 그러면서도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저에 대해 화가 날 때도 있지요. 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는 시선을 갖고 있는 듯해요.

잉크냄새 2004-06-12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관자의 입장, 가슴으로 이해하고 느끼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현실...
다음주부터는 더 현실화될 것인데... 참 답답하네요...

비로그인 2004-06-16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우린 같은 배를 탄것 맞지요 ^^ 내일도 잔업이 없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