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흑해 연안을 따라 터키 동부로 이동하고자 하는 계획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아마스라'라는 흑해 연안의 작은 어촌 마을로 향하게 된것은 '아마스라'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큰 몫을 차지했다. 붉은 지붕의 작은 어촌 마을의 사진보다도 그 위에 자리한 마을의 이름에 한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아마스라' 를 조근히 속삭여보면 아스라히 멀어져가는 말로 표현할수 없는 흐릿한 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발길은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어촌 마을로 향하는 언덕길은 터키 겨울철 우기 특유의 날씨들 동반하였는데 빗물이 흐르는 창밖으로 지나치는 나무의 녹색 옷차림은 그 음울한 기분을 다소나마 달래지고 있었다. 차를 갈아타고 넘어가는 마지막 고개에서 바라본 작은 마을은 손바닥을 들어 가려질만큼 작은 곳이었다. 푸르른 바다를 배경으로 붉은 지붕을 어깨동무 삼아 자리잡은 마을은 동화속에서 구술되던 마을이라 할만했다.   

<아마스라- 북해 연안의 어촌 마을> 



세상의 어느 촌이나 마찬가지로 이곳 또한 젊은이가 떠난 마을을 노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한국전쟁과 월드컵으로 한국에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곳 노인들에게 배낭을 메고 나타난 동양인이 신기했던지 바닷가를 산책하던가,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가 하면 영락없이 나타난 흰 수염의 터키 노인들에게 질문공세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들과 대화를 하거나 허름한 카페의 한 구석에서 바라보다 보면 터키 노인들에게서는 늙어감에 대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인생의 막바지를 향해가는 고독과 두려움보다는 현재 주어진 시간을 살아간다는 느낌, 최선을 다해 늙어간다는 느낌이 묻어난다. 세월의 바람에 조용히 풍화되어 가고 있는 자연스러운 늙음이다. 문득 인도에서 마주친 노인들이 떠올랐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인도 노인에게서 과거와 미래에 단절된 느낌을 받았다면 터키 노인에게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조화로움이 묻어난다고 할까. 그들이 바라보는 삶의 지평 너머에는 또 다른 삶이 푸른 돛을 달고 넘어가고 있는것 같았다.   

<아침 언덕 산책길에>

터키 여행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잠들기 전 두세 시간 동안 조용히 피우던 장작을 말하고 싶다. 이스탄불을 제외한 겨울철 터키의 숙소는 방마다 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국민학교 시절 도시락을 데워 먹던 그 난로와 똑같은 것이었다. 촉촉히 떨어지는 비를 뒤로 하고 어둑어둑해진 골목을 돌아 들어서면 삐걱 열리는 문소리를 확인한 주인 양반이 한동이의 장작을 들고 나타나 오래된 잡지의 한쪽 면을 부욱 찢어 불을 붙이곤 사라진다. 전등을 끄고 장작을 한두개 집어넣으며 소파에 앉아 상념에 잠기다 문득 뒤를 바라보면 내 영혼의 그림자가 보이곤 한다. 한밤중 촛불을 응시해본 사람은 알고 있지 않을까. 그 불빛의 흔들림이 내 영혼의 흔들림이라는 것을. 그것이 나를 투과하여 뒷편의 벽면에 흔들리고 있다. 그건 그림자가 아니라 영혼의 투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듯 했다. 신처럼 완벽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불빛의 흔들림에 그저 속적없이 흔들리는 영혼. 그 속절없는 영혼이 바라보는 가운데 부끄러운 일기를 쓰거나 그리운 이에게 한통의 엽서를 띄우곤 했다. 두세시간후 영혼이 조용히 잠들면 나도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곤 했다.   

<언덕의 제일 좌측에서 혼자 머물다>

일주일 동안 샤프란볼루에서의 단 하루를 빼고 비가 촉촉히 내렸다. 겨울철 우기로 접어든 터키의 날씨는 사람을 축 쳐지게 만들어 여행 경로를 바꾸게 만들었다. 터키 중부에 자리잡은 카파도키아를 마지막으로 터키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물론 한국 물가와 맞먹는 터키 물가에 질린 이유도 없지는 않다. 흑해 연안을 따라 터키 동부를 돌아보려던 계획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새로운 여행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아마스라의 어느 식당에서>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3-21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4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1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4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3-21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장작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ㅋㅋ 크게 숨 한번 들이켜고 갑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구요^^

잉크냄새 2011-03-24 15:00   좋아요 0 | URL
저에게 후와님 만큼의 사색의 크기와 글솜씨가 있었다면 그 여행의 흥취를 더 잘 표현할수 있었을텐데요...아쉬워요..

후와님도 건강 유의하시길...

2011-03-2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4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3-2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찬찬히 한참 들여다 보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계시네요.
옛날 천원 짜리 지폐를 가지고 마당 쓰는 마당쇠를 찾아보는 숨은그림 찾기가 유행이었어요.
답은 마당 다 쓸고 들어갔다...였구요.
언덕 제일 왼쪽의 집도, 지난 사진의 그네도 한참을 들여다 봤어요~^^

저는 장작은 고사하고, 촛불에 비춰 제 영혼의 흔들림을 한번 봤음 좋겠어요.
답은 불낼라...아닐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잉크냄새 2011-03-24 15:24   좋아요 0 | URL
앗,찌찌뽕.
예전 알라딘에서 이렇게 거의 실시간으로 댓글 다는 것을 찌찌뽕이라고 했지요.ㅎㅎ

제 사진이 그런 마력이 있군요. 거의 혼자 여행을 다니다보니 풍경 말고는 제 사진을 찍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로 설명하다보니...ㅎㅎ

2011-03-29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8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6 0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8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3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3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5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7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