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날 연휴 동안 고향에 다녀왔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벗어나 바람이 살아있는 진고개를 넘고 소금강을 지난다. 산속 국도를 벗어나 인가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도로변을 달리면서 '산천이 유구하다'는 말이 이제는 의미가 없음을 느꼈다. 산천이 유구함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나 어울릴듯한 말이다. 2년전 대홍수로 물길이 바뀌고 온통 자갈밭으로 변한 지형이 또다시 사람에 의해 더 큰 변형을 일으키고 있었다.
고향, 이제는 그 지리적인 면에서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는 많은 부분이 퇴색되어가고 있다.. 나도 이방인처럼 이곳을 스쳐지나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먼발치로 바라보는 그냥 작은 어촌이고, 항구보다는 관광지로서의 느낌을 받곤한다. 비오는 날 보랏빛 항구의 저녁 하늘을 날아오르는 갈매기는 더 이상 없다. 한편의 수채화같은 항구의 풍경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온통 관광버스이고 어부들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항구를 메운지 오래이다. 그러나 어차피 생활을 위한 변화인 것을 이제는 고향을 떠나 타지인이 된 내가 그런 변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인 것을 안다. 그래도 사람이기에 고향은 옛 고향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아직 고향을 지키는 것은 있다. 친구, 어촌은 특성상 부모님 직업의 대물림이 극히 적은 곳이다. 뱃놈이란 부정적이고 비하적인 말이 있듯이 어부였던 부모는 결코 자식에게 어부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촌이 고향이어도 친구가 어부인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모두가 타지 생활을 하며 고향은 부모의 생활터전이지 자식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몇명 남은 친구가 고향을 지키는것은 마음속의 작은 위안이다. 고향 지킴이라고 치켜세우는 말에 다분히 옛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미친놈이라고 악의없이 말해줄수 있는 친구가 있는 곳이 고향이다.
어머님, 오늘도 고향을 떠나 다시 나의 생활터전으로 돌아오는 다 자란 아들을 마중나오신 어머님. 대학입학이후 줄곧 그렇게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저 모퉁이를 돌아서면 어머님은 돌아서 눈물지으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모퉁이를 돌고 있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면 어머님은 영영 그 자리를 떠나시지 않을테니까...그런 어머님이 계신곳이 또한 고향이다.
'산천은 유구한되 인걸은 간데 없다'고? ... 아니다. 고향은 말이다. 그런 친구와 어머님이 있어서 또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