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버스의 묘미를 맛보세요." 
맥그로드간즈행 버스표를 끊고 기다리는 나에게 출국차 델리 공항으로 떠나는 여행객이 환하게 웃으며 던진 말이다. 장거리 버스라 도심을 달리는 로컬버스보다는 사정이 좋지만 움푹 가라앉은 좌석은 불편하고 특히 외국인에게는 뒷좌석이 배정되어 불편함을 가중시킨다. 도로사정 또한 최악이라 맨뒷좌석에 앉은 난 수시로 공중부양을 한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통통거리며 달리는 코믹한 버스를 탄듯하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 것은 새벽 3시경 어느 깊은 산중의 비포장 도로이다. 담배도 필겸 내려보니 엔진 고장인지 운전사와 보조가 엔진을 수리하는 중이다. 담뱃불을 붙이고 무심코 올려본 밤하늘은 별들이 쏟아질듯 하다. 불편함과 지연으로 인한 짜증이 담배연기에 묻혀 사라진다. 잠이 깬 몇몇 다른 승객들과 30분 가량 버스를 밀다 포기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차를 옮긴다는 소식을 접한건 6시가 거의 되어서이다. 45인승 버스를 대신해 30인승 정도의 버스가 도착한다. 좌석이 부족할듯 싶어 일부러 마지막에 오르니 차량 복도에 짐이 가득이다. 망설이며 대충 서 있으려니 현지인들이 자신들의 푹신한 짐들을 모아 복도에 자리를 마련한후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손짓을 한다. 흔들리는 짐 위에서 반쯤 누워 또다시 잠이 든다. 버스는 5시간이 지체한 17시간을 달려 맥그로드간즈에 도착했다.   



< 쭐라캉의 코라 산책길 외곽 - 능선이 트리운드 트래킹 코스>

1959년 달라이라마가 망명한 이후 티벳 문화를 티벳본토보다 잘 간직하고 있으며 불교관련 명상센터가 있어 많은 여행객이 머문다. 특히, 뭄바이 테러 이후 닫힌 암리차르의 인도-파키스탄 국경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여행객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거리는 더욱 북적거린다. 그래도 도시 자체가 가진 이미지 때문일까. 맥그로드간즈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아침마다 이곳 티벳인의 성지인 쭐라캉의 코라 산책길에 나선다. 산책길의 바깥은 숲과 설산이 끝없이 펼쳐지고 안쪽은 진언을 새긴 원색의 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전통복장을 한 노인들을 따라 때론 앞서거니 뒤서거니 천천히 걷는다. 진언이 적힌 돌을 향해 절을 하고 "옴마니반메훔"을 외며 걸어가는 그들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어 걷다보면 30분이면 될 산책길이 2시간은 걸린다. 문득 세상에는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꽃들이 북상하는 속도가 있고,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가 있다. 길옆에 핀 하나의 들꽃이 자동차를 탄 이에게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걷는 이에게는 하나의 풍경이다. 때론 풍경에 주박되기도 하고 때론 풍경이 가슴 속으로 걸어들어오기도 한다. 그곳에 머무는 일주일내내 "옴마니반메훔"을 외우는 그들의 속도에 맞추어 걷곤 했다. 풍경이 아름다웠다. 

 

<쭐라캉의 코라 산책길 >

티벳사태후 히말라야를 45일간 걸어서 이곳으로 탈출한 2명의 티벳인을 만났다. 20대 초반의 청년은 항상 오토바이를 몰고 시내를 돌아다닌다. 뒷좌석에는 우연히 델리에서 동행한 한국 여성이 타고 있다. 둘은 서로 사귀는 사이라 한다. 나를 볼때마다 손을 흔들고 환히 웃으며 큰소리로 인사하는 여인과 달리 청년은 항상 무표정하고 공허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둘의 모습은 왠지 부조화스럽고 위태로워 보인다. 청년이 웃는 모습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20살 아가씨의 이름은 이시출라이다. 티벳승려가 운영하는 "샹그릴라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국인을 꼭 닮은 모습이 고향의 어디에선가 마주친 느낌이다. 이곳을 자주 찾는 한국인 스님들이 부처의 말씀을 알려주고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그녀는 항상 웃는 모습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가슴속에 새겨진 트라우마의 한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살아간다. 그들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Peace in Tibet 집회 참석 - 혼자 날짜를 틀리게 썼구만>

나의 여행은 즉흥적이다. 꼼꼼히 일정을 따지지도 않고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이동한다. 다음 여행에서는 꼭 계획적으로 움직이리라 다짐하지만 매번 즉흥적이다. 버스표를 미리 예매하지 않아 하루 더 이곳에 머무르기로 결정한 날 달라이라마가 이곳으로 돌아왔다. 역시 인생지사 새옹지마요 전화위복이다. 좁은 골목길은 그를 맞이하려는 티벳인과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살며시 합장한 두손에서 피어오르는 향냄새가 거리를 가득 메운다. 이곳의 산책길에서도 느낀거지만 이곳의 신앙은 화려하지 않고 생활 자체에 내재화된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간절함이 더욱 깊게 묻어난다. 갑자기 마을 입구쪽부터 합장한 두손들이 물결치듯 넘어온다.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달라이라마의 얼굴이 언뜻 보인다.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한다. 이들의 소망이 당신께, 하늘에게, 땅에게 이르기를 빌었다.    



<달라이라마를 기다리는 티벳 꼬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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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6-18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여행책을 내셔도 되겠습니다.
스킨도 새로 까셨군요. 직접 찍으신 사진인가 봅니다.^^

잉크냄새 2009-06-18 20:29   좋아요 0 | URL
카테고리 제목처럼 그냥 넋두리일 뿐이죠.^^
배경 사진은 이집트 시와 사막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2009-06-18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8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09-06-18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하ㅏㅎ

인도버스의 묘미!!!!!!!!!
창문하나 깨져있는건 당연하구요, 놀이기구 타며 누워 잠자기, 겨울에 고장난 문으로 드는 찬바람 밤새 맞기, 도로 화장실 이용하기, 3시간 연착은 장난- 아, 피곤합니당;; 버스는 최장 13시간이었는데 진짜..

예전에 이곳에서 티벳남과 한국여자애의 사랑일까- 이런 글을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이 얘길 또 다른 친구한테도 들었어요. 물론 다른커플이겠지만; 이런 일이 자주 있나봐요.
친구는 값싼 감정놀음이라고 비웃어대더군요, 여자앤 뭐 사랑사랑 난리부르스 울고불고 난린데 건너 들으니 티벳남자애는 '날 좋아하는 한국 애 하나가 있다.'라고 가볍게 말하고 다닌다던데,, 사랑일까요..ㅎㅎ

이제 드디어 자이살메르 편이+_+ 근데 밤에 비가 왔다니 안습이어요 ㅠ

잉크냄새 2009-06-18 20:42   좋아요 0 | URL
님도 말로 설명할수 없는 인도버스의 묘미를 알고 계시군요. 전 다른것보다도 유리창 사이로 스며드는 새벽 찬공기에 이를 따닥따닥 부딪히며 내려오던 맥간-델리행 버스가 잊혀지지 않네요. 여기서 얼어죽는군나 싶었으니까요. 화장실 이용은,,, 전 그냥 현지인과 같이 노상방뇨로 해결했답니다.

사랑은 당사자들의 문제지만, 그저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춤추는인생. 2009-06-18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세상에는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꽃들이 북상하는 속도가 있고,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가 있다. 길옆에 핀 하나의 들꽃이 자동차를 탄 이에게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걷는 이에게는 하나의 풍경이다. 때론 풍경에 주박되기도 하고 때론 풍경이 가슴 속으로 걸어들어오기도 한다. 그곳에 머무는 일주일내내 "옴마니반메훔"을 외우는 그들의 속도에 맞추어 걷곤 했다. 풍경이 아름다웠다. ]

어여 스텔라님 말씀을 고려해보시길.^^

잉크냄새 2009-06-18 20:40   좋아요 0 | URL
그저 망각하지 않기 위해 올리는 제 기록일 뿐인걸요.
23개 도시를 정리할 예정인데 아직 까마득합니다.ㅎㅎ

짱꿀라 2009-06-1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이쁜 이미지들만 담아 오셨네. 아이구 자꾸 여행가고 싶어지네요. 어제 서울에서 내려와 올리신 글과 이미지를 보니 피곤이 금새 달아납니다.

잉크냄새 2009-06-20 15:02   좋아요 0 | URL
그곳에는 사진에 담을수 없는 많은 풍경이 있더군요. 저도 글을 올리다보니 그곳을 또 가고 싶은 생각이 들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