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남아있는 야생의 습관

-이병률-


서너 달에 한번쯤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오는 습관을 버거워 하면 안된다

서너 달에 한번쯤, 한 세 시간쯤 시간을 내어 버스틀 타고 시흥이나 의정부 같은 곳으로 짬뽕 한 그릇 먹으러 가는 시간을 미루면 안된다

죽을 것 같은 세 시간쯤을 잘라낸 시간의 뭉치에다 자신의 끝을 찢어 묶어 두려면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하는 모른 체 하면 안된다

자신이 먹는 것이 짬뽕이 아니라 몰입이라는 사실도, 짬뽕 한 그릇으로 배를 부르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타이르는 중이라는 사실 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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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차, 엄청나게 느리다. 자전거에 따라 잡히기도 한다.)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풍경들이 외면하여 내가 없는 풍경이 더 자연스레 느껴지는 날, 나 혼자 퉁 하고 튕겨져 나와 기를 쓰고 되돌아가려해도 유화위의 빗방울처럼 또르르르 굴러 떨어지는 날, 그런 날은 버스 맨 뒷좌석에 올라 종점에서 종점까지 아무말없이 타고 다니곤 하였다. 20대 초반을 관통한 율도에서 구월동까지 인천시내를 에둘러 지나가던 41번 버스는 아마도 가장 긴 노선이었던것 같다. 차장을 따라 흐르는 빗물이 기어이 버스안 풍경이 되지 못하고 사라지는것 같아 바짝 타오르는 입술을 축이며 생담배를 물곤 하였다. 주머니속에 토큰 2개만 짤랑거리던 시절이라 뜨거운 짬뽕 국물 한번 넘기지 못하였지만 가슴속에 뜨거운 무엇이 흐르기는 마찬가지더라.

이곳 풍경이 낯설어지던 날, 오토바이 속도만큼의 궤도차를 타고 그냥 흘러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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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2-2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떠오르는 90년대 초반 41번 버스 노선
율도-거북시장-영창악기-송림동 달동네-배다리-미림극장-동인천-애관극장-강원연탄-옐로하우스-도로위 화물열차-분수대-용현동 물텅범 거리-독쟁이 고개-......-구월동
하차 지점이 거의 독쟁이 고개라 가끔 타고 다니던 그 뒷노선은 떠오르지 않는다. 여우님이 채워주실라나.^^

Mephistopheles 2007-12-2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도 서정적인 페이퍼에 저는 제목만 보고 표효하는 회색늑대를 생각해버렸어요.^^

잉크냄새 2007-12-27 18:33   좋아요 0 | URL
메차장님, 전 노상방뇨를 생각해버렸어요.^^

춤추는인생. 2007-12-2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좋아하는 시가 이곳에 걸려있네요. 박성우의 `건망증`이 다시금 생각나면서. 종점에서 종점까지라니 오늘 제마음이 그러했나봐요. 지하철 3호선의 끝과 끝을 달리는동안 비록 차창밖은 암흑이였으나. 뚫어지게 창밖을 바라 보고왔거든요.
풋~ 저는 짬뽕국물이 아니라. 우동국물이요. 이상하게 일산가면 김훈의 단편 `배웅`이 생각나. 뜨거운 우동 국물을 들이키고 왔더랬지요.^^

잉크냄새 2007-12-27 22:00   좋아요 0 | URL
<건망증> <여전히 남아있는 야생의 습관> 두편의 시 모두 님이 알려주신 시인인걸요. 가끔 그런 날이 있어요. 아무 생각없이 하염없이 차창밖을 바라보게 되는날,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낯설고 그립다가 어느덧 흘러가고.
짬뽕국물이든 우동국물이든 뜨거운 국물을 울컥울컥 들이키고 싶은 날이 있어요.

파란여우 2007-12-27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 녜, 왔습니다.^^
41번 버스 잇기놀입니까?..
독쟁이 다음, 용일사거리, 용일사거리 다음에 신기촌, 신기촌 다음에 인고앞,
인고 다음 석바위, 석바위 다음에 간석동, 시청후문...지금은 어찌 변했는지 몰라염.
나 지난번 고향 갔을 때 배다리하고 동인천에서만 놀다 와서.
다음에는 독쟁이 추억좀 얘기 해줘요.
버스 정거장 앞 오락실, 소주를 샀던 작은 수퍼, 굴다리, 순대집, 성당...
그리고 학교 후문에 이르기까지. 혹시나 인경호에 빠진 괴담은 없으셔요? 흐흐
난 저 근처에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길목마다 널려 있다우,
우쒸, 오늘은 술좀 마셔야겠다.

잉크냄새 2007-12-28 09:45   좋아요 0 | URL
역시나 여우님이 알려주시리라 믿었어요.
독쟁이 고개는 안가본지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여우님 말씀처럼 오락실-곱창골목-굴다리-야구장-인하극장-내리막길을 달려 겨우 수업시간에 맞춰 공대계단을 올라가던 시절이 아스라히 떠오릅니다.
인경호에는 빠지지 않았지만, 정자에서 드렁큰 패밀리 술파티 열고, 독쟁이 고개에서 곱창에 빠져 살던 이야기는 언젠가 한번 풀어보지요.ㅎㅎ
팔 관리 잘하시고 또 뵙지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12-31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버스 타고 아무 생각없이 종점까지 가기,를 한 오백 번쯤 해봐야지 생각하고선
해본 적이 없네요.
봄이 오면, 한 번 해볼래요.
겨울엔, 내렸을 때의 그 한기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08-01-04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님 / 오백번이면 짬뽕도 오백 그릇? 단무지는 천 그릇? ㅎㅎ

살청님 / 살청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8-01-07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7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9 0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9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9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9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