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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구상에서 사람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구절을 꼽으라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고 대답해도 무방할듯 싶다. 그 구절이 지니는 철학적 의미를 떠나 실천적 측면에서 역설적으로 내포하는 실천 가능성 제로, 또는 제로에 가까운 희박함이 그 구절의 생명력을 이리도 늘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자기 자신을 아는 것만큼 힘든 일도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작가 본인이 스스로 밝혔듯이 젊은 시절 콤플렉스 덩어리라 불릴만한 이 독특한 여인이 여행을 통해 의식 저 아래에 깊숙이 감춰진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 어둠 속으로 조금씩 발을 들여놓는 과정이다. 아니 행위 주체의 방향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의 무의식을 의식 수준 만큼의 빛 속으로 꺼내놓는 과정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럼 무의식을 꺼내어 고추 말리듯 햇볕 속에 널어놓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운가. 아마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반에 강한 심리적 저항에 부딪히리라 생각한다. 그 알수 없는 저항의 심리는 무엇일까. 바로 자기 부정이다. 암흑같은 심해에 깃든 무의식을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지금까지 무의식 자체를 철저히 포장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부정해야 한다는 고뇌에 빠진다. 자신을 부정하려니 그 치부를 빛 속에 꺼내어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무의식에의 접근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자기 부정의 단계마저 뛰어넘는 초인적인 정신력? 창피함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철면피 정신? 너무 거창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자기 부정이 아닌 인정이 필요한 것이다. 무의식을 포장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결국은 자신의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삶속에는 양지와 음지의 야누스적 두 얼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차피 생은 어느 순간의 트라우마에 고착되어 사는 것일수도 있다. 그 트라우마를 인정하고 애틋하게 바라보는 것, 그 순간부터 삶은 치유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 이제 소크라테스와 놀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