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가소성 - 일생에 걸쳐 변하는 뇌와 신경계의 능력 DEEP & BASIC 시리즈 3
모헤브 코스탄디 지음, 조은영 옮김, 김경진 해제 / 김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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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걸쳐 끊임없이 변하는 뇌. 예전에만 해도 다 자란 뇌는 굳어 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뇌도 변할 수 있다는 걸 이제 우리는 압니다. 근래 유명한 사례 중 하나가 런던 택시기사 이야기일 겁니다. 런던 택시 기사의 공간 탐색과 관련된 해마 뒷부분 회색질 밀도가 대조군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는, 특정 지식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종합적인 기억 훈련이 뇌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뇌는 사용자의 필요에 적응하는 역동적인 기관입니다. 경험과 행동에 따라 평생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면서 반대급부로 잘못된 편향을 불러오기도 했는데요, 두뇌 훈련 게임을 통해 뇌를 리셋할 수 있다는 광고처럼 마법에 가까운 치유의 힘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구글 검색창에 rewiring your brain을 검색하면 습관 고치기는 물론이고 사랑, 행복, 직장에서의 성공 등 인생의 의미까지 찾을 수 있는 뇌 재배선하기. 의도적으로 뇌를 성형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은 우리의 호기심을 단박에 사로잡는 주제입니다. 신경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뜻하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의 진실이 궁금해집니다.


영국 신경생물학자이 과학 작가 모헤브 코스탄디의 책 <신경가소성>은 얇은 분량임에도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신경가소성의 작동 원리를 알려줍니다. 신경은 어떻게 뻗어나가는지, 어떤 종류의 자극이 뇌 재배선에 영향을 끼치는지, 신경 손상과 장애는 어떤 가능성을 만들어내는지, 생애 주기에 따라 신경이 변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신경가소성의 개념을 쉽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성인의 뇌에서 신경줄기세포가 발견되면서 신경가소성의 수많은 유형과 메커니즘이 규명되었다고 합니다. 신경가소성은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특정 시기에만 일어나기도 하며, 여러 유형이 동시에 또는 별개로 유도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뇌는 아동기 말에서 성년기 초까지 가소성이 장기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된 상태로 발달하고, 시력 또는 청력을 잃거나 뇌가 손상되었을 때에는 수주, 수개월, 수년 동안 서서히 변화가 유도된다고 합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도 많은 결과들이 뒤바뀌면서 뇌신경 분야는 빠르게 변했습니다. 성인의 뇌는 평생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어내고 원치 않는 것을 제거합니다. 시냅스 형성과 가지치기와 연관된 학습, 기억 파트는 학부모라면 특히 주목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여전히 '~하는 것 같다'는 연구 결과가 많네요.


성인이라면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성인 뇌에서 신경 발생과 신경줄기세포를 발견한 거예요. 성인의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 발생이 어떤 목적 달성에 기여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진 않았다고 합니다. 성인의 신경 발생에 뒤따르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는 걸 함께 알아둬야 합니다. 걷잡을 수없이 분열하고 전이되면서 발생하는 암처럼 뇌에 종양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인지력 감퇴를 막는 과학적인 방법이라며 뇌를 훈련시켜 기능과 전반적인 뇌 건강을 증진하는 상업적 뇌 훈련 게임에 관해서는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전이효과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고 합니다. 뇌를 훈련하느라 한 게임을 잘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향상될지 모르지만, 게임과 무관한 인지 기능의 향상으로까지 이어지는지는 불분명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뇌는 경험의 영향을 받으며 꾸준히 형태를 갖춰나간다는 건 분명합니다. 장기적인 훈련은 뇌의 구조와 기능의 장기적인 변화로 이어집니다. 운동선수, 음악가 등을 대상으로 한 경험에 바탕을 둔 신경가소성 연구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당장 외국어 학습에 돌입할 분들도 꽤 되실 듯한데요, 제2언어를 학습하는 것은 신경 보호 효과도 있고 노년에 알츠하이머 및 기타 신경 퇴행성 질병의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기억을 형성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능력, 뇌 손상으로부터 적응하고 회복하는 능력을 위해 알아본 <신경가소성>. 상상 이상의 결과를 선사하기도 하고 기대한 것에 못 미치는 연구 결과를 드러내기도 하면서 현재까지 알려진 신경가소성의 진실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뇌가 서로 같을 수 없고, 교과서적인 뇌라는 것은 없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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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상상력 -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힘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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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그림, 음악, 영화를 넘나들며 예술적 모험으로 인도한 전작 <예술 수업>에 이어, 보이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구현하는 법을 세기의 창작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책 <예술적 상상력>. 예술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좀 어렵게 느꼈는데, 명저 <생각의 탄생>과 결을 같이하는 책이어서 낯설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피카소가 스물한 살에 그린 그림 <두 자매>. 누가 수녀이고 누가 창녀인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어두운 분위기의 고개 숙인 왼쪽이 수녀이고 파란 옷을 입은 여인이 창녀라고 합니다. 대부분은 반대로 생각하기에, 우리의 편협한 통념을 건드리는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합니다.


기존 관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은 피로한 것으로 때로는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합니다. 상상하고 창조하는 일이 근본인 예술 세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예술작품을 알겠다는 것은 낯설고 새로운 세상을 이미 만들어진 논리로 풀려는 닫힌 자세에게 나온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예술적 상상력은 "보이는 것을 꿰뚫어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힘이며 삶을 고양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저 아름답고 감상적으로만 대했던 예술. 이 책은 예술에 담긴 진면목을 통해 창조의 토대인 예술적 상상력을 이야기합니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에서 이젠 기계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시대입니다. 무엇이 인간인지, 인간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오종우 저자는 '사유'라는 키워드를 내놓습니다. 사유는 측정할 수 없고 수치화할 수 없는 그것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만 있는 사고방식이지요. 이것이 사람다움의 바탕이 됩니다. 사유가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한나 아렌트의 《예수살렘의 아이히만》,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등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사유 부재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문제의 본질을 보려는 사유는 기성 논리에서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연합해 새 논리를 창조하게 해줍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예술이라고 한 파울 클레의 말처럼 상상하고 사유하는 예술 행위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저 보이지 않았던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없었던 세계를 가시와 가청의 영역으로 탄생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술은 그 자체가 창조이면서 다른 창조를 가능케 하는 상상력을 준다." - 예술적 상상력


기존 인식에 틈이 생겨 새로운 논리가 생긴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결합해 세상을 재구성할 때 일어납니다. 익숙하지 않은 연결 때문에 순간, 공간이 발생하고 바로 여기서 사유가 생성된다는 거죠. 창의성은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만든 틈에서 발현되는 겁니다. 바로 새로운 생각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에필로그에서 들려준 루블료프의 전기를 다룬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감동은 책을 덮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먹먹한 울림을 주는 이야기였어요. 진정으로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사람다움의 의미를 이야기한 <예술적 상상력>. 수록된 QR 코드로 바로 영상과 음악을 접할 수 있어 저자가 말하는 의미가 직관적으로 와닿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재발견하기도 했어요. 줄거리 대충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완독할 마음 없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던 고전 중의 하나였는데 <예술적 상상력>에 인용된 문장들이 어쩜 그토록 인상 깊게 다가오던지요.


상상력의 근원인 예술이 무엇인지, 그 예술이 어떻게 문명을 일으켰는지, 예술이 무슨 모습으로 현실과 만나는지 보여주는 <예술적 상상력>.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이룰 수 없고, 상상하는 것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인간은 이미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인생을 창조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진정 창조적인 자세를 취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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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불평등 시점
명로진 지음 / 더퀘스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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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에 대한 이야기 <전지적 불평등 시점>.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준 책 <짧고 굵은 고전 읽기>로 배우 명로진에서 작가 명로진의 모습을 저는 처음 알게 되었었는데, 이번 에세이도 기대 이상이네요. 슬쩍슬쩍 튀어나오던 사이다 유머를 <전지적 불평등 시점>에서는 제대로 터뜨렸습니다.


꼬붕, 시다바리, 지랄 같은 단어가 적나라하게 등장하며 "유머와 해학을 가미한 스토리로 21세기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헤집는" 책 <전지적 불평등 시점>. 노력이 다 같은 노력이 아니라 몇 배 더 어려운 노오력을 해도 힘든 돈 없는 자들의 설움에 공감하며 지랄맞은 갑들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배우, 교수, 작가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명로진 저자여서 에피소드 배경도 예술계, 학계 등 몸담은 곳 이야기가 많아요. 그 외 이슈화된 기사를 토대로 이 사회의 가진 자들의 행태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명로진 저자가 말하는 가진 자들이란 사장, 회장, 대표, 건물주 등 말그대로 경제적 자유를 가진 자들입니다. 아이들 장래희망에 이미 건물주가 등장했던 건 아시죠?


사람을 고용한 걸 인격 전체를 24시간 동안 구매한 줄 아는 갑질들. 신입사원 군대식 연수 논란으로 들썩이는 일이 아직도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알려주는 저자의 이야기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김산해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내용을 인용하는데요. 신조차 노동을 싫어해서 신을 대신해서 일할 '사람'을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를 통해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명제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남을 위해 하는 노동 자체가 모욕 당하는 일이었어요. 휴식이야말로 신성한 것입니다.


노동하기 좋은 환경이란 말도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특히 이 시대 노동은 치욕이라고 말합니다. 나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노동이기 때문이라고요. 공자 왈, "네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말씀이 사무치게 다가옵니다.


"타자에 대한 분노는 무기력과 함께 자아를 향하고, 자아와 타자를 오가며 분노하는 동안 그들의 에너지는 고갈된다." - 전지적 불평등 시점





<전지적 불평등 시점>에서도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봅니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 2천여 년 전에 이미 벌어졌고, 여전히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걸 보면 갑갑하긴 하지만요. 우리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건 비정규직이고, 그들은 더 이상 끌어 쓸 돈도 없는 워킹푸어이기도 합니다. 화병 나는 현실에 막힌 대부분의 우리들. 그래서 어쩌라고?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되지요.


라떼는 말이야 과자가 나올 정도로 꼰대를 비꼬고 풍자하는 시대입니다. 돈 없는 나를 지키고 싶은 을에게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사이다처럼 속을 확 뚫어주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인상적인 책 <전지적 불평등 시점>도 그런 점에서 딱 필요한 타이밍에 나온 책 같아요. 책 마지막에 실린 스무 살 아들에게 주는 글은 세상의 모든 을에게 남기는 조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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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 다이어리북 - 참 괜찮은 나를 발견하는 155가지 질문들
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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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 자서전 <비커밍 Becoming>에서 본 주옥같은 명언들을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멋진 아이템이 나왔어요. 끊임없이 새로운 내가 되어가도록 이끌어주는 155가지 질문이 담긴 <비커밍 다이어리북>.


2018년에 읽은 <비커밍>에서는 여성들의 롤모델로 거듭나기까지 미셸의 성장 여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맛깔스러운 문장과 매끄러운 감정선이 마음에 쏙 들었는데, <비커밍 다이어리북>에서도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어요.


brave, passionate, kind, creative, thoughtful, happy... 무언가가 되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비커밍 다이어리북. 더 나은 자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이라는 becoming. 그 여정을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실천에 이를 수 있게 도와주는 건 쓰기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머릿속 생각을 종이에 적는 순간 그 생각이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 쓰기를 머뭇거렸다는 미셸의 고백처럼, 우리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미셸은 자신의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기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건 그게 무엇이든 다 소중하다는 걸 알려줍니다. 에세이 <비커밍>에서도 그가 쓴 일기 때문에 기억과 그 당시의 감동을 되살려 책에서 들려줄 수 있었던 에피소드가 많았다고 해요. 시시콜콜하고 평범한 이야기도 결국 나의 이야기를 이룹니다.


"글쓰기는 그 모든 것을 다루는 방법이자 이해하는 방법, 그리하여 성장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기억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 책 속에서





살면서 가장 자랑스웠던 순간, 이뤘으면 하고 바라는 것들, 당신에게 있는 재능 등 내가 원하는 것들을 나 스스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쓰려고 하니 좀 막히더라고요. 생각정리가 얼마나 필요한지 이번에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어려서 즐겨 먹거나 좋아했던 음식 다섯 가지, 당신이 감당했던 가장 큰 희생 등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처럼 보이는데 기억이 가물거려서 또는 정작 쓰려고 하니 한 줄도 쓸 수 없을때면 살짝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조차도 미셸의 응원 덕분에 즐거운 미션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미셸은 경험, 생각, 감정이 불완전하면 불완전한 대로 적어보라고 합니다. 다듬거나 꾸미거나 애써 결론을 끌어내려고 하지 마라고 합니다.


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생각하는 과정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다시한번 생각해본 계기가 됩니다. 그 생각을 정말로 집중해서 해봐야만 알게되는 감정이 분명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냥 질문을 읽고 넘기는 것과 그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건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었습니다.





생각하고 쓰는 행위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 필요한 것들이었어요. '남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당신 스스로는 어쩐지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느낀 적이 있는지, 그때 결국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질문처럼 평소 스스로는 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통해 나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질문을 곰곰히 따라가다보면 울컥하게 만드는 질문도 종종 만날 거예요. 저는 '최근 유달리 힘든 하루가 있었나요? 그런 날 무얼 하는 걸 좋아하나요?'라는 질문을 생각하면서 그랬어요. 별 것 아닌 질문 같았는데 생각하다보니 힘든 날, 스스로를 위로할 생각조차 없이 그저 허우적거리기만 했다는 생각이 든 순간... 나를 좀 더 아껴주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되더라고요.


에세이 읽은지 1년 여의 시간이 지나고나니 당시엔 그다지 감흥없던 문구가 이제는 콕 와닿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가 수준 낮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는 문장이 어쩜 대박 통쾌하게 다가오는지. 자아 성찰에 도움주는 다이어리북을 한 번씩 사용해봤는데 <비커밍 다이어리북>은 여성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습니다. 엄마로서의 미셸이 들려주는 조언도 맘에 쏙 들었어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필요한 변화와 성장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는 <비커밍 다이어리북>. 유명세에 힘입어 그저 굿즈처럼 출시한 다이어리북이 아니더라고요.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게 하면서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도록 응원하는 진심이 담긴 다이어리북이란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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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톰의 발라드
빅터 라발 지음, 이동현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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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신화를 아시나요? 그리스로마신화, 북유럽신화는 알겠는데 크툴루는 어느 나라 신화냐?!공포소설의 거장 H. 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존재 크툴루를 포함해 여러 이형의 신들이 등장하는 어두운 세계관을 가진 신화입니다. 크툴루 신화가 기록된 금서 '네크로노미콘'을 통해 밀교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다른 작가들이 크툴루 신화를 차용하기도 해서 진짜 있는 신화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해저에서 잠들어 있는 사악한 신적인 존재인 크툴루는 『레드 훅의 공포』에도 등장합니다. 이 소설은 당시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욕이 난무했지만, 워낙 거장이다보니 살아남은 작품이었다고 해요. 그 아쉬움과 작가에 대한 비판을 담은 소설이 바로 <블랙 톰의 발라드>입니다. 러브크래프트 원작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이어받으면서도, 혐오로 가득했던 시각을 빅터 라발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엇갈리는 심정으로 H. P. 러브크래프트에게 바친다." 


1920년대 재즈 시대, 이민자들이 넘실거리는 뉴욕 할렘에 사는 흑인 청년 토미의 시점으로 진행하는 <블랙 톰의 발라드>는 백인의 눈으로 바라본 원작의 사건들을 교묘하게 뒤집어엎습니다.


실력 없는 음악가로 잡일을 하며 생활하는 토미에게 다가온 로버트 수댐. 그가 주최하는 파티에서 연주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권위 의식으로 가득 찬 백인 로버트 수댐의 파티에 초대되는 사람들은 할렘에서 온 흑인들, 레드 훅에서 온 시리아인들과 스페인 사람들, 파이브포인츠에서 온 중국인들과 이탈리아인들 등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민자들이었습니다. 과연 무슨 작당을 하는 걸까요.


한편 로버트 수댐을 뒤쫓는 하워드 탐정과 말론 형사. 원작에서는 경찰 말론의 눈으로 진행되었는데, 원작의 대사들이 이 소설에 인용되기도 해요. 이민자들이 사는 동네를 "지저분한 혼혈인들로 얽히고설킨 미로"라고 지칭하듯 원작에 깃든 백인 중심 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게 됩니다.


백인들이 사는 동네를 지나갈 때면 고개를 숙이고 발을 끌며 어수룩하게 보이는 행동을 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않기를, 무관심의 대상이 되길 자처했던 토미. 하지만 탐정이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쏜 총탄에 살해된 아버지의 사건을 계기로 토미의 마음이 변하게 됩니다. 탐정이 토미의 아버지를 쏜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은 정말 혈압 솟구치게 하더라고요. 무감하게 묘사하는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토미의 비탄한 감정을 더 끌어낸 것 같아요. 토미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토미가 아닙니다. 피에 젖은 기타를 가지고 다니는 '블랙 톰'이 됩니다.


"차라리 무관심이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어." - 블랙 톰의 발라드 ​


로버트 수댐이 이민자들을 모아 퍼뜨리려는 이야기는 크툴루 신화와 맞닿아있습니다. 신천지로 이끈다는 크툴루의 탄생 스토리가 로버트 수댐과 블랙 톰으로부터 발화되고, 그 과정에서 러브크래프트 작가까지 카메오로 등장시킨 빅터 라발 작가의 센스가 재미있었어요.


크툴루든 원작이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블랙 톰의 발라드>를 먼저 읽으셔도 전혀 문제없이 읽을 수 있지만, 읽을만한 괴상한 공포 이야기로만 끝내지 않으려면 소설의 탄생 비하인드를 아는 게 훨씬 더 재미난 건 사실이에요. 원작 『레드 훅의 공포』와 비교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겁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에 등장하는 '특별한 책'과 크툴루 이야기, 현대 흑인 문화에 영향을 끼친 슈프림 알파벳이 소설에 등장하는 의미 등 더 깊은 이야기에 관심 갖는 계기가 됩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는 있을 법하지 않은 미지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데, 스티븐 킹의 초자연 공포물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읽어보세요. 저는 H. P. 러브크래프트 작가의 책은 고딕 호러 판타지 <몬스트러몰로지스트> 시리즈만 읽어봤는데, 이 작가의 세계관은 접하면 접할수록 흥미롭게 다가오네요. 작가의 작품들을 언젠가는 독파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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