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상상력 -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힘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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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그림, 음악, 영화를 넘나들며 예술적 모험으로 인도한 전작 <예술 수업>에 이어, 보이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구현하는 법을 세기의 창작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책 <예술적 상상력>. 예술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좀 어렵게 느꼈는데, 명저 <생각의 탄생>과 결을 같이하는 책이어서 낯설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피카소가 스물한 살에 그린 그림 <두 자매>. 누가 수녀이고 누가 창녀인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어두운 분위기의 고개 숙인 왼쪽이 수녀이고 파란 옷을 입은 여인이 창녀라고 합니다. 대부분은 반대로 생각하기에, 우리의 편협한 통념을 건드리는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합니다.


기존 관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은 피로한 것으로 때로는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합니다. 상상하고 창조하는 일이 근본인 예술 세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예술작품을 알겠다는 것은 낯설고 새로운 세상을 이미 만들어진 논리로 풀려는 닫힌 자세에게 나온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예술적 상상력은 "보이는 것을 꿰뚫어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힘이며 삶을 고양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저 아름답고 감상적으로만 대했던 예술. 이 책은 예술에 담긴 진면목을 통해 창조의 토대인 예술적 상상력을 이야기합니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에서 이젠 기계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시대입니다. 무엇이 인간인지, 인간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오종우 저자는 '사유'라는 키워드를 내놓습니다. 사유는 측정할 수 없고 수치화할 수 없는 그것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만 있는 사고방식이지요. 이것이 사람다움의 바탕이 됩니다. 사유가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한나 아렌트의 《예수살렘의 아이히만》,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등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사유 부재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문제의 본질을 보려는 사유는 기성 논리에서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연합해 새 논리를 창조하게 해줍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예술이라고 한 파울 클레의 말처럼 상상하고 사유하는 예술 행위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저 보이지 않았던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없었던 세계를 가시와 가청의 영역으로 탄생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술은 그 자체가 창조이면서 다른 창조를 가능케 하는 상상력을 준다." - 예술적 상상력


기존 인식에 틈이 생겨 새로운 논리가 생긴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결합해 세상을 재구성할 때 일어납니다. 익숙하지 않은 연결 때문에 순간, 공간이 발생하고 바로 여기서 사유가 생성된다는 거죠. 창의성은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만든 틈에서 발현되는 겁니다. 바로 새로운 생각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에필로그에서 들려준 루블료프의 전기를 다룬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감동은 책을 덮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먹먹한 울림을 주는 이야기였어요. 진정으로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사람다움의 의미를 이야기한 <예술적 상상력>. 수록된 QR 코드로 바로 영상과 음악을 접할 수 있어 저자가 말하는 의미가 직관적으로 와닿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재발견하기도 했어요. 줄거리 대충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완독할 마음 없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던 고전 중의 하나였는데 <예술적 상상력>에 인용된 문장들이 어쩜 그토록 인상 깊게 다가오던지요.


상상력의 근원인 예술이 무엇인지, 그 예술이 어떻게 문명을 일으켰는지, 예술이 무슨 모습으로 현실과 만나는지 보여주는 <예술적 상상력>.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이룰 수 없고, 상상하는 것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인간은 이미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인생을 창조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진정 창조적인 자세를 취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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